요시다 요 "관객에게 미움받는 것이 목표였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8.10.18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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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엄마와 나: 미움 받아도 괜찮아> 주연배우 요시다 요

주머니를 털어 조금의 만용을 부리니 고속버스로 꼬박 한나절이 걸리는 지난한 여정이 반으로 줄고, 시간대를 선택할 자유까지 주어졌다. 그렇다고 목청 높여 ‘자본의 효용’을 찬양할만한 기분도 아니었다. 깊은 우울 속으로 침잠해가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별다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

고치(高知) 현 고치 시의 누군가의 옛집에 찾아갔다. 작고 소박하지만 겨울이면 볕이 깊숙이 들어 푸근하던 남향. 봄이면 달빛에 희끔히 빛나는 목련이 곱다라니 피어있었다던 그곳은, 편의점이 되어 있었다. 이웃의 할머니에게 전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년도 별로 월트 디즈니 홈 비디오 같지는 않았다. 신주쿠로 돌아온 필자를 맞이한 것은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저녁이었다.

2005년 1월 14일, 흐린 하늘 아래 을씨년스런 추위가 가슴을 파고드는 저녁. 빠른 걸음으로 대합실을 걸어 나와 길모퉁이 공연장으로 숨어들어갔다. 프로그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간판에 17세기를 풍미한 프랑스 희극작가의 이름(Molière)이 쓰여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웃고 싶었으니까. 머릿속이 온통 하얘질 때까지. 하지만 다들 알고 있듯 충동적인 결정은 뜻하지 않은 결론을 가져온다. 그날도 공연이 끝난 뒤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고개를 처박은 채 눈물을 쏟고 말았으니까.

“엄마...”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양 갈래로 예쁘게 땋은 머리가 인상적이던 아역배우와 호흡을 맞추며, 객석에서 숨죽이는 필자의 가슴을 흔들던. 고작 해야 2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던 그녀가 이미 데뷔 9년째에 접어들던 배우, 요시다 요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작 하나 하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열정과 재능이 묻어나는 배우가 주는 감동은 누구에게든 다르지 않나 보다. 2년 뒤 NHK TV소설 <눈동자>에 출연하던 그녀를 본 대배우, 나카이 키이치는 그 즉시 이미 캐스팅이 끝난 상황이던 자신의 출연작 <바람의 가든>에 그녀를 천거했다. 하지만 인기 드라마 <히어로>의 두 번째 시즌에 유일한 여성검사역으로 출연, 톱스타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도 그녀는 한결같았다.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배우’이길 원했고, 그렇게 살았다.

신작 <엄마와 나: 미움 받아도 괜찮아>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그녀를 만났다.

홍상현:

일본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스타지만 한국에는 아직 그렇지 않다. ‘요시다 요는 이런 사람’이라고 간단히 소개해주실 수 있겠나.

요시다 요:

무대에서 연기력을 길러 마흔 넘어서야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늦된 배우’, 늘 카멜레온 같은 연기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떤 역이든 소화해내는 조연배우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 한국의 관객 여러분께도 제 특성이나 성향 같은 것을 말씀드리기보다 제가 연기한 배역으로 인정받고 싶다.

 

홍상현: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화제였던 “세상 모든 신 스틸러(scene stealer)를 위한 헌정 프로젝트, ‘작은 역은 있어도 작은 배우는 없다’”가 떠오른다. ‘신 스틸러’야말로 2007년 이후 당신의 행보를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인데.

요시다 요:

신 스틸러. 멋진 표현 감사하다. 2007년 당시 작은 역을 맡아 TV드라마에 출연 중이었는데 마침 드라마를 보던 선배 연기자가 저를 ‘발견’해주셨다. 시청자들에게 그렇게까지 강한 인상을 남길 만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주의 깊게 봐주신 거지. 그도 제게 ‘아무리 작은 역이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누군가 반드시 지켜봐 준다. 그러니 어쨌든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다. 당시까지 저는 제가 주연배우를 할 만한 그릇이 아니기에 작은 배역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일단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웠고. 그렇게 노력한 끝에 인정을 받았으니 제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다.

 

홍상현: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모습만 보아서인지 무척 빠른 시간 안에 그 자리에 올라선 느낌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시모기타자와의 소극장에 주연으로 선 게 1997년의 일이었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적지 않은 연극배우는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한다.

요시다 요:

저도 당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다들 그렇게 지내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세계라 그다지 꺼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였으니까. 오히려 저 혼자만 편하게 지내면 벌이라도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 (웃음)

No Matter How Much My Mom Hates Me ⓒ2018 No matter how much my mom hates me Film Partners

홍상현:

그러다 2015년을 맞았다. 패션매거진 《보그 재팬(VOGUE JAPAN)》의 올해의 여성에 선정되었고, 한국에도 공개된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로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조연여우상을 거머쥐었다.

요시다 요:

제 스스로 상과는 무관한 배우일 거라 믿었던 까닭에 일단 물망에 오른 것부터 기적이라 생각했다. 다만 그런 일들이 저와 같은 꿈을 꾸는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있지 않을까 한다. ‘요시다 요 같은 사람도 해냈는데’하는.

 

홍상현:

그간 출연한 영화(<스쿠프!><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내 머릿속의 포이즌베리><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등) 소개된 적은 있어도, 영화제 게스트로 한국을 찾은 것은 처음이다.

요시다 요:

여가시간을 주로 영화를 보는데 쓴다. 좋아하기도 할 뿐더러 내 일과 관련한 가장 좋은 공부이기도 해서인데, 이런 기회가 주어지려고 그랬는지 최근 한국영화를 많이 보게 되더라. 그런데 신기한 건 타이틀과 시놉시스 등을 흝어보다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것마다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이었다. <아가씨>나 <친절한 금자씨>같은. 특히 <친절한 금자씨>의 경우, 일본에서 리메이크된다면 도전해보고 싶을 정도로 애착이 간다.

 

홍상현:

어조에서 설렘이 묻어나온다.

요시다 요:

작품에 나타나는 그 세계관이 좋다. 무서운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갑작스레 끼어드는 웃음의 요소,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연이 닿는다면 박찬욱 감독님도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다.

 

홍상현:

이제 <엄마와 나: 미움 받아도 괜찮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캐릭터의 성격이란 매체에 따라 패턴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TV드라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경우 시청자의 이해도ㆍ집중도를 높이는데 효과적인 까닭에 대개 전형적이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은 선택지가 많다. 이 영화가 자칫 단순한 악인처럼 보일 수도 있는 ‘엄마’가 미움과 애처로움의 양가적 감정을 끌어내는 인물로 그리듯.

요시다 요:

말씀하신 같은 캐릭터의 특성 때문에 연기로 표현해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작품 속에서 그녀의 성장과정에 대해 언급되는 부분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결코 그녀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대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 또한 고립된 상황에서 고독감을 느껴온 것이 분명하기에 이 부분도 표현해 내야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강조하면 ‘엄마’의 가련한 이미지가 극대화되어 그녀의 행동조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었고. 이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느냐가 관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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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

실제로 <엄마와 나: 미움 받아도 괜찮아>를 본 관객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는 경우도 있다.

요시다 요:

분명 찬반양론이 있을 것이다. 엄마에게 정말 미움을 느끼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불쌍히 여기는 분도 계실 테니까. 하지만 어떤 감정이라 해도 이토록 미숙한 그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아이(‘나’)가 있었다는 진실이 전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쨌든 판단은 관객 여러분께 맡긴다는 생각으로 모든 욕심을 버리고 그녀의 ‘미숙함’을 표현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홍상현:

그럼에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거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에서 이 영화와는 180도 다른 성격을 가진 어머니를 연기해 극찬을 받았잖은가. 그렇게 쌓아올린 이미지를 대번에 무너뜨릴 수밖에 없으니까.

요시다 요:

기본적으로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까닭에, 설령 전작에서 따듯하고 사려 깊은 어머니 역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손 치더라도 계속 그런 캐릭터만 끌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주어진 배역이 곤란하면 곤란할수록 도전해보고 싶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성과 또한 크게 느껴진다. ‘설마 이런 인물을 요시다 요가?’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역이야말로 매달려볼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이런 과정 속에 관객 여러분들이 제 연기를 보고 ‘요시다 요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하신다면 그야말로 연기자로서 성공이라 생각한다.

 

홍상현:

지금껏 대단히 폭넓은 연령대의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분위기도 전환할 겸 다른 화제를 꺼내보면, 캐스팅 과정에서 ‘20대 회사원의 어머니를 연기하기에는 너무 젊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다. (웃음)

요시다 요:

일단 가능할 수도 있는 연령이라고 생각하고. (웃음) 설령 그런 상황이라 해도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다가서는 배우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관객들로부터 ‘너무 젊지 않느나’는 말씀을 듣게 된다면 오히려 제 연기력 부족을 지적받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다.

 

홍상현:

자연스레 촬영 당시의 이야기로 넘어왔다. ‘엄마’를 연기하면서 설정한 초목표(super objective)는 뭔가.

요시다 요:

사람들에게 미움 받는 것. (웃음) 관객들이 그녀가 했던 행동을 긍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홍상현:

종종 유사한 내용의 다른 작품을 보면 악역이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뉘우치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엄마와 나: 미움 받아도 괜찮아>에서 ‘엄마’의 ‘미안해’는 오히려 전형적이지 않다는, 다시 말해, 통곡을 하는 등의 격한 감정 표현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큰 울림이 있었다.

요시다 요:

결말부의 바닷가 장면이 갈등이 해소된 상황을 보여준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단지 그 단 한 번의 사과만으로 그녀가 용서를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머니로서 부족했던 그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사랑했다는 사실이 그 장면에서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홍상현:

폭력을 휘둘렀다는 점에서 엄마가 절대로 이해받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혼 이후 만난 연인에게 매달리는 등,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었다. 학대의 가해자이지만 그 자신 평생 사람에 굶주렸던.

요시다 요:

그녀는 어머니로서의 자신보다 한 사람의 여자로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을 우선시했다. 이 부분을 이해하니 배역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사랑받기를 원한 경험이 있으니까. 또한 내 경우 다행스럽게도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나,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는 게 이번 작품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엄마와 나: 미움 받아도 괜찮아> 주연 요시다 요(왼쪽)와 감독 미노리카와 오사무 ⓒ 2018 No matter how much my mom hates me Film Partners.

수강신청을 하는 대학 신입생처럼 진지한 얼굴로 티켓 카탈로그를 펼쳐 든 그녀가 오히려 필자에게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의 작품들에 대한 설명과 추천작을 부탁하면서 시작된 대화는 판에 박힌 듯한 차기작 소개 대신 ‘두근거림’이라는 화두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다.

 

“무엇보다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가 아닌 열정으로 저를 끌어당기는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제게 주어진 배역이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계산하기보다 제가 그 인물을 진정 좋아하고, 재미있다고 느끼는지, 끊임 없이 저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응원한다’는 따위 멘트는 던지고 싶지 않았다. 어서 또 다른 성취를 이루라고 재촉하는 느낌이 들까봐. 다만 ‘연기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지금 이 순간에도 12년 전 그때와 다르지 않듯, 12년 뒤에도 마찬가지일 거라 믿는다'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어보였을 뿐. 그리고 우리는 마주보며 인사했다.

“고마웠습니다”가 아니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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