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스파이더맨도 자나깨나 '환경 걱정'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11.07 02: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히어로 액션 게임의 말끔한 결과물, ‘스파이더맨’(2018)

올해 플레이스테이션 기반으로 출시된 액션어드벤처 게임 ‘스파이더맨’(Marvel’s Spider-man) 은 영화를 통해 이뤄낸 마블 시리즈의 대호황기에 호응하는 게임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완성도와 재미 또한 상당히 괜찮은 평가를 받는 중이다. 콘솔 기기 게임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은 한국에서의 대중적 인지도는 크게 잡아주기 어려운 수준이긴 하지만, 적어도 콘솔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면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 세대 스파이더맨 게임으로서는 대표작의 위치를 차지할 만한 작품으로 손꼽힐 듯 싶다.

슈퍼 히어로를 중심에 둔 게임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배트맨 아캄’ 시리즈와 이래저래 비교될 수 밖에 없다. 아캄 시리즈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 게임 시스템은 일견 '아캄스럽지만' 그 속에서 스파이더맨 특유의 느낌을 살려내고 있다. 사실상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인 ‘웹 스윙’(거미줄을 고층 빌딩에 쏘아 그네처럼 타고 날아가는 이동방식)이 속도감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은 조작으로 구현되어 있다. 소위 '스윙감'을 맛볼 수 있어 이러한 게임 방식이 배트맨보다도 스파이더맨에게 더 어울릴 거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만화ㆍ영화와 같은 원전을 따르면서도 적당한 수준에서 가지를 쳐 나가는 스토리와 설정은 또한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맨해튼의 환경문제를 해결하라

주어진 스토리만을 따라가는 방식이 아닌, 부가 미션과 사이드 퀘스트를 통해 도시 곳곳을 누비는 ‘스파이더맨’ 게임의 방식은 단지 스토리 미션만으로는 얼마 진행을 못 하는 게임의 분량을 책임진다. 동시에 플레이어 캐릭터의 성장감을 보조해주는 역할로서 맨해튼 섬을 배경으로 삼아 풍부한 즐길거리를 부여한다. 이들 사이드 퀘스트는 게임 속 세계관과 완전히 동떨어지기보다는 나름의 이유와 배경에 대한 설명이 붙으면서 게임 속 세계의 생동감을 만들어낸다.이중 눈에 띄는 한 퀘스트 시리즈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해리 오스본의 '연구 시리즈'다.

스파이더맨의 친구인 해리 오스본이 해외여행을 떠난다며 스파이더맨에게 남겨 준 과제들인 연구 시리즈 퀘스트는 도시 곳곳의 옥상에 놓인 연구용 컨테이너를 열면서 시작된다. 각 연구소를 찾아 열면 해리 오스본이 남긴 메시지와 함께 과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스파이더맨이 주어진 연구문제를 해결하는 미션이 주어지는데, 이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바로 도시 환경 문제다.

맨해튼을 가득 채운 대기오염, 어디선가 새어나오는 유독가스, 하수처리 시설 고장 등을 해결하기 위한 임무들이 연구 미션에서 스파이더맨에게 주어진다. 거미줄을 타고 가며 대기 샘플을 채집하고, 급수 탱크의 누수를 막거나 유독물질을 추적해 제거하는 등의 일들이 주요 임무다. 단순히 실험실에서 샘플을 보고 맞추는 미니게임이 아니라 도시를 누비며 실질적인 환경개선을 수행하는 업무들이다. 이런 '친환경적' 연구 미션이 2018년의 대작 게임 안에 포함된다는 것은 환경 이슈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친근한 이웃, 이제는 환경보호에도 나선다

스파이더맨이 스스로를 가리키며 하는 말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시민들을 지키는 자경단으로서의 역할을 가리킨다. 게임 시리즈 이전에도 스파이더맨의 활동은 주로 범죄자들을 체포하거나 위기에 빠진 시민들을 구해내는 일들이 중심이 되곤 했었다. 물론 간간이 가볍고 유쾌한 부탁들도 처리하는 ‘친근한 이웃’으로서의 정체성도 놓칠 수 없지만, 어쨌든 시리즈의 중심에는 시민을 위협하는 악당이라는 기본적인 선악구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이드 퀘스트들도 메인 스토리상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만화원작 내에서 비중있는 악역들의 캐릭터성이 드러나는 부가 이야기들을 다룬다. 그런데 이번 게임은 빌런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도시의 환경 이슈가 스파이더맨의 과제로 주어졌다. 2018년 ‘스파이더맨’ 게임의 포인트다. 도시 환경은 다시 말해 이제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여러 이슈들 중에서도 ‘친근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나서야 할 정도로 꽤나 중대한 사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2018년 게임답게 게임은 곳곳에서 환경에 대한 두터운 관심을 드러낸다. 빌딩 숲 사이를 날아가다 보면 간간이 건물 옥상을 뒤덮은 태양광 패널들을 보게 된다. 연구 퀘스트들은 대기오염, 수질오염과 같은 문제부터 시작해 뉴욕을 뒤덮은 전광판의 전력 과다사용 위험까지 꽤나 두터운 주제들을 다룬다. 웹 스윙, 거미줄 발사, 스파이더 센스를 통한 탐색과 추적까지 스파이더 캐릭터 특성과 피터 파커 본인의 과학적 재능까지 환경개선에 사용된다. 도시 환경 개선에 골몰하는 모습은 히어로 – 빌런이라는 고전적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있으며 또 다른 시민의 위협을 보다 색다르게 만드는 역할을 해 내고 있다. 동시에 이 게임이 발매 시점을 기준으로 꽤나 당대의 이슈와 가까이 붙어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유쾌한 히어로에 덧붙은 환경지킴이의 이미지

즐거움이 최우선일 디지털 게임에서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외려 역효과를 부르기 십상이다. 어지간히 잘 만들지 않으면 대체로 이런 류의 교육성 게임들은 대충 맥락이 파악되면 게임을 더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이 환경을 다루는 방식에 너무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환경 자체의 심각함을 일깨우기 위해 만든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선악구도의 대결 언저리를 감싼 또 하나의 갈등구도인 환경오염과 개선, 보호라는 축이 가볍게 얹혀졌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일일 것이다. 빌런들의 강력한 공격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모습이 멋진 슈퍼 히어로의 전형성이었다면, 이제 그 히어로를 구성하는 또 다른 한 축으로 환경을 걱정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는 ‘스파이더맨’은 좀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수다스러우면서 유쾌한 과학도 히어로가 도시를 누비며 곳곳의 밸브를 점검하고 유독물질을 걸러내는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을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