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구걸하다 망한 나라는 없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11.07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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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며, “평화를 구걸하다가 망해버린 중국 송(宋)나라가 떠오른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당일 조선일보에 ‘敵에게 평화를 구걸하다 몰락한 宋나라’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정말 이들의 주장대로 송나라가 평화를 구걸하다 망한 것인지 살펴본다.

<대송 제국 쇠망사>라는 신간 소개에서 비롯돼

홍 대표가 인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조선일보 기사는 <대송 제국 쇠망사>라는 신간 소개 기사이다. <대송 제국 쇠망사>는 중국 고전 문헌과 문화사 연구자로 <대당제국 쇠망사>를 집필한 자오이 난징대 교수가 중국 송나라(960∼1279)가 쇠망에 이르게 된 과정을 조명한 책이다. 조선일보, 연합뉴스, 한겨레신문 등에서 신간으로 소개했다.

조선일보 기사는 제목처럼 본문에서도 “‘오랑캐가 무력으로 위협하면 돈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관념이 생겨났다”, “화의 결과 요나라에 지급하던 공물을 금나라에 돌리고도 국토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며 송나라 망국의 원인으로 외교정책의 실패를 강조하고 있다.

연합뉴스의 기사는 조금 다르다. “저자는 송이 초기부터 폭발적 인구 증가와 재정 적자, 치열한 당파 싸움 때문에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고, 왕안석이 개혁을 시도하면서 갈등이 심화했다고 지적한다. 송은 이어 여진족이 세운 금에 밀려 남쪽으로 수도를 옮기고, 몽골에 점령당한다. 그는 “송은 중국 왕조 최초로 이민족에게 철저히 패하는 치욕을 경험했다”며 “덕치와 평화 전략으로 성세를 이뤘으나, 개혁을 꺼리고 분열을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고 소개했다.

한겨레는 “송나라 건국부터 멸망까지 약 300년의 역사 가운데 멸망 원인이 된 정치 사건을 기술한다. 왕안석의 개혁 실패와 이에 따른 당파 싸움은 송나라의 국력을 약하게 만들었고, 조공을 바치면서까지 평화를 유지하려 했던 대외 정책은 전쟁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소개했다. 조선일보가 여러 요인 중에 외교정책 실패를 강조한 반면, 연합과 한겨레는 망국에 이르기까지 여러 과정을 아우르고 있다.

<대송 제국 쇠망사> 표지

<대송 제국 쇠망사>를 출간한 위즈덤하우스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책 소개를 보면 세 매체의 관점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연합과 한겨레가 출판사의 책 소개에서 전반적이거나 핵심적인 내용들을 따 온 반면, 조선일보는 기사 초중반부에서 특정한 부분인 외교 정책 실패를 강조한 후 후반부에서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남송, 세계 최대 몽골제국과 40년간 전쟁

송나라가 평화를 구걸하다 망했다는 서사는 보수진영에서 오랫동안 제기되어 왔다. 조갑제닷컴에서 2012년에 출간한 <송의 눈물>의 소개에는 "배부른 나라가 배고픈 나라에 졌다. 송은 한국의 쇠망 모델이 아닐까?"라고 적혀 있다. 언론인 조갑제는 '대한민국 멸망예언서 같은 '宋의 눈물''이란 글에서 "한국은 ‘웰빙 체질’의 살찐 돼지 같은 宋을 닮고, 북한 정권은 야윈 늑대 같은 북방의 야만족을 닮은 듯하다. 그런 점에서 宋의 이야기는 韓의 이야기이고 宋의 눈물은 韓의 눈물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송나라의 멸망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다음백과두산백과 등을 통해 소개된 송나라의 망국과정을 정리하면 “경제·사회·문화적으로 중국사에서 위대한 왕조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허약한 군사력과 결과적으로 실패한 외교로 내내 국가적인 어려움을 겪다가, 왕안석이 추구한 개혁정책의 실패로 결국 망국에 길에 이르게 됐다”로 요약할 수 있다.

또 조선일보가 강조한 외교정책의 실패는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以夷制夷)’는 정책을 취한 북송은 금나라와 연합하여 요나라를 공략, 멸망시켰으나 그 결과 중원을 잃게 되었고, 이어 남송은 몽골과 연합하여 금나라를 멸망시켰지만, 금 멸망 후 몽골군은 곧바로 남송을 공격해왔다”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남송은 몽골제국과 40년이나 전쟁을 벌였다. 다른 나라들이 수년만에 정복당한 것과 비교하면 그 저항은 완강했다고 볼 수 있다. 몽골의 양양 공성전만 6년이 걸렸고 송나라 군사 대부분은 몽골에 투항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을 했다.

몽골제국은 동아시아부터 유럽까지 걸친, 인류역사상 가장 큰 영토을 확보한 국가다. 몽골 때문에 멸망에 이른 국가는 송나라 이외에도 서하, 금, 거란, 대리, 호라즘, 투르크 등이 있으며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대부분이 몽골에 흡수당했고 현재 터키와 불가리아, 폴란드, 러시아 등 유럽 일부도 몽골에게 정복당했다. 몽골에 항복하고 조공을 바친 나라는 고려, 베트남 등 수두룩하다. 이들 국가는 모두 몽골의 침입에 오랜기간 동안 저항했지만 압도적인 전력차를 극복못하고 정복당했다. 홍준표 논리라면 몽골에게 정복당한 전 세계 수십개 국가들이 모두 평화를 구걸하다 망한 것이 된다.  

게다가 재정적인 반대급부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평화를 구걸했다’는 표현은 지나치다. 구걸의 뜻은 ‘돈이나 물건, 먹을 것 따위를 거저 달라고 비는 것’이다. ‘평화를 구걸했다’는 표현은 한국보다 현재의 북한에 더 적합해 보인다. 홍대표는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조선일보 기사의 제목만 본 뒤 필요한 부분만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지난 9월 13일 게재된 ‘송나라 정치스타’ 왕안석의 친서민 개혁은 왜 실패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송나라 정계의 최고스타이자 중국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인물인 왕안석과 그의 ‘친서민정책을 소개하고, “송나라는 희녕변법을 실시한 지 60년 만에 나라가 무너졌습니다. 변법을 놓고 정계가 구법당과 신법당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샅바 싸움을 벌인 탓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 모두 ‘희풍의 소인배’(신법당), ‘원우의 간신(구법당)’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 국가에 대한 책임에 여(與)와 야(野)가 따로 있을 리 없습니다”고 마무리했다. 송나라의 망국과정이 현재의 한국에 전해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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