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홈리스 법인세'가 생긴 이유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8.11.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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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홈리스 정책 예산을 확충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세금을 물리는 홈리스 법인세가 만들어졌다. 샌프란시스코는 트위터, 우버 같은 기업들의 본사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사무실을 넓혀 가고 있는 도시다. 경기 호황인 이 도시에 왜 이런 세금이 등장했을까.

 

주민투표로 통과된 홈리스 법인세

샌프란시스코에서 홈리스 법인세가 통과된 건 지난 11월 6일이었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의 전국 단위 선거가 치러진 날이었다. 이날 선거에선 지역에 따라 연방 의회 의원, 주지사, 시장 등을 뽑는 선거와 더불어 각 주와 시 등의 법률과 조례를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많은 주민발의안(Proposition)이 투표에 부쳐졌다.

주민발의는 미국에서 의회를 통하지 않고 주민들이 직접 법안을 만들어 제출해서 주민투표를 통해 통과시키는 제도다. 일종의 직접 민주주의 방식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선 여러 개의 주민발의안이 투표에 부쳐졌는데 통과된 안 중의 하나가 홈리스 법인세를 도입하는 주민발의안 C호(Propostion C)였다.

 

매출 규모 5000만달러 이상 기업에 부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제정된 홈리스 법인세는 이 도시에서 사업을 하면서 연간 총매출(비용 등을 제하지 않은 모든 형태의 수입)이 5000만달러 이상인 개인이나 기업에게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개인에게도 부과할 수 있으니 딱 잘라 법인세라고 할 수 없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사실상 법인세다. 사업 유형에 따라 세율이 다른데 평균 0.5% 정도다. 이렇게 해서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 수입은 한 해 최대 3억달러라고 한다. 11월 12일 기준환율(1달러=1130.20원)로 계산하면 우리 돈으로 3400억원쯤 된다. 참고로 샌프란시스코의 한 해 예산은 11조원 가량이다.

시는 홈리스 법인세를 통해 거둬들인 돈으로 향후 5년 동안 홈리스 주민 4000명 이상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주택을 짓고 임시숙소의 침상을 1000개 확충하는 등의 사업에 쓸 계획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홈리스 주민들의 치료에도 이 돈을 쓸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상황은 비상사태”

지난달 뉴욕타임스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20년 동안 살아왔다는 한 주민이 투고한 글이 실렸다. 글은 이렇게 시작됐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왔습니다. 한 때 약물에 중독되고 정신질환을 앓는 홈리스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위험지구로 불리는) 텐더로인에 집중됐고 누구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제 홈리스 인구는 시 전체로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 전체로) 확대됐고 사람들은 (심각성을) 깨닫고 있습니다. 지진과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에서 홈리스 상황은 비상사태입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홈리스 상황을 지진에 빗댔다. 샌프란시스코는 1906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3000여 명이 숨졌던 지역이다. 지금도 지진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고 있는 지역이다. 지진과 비교할만큼 홈리스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다.

샌프란시스코 시내 고가차도 밑 보행자통행로에 들어선 홈리스 텐트촌. 황장석 촬영.

 

신임 시장의 넘버원 프로젝트, '깨끗한 거리 만들기'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상황이 어느 정도길래 지진과 마찬가지라는 표현을 썼을까. 샌프란시스코 시가 2017년 1월 실시한 현장조사 보고서를 보면 홈리스 주민의 숫자는 총 7499명이었다. 2015년 같은 조사 때보다 40명이 줄어든 수치였지만 2013년 조사에서 파악된 7350명보다는 149명이 늘어난 숫자였다.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인구 88만명의 샌프란시스코는 홈리스 문제가 심각하기로 미국 주요 도시 가운데 뉴욕시와 선두를 다툰다고 할 정도다.

홈리스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건 시내 보행자통행로에 들어선 홈리스 텐트촌이다. 특히 고가도로 밑에는 수십채의 홈리스 텐트가 들어서고 철거되고 다시 들어서길 반복해왔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 시장 선거가 치러졌을 때 주요 후보들이 모두 강조했던 공약이 홈리스 상황을 개선해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4월엔 샌프란시스코관광협회가 나서서 거리의 홈리스 때문에 관광업에 타격을 받고 있다며 제발 거리를 깨끗하게 만들자며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선거에서 당선돼 7월 취임한 런던 브리드(London Breed) 시장은 거리의 홈리스 숫자를 줄이고 냄새 나는 거리를 청소하는데 공을 들였다. 홈리스 주민들의 소변, 대변으로 얼룩진 도시 청소를 강화하기 위해 '대변순찰대(Poop Patrol)'라는 특공대까지 만들었다. 신임 시장이 공을 들인 덕분(?)인지 최근엔 대규모 텐트촌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대신 낡은 캠핑차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저소득층 실직ㆍIT호황으로 집세 급등이 주 원인

샌프란시스코 시가 작성한 2017년 홈리스 현장조사 보고서에는 그들의 사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면조사 결과가 들어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실직 때문에 홈리스가 됐다는 응답이 22%로 가장 많았다. 실직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이들은 정보기술 기업 중심의 샌프란시스코 경기 호황에서 소외된 사람들로 추정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주변 지역은 정보기술 부문의 고학력 고임금 엔지니어 등 전문직 종사자들에겐 미국 내에서도 특히 이직, 구직이 용이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밸리와 더불어 엔지니어 중심의 고급 인재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연봉 10만 달러를 훌쩍 넘는 고소득자가 많다(다만 세금 내고 나면 생각보다 많지 않긴 하다). 고액 연봉의 젊은 직장인들이 몰려들고 경기 호황이 이어지면서 집값은 최근 10년 사이 두 배 이상 급등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월세도 급등했다. 질로우 같은 웹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방 하나, 욕실 하나 아파트 월세가 거의 2000달러를 넘는다. 시내 중심가에선 그 가격에 1000~2000달러가 더 붙은 매물이 대부분이다. 갖고 있는 재산이 없으면 실직한 뒤 이런 수준의 월세를 내고 산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실직 외에 눈 여겨 볼 원인으로는 세 들어 살던 집에서 강제퇴거(eviction)를 당했기 때문이라는 답변(12%)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선 집 주인이 월세를 터무니 없이 올릴 수는 없지만 더 이상 집을 세 놓지 않겠다거나 집을 리모델링하겠다거나, 아니면 자신이 직접 들어가 살겠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강제퇴거가 사회문제가 된 건 집값이 급등하자 월세를 크게 올리기 어려운 장기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을 팔거나 리모델링, 재건축을 하려는 집주인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9월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강제퇴거 통보를 받은 세입자에게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간을 실질적으로 연장하도록 법을 개정한 것도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의 강제퇴거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었다(토ㆍ일요일, 법정 공휴일을 포함해 5일이었던 기간을 토ㆍ일요일, 법정 공휴일을 제외한 5일로 법을 개정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의 연도별 통계를 분석해보면, 2009년(2009년 3월~2010년 2월) 1269건이었던 강제퇴거는 2015년 2326건을 기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다만 2016년엔 1881건으로 줄었고 지난해 같은 기간엔 1657건을 기록했다.

Homeless grateful for any help - San Francisco by Mussi Katz

찬반 논란 거셌던 홈리스 법인세

홈리스 법인세는 주민투표에서 60.8%의 찬성표를 얻어 통과됐지만 캠페인 과정에서 찬반 논란은 거셌다. 기업인들도 편이 갈렸다.

CNBC 관련 보도를 보면, 세일즈포스 마크 베니오프 최고경영자(CEO)는 샌프란시스코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으며 사업을 해온 기업들이 도덕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며 회사 차원에서 홈리스 법인세 통과를 위한 자금으로 700만달러를 지원했다. 반면 트위터와 스퀘어 두 회사의 CEO인 잭 도시, 지불결제회사인 스트라이프 패트릭 컬리슨 CEO 등은 거세게 반대했다. 우버의 경쟁업체 리프트, 벤처투자가 마이클 모리츠, 와이 콤비네이터 공동설립자 폴 그레이엄 등은 홈리스 법인세 반대 캠페인에 10만달러 이상 기부금을 냈다.

반대 논리의 핵심은 홈리스 법인세 도입으로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며 이미 기업들은 시에 충분한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홈리스 문제가 돈으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벌써 해결됐을 것이란 비판도 있었다. 홈리스 문제 해결에 공을 들여온 런던 브리드 시장도 증세 없이 기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게 더 바람직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홈리스 법인세의 앞날

샌프란시스코 시의 홈리스 법인세 앞에는 아직 넘어야 할 고개도 남아있다. 세금을 인상하는 안건은 주민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과반수 찬성표로 통과되는 것인지 법적 소송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홈리스 법인세와 유사하게 새로운 세금을 신설하는 주민발의(조례)가 지난 6월 주민투표에서 통과됐는데 통과 직후 곧바로 소송이 걸렸다.

당시 통과된 조례는 유아교육 지원 예산을 확충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상업용 건물을 임대하는 사업자에게 세금을 더 거두는 내용이었다. 반대 진영에선 '캘리포니아 주법에 따라 지방정부가 새로운 세금을 거두는 법률(조례)을 제정하는 경우 투표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시켜야 하는데 당시 주민발의는 투표자 3분의 2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단순 과반수로 통과됐다'며 소송을 걸었다.

이런 논란이 발생한 건 지난해 8월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주민발의와 세금 문제가 얽힌 소송에 대해 내린 판결 때문이었다. 당시 주 대법원 마리아노-플로렌티노 쿠엘라(Mariano-Florentino Cuéllar) 대법관은 '찬성 5- 반대 2' 다수 의견으로 “주 헌법의 여러 조항은 지방정부가 세금을 인상하는 권한을 명시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방정부에 대한 이러한 제한을 '우리 민주주의 절차 중 가장 소중한 권한 중 하나인' 주민발의에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다만 새로운 세금을 거두는 안건이라 해도 지방정부가 주도한 경우가 아니라 주민발의인 경우 과반수 찬성이면 통과된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건 아니었다.

이 판결이 나온 뒤 샌프란시스코 데니스 헤레라 시 검사장은 주민발의로 세금을 도입하는 안건은 투표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아니라 과반수 찬성이면 통과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올해 6월 통과된 '상업용 건물 임대업 증세 주민발의', 지난 11월 6일 통과된 '홈리스 법인세 주민발의'는 모두 과반수 찬성 요건은 갖췄지만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는 얻지 못했다.

 

유사한 조례가 소송에 얽혀 있는 상황이라 시는 홈리스 법인세를 거두기는 해도 당분간 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소송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매듭지어질 것인지, 소송이 해결될 경우 홈리스 법인세가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문제 해결에, 나아가 시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이제부터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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