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미터] ‘의료 영리화 저지’ 공약은 ‘파기’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8.11.23 02: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여당이 원격 의료 허용 의사를 연이어 밝히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처리 의사를 보이면서 의료 영리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밝힌 ‘재벌에게 특혜 주고 국민에게 부담주는 의료영리화 정책 저지’ 공약과 완벽히 반대되는 내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재벌에게 특혜 주고 국민에게 부담주는 의료영리화 정책 저지’를 내걸었다. 구체적으로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서 보건의료분야 제외 ▲원격 의료는 의료인-의료인 사이의 진료 효율화 위한 수단으로 한정 ▲병원의 영리자법인 설립 금지, 현행 법률에서 허용하고 있는 부대사업 범위 내에서 경영 효율화 추진 ▲대자본에 의한 영리형 체인화의 우려가 높은 법인약국 허용 반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같은 대선 공약에 취임 직후 보건의료계는 환영의 의사를 밝혀왔다.

문재인 '의료 영리화정책 저지' 공약 사실상 폐기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대선 공약과 같은 기조를 유지해왔다. 의료 영리화는 보수 정부였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진행하고자 했던 대표적인 정책 중 하나였다. 때문에 정권이 바뀐 후 한동안 보건복지부에서는 ‘원격 의료’라는 말조차 꺼내기 쉽지 않은 분위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정책 기조가 완전히 뒤집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새로 지명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2017년 7월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보건의료분야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서 빠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원격의료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며 원양어선을 타거나 오지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것만 찬성한다”고 밝혔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듯한 의료 영리화는 의료산업계와 보수 언론 등이 서비스 산업에서 강조하는 ‘규제 완화’ 요구로 조금씩 그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 8월 1일 헬스케어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 대응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의료산업계에서는 초고령화 흐름에 맞춰 의료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꾸준히 뜨거운 감자로 남겨져 있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에서 만든 원격 의료 홍보 동영상. 출처 : 보건복지부 유튜브

원격의료까지 만지작...'공공성 강화' 공약과 배치돼

특히 문재인 정부의 의료 공공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가 재정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타나면서 의료 정책이 궁지에 몰리는 상황도 연출됐다. ‘문재인 케어’는 국민 의료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용·성형을 제외한 모든 의료 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건강보험 보장률을 2022년까지 70%로 끌어올린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때문에 ‘디지털 헬스케어’(원격 의료, 원격 지능의료, 지능의료를 포함)를 도입해 재정난을 타개해야 한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슬그머니 다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법안을 꺼내들기도 했다. 2018년 2월 1일 자유한국당 유기준 의원은 ‘섬‧벽지에 사는 사람, 해상에 나가있는 선원,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 등의 진료에 대해 원격의료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의 기조 변화 움직임은 2018년 들어 ‘혁신 성장’이라는 규제 완화 기조 아래 본격화됐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18년 1월 29일 원격 의료 등을 포함해 “정부가 규제 혁신을 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겠다”고 밝혔고, 2018년 5월 17일에 열린 ‘2018년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도 원격 의료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2018년 5월 28일 주요 경제부처 차관과 국무조정실 2차장 등이 참석한 제1차 혁신성장 전략 점검회의가 열려 원격 의료를 포함한 규제 완화에 대한 과제 점검이 이루어졌다.

변화한 기조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보다 가시화됐다. 2018년 6월 18일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은 러시아에 설립한 한국형 종합병원에서 원격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국내 도입은 반대하면서 해외 수출을 추진하는 것이 모순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19일 ‘의료기기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서 의료기기 개발·도입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마침 같은 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자는 입장을 밝혔다가, 여론의 포화를 못 이겨 5일 만에 발언을 철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장관의 워딩은 “원격의료의 물결을 타지 않으면 세계 최정상 수준의 한국 의료기술과 서비스가 세계 톱(top) 지위를 지키기 힘들 것”, “초기엔 의사가 환자를 대면 진료하고 이후 정기적 관리에 원격의료를 활용하면 윈윈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발언을 철회하며 “의료인 간 원격의료를 적극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오해를 불렀다”고 한 것이 다소 어색한 지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원격 의료 정책에 대한 뚜렷한 로드맵을 갖고 한 발언임을 의심케 하는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2018년 8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원격 진료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처음 언급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확실해졌다. 이날 청와대에서 여야 5당 원내대표와 가진 오찬 회동에서 문 대통령은 “지나치게 의료민영화로 가지 않고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원격진료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원격 의료는 의료 공공성 위한 것" 주장

이를 계기로 의료 영리화 논란이 재점화 됐으나, 정부는 2018년 8월 23일 군 부대나 도서·벽지 등 의료사각지대에 한정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와 더불어민주당, 청와대 등 당·정·청이 제한적 원격 의료 방침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원격 의료가 의료산업 활성화와는 무관하며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자 의료 공공성 확대를 위한 것임을 강조하며 진화에 나섰다.

정부여당은 더욱 공격적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8년 10월 10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원격 의료를 해보지도 않고 너무 겁을 먹고 있다. 한 번 해보고 부적절하면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2018년 10월 18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문제에서 (규제 혁신을) 정면으로 하고 싶다”며 “예를 들면 공유경제와 원격진료를 포함한 의료”라고 말했다. 2018년 11월 12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취임 6개월 기자간담회에서 원격 의료 도입과 관련해 “도서 지역 등에 테스트베드(시험 적용)로 먼저 하는 방안으로 해서 정기국회 내에 처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정기국회 회기 안에 처리할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는 이러한 움직임을 비판하고 있다.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것은 명분일 뿐, 원격 의료 허용 방침이 의료 민영화로 가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2018년 11월 20일 ‘의료 민영화 저지와 무상 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이하 무상의료운동본부)’는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의료민영화 법제화 강행 더불어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이 연내 처리하기로 결정한 의료민영화 주요 입법 추진을 전면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무상의료운동본부가 2018년 11월 20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의료민영화 법제화 강행 더불어민주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무상의료운동본부 홈페이지 http://medical.jinbo.net

원격 의료를 혁신성장 수단으로 인식하고 추진

무상의료운동본부의 이런 움직임은 이들이 문재인 정부의 정권 교체를 함께 일구어낸 입장이기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보건 및 의료 분야를 혁신성장을 위한 가장 파급력 있는 융합 영역으로 포장, 산업 자본의 이윤 창출을 위한 발판으로 보건 의료를 수단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 변화는 국회에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더불어민주당에서 국회 회기 내에 처리할 의사를 밝힌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재 20대 국회에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은 2개다. 2016년 5월 30일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한 안에서는 ‘서비스 산업’에 대한 정의에 보건, 의료가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서비스 산업이란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통계법’ 제22조 제1항에 따라 통계청장이 고시하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 의한 서비스 산업”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통계청 고시 한국표준산업분류 기준에 서비스업에는 보건·의료가 포함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원격진료에 대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직후인 2018년 8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11인 역시 서비스 산업에 대해 똑같이 정의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을 발의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출발은 이명박 정부다. 18대 국회 시절인 2011년 12월 30일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됐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이던 당시 민주통합당 시절, 이에 대해 완강히 거부했다. 보건·의료 분야를 서비스 산업에 포함시키는 것이 결국 ‘의료 영리화’로 이어진다는 우려 때문에서다. 원격 의료 정책 역시 같은 이유로 반대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2년 만에 대선 공약이던 ‘의료 영리화 저지’의 핵심 공약을 모두 뒤집었다. 야당 시절의 입장도 여당이 되자 달라졌다. 이에 <뉴스톱>은 문 대통령의 ‘재벌에게 특혜 주고 국민에게 부담주는 의료영리화 정책 저지’ 공약에 대해 ‘파기’로 판정한다.

*이 기사는 대선공약체크 사이트인 <문재인미터>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