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중국 땅인 동북3성" 비서실장 임종석의 '경솔한 워딩'

  • 기자명 김형민
  • 기사승인 2018.11.27 02: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4년 10월 15일자 중앙일보는 사단법인 다물민족학교에 대해 기사를 싣고 있다. “「다물」이란 「되찾는다」「되돌려 놓는다」는 의미의 우리말. 과거 우리 선조들이 누비던 만주와 시베리아를 우리 땅으로 되돌려놓자는 의미”라면서 엉뚱하게도 이 학교가 “민족주의 사학을 현대적으로 해석, 노사관계에 적용함으로써 근로자의 인식전환과 신바람나는 일터분위기 조성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더 놀라운 것은 “1990년 10월 포철이 기업으로는 첫 입교생을 낸 뒤 주요 대기업으로 확산,지금은 32개 기업이 매년 정기적으로 교육을 위탁하고 있다...... 삼성, 현대, 럭금, 대우, 선경, 한화, 삼환기업, 동부제강, 부산파이프, 고려강선, 삼미 등 주요 대기업들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또 한전, 성업공사 등 공사와 중소기업은행, 한국자보 등 금융기관까지 이 학교를 이용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졸업생은 모두 6백 57차에 걸쳐 3만3천여 명”이라는 내용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환빠들의 수원지가 여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대규모 ‘교육’이 기업들의 자발적인 민족 의식(?)의 발로로 행해졌다고 보는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기사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80년대 말 과격 노동운동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물학교(다물평생교육원) 홈페이지에 있는 소개글.

동북공정 부른 한국 민족주의자의 "고토회복" 티셔츠

1994년도에 이미 3만 명이 넘었다는 ‘다물학교’ 졸업생들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이 다물학교와 관련된 사람들의 ‘깽판’을 간접적으로 조우한 경험이 있다. 1995년 회사 입사한 뒤 "코 찔찔 흘리는 AD"가 되어 처음으로 맡은 일거리는 고구려 관련 다큐멘터리였다. 덕분에 한 6개월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고구려의 유적부터 중국 만주벌판의 고구려 흔적까지 헤매고 다니는 드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고구려 탐사는 매우 여의치 못했다. 중국 정부는 고구려라는 단어에 지극히 민감했다.

고구려의 발상지 오녀산성 (첫 도읍지 졸본)은 촬영 금지 구역으로 일찌감치 선이 그어져 있었다. 공안(경찰)의 날카로운 눈빛이 촬영팀을 항상 감시하고 있었고 광개토왕비 촬영도 옥신각신 승강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에 대해 중국인들 너무한다고 불평을 했더니 조선족 가이드는 그리 녹녹치 않은 말투로 대답했다. “중국 입장에서야 조선족 문제도 있고 해서 고구려가 부각되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지 않겠슴까. 또 한국 사람들 책임도 적지 않슴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을 때 그의 언성은 더욱 높아졌다. 

"언젠가 다물단인가 뭔가 하는 사람들이 단체로 집안에 왔었어요. 그 사람들 새까만 티에다가 한자로 故土回復이라고 허연 글씨를 등짝에 주먹만큼 박아놓고선 태극기 들고 집안 시내를 휘젓고 다녔었어요. 광개토왕 정기받아 만주땅을 되찾자 어쩌고 소리소리 지르는데 내 가슴이 다 벌렁거립디다. 중국 사람들이 가만 있을까 하구......"

80년대 말에서 IMF 이전까지의 10년은 아마 한국 역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국을 ‘알로 본’ 때가 아닌가 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민족주의에 불타는 전사들이라 해도 중국의 국경도시 대로를 ‘고토회복(故土回復) 찬연한 티셔츠를 입고 태극기를 들고 누비는 만용을 부리지는 못했으리라. 이런 어이없는 움직임은 또 다른 반동을 부른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배경에는 합리적이지 않았던 남한 사람들의 ‘역사 투쟁’의 반작용도 부분적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여긴 내 땅이었고 아직은 중국 땅이지만 언젠가 우리가 다시 차지하겠다.”고 선언하는 객기가, 역사적으로 중국 어느 왕조도 자기네 역사라고 우겨본 적 없는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만들고 지금 중국령이니 그 땅의 역사 또한 중국 것이라고 우기는 똘끼를 소환했던 것이다. (물론 동북공정이 다물단류의 행동에서만 비롯됐다는 것은 아니다. 일찍부터 동북공정류의 주장을 하는 중국 학자도 없지 않았고 어떤 중국 학자는 "중국이 고구려의 땅 동북을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한 북한 역사학계를 비판하면서 동북공정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한반도 사람들에게 만주벌판은 일종의 로망이다.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부흥군과 함께 압록강을 넘었던 신라 장군 설오유나 기세등등한 거란 장군 앞에서 “당신네 나라 수도도 원래는 고려 땅이었소.”고 일침을 놨던 서희의 속내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며, 공민왕의 명을 받고 압록강을 넘어 고구려의 첫 도읍지 오녀산성을 쳤던 이성계나, 요동 정벌과 정치적 육체적 생명을 바꿨던 최영이나, 요동 정벌 계획을 수립했던 정도전이나 그 꿍심들은 다 거기서 거기였을 것이다. “천하를 두고 다투거나 단 한 발짝이라도 중원을 도모하려 할 경우에는, 먼저 요동을 얻지 않고는 될 일이 아니다.”라고 했던 정약용과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 벌판”을 노래했던 20세기 한국 대학생들의 마음 사이의 거리는 결코 멀지 않았으리라.

경기도 평택 '정도전 기념관'에 있는 정도전 초상화.

하지만 로망을 행동으로 옮겨 표현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문제가 된다. 다물단의 행동이 중국인들의 심사를 얼마나 긁어 놨을까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안그래도 중국은 모국(母國)이 있는 수백만 소수민족 조선족의 향배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던 판에 말이다. 그런데 장삼이사가 아니라 한 나라의 정권의 핵심 인사나 고위 정치인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 파괴력은 급격히 상승하며, 중대한 외교적,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기 십상이다. 여말선초의 풍운아 삼봉 정도전이 그랬다. 주자학자였으나 조선 후기의 청맹과니같은 사대주의자와는 질적으로 달랐던 그는 명나라에 대해서도 저자세로 일관하지 않았다.

"명나라와 한바탕..." 경솔한 언사로 위기 부른 정도전 

조선 개국 직후 정도전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면서 묘한 말을 남긴다. “(명나라와의) 일이 잘돼 간다. 다행이다. 틀어지면 군대를 몰고 와서 한바탕 해 주지.” 의심 많고 변덕 심하기로는 중국 역사상 최강이었던 명 태조 주원장은 조선을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요동 정벌군의 말머리를 돌려 고려 왕조를 종식시킨 이성계가 왕이 됐다 해도 의심은 계속됐다. 이성계라면 명나라도 버거워 했던 원나라 장수 나하추를 갖고 놀았던 맹장이고 식량 부족으로 물러섰을망정 고려가 오녀산성과 요양성을 함락시켜 요동을 실제로 점거한 적도 있었다. 주원장이 “조선이 군량을 충실히 확보하고 20만 대군으로 요동을 치면 어찌할 것이냐?”라고 신하들을 윽박지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 판에 정도전이 그런 엄한 소리를 내뱉었던 것이다.

툭하면 조선을 깔아뭉개는 명나라에게 외교적으로 우리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전달하려 한 것인지, 실제로 정도전이 후일 얘기했듯 ‘동명왕의 옛 강토’를 염두에 두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말은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주원장은 이내 정도전을 화근으로 지목했고 두고두고 정도전을 찍어서 명나라에 보내라고 압박했다. 건국 초기 조선은 이 문제를 두고 상당한 국론 분열과 내홍을 겪어야 했고 결국 정도전 본인의 목숨도 단축되고 말았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디자인했다는 평을 듣는 천재였으나, 삼봉 정도전은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역량을 믿고 내지르기를 즐겨했고, 심지어 이성계에게도 “유방이 장자방을 쓴 게 아니라 장자방이 유방을 쓴 것”이라며 ‘간 큰 소리’를 서슴지 않을 만큼, 촉새 기질 다분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 빠른 입이 “군대를 몰고 와서 한바탕” 운운으로 터져 나왔던 것이다. 아무리 그 기상(?)을 가상하게 보아주려 해도, 그리고 명나라에 얕잡아보이지 않으려는 선의(?)를 인정해도 그건 잘못된 ‘워딩’이었다.

2017년 5월 2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브리핑중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대통령 비서실장 임종석의 '위험한' 민족주의 발언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공동조사사업에 대한 유엔의 제재 면제를 인정받은 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본인의 담벼락에 올리고 청와대 공식 계정으로 공유된 페이스북 포스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저는 자주 지도를 펼쳐 동북아 지역을 들여다 보곤 합니다. 요녕, 길림, 흑룡강의 동북 3성은 지금 중국 땅이지만, 장차 한반도와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바다로, 하늘로, 그리고 마침내 육지로....2억이 훌쩍 넘는 내수시장이 형성되는 것이고......” . UN의 제제 면제 조치에 대해 기뻐하는 심경은 넉넉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성계와 정도전 관계에야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임종석 비서실장은 대통령 최측근 인사로서 그 통치 철학을 가장 선봉에서 구현하며, 본인이 싫든 좋든 차기 대통령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그의 말은 ‘다물단’ 1천명에 비해도 가볍지 않으며 그의 발언은 물정 모르는 ‘환빠’ 1만 명의 아우성보다 더 무게가 있다. 그만큼 신중하게 다듬어지고 정교하게 담금질된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본의는 그게 아니었다.’ 따위의 변명이 따라붙지 않는 ‘워딩’을 구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북아 지도를 펼쳐 보는 것이야 본인의 자유지만 동북 3성을 두고 ‘지금 중국 땅이지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명백한 실수다. 동북3성은 엄연한 중국의 영토고, 그들은 그 영토에 서린 역사까지도 점유하겠다고 나서고 있을 만큼 민감하다. 예민함은 당연히 남북의 통일 과정에도 작용할 것이고, 통일 한국의 등장은 고려와 조선의 왕조 교체보다는 1백배 더 폭발적인 변화의 시작일 텐데, 그 면전에서 한국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금 중국 땅’을 운위하는 것이 과연 범상치 않을 일일까. 대수롭지 않다고 말한다면 아쉽지만 그의 상식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발언 하루가 지나도록 수정하지 않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내수 시장’이라는 단어도 그렇다. 물론 개념상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단순한 ‘내수시장’의 의미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이의 말이 사람들을 헛갈리게 만드는 일은 비극의 단초가 된다. 철도가 남북을 잇고 대륙으로 나아간다면, 그래서 베이징 올림픽도 육로로 나아간다면 중국 15억 인구가 우리 ‘내수 시장’이 될 거라고 말하면 모를까, 왜 동북3성의 2억을 우리 ‘내수 시장’으로 규정해야 할까. 왜 이런 허술하고 엉성한 말이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장의 입을 통해 흘러나와야 할까.

현재 청와대에 포진한 이들의 지나친 ‘민족의식’에 대해 우려한다. 그들의 통일에 대한 열정과 뜨거운 민족애를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뜨거운 열정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음을 80년대의 교훈을 통해 배웠기를 기대할 뿐이다. 미일중러에 갇힌 분단국 처지에 ‘우리 민족끼리’만으로 통일을 바라보기도 무망한 터에 그 한 축을 틀어쥔 나라의 영토를 ‘지금 중국땅’이라 표현하고 그 인구를 ‘내수 시장’으로 부르는 용기(?)는 정도전의 산해관 실언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이고, ‘고토회복’ 티셔츠 입고 중국 국경도시를 누빈 다물단에 비해서는 열 배 정도 가벼워 보인다. 한때 그를 호위하겠다고 ‘본의 아니게’ 쇠파이프 들었던 처지로 부탁드린다. 의장님 자중자애하시라. 그리고 은인자중하시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