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만 태어나자마자 한 살인가?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1.0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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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나이’ 사전에서는 ‘세는 나이’, 매년 이맘때면 논란이 되는 소재다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에도 청와대 국민청원에 한국식 나이를 없애고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청원이 올라왔다.

한국식 나이 때문에 당해 생일이 지나지 않은 한국인은 세 가지의 나이를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2000년 1월 31일에 태어난 이는 2019년 1월 1일 기준으로 ①만 18세(행정/민법상) ②스무 살(한국 세는 나이) ③만 19세(연도만 따지는 연 나이, 병역법/청소년보호법)의 세 가지 나이에 모두 해당된다.

이러다 보니,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다음날인 1월 1일 태어난 지 이틀 만에 한국나이로 두 살이 된다. 2018년 1월 1일에 태어난 아이와 2018년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평생 친구로 지내지만, 2019년 1월 1일에 태어난 아이는 하루 전날 태어난 아이를 평생 선배(누나, 언니, 오빠, 형)로 대접해야 한다. 태어난 지 1년이 된 아이의 돌상에 놓인 케이크에는 1개의 초를 꽂았는데 1년 후인 이듬 해 생일에는 초 세 개를 꽂는다(두번째 생일이라며 두 개 꽂는 곳도 있다).

‘세는 나이’는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다

흔히 ‘세는 나이’는 주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World Heritage Encyclopedia>의 ‘동아시아 나이 계산’ 항목에 따르면, 동아시아 나이 계산법은 중국에서 유래된 개념으로 신생아는 한 살부터 시작하여 두 번째 해에는 두 살이 되고 세 번째 해에는 세 살이 되는 식으로 계속된다.

하지만, 일본은 1902년 만 나이를 공식 적용한 뒤 1950년 법적으로 ‘세는 나이’를 못 쓰게 했고, 중국은 1966~1976년 10년간 진행된 문화대혁명 이후 세는 나이를 쓰지 않고 있다. 베트남도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에서도 1980년대 이후부터 공식적으로 ‘만 나이’를 쓰도록 하고 있다. 세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정착단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현재 전 세계에서 ‘세는 나이’를 쓰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소셜미디어 등에서 ‘한국 나이(Korean age)’를 검색하면 한국식 나이를 계산해주는 페이지나 설명해주는 동영상들이 여럿 검색된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나이에 대해 설명해주는 유튜브 동영상 중에는 조회 수가 49만 회가 넘은 것도 있다.

 

태아도 한 살로 인정하는 ‘한국 나이’?

한국식 세는 나이를 설명하는 근거로 흔히 나오는 것이 ‘한국에서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사람으로 존중해 한 살로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토론 자료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출처를 찾을 수 없고, 서양문화의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인 가톨릭교회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것을 보면 태아를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은 동서양이 큰 차이가 없다.

생일보다는 생년에 초점을 둔 ‘세는 나이’는 사람이 태어남과 동시에 한 살로 치고 그 후 새해의 1월 1일마다 한 살을 더하는데, 이 나이 계산법은 원년(元年)을 ‘0년’이 아닌 ‘1년’으로 보는 역법의 햇수 세는 방식에 기초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이렇게 세는 나이는 ‘기년법’과 매우 유사하다. 기년법은 특정한 해(年)를 원년(1년)으로 삼고 매년 1년씩을 더하는 방식이다. 0이 아닌 1부터 시작하고, 특정한 날이 아닌 해의 관점에서 매해 1월 1일에 1년이 더해져 ‘세는 나이’와 방식이 같다.

기년법은 중국의 한무제 이후 연호와 함께 전통이 확립되었고, 한국과 일본 등의 동아시아 국가의 연호로 많이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나라를 세우거나 왕이 즉위하여 연호를 ○○으로 정한 경우 그 해는 날짜에 관계없이 ‘○○원년(1년)’이 되고 그 이듬해 1월 1일이 되면 ‘○○2년’이 된다. 이는 현재 사용 중인 ‘서기(A.D.)’에도 적용된다. 서기 1년의 직전년도는 0년이 아니라 기원전(B.C)1년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한국도 법적으로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매년 이맘때 한국식나이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있지만 법적으로 이미 만 나이로 통일이 된 상태다. 정부는 1962년 만 나이를 공식 나이로 공표했다. 일종의 행정규칙으로 만 나이 사용을 규정했다. 이에 따라 공문서나 법조문, 병원진료기록, 언론기사 등에 ‘만 나이’를 쓴다. 현재 국내에서 공식적인 나이계산은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이에 따라야 한다. 민법 제158조(연령의 기산점)에도 “연령계산에는 출생일을 산입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만 나이’ 적용이 어려워 별도의 기준을 규정한 경우도 있다. 국민 개인의 나이보다 출생연도 단위로 묶는 것이 법집행에 효율적이기 때문인데, 병역법과 청소년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이 생일기준이 아닌 출생연도에 따른 ‘연 나이’가 적용된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만 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한 사람’은 청소년으로 치지 않으므로, 만 19세가 되기 전이라도 그해의 1월 1일이 되면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이 아니다. 그 해에 선거가 있을 경우 투표는 못하지만 투표한 친구들과 같이 술은 마실 수 있다.

청소년보호법 등의 일부 법률에서는 아직도 ‘만 19세’로 표기하고 있지만 2013년 7월 1일 개정된 민법 제4조에는 성년의 나이에 대해 ‘만’자가 없는 ‘19세’로 바뀌었다. 법률적으로 나이를 셀 때는 숫자만으로도 당연히 ‘만’ 나이로 계산함을 나타낸다.

KBS 방송화면 캡처

수직적인 서열과 획일적인 계급을 따지는 문화가 배경

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세는 나이’이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여론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2016년 2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식 나이’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과 ‘만 나이’로 통일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2008년까지는 초등학교 입학기준이 입학전해 3월생부터~이듬해 2월생까지여서 같은 학년이지만 출생연도가 다른 경우도 있었다. 빠른 1~2월생 따지고 대학입학학번 따지고 하다보면 이른바 ‘족보가 꼬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나이로 인한 다툼이 큰 싸움으로 이어져 종종 사회면 뉴스로 나오기도 했다. 한국식 나이’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서 ‘만 나이’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로 나이로 존대와 서열을 결정하는 한국만의 ‘문화’가 꼽힌다. 이런 존대와 서열 문화를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시대의 아동교육교재인 동몽선습(童蒙先習)의 장유유서(長幼有序)항목에 따르면, 그 당시 다섯 살까지는 위아래 허물없이 지내고 공경과 보살핌이 공존했다.

‘한국식 나이’에 따른 서열화는 일본의 기수제 문화와 이를 고스란히 이어 받은 한국의 군대식 문화와 함께, 1968년 주민등록제도 도입이 배경으로 꼽히기도 한다. 이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출생신고를 늦게 해 실제 나이와 호적상 나이가 같지 않은 사람들이 흔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후 대학교의 학번이 단순히 입학년도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군번처럼 위아래를 가르는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최근에는 매년 대학가에서 신입생 군기잡기라는 악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대뜸 몇 살이냐고 묻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물음의 바탕에는 수직적인 서열과 획일적인 계급을 중시하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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