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 첫 인쇄본, 朝鮮(조선)인가 鮮朝(선조)인가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9.01.14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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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鮮朝(선조)’의...

1919년 3월 1일 발표할 독립선언서는 「천도교월보」를 발행하고 있던 보성사에서 인쇄되었다. 사장 이종일에 따르면, 최남선의 신문관에서 조판된 것을 가져다가 2월 20일부터 은밀하게 인쇄를 시작하여 2월 24~25일, 2만5천 장의 1차 인쇄가 끝났다.

독립선언서는 즉각 천도교본부를 거쳐 지방의 천도교당에 발송되었다. 전주 신흥교보 유병민은 2월 24일 자정쯤에 졸업생으로부터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이 선명히 박힌 독립선언서를 받았고, 서둘러 등사를 시작했다.

천도교본부는 1차 인쇄분의 배포가 끝나자 27일 곧바로 2차 인쇄에 들어갔다. 추가분 1만 장의 인쇄가 거의 끝나갈 무렵 불청객이 나타났다. 한밤중에 인쇄소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들이닥친 종로경찰서의 조선인 형사 신철이었다. 이종일은 족보를 찍는 중이라 둘러대었지만, 신철은 인쇄되고 있는 문서가 족보가 아닌 ‘독립선언서’라는 것을 눈치 챘다.

이종일은 민족의 대의를 위하는 일이며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이라 설명하며 간곡히 사정했다. 즉각 조치를 취하지 않는 신철의 태도에 한 가닥 희망을 품은 이종일은 손병희에게 달려가 상황을 보고했고, 손병희는 신철의 입을 막기 위해 5,000원의 거금을 건넸다. 3월 1일을 불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인쇄된 독립선언서는 각계의 동지 7, 8명에게 2천 장 또는 3천 장씩 전달되어 1차분은 이미 전국 주요 도시에 배포되었고, 인종식, 안상덕, 김상설, 이경섭 등에 의해 2차 인쇄분이 추가로 뿌려졌다. 3월 1일 아침에는 거리에 나온 학생과 군중들에게 전해졌으며, 오후 2시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식에서 이종일은 33인을 대표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비슷한 시각, 독립선언서는 총독부와 종로경찰서에 전달되었고, 민족대표는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있음을 알렸다. 20분쯤 뒤 일경 15명이 자동차 5대로 태화관을 포위하였고, 한용운은 최후의 일각까지 최후의 일인까지 독립을 위해 투쟁하자고 사자후를 토했으며 민족대표들은 만세삼창을 외쳤다. 일경에 연행되어 가면서도 민족대표들은 멈추지 않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며, 도로에 독립선언서를 뿌렸다.

2018년 8월 29일 문을 연 식민지역사박물관에는 당시 발표된 독립선언서 가운데 한 장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선언서’ 첫 줄에는 국호가 ‘朝鮮(조선)’이 아니고 ‘鮮朝(선조)’라 찍혀있다. ‘조선의 독립’이 아닌 ‘선조의 독립’은 좀 이상하다. 선언서를 기초한 최남선이 처음부터 실수를 했을 리도 없고, 이를 검토한 민족대표들이 ‘선조’를 보지 못했을 리도 없다.

식민지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독립선언서. 朝鮮(조선)이 아니라 鮮朝(선조)라고 적혀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제공

 

독립선언서 인쇄가 잘못된 것이 처음 언론에 보도된 것은 2007년이다. 독립기념관이 기미독립선언서 원문을 공개하면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2018년 동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1차로 인쇄한 선언서에서 글자 순서가 잘못된 것을 뒤늦게 발견하여 2차 조판 시 오자를 수정해 인쇄하였다고 한다.

어머니(이장옥)는 경운동으로 옮겨진 독립선언서를 보관하면서, 할아버지(이종일)로부터 ‘독립선언서에서 오자가 발견돼 고쳤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하셨다. 처음 찍어낸 독립선언서는 최남선이 비밀리에 채자(採字) 작업을 서두르느라 국호인 ‘조선(朝鮮)’이 ‘선조(鮮朝)’로 거꾸로 조판된 채 인쇄됐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수정 전과 후의 독립선언서를 모두 간직하고 있었는데 6·25전쟁 통에 잃어버려 무척 안타까워하셨다.
- '독립선언서 인쇄 현장 덮친 악질 조선인 형사… 거금 주고 무마',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2월 24, 25일 인쇄된 독립선언서 1차분을 조판한 신문관에서 실수가 있었고, 뒤늦게 이를 발견한 보성사에서 2차분을 인쇄할 때 ‘선조’를 ‘조선’으로 바로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립선언서를 서지학적으로 고찰한 오용섭 교수는 정반대의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낭독이 결정되자 손병희는 「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한 이종일에게 낭독을 요청하고, 그는 誤字를 고치고 낭독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종일이 낭독을 한 태화관 현장의 ‘선언서(보성사 2차 인쇄본)’에 오자, 즉 국호가 글자 순서가 바뀐 채 ‘선조’라 되어 있었고, 이를 확인한 이종일(혹은 현장의 민족대표 모두)이 ‘조선’으로 고쳐 낭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차 인쇄본인 보성사판에서 오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국가지정기록물 해설에서는 “(「독립선언서」)는 신문관에서 조판하였으나 그 조판의 짜임이 좋지 않아 보성사에서 다시 조판하여 인쇄한 것이며, 보성사판에는 국호가 “鮮朝”로 바뀌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처음 조판한 신문관판에는 국호가 바르게 되어 있었으나 보성사에서 다시 조판을 하면서 국호의 도치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 오용섭, 「3․1독립선언서」의 서지적 연구

이처럼 오 교수는 처음 조판한 신문관판이 조판의 짜임이 좋지 않아서 보성사 직원들이 다시 조판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1차 조판의 실수를 2차에서 바로 잡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만, 그 반대의 상황, 즉 1차에서는 국호를 ‘조선’이라고 했으나, 조판 자체를 보기 좋게 다시 잡는 과정에서 ‘조선’이 ‘선조’로 바뀌는 엉뚱한 실수가 발생했다는 것인데, 이런 일은 절대로 발생할 수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지금까지도 1차 인쇄 시에 실수가 있었는지, 아니면 2차 인쇄 시에 실수가 있었는지는 명쾌하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실수가 어느 순간에 발생했는지를 떠나서 분명한 것은 국호 ‘조선’이 ‘선조’라고 순서가 뒤바뀔 정도로 몹시 긴박한 상황에서 ‘독립선언서’가 인쇄되었다는 점이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라고 인쇄된 독립선언서에 익숙한 분들 가운데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鮮朝(선조)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라고 적힌 독립선언서가 궁금한 분은 숙명여대 인근에 있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찾아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식민지역사박물관: 서울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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