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혁과 공천 민주화는 '동시 추진' 가능하다

  • 기자명 최광웅
  • 기사승인 2019.01.0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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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약칭 연비제)는 알기 쉽게 표현하면 민심 그대로 선거제(약칭 민심제)이다. 민심 그대로 선거제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의원정수 확대에 있다. 민심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독일처럼 지역구 1(298인) 대 비례대표 1(298인) 비율 아니면 뉴질랜드처럼 지역구 6(71인) 대 비례대표 4(49인) 비율 정도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현행 지역구의원 숫자(253인) 고정을 전제한다면, 의원정수는 300인에서 420인~500인으로 대폭 늘려야 한다. 그러나 반정치 여론에 편승한 거대 양당은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한다. 특히 대부분이 밀실에서 공천이 이루어진다는 핑계를 대며 비례대표 숫자 확대에 완강히 저항한다. 1, 2당 지역구 의원은 당선 당시 기준 총 219인(재·보궐선거 포함)으로 국회의원 정수의 무려 73%에 이른다. 이 거대한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하면 민심 그대로 선거제 개혁은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은 그 자신들부터 당당하게 밀실 또는 낙하산 공천이 아닌 민주적이고 상향식 공천을 거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한국 국회의장인 문희상 의원(왼쪽)과 미국 하원 의장인 낸시 펠로시. 수십년동안 문 의원은 당내 경쟁 없이 후보가 됐지만 펠로시는 치열한 당내 경쟁을 거쳐왔다.

민주당이 친정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13대부터 20대까지 총 8차례 총선에 출마했으나 단 한 차례도 민주적 경선을 거친 적이 없다. 4차례는 문 의장의 단수 공천신청, 4차례는 복수의 공천신청자가 있었으나 나머지 신청자 전원이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컷 오프를 당했다. 14대에는 당시 민주당 현직 최고위원이던 목요상 전 의원(재선)이 공천배제 후 국민당으로 출마했다. 16대는 신한국당 출신으로 정권교체 후 1998년 입당한 홍문종 의원에게 경선 기회도 주지 않고 컷 오프 시키자 그는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결행했다. 17대 때는 청와대 비서실장 사임 직후 의정부시 분구가 확정되기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표밭갈이에 열중하던 다른 4명의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특혜성 단수공천을 받았다. 19대에도 역시 민주당 사무처 국장과 공공기관 임원을 역임한 서한옥 신청자에게 경선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는 오히려 ‘공천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경선도 못 해보고 컷 오프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행히 경쟁력 있는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며칠 만에 구제됐지만 망신살을 톡톡히 겪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의전서열 2인자이며 6선의원에 빛나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공천 역사이다. 나머지 1, 2당 지역구 의원 200여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표 1> 문희상 국회의장의 공천 역사

대수

지역구

공천방식

본선

비고

13대(1988)

경기 의정부

단수공천

낙선

단수신청

14대(1992)

경기 의정부

단수공천

당선

목요상 최고위원, 컷오프 후 국민당 출마

15대(1996)

경기 의정부

단수공천

낙선

단수신청

16대(2000)

경기 의정부

단수공천

당선

홍문종 의원, 컷오프 후 무소속 출마

17대(2004)

경기 의정부갑

단수공천

당선

허인규 개혁당 위원장 등 4인 공천신청

18대(2008)

경기 의정부갑

단수공천

당선

단수신청

19대(2012)

경기 의정부갑

단수공천

당선

서한옥(전 안전보건공단 이사), 공천신청

20대(2016)

경기 의정부갑

단수공천

당선

단수신청, 컷오프 후 구제

※ 17대는 분구 이전 의정부시 단일 선거구로 허인규(개혁당 위원장), 박세혁(전 시의원), 강성종(신흥학원 이사장), 손광운(변호사) 등 4인이 공천 신청함

 

그런데 비례대표 숫자를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아예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소선거구제 옹호론자들이 신봉하는 대통령제 종주국 미국도 이렇듯 우리나라처럼 낙하산 공천이 일상화 돼 있는가? 결론부터 먼저 얘기하면 “아니다”이다. 새해 1월 3일 제116대 미국 연방하원이 임기를 시작했다. 이날 본회의는 민주당 출신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1940년생)를 8년 만에 의장으로 다시 선출했다. 2001년 이미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에 올라 4년간 여성 최고위직(대통령 승계 2순위)으로 재직한 바 있는 그는 민주당 원내대표직까지 12년간이나 역임한 17선 의원이기도 하다. 1987년 당시 전임자의 사망으로 인해 발생한 특별(보궐)선거에서 첫 당선 이후 세 차례 지역구를 옮겨가며 32년째 연방하원 의사당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당내 예비경선(primary) 또는 정글경선(정당 구분 없이 상위 1, 2위를 가리는 경선)을 8차례나 거쳤다. 나머지 9차례도 단독으로 공천을 신청했으나 매번 프라이머리에 출마해 당원들의 찬반을 묻는 신임투표를 거쳤다. 특이한 점은 1988년 재선에 도전할 당시 예비선거에서 쓰기투표(write-in)로 1명의 반란표가 나와 캘리포니아 5지구 민주당원들로부터 100% 완벽한 신임을 얻지는 못했다. (註, 미국은 쓰기투표가 허용된다)

 

<표 2> 낸시 펠로시 미국연방 하원의장의 공천 역사

연도

지역구

공천방식

득표율

비고

1987

캘리포니아 5지구

프라이머리

36.1%

Harry Britt(32.5%) 등과 6인 경선

1988

캘리포니아 5지구

프라이머리

99.99%

쓰기(write-in) 1표

1990

캘리포니아 5지구

프라이머리

100%

단수 신청

1992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100%

단수 신청

1994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91.4%

Robert Ingraham(8.6%)과 2인 경선

1996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100%

단수 신청

1998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100%

단수 신청

2000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100%

단수 신청

2002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93.1%

Paul Mcconnell(6.9%)과 2인 경선

2004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100%

단수 신청

2006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100%

단수 신청

2008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89.2%

Shirley Golub(10.8%)와 2인 경선

2010

캘리포니아 8지구

프라이머리

100%

단수 신청

2012

캘리포니아 12지구

정글 경선

74.9%

John Dennis(13.6%) 등과 6인 경선

2014

캘리포니아 12지구

정글 경선

73.6%

John Dennis(11.9%) 등과 8인 경선

2016

캘리포니아 12지구

정글 경선

78.1%

Preston Picus(7.7%) 등과 4인 경선

2018

캘리포니아 12지구

정글 경선

68.5%

Lisa Remmer(9.1%) 등과 7인 경선

※ 1988년 : 14,805표 중 Nancy Pelosi 14,804표 및 쓰기(Tom Spinosa) 1표 ※ 2012년 정글경선 때부터는 모든 후보자 숫자를 표기함

 

민심 그대로 선거제(민심제) 개혁을 위해서는 지역구 1 대 비례대표 1 비율 혹은 지역구 2 대 비례대표 1 비율로 의원정수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대부분의 1, 2당 소속 의원들은 의원정수가 늘어나면 그에 반비례해 의원 특권이 줄게 되므로 교묘하게 반정치 여론을 악용해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한다. 특히 비례대표 의원정수 확대는 그 공천과정이 매우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까지도 한다. 하지만 미국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사례를 보면, 공천 민주화와 선거제도 개혁은 얼마든지 동시에 추진이 가능하며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최광웅 팩트체커는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이다. 30년 가까이 국회, 지방의회, 정당(민주당), 청와대 등에서 활동했다. 온갖 추측과 주관이 판을 치는 여의도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최초로 주창했다. 선거데이터 및 사회·경제지표 분석을 결합해 <바보선거>를 출간했으며 20대 국회 여소야대를 예측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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