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환단고기>에 동조한 정치인과 문인은 누구인가

  • 기자명 이문영
  • 기사승인 2019.01.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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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6월에 가나출판사에서 나온 <주해 환단고기(註解 桓檀古記) - 단군은 아시아를 통일했다>라는 책이 첫 <환단고기> 번역본이었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은 광주농고의 국어교사였던 김은수였다. 이 김은수에 대해서는 전 전교조 위원장 정해숙의 회고가 두차례 한겨레에 실렸다. 

 

<주해 환단고기-단군은 아시아를 통일했다>, 김은수 번역, 가나출판사.

전교조 지도부 역사관에 영향 끼친 김은수 <환단고기>

이 회고를 보면 김은수와 광주농고에서 같이 근무한 정해숙은 1982년에 김성호의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 기원>(지문사)이라는 책을 보고 “식민사관에 의해 고정된 우리의 역사관을 뒤집”게 되었다. 또 광주일보사에서 있었던 저자 초청 강연을 김은수와 함께 가게 되면서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김은수는 일생일대에 민족의 서사시 하나 남기는 게 목표여서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정해숙은 82~83년 경에 증산교 공부를 하면서 유사역사학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해숙은 유사역사학을 접한 소감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때 내 나이 40대 후반이었으니, 자라는 미래의 주인공들 앞에 선 우리 교사들이 잘 모르는 역사, 엉터리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이 앞섰다.”

정해숙은 1983년 5월 전남대의 증산교 동아리에서 <환단고기>를 소개하는 자료를 구했고 이것을 본 김은수가 <환단고기>를 보고 싶어해서 전남대 도서관을 통해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본을 복사했다. 김은수가 본 <환단고기>는 바로 이 일역본이었다. 즉 광오이해사에서 나온 것과 동일한 책을 본 것이다. 이 번역본이 나왔을 때의 심정을 정해숙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환단고기>를 읽으면서 나 역시 가슴이 벅찼다. 5·16 쿠데타와 전두환 정권의 국가폭력으로 국민들 심성은 갈기갈기 찢기고 현실은 참혹했다. 하지만 특히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환단고기>를 보면서 이렇게 훌륭한 문화를 가진 민족의 후손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환단고기>가 말하는 세계에 빠지는 근본적인 심리를 여기서도 엿볼 수 있다. <환단고기>를 통해서 받을 수 있는 위안이란 대체 무엇일까?

김은수는 번역본 서문에 이렇게 쓰고 있다.

“<환단고기>는 우리가 단군조선이나 고구려에 기대했던 요구량을 훨씬 뛰어넘어 비운의 역사 속에 무참하게 매몰되어 버림받던 과거 우리 민족의 위대한 역할과 웅장한 모습을 정확한 전거와 뚜렷한 필치로 되살려 주고 있다. 환웅과 단군은 동아시아를 완전하게 통일하였으며 지구상에 인류 문화의 첫 등불을 밝혀 놓았던 것이다.”

그 위안이 정확하게 나와있다. ‘동아시아의 완전한 통일’과 ‘인류 문화의 첫 등불’이다. 앞의 것은 일본제국이 실패한 전쟁이고 뒤의 것은 기원에 대한 열등감의 반영이다. 김은수는 역사가 목적에 봉사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권말 해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인간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 역사도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한국사는 한국인과 한국인의 장래를 위하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이렇게 평가한다.

“김부식이 환국 신시 단군조선의 역사를 제거해버리고나서 (중략) 아직도 우리는 춘추사관과 식민지사관 그리고 사대사관이 뒤범벅이 된 역사를 배우며 그것이 옳다고 믿고 있는 실정에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은 한국에는 한국인을 노예로 만드는 역사는 있어도 한국인을 자주적 국민으로 양성하는 역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은 당연히 자학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핏줄에는 언제까지나 망국적 노예 근성의 피만이 흐르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역사다운 역사 한 줄 써 볼 줄 모르는 우리가 앞으로 과연 무엇을 해내겠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사고방식의 결말에 가면 우리는 몰랐지만 우리는 세계 최고였고 그것을 깨달으면 다시 세계 최고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등장한다. 김은수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한국은 아시아의 종주국으로서 문화와 정통을 이어왔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것을 알지 못하였을 뿐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 한국은 먼저 중국을 내보내고 흉노, 일본, 몽고, 선비, 여진을 차례로 분가시킨 후 지금은 쓸쓸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몇십 몇백 배가 넘는 넓은 영토에 그들을 분가시켰것만 그들은 지금 터키나 항가리 폴랜드처럼 동질성을 회복하기 어려울만큼 멀어져버렸고 우리는 아시아의 한쪽 구석에 누워 지금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바로 보고 바로 쓰는 안목을 찾는 날 우리는 우리를 발견하고 새로운 발전을 이룩할 것이다. 우리에게서 떠난 모든 문화와 영광도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우리를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 강수원 <환단고기> 추천사를 쓰다

김은수의 번역본이 나온 후에 강수원의 번역서가 온누리 출판사에서 1985년 11월 15일 나왔다. 강수원은 1916년 생으로 전북 익산의 남성고교의 국사 교사였다가 대종교 총전리, 삼일원장 등을 역임했다. 이 때문에 강수원의 책에는 대종교 총전교 권태훈의 격려사가 실려 있다. 권태훈은 1980년대 일대 선풍을 일으킨 소설 <단>의 실제 주인공이라 알려진 인물이다. 또한 이 책은 뒤에 대종교 총전교가 되는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의 추천사도 붙어있다. 안호상은 1970년대 ‘국사찾기운동’을 통해 역사학계 매도에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환단고기>, 강수원 번역, 온누리출판사

안호상의 추천사를 살펴보면 정작 <환단고기>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자신의 역사관만 피력하다가 마지막 줄에서 “우리의 뿌리를 역사적 사실로 기술해 놓은 <고기>, 즉 <환단고기>가 번역돼 역사의 합법칙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초석의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하니 무엇보다도 기쁘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는 의례적인 말만 붙여놓았다.

같은 해 불과 며칠 뒤에 안호상이 설립했던 배달문화원에서도 <환단고기> 번역서가 나왔는데, 정작 안호상은 이 책에는 한 줄의 추천사도 쓰지 않았다. (지난 글에서 안호상이 임훈 번역본에 추천사를 썼다고 언급한 것은 그 며칠 후 열린 강연회에서 안호상이 연설한 내용을 추천사로 착각해서 잘못 언급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잘못된 정보를 준 점 사과드립니다.)

강수원은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본 <환단고기> 재판에 대종교를 소개하는 <大倧敎とは ― ここに眞なる宗敎あり(대종교란 - 여기에 참된 종교가 있다)>라는 장문의 글을 싣기도 했다. 이유립, 가시마 노보루, 강수원은 모두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그가 번역한 <환단고기>도 당연하게 광오이해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그는 83년에 <환단고기> 복사본을 구했고 84년 11월 경에 번역에 착수해서 6개월만에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도쿄에서 공부하고 히로시마에서 원폭 피해를 입었던 인물로 일본어에 능숙했을 터라 가시마 노보루의 번역본이 나오자 참조하여 번역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강수원은 자신도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본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전교조라는 사회 변혁을 위해 민주화 투쟁을 하던 단체와 연관을 가졌던 김은수와는 달리 강수원은 체제지향적 인물이라는 것을 그의 글에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안으로 조국 현대화와 선진화를 위한 민주 혁명,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한 민족 혁명,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산업 혁명을 이루어 민주 복지 국가를 건설할 뿐만 아니라 정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정신 교육을 개혁하고 사상 혁명과 사학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 밖으로는 세계 인류와 선린우호하여 투쟁과 경쟁, 반목과 질시, 대립과 상극으로 이어온 인류사를 협동과 조화, 공존과 공영, 화합과 상생의 인류사로 창건해야 한다.” (머리말)
“우리의 지상 목표인 민족 중흥과 조국의 선진화 사업을 이룩함에는 사기를 드높여야 하고 사학(史學)을 밝혀야 한다.” (환단고기 해제)

전두환의 제5공화국에서 내세웠던 슬로건이 ‘정의사회 구현’, ‘조국의 선진화’와 같은 말들이었다. 진보 성향이든 극우 성향이든 유사역사학을 통해서 얻게 되는 역사관은 기존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한국사를 자학하는데서 시작한다는 점은 다를 바 없다. 강수원 역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민족사론은 외래 신교와 외래 사상과 문화만을 맹신하는 얼빠진 사대주의자에 의해 박멸됐으며 그들의 손에 의해 왜곡 날조 당했다.”
“국민은 사대모화주의로 기울고 민족의 주체성과 민족정신을 빼앗긴 얼빠진(失神) 민족으로 전락, 남의 정신에 사는 민족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이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전적이나 역사·문화가 우리 것일리 없고, 정통적인 민족정사가 될리 없다.”

사고가 이러니 정상적인 역사 흐름을 파악할 수도 없다. 그가 제2차세계대전을 보는 관점이 이러하다.

“이와 같이 명치 정부는 조국땅을 짓밟고 성스러운 역사마저 약탈하고 불태워 날조한 만행은 동양 평화를 파괴하고 세계 평화까지 교란하는 역천의 전쟁을 야기시켰다. 이에 성스러운 역사의 여신은 마침내 크게 노해 원자폭탄 세례라는 천벌을 내렸던 것이다.”

강수원이 원폭피해자협회장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위 글은 참 충격적이다. 그는 일본이 한국의 후예라고 철석같이 믿고 이들이 천벌을 받아 원자폭탄을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문학 거목' 김동리가 직접 쓴 임훈 <환단고기> 추천사

1985년에 세번째로 나온 <환단고기> 번역서는 배달문화원에서 나온 임훈 번역의 <대한민족사 환단고기>이다. 이 책은 비닐 커버에 하드커버로 만들어진 책으로 앞의 두 책에 비해 화려하게 만들어졌다. 추천사를 두 사람이 썼는데 한 사람은 한국방송공사 이사장 송지영이다. 바로 1989년 숙명여대에 <환단고기> 배달의숙본을 기증한 사람이다. 그의 추천사에도 자학의 대목이 드러난다.

<대한민족사 환단고기> 임훈 번역, 배달문화원

 

“우리는 그 동안 그 뿌리를 잊고 그 가르침을 저버리고 남의 것만을 까닭도 없이 좋다 하면서 쫓다보니 줏대도 없고 주체성도 없이 이리저리 헤매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환단고기>를 읽고 올바른 길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간신히 살아남은 오직 하나뿐인 <환단고기>를 알기 쉽게 번역 출판하게 되었으니 실로 우리의 뿌리를 찾고, 우리 이간이 보람있게 살고, 일하고 사는 지침서이며, 철학이며, 사학이요, 종교이다.”

또 하나의 추천사를 쓴 사람은 한국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김동리이다. 김동리는 안호상이나 권태훈처럼 내용 없는 추천사를 쓰지 않았다. 그는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본에 대한 이야기로 추천사를 시작한다. 첫 대목에서 일역본이 20년 전에 나왔다고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데 2년 전에 나온 것의 오타일 것이다.

그는 일역본의 체제와 구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그 내용에 대해서도 격찬한다.

“이 책의 정말 고귀한 가치는 희귀본 <환단고기>를 사본과 활자체의 원문을 이중적으로 접할 수 있더거나 훌륭한 역문에다 자세하고 깊이있는 해제와 주해가 붙어있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숭고한 것은, 과거의 침략적 정치적 의도에서 자행된 (모략위장)으로 왜곡되어 있던 죄악적 사실을 솔직히 지적하고 통렬과 신랄을 극한 필치로 비판하고 시정한 점이다. 참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학자들의 고귀한 양심의 소산이라 하겠다. 역저자 가시마 노보루 씨와 그를 고무하고 협조한 아고 기요히코 씨에게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김동리는 아예 가시마 노보루의 후기를 번역까지 해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상당히 재밌는 구절이 나온다.

“내(가시마 노보루)가 처음으로 <환단고기>에 접하게 된 것은 쇼와 54년 가을, 서울의 자유사 대표 박창암 씨 댁에서 태백교의 이유립 씨로부터 <환단고기>, <환단휘서>, <태백속경>, <신시개천경> 등 4서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유사역사학에서는 이유립이 건네 준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1985년에 이미 가시마가 이유립으로부터 <환단고기>를 받았다는 글을 번역해서 버젓이 소개했던 것이다. 위 글에서 ‘태백교의 이유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런 세세한 사실을 가시마가 알고 있는 것을 보아도 이유립이 직접 가시마에게 원고를 건네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심지어 부인하는 쪽에서는 <환단고기>만 이야기할 뿐 나머지 책들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가시마의 책은 재판에서 이유립의 축시와 강수원의 대종교 소개까지 싣고 있다. 적대적인 관계 하에서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다.

임훈의 번역본도 1979년 광오이해사 본을 번역한 것이고 6월에 번역은 마쳤으나 11월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번역본을 어떻게 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송지영이 이유립과는 각별한 사이로 짐작할 수 있으므로(이유립의 단단학회 기관지 <커발한>을 보면 서로 왕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본을 받아서 번역했을 가능성이 높다. 김은수는 가시마 일역본을 복사해서 번역했고, 강수원도 <환단고기> 복사본을 구해서 번역했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가시마의 일역본을 보았다.

세 책 중에는 임훈의 번역본이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속은 제일 부실하다. 임훈은 각주를 하나도 붙이지 않았고 번역자 후기도 없이 편집자 후기만 붙어있다. 임훈은 자신의 번역을 윤역(潤譯)이라 표현하는데 潤이라는 글자는 ‘윤색하다’ 할 때 쓰는 것으로 번역이라 부르지 않고 윤역이라 표현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 책은 세 책 중 가장 번역이 나쁘다. 번역이 틀린 부분도 많고 빼먹은 부분도 있다.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당시 배달문화원이 가장 중시한 사업은 단군성전건립이었다. <환단고기> 번역본 출간도 그런 분위기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책을 발간한 뒤 배달문화원에서 1985년 12월 14일에 주최한 ‘배달문화원 민족강연회’(참석자에게 <환단고기> 번역본을 증정했다)에서 안호상은 <환단고기>를 수박 겉핥기로만 언급했고 번역자 임훈도 인사말에서조차 <환단고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안호상은 “단군 한배검에 관한 한문책들로선 단군세기, 환단고기, 삼국유사 ...”라고 발언해서 ‘단군세기’가 <환단고기>의 편명 중 하나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음을 드러냈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유사역사학'을 칭송한 유력인사들

1982년 가시마 노보루의 일역본 <환단고기>가 출간된 후 1983년에는 우리나라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고 책을 구할 수도 있었다. 이 책을 기반으로 번역이 시작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번역들이 완료되었으나 책은 김은수, 강수원, 임훈의 순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들은 모두 광오이해사 판본을 가지고 번역이 되었다. 김은수는 전교조 조직과 관련이 있는 진보쪽 사람이었고, 강수원은 글로 보아 전두환 정권에 협조적인 보수 진영 쪽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훈의 배달문화원도 그 구성원들의 성격상 보수 진영 쪽으로 볼 수 있다. <환단고기>는 이와같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 틈을 파고들었다. 양측에 공통적으로 역사학계를 식민사학으로 규정하고 기존의 역사를 비하하는 자학적 사관을 내보였다.

강수원은 가시마의 책에 글을 실은 것으로 보아 이유립과도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고, 임훈은 1984년에 이유립에게 배달문화원 배달문화대상을 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강수원도 이때 수상자 중 하나) 이유립이 교정했다는 배달의숙본을 판본으로 삼지 못했다. 배달문화상의 심사위원은 한국방송공사 이사장 송지영, 소설가 김동리, 전 문교부장관 안호상, 시인 서정주, 서예가 김응현 등등이었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이 유사역사학에 동조하고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다른가? 여전히 중앙일간지에 유사역사학 책들이 상찬을 받으며 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1985년보다 더 후퇴해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2019년 1월 29일 오전 8시 25분 1차수정: 제목의 시기가 불분명해 독자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제목에 '80년대'를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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