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느끼고 있는가...이야기에 색을 입힌 음악가가 물었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1.2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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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날이었지만 마음까지는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좀 들떠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뉴스톱》 연재를 시작한 필자에게 사카모토 류이치 씨가 데뷔 40년 기념 단독 인터뷰 기회를 제공하는 호의를 베푼 지 한 달 조금 넘은 시점이었다. 스티븐 쉬블이 연출한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의 시사회소식을 듣고 커먼즈(commmons, 사카모토 씨를 주축으로 설립된 음악사무소)의 Y씨에게 연락하니 한국방문 일정이 잡혀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뉴욕도, 도쿄도 아닌 서울에서 이루어지게 될 재회. 어찌되든 영화를 보러 가겠다고 한 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즈음, 난수처럼 긴 번호와 함께 스마트폰이 울렸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프랑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칸국제영화제에 가 있던 스코틀랜드인 친구 J. 8시간의 시차가 있는 그곳에서 필자의 추천작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를 관람한 그는 상영 종료 후 한 시간 이상이 지나고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벅찬 감정이 수화기 너머로까지 전해지는 이유는 영화의 뛰어난 완성도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서사에 색을 입히는 음악”

적재적소에서 감독의 연출의도를 극대화시켜주었던 사운드트랙. 비단 J가 글래스고의 음악학교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를 본 필자 역시 백발의 킨죠 관장과 평생을 함께한 필름영사기의 이별 장면에서 흐르던, 지극히 담담하면서도 짙은 우수(melancholy)가 배어나오는 멜로디에 매료되었으니까.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의 연출자 하세가와 료 감독을 통해 전해들은 이 음악의 창작자, '봄바람'을 뜻하는 'Harukaze' 뒤에 굳이 동풍(東風)이라는 주석을 달아놓은 유닛의 리더, 히가시 마사히로의 프로필은 흥미로웠다.

10대 시절부터 고향 오이타 현의 민요, 무악(舞樂), 제례악(祭禮樂)을 융합하는 작업을 하다 독학으로 아시아, 오키나와, 폴리네시아, 아프리카, 아마존의 민속음악, 즉 포크뮤직(folk music)을 연구했다. 고전만을 고집한 것도 아니다. 한때 헤비메탈에 심취한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는 ‘류큐 제도(Ryukyu Islands) 어딘가’라고 전해지는 작은 섬에 살고 있는 이 신비로운 뮤지션을 설명하기에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강퍅한 예술가적 개성이 아니라 여유로움과 인간미, 선량함으로 충만한 외모는 히가시 마사히로의 큰 매력중 하나. 그는 새 작품으로 반드시 한국의 독자들을 기쁘게 해 드리겠노라고 약속했다. 사진: 하세가와 료 제공

홍상현:

가장 궁금했던 게 하나 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던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를 본 친구가 ‘이야기에 색을 입히는 음악’이라는 찬사를 했다. 당신이 유능한 카메라맨이기도 한 것과 관계가 있겠지?

히가시 마사히로:

마음의 울림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으로 남기는데,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다시 음악이 된다. 이런 작업을 10대 시절부터 계속해왔다.

음악을 그만두고 사진에 인생을 걸어볼까 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사진으로는 기억을 자극하는 일밖에 할 수 없고, 오히려 사진을 찍기 때문에 기억이 희미해지던 시기도 있었다. 다시 음악으로 돌아올 무렵, 사진이 갖지 못한 음악의 위대함을 잘 알게 되었다.

다만, 사진을 통해 창작에 있어서 가능한 한 저 자신을 모사하지 않는 미학을 배웠다. 저는 창작 작업을 통해 제가 느끼는 누군가의 모습을 담는 ‘거울’을 만들고 싶어한다.

 

홍상현:

뮤지션과 인터뷰를 하다 유닛의 이름에 대해 질문해보기도 처음이다. “Harukaze東風”, ‘동풍’이라 쓰고 굳이 앞에 봄바람(Harukaze)이라는 독음을 달아놓은 것이 인상적인데.

히가시 마사히로:

동쪽은 예로부터 봄이 찾아오는 방향인 까닭에, 사람들은 ‘동풍(東風)’이라는 한자를 쓰고 ‘봄바람’이라 읽기도 한다. 밴드의 이름에 제 뿌리와 이어지는 글자(히가시ㆍ東)를 넣고 싶기도 했거니와, 사계절 중에 봄을 가장 좋아해 늘 봄바람처럼 희망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하루카제에서 오키나와의 전통현악기인 삼선과 타악기인 타이코, 그리고 노래를 맡고 있는 히가 구미코, 히가시는“그녀를 만남으로 내 음악에 생명이 깃들었다”고 말했다. 사진: 히가시 마사히로 제공

홍상현:

그 밖에 ‘민예악단(民藝樂團)’이라는 이름도 쓴다.

히가시 마사히로:

애초에 음악을 직업적으로 하기보다, 삶 자체를 즐기면서 만들어지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었다. 우리의 거점인 오키나와는 민속음악, 즉 포크뮤직 분야가 활발한 곳이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타악기(젬베) 연주자 마마디 케이타(Mamady Keïta)의 연주를 접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생활에 뿌리를 둔 역사를 가진 음악과 만났고, 음악과 삶을 이어주는 가르침으로 자리 잡았다. 아직 궁극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생활과 이어지는 ‘사람의 소리’를 끌어내는 것이 제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쓴 이름이다.

 

홍상현:

하루카제는 규슈의 전통현악기인 곳탄(ごったんㆍ板三味線)과 기타, 그리고 작ㆍ편곡을 맡은 당신, 히가시 마사히로(東正寛)와 오키나와의 전통현악기인 삼선(三線)과 타악기인 타이코(太鼓, 북), 그리고 노래를 맡은 히가 구미코(比嘉久美子), 두 사람이 주축이다. 완벽한 앙상블이 인상적인 두 사람은 부부이기도 하다.

히가시 마사히로:

제가 만든 자작곡을 라이브 연주로 표현하기 위해 멤버를 모아, 2010년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다양한 편성을 시도하면서 활동해왔지만 히가와의 만남으로 제 음악에 생명이 깃들었다. 그렇게 그녀의 노래와 삼선을 위한 작곡을 메인으로 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홍상현:

당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일견 단순한 포크뮤직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여러 가지 장르(예컨대 현대음악과 고전음악, 그밖에 수많은 지역의 월드뮤직을 망라한)가 결합되어있다는 특징을 꼽는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여러 번의 인생을 살아온 이의 음악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배경에 파란만장한 “소리의 여정”이 있을 것 같다.

히가시 마사히로:

말씀대로 수많은 ‘소리’를 경험해 왔다. 어릴 적부터 음악뿐만 아니라 육신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오랜 기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경험 속에서, 순간은 영원이 되고, 그런 시간의 흐름 가운데서 음악이 태어난다. 이것이야말로 시간을 넘어 자연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선물 아닐까 한다.

저는 다양한 리듬에 미니멀(minimal)한 멜로디를 싣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특기지만, 한편으로 어떤 음악에서든 공통되는 느낌을 중요시한다. 곳탄과의 만남도 제게 큰 영향을 주었다. 곳탄은 목수들이 오래된 민가에 건축자재로 썼던 마른 삼나무로 만든 악기이자 민예품이다. 해서, 음악, 인생, 역사, 사람의 마음, 그리고 만든 이의 인품까지 이야기해준다. 진화를 거쳐 완성된 모던한 현악기와 다르게.

소박한 음색에 크기도 작지만 연주하고 있으면 내 안의 무한한 우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신비롭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연주하는 이가 아니라면 알 수 없을 ‘음악의 근간’을 이 악기에서 배웠다. 그 자체 삶과 자연, 그리고 먼 옛날의 역사를 포괄하는 ‘음악이론’인 거지.

히가시는 아내, 히가와 함께 오키나와 본섬에서 20킬로미터 거리에 자리 잡은 인구 100명 규모의 작은 섬에 산다. 해변은 그의 스튜디오다. 사진: 히가시 마사히로 제공

홍상현:

그런 과정을 거쳐 끝내 오키나와에 정착했다. 왜였나.

히가시 마사히로:

10대 시절 헤비메탈 마니아였던 까닭에 오키나와의 코자(コザ) 시(헤비메탈로 유명하던 지역)를 동경했다. 그래서 찾아왔다가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에 매료되면서 아예 이곳에 살기로 결정했다. 그밖에 바다가 아름답다는 점도 음악 이상의 이유로 작용했다.

 

홍상현:

오키나와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기보다 먼저 바닷가에 나가 연주부터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상상된다. 지나치게 낭만적인가. (웃음)

히가시 마사히로:

지금은 그게 바로 제 일상인데? (웃음) 시간은 걸렸지만 말씀하신 그런 모습이 자연과 더불어 제 생활을 구성하게 된 것에 날마다 감사하고 있다.

 

홍상현: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히가시 마사히로:

제가 사는 곳은 오키나와 본섬에서 약 20㎞ 떨어진, 인구 100명 규모의 작은 섬이다. 큰 소리를 낼 때는 넓은 밭의 한구석에서 연습을 하고, 노래를 부를 때는 바람이 상쾌한 다른 섬의 해변을 찾는다, 밤하늘 아래 풀벌레 소리에 둘러싸여 피리를 불면서 작곡을 할 때도 있다. 물론 집에서 루프머신(loop machine)으로 며칠이고 작ㆍ편곡에 몰두하는 날도 있지만. 섬에서 지내다 보면 신기할 정도로 ‘소리’가 솟아난다.

히가시가 직접 만든 대나무피리, 그는 태풍으로 해변에 떠내려 온 각양각색의 대나무 50개로 몇 년에 걸쳐 최소 200개 이상의 피리를 만들었다. 사진: 히가시 마사히로 제공

홍상현:

2017년부터는 대나무피리(竹笛)를 주선율 악기로 쓰고 있는데, 놀랍게도 당신이 직접 제작한 것이다. 몇 년의 시간을 들여 무수한 프로토타입(prototype)을 만드는 과정을 거쳤을 것 같다.

히가시 마사히로:

곳탄은 제 음악이자 철학이며, 반주악기, 피리는 가성(歌聲)이다. 제 스스로 ‘목소리(聲)’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무렵부터 무아지경에 빠져 들었는데, 어느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더라. 지금 쓰고 있는 피리 이전까지 최소 200개는 만들었을 거다. 딱히 기억에 남을 만큼 쓸 만하지 못했던 것까지 합치면 배 이상일 테고.

나무를 자르거나 한 건 아니다. 2년 전 살고 있는 섬에 태풍이 왔는데, 다음날 아침 근처 해변에 나가보니 대나무가 수도 없이 떠 내려와 있었다. 그래서 각기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질 좋은 대나무를 50개 정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다가 모든 대나무가 각자의 성장과정을 설명하듯 그 나름의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작업에 더 열중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어린 대나무를 말려 여러 가지 공정을 거침으로써 악기의 제재를 마련하는 구조를 파악하게 되어 제작ㆍ가공ㆍ조율 외에도 소재 만들기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또한 연주에 사용하면서 사용 환경과 그에 따른 제재의 선정, 세부적인 설계까지 가능해졌다. 이러한 활동이 좋은 피리를 만들어 내는 토대를 이룬다. 아직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만들어낸 것들을 뛰어넘는 피리를 앞으로 얼마나 더 만들어낼 수 있을지 너무나 기대된다.

 

홍상현: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당신의 세계관, 혹은 신념이 예술(음악)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예술지상주의와 무연(無緣)하다는 것. 그래서일까. 낙천적이고 편안한 기질의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당신의 음악은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들었다.

히가시 마사히로:

중요한 것은 오직 ‘지금을 느끼고 있는가’이다. 느낀 것은 내 안에 남겨졌다가, 다시 나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니까. 오키나와는 의외로 낙천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땅으로, 언제나 자주적인 사고가 지워져버리는 소극적인 면 또한 갖고 있다. 물론 그 자체 오늘의 시대가 공통적으로 가진 특성일 수 있겠지만.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밝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으며, 저 또한 ‘너도 싸우고 있구나’하는 느낌으로 응원해주는 이들에 둘러싸여 행복하게 음악활동을 해나가는 중이다. 또, 예술자상주의적인 생각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매사에 음악이 중심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는데 애를 먹기도 한다. (웃음) 음악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있어 다른 최선의 방법이 있지 않을까 자문하면서도 아직 그 답을 찾지는 못했다.

히가시와 아내 히가 구미코, 두 사람이 주축인 음악 유닛 하루카제는 시간(현대와 고전)과 공간(지역)을 가로지르며, 무대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는다. 오직 단 한 마디의 질문을 던질 뿐이다. “지금을 느끼고 있는가?”사진: 히가시 마사히로 제공

홍상현:

2년에 한 번씩 타이완 투어를 한다고 들었다. 당신의 음악을 형성하는 조류의 하나가 폴리네시아계의 음악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또한 타이완은 오키나와에서 일본 본토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것 말고도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히가시 마사히로:

일단 타이완에 가는 이유는 음악을 매개로 친구를 만들게 되어서다. 타이완에는 훌륭한 포크뮤직ㆍ전통악기가 많이 남아있고, 발전과 진화가 거듭되고 있다. 특히 선주민의 음악이 그렇다. 먼 옛날부터 구전되어온 음악은 영혼 깊은 곳에 잠들어있던 나를 깨워준다. 내 뿌리는 오이타였지만, 그 심층에 또 다른 뿌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체감한다. 타이완 투어는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음악을 배우는 여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곡을 들고 찾아가는 타이완 투어는 내게 일종의 성지순례이자 곡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인 셈이다.

폴리네시아계 음악을 의식적으로 듣게 된 것은 모잠비크 전통악기인 팀빌라(Timbila, 목금, 일종의 실로폰 같은 악기)를 사용하는 동료와 오키나와의 파랑쿠(パーランクー)라는 작은 북으로 편성한 곡을 연주하면서였다. 일본도, 아프리카도 아닌 남쪽 바다의 풍경이 펼쳐지더라. 바로 그때, 사람들로부터 종종 ‘이 밴드는 어느 나라의 음악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 제 음악의 기원을 의식하게 되었다. 어쩌면 저는 어떤 ‘나라’가 아니라 먼 옛날 태평양에서 존재한 백성들의 ‘삶’에 대한 마음을 실은 음악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훌륭한 뮤지션이자 실력 있는 카메라맨이기도 한 히가시는 오키나와의 장인들을 다룬 하세가와 료 감독(사진 맨 오른쪽)의 차기작에서 촬영과 음악을 담당했다. 사진: 히가시 마사히로 제공

최근 그는 오키나와의 장인(匠人)들을 주인공으로 한 하세가와 료 감독의 차기작 제작에 참여하면서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참여를 결심했을 당시만 해도 과연 좋은 곡을 써낼 수 있을지 불안해했지만 결국 수많은 정신적 은총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얼마나 순도 높은 결과물로 내놓을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조심스러워하지만 다른 매체를 접하면서도 늘 하세가와 감독과 같은 것을 느껴왔다던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테다. 그리고 최근 유난히 심해진 한국의 미세먼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였나, 하가시는 독자들에게 조금의 기다림을 전제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척‘그다운’말을 전했다.

“경계가 없는 음악을 만들고 싶습니다. 현대의 포크뮤직, 진정한 월드뮤직 말이지요. 듣는 이들로 하여금 때로는 추억에 잠기게 하고, 때로는 덩실덩실 춤 출 수 있게 하는. 인간의 근원이 지구로 이어지게 하는 힘을 가진 곡 말이지요. 그런 새 작품들로 반드시 여러분을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밤하늘 아래 풀벌레 소리에 둘러싸여 피리를 불고 있을 그와의 대화는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의 바로 그 곡, “삶”과 같은 여운을 남기며,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희뿌연 하늘 너머의 창천(蒼天)과, 어느 날 거짓말처럼 찾아올 동풍, 봄바람이 필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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