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은 내란범으로, 전두환은 영웅으로 만든 한국당

  • 기자명 최윤수
  • 기사승인 2019.02.13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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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 김진태, 이종명은 2019년 2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북한군 개입 여부를 중심으로’를 개최했다. 북한군 600명 침투설을 주장해 온 지만원은 발표자로 참가해 그 간의 주장을 반복했고, 자유한국당 의원 김순례는 “저희가 방심하며 정권을 놓친 사이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 집단을 만들어 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라며 유공자들을 폄훼했다. 이종명 또한 “1980년 당시 5.18 사태는 폭동이라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화 운동으로 변질되고 있다.”라고 하여 세 의원 모두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이 발언들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1979년 10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 날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대통령을 암살했다. 다음날 계엄령이 선포됐고, 김재규는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그런데 10.26 사건의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은 1979년 12월 12일 계엄사령관인 국군참모총장 정승화가 김재규의 내란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체포하고 군 지휘권을 장악했다.

이듬해인 1980년 5월 초 신군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는데,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24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김종필, 이후락, 김대중, 문익환 등을 권력형 비리, 사회혼란 조성 배후 조정 등의 혐의로 연행했을 뿐 아니라 학생 다수를 체포하고, 김영삼을 가택 연금시켰다.

김대중을 체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980년 5월 18일 오전 광주에서 전남대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됐다. 신군부는 시위 진압을 목적으로 당일 광주에 공수여단은 투입했고,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입작전이 끝날 때까지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 사이 김대중은 중앙정보부실에서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모의를 하고 전남대생들에게 돈을 주어 반정부운동을 시켰냐는 취조를 당했다. 다른 연행자들은 영장도 없이 불법 감금되어 고문을 당했다. 신군부는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을 토대로 1980년 5월 22일 김대중과 재야 민주 인사 36인이 광주와 서울에서 데모를 배후 조종해 정부를 전복하려고 했다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즉, 김대중이 내란을 계획했고, 김대중의 지시에 따라 광주에서 학생,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켜 내란에 가담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1981년 1월 23일 김대중은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사형이 확정됐고(대법원 1981. 1. 23. 선고 80도2756 판결), 신군부에 저항한 광주 시민들은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처벌됐다. 이종명 의원이 “1980년 당시 5.18 사태는 폭동이라고 했다”라고 말한 의미가 이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광주의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했고, 6월 항쟁, 국회 청문회, 전두환의 사과 성명 발표 및 백담사 은둔, 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의 험난한 과정을 거쳐 1995년 12월 21일 전두환은 반란수괴, 내란수괴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17일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정승화를 체포한 것은 군형법 상 반란이고, 5.17 계엄령 확대 이후 광주에서의 진압 등 일련의 행위는 내란으로 판단했다(대법원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1997년 7월 3일 정승화는 재심 사건에서 내란 방조 무죄를 인정받았고(서울지방법원 95재보군형공15 판결), 이른 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처벌을 받았던 문익환, 이해찬, 설훈, 한승헌, 한완상 등도 재심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04. 1. 29. 역시 무죄를 인정받았다.

그런데 지만원은 여전히 5.18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과 공모하여 내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된 근거는 5.18 관련 사진에서 북한 사람과 닮은 사람을 찾는 것과 탈북자 수기다. 전두환의 내란을 인정한 대법원 96도3376 판결에 대해서는 당시 북한군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판단이 되지 않은 것이고, 자신이 최초 분석해서 북한군의 개입을 밝혔다고 한다. CIA도 모르고, 전두환, 노태우 정부에서도 못 했던 것을 혼자의 힘으로 말이다.

북한군이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전두환이 광주를 진압한 것은 적군을 방어한 것이기 때문에 내란이 성립하지 않는다. 더구나 지만원은 광주에서 시민을 학살한 것은 계엄군이 아니라 북한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5.18과 관련해서 내란목적살인으로 처벌받은 자들은 모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 96노1892 판결에 의하면 내란수괴인 전두환은 재판 중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한 사실이 없고, 2016년 5월자 신동아 인터뷰에서도 그런 주장은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미 지만원은 'DJ, 최고의 친일파-빨갱이-광주시민 학살자'라는 제목으로 “탈북자들의 수기에 의하면 김대중은 김일성과 짜고 북한 특수군을 광주로 보냈다.”, “이들에 의해 광주 시민들이 학살을 당했다.”라는 글을 게재하여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3. 5. 9. 선고 2013노619 판결). 재판부는 지만원이 근거로 든 탈북자의 수기는 출처나 증언자들이 불분명하고 그 내용이 검증되지 않았으며, 그 내용도 김대중과 김일성의 공모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현재까지 판결과 입법부에서 밝혀진 사실을 지만원이 모두 무시한 채 자기 글이 사실인 것처럼 무분별하게 게시하였고, 근거로 든 “김정일 파멸의 날”이라는 책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예언서인데도 마치 거기에 기재된 내용이 CIA에서 확인한 것처럼 게시하였다고 판단했다. 즉, 북한군 개입설이나 김대중과의 공모설은 허위사실이고 진실이라고 믿을 정당한 사유도 없으므로 사자명예훼손죄를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만원은 북한군 개입설을 계속 유포하면서 전두환은 영웅이라는 말까지 한 바 있다. 김대중은 북한군을 광주에 침투시켜 국가를 전복하려 한 내란범이고, 이를 진압한 전두환은 내란범이 아니라 구국의 영웅이라는 의미다. 이종명 의원이 공청회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된 것”, “이제 40년이 지났는데 한 번 뒤집을 수 있을 때가 된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 것도 결국 5.18은 내란이라는 소리다. 5.18 민주화 유공자 역시 더 이상 유공자가 아니라 단지 내란범죄자일 뿐이다. 김순례 의원이 이상한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낸다고 한 것은 결국 유공자가 아닌 범죄자들이 보상을 받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단지 유공자 지정이 불투명하다는 취지라는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제1야당의 국회의원들이 수십 년간 국민과 국회, 사법부가 쌓아 올린 역사적 진실을 왜곡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법정에서 인정된 허위사실을 근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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