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반공·색깔론은 더 이상 득표에 도움되지 않는다

  • 기자명 최광웅
  • 기사승인 2019.02.25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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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때 북한군 600명 침투 운운은 ‘합리적인 의심’을 가장한 싸구려 안보장사일 뿐이다. 남북대치 상황 그 자체를 오랫동안 자신들의 선거마케팅으로 활용해온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단체 등이 만든 합작품에 불과하다. 박정희-전두환-박근혜에 이어 낙선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까지 줄곧 이를 앵무새처럼 반복했고, 최근 한국당 유력 당권주자라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역시 이와 전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안보마케팅은 하루가 다르게 그 효용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반공 보수' 내세웠던 홍준표의 대선ㆍ지선 실패

“창원에는 빨갱이들이 많다.” 제7회 지방선거 기간 중이던 2018년 5월 2일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 참석하던 중 손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을 향해 쏟아낸 막말 발언이다. 2017년 5월 조기대선을 치르며 트럼프 대통령 흉내로 2위를 지켜낸 홍준표 전 대표는 반공·반북주의 전략이 상당히 먹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지난해 지방선거 국면에서 나 홀로 '반공·방첩'을 주장하면 "김정은의 위장평화 공세!”를 외쳤다. 로키(low-key) 선거운동을 펼치며 차분하게 한 표 한 표 득점을 올리려고 했던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조차 오죽하면 자당 대표 비판대열에 공개적으로 나섰겠는가? 홍 전 대표를 포함한 이른바 ‘자유대한민국 수호자’들의 반공·반북주의 구호가 얼마나 유효했는지는 개표결과를 통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나마 합리적인 보수노선을 표방한 김태호 후보 득표율(42.95%)이 낙선한 시·도지사 후보자 가운데 도드라진 1위였으나 창원지역 득표율은 여기에도 1.6%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또한 홍 전 대표는 자신이 경남지사 재직시절 정무부지사와 경남개발공사 사장으로 임명, 근무한 측근인 조진래 전 국회의원을 창원시장 후보로 무리하게 전략 공천했으나 고작 30% 득표율로 참패하고 말았다. 경남도 전체유권자의 31% 이상이나 밀집한 창원이라는 대도시에서 선거 전략으로 행한 반공발언이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한 셈이다.

한편 2018년 지방선거는 선거일 하루 전에 열린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이미 승부를 갈랐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과 같은 경제문제나 여배우의 폭로사건 등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빅 이슈에 묻혀서 반공보수주의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심지어 ‘반공 구호’가 가장 잘 먹힌다는 인천·경기·강원도 접경지역시군협의회 소속 10개 시·군 득표율을 비교해 보더라도 민주당은 전국 정당득표율과 엇비슷하다. 이른바 전국적 동조화 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대구경북을 제외하고 부산울산경남 등 전 지역이 마찬가지다.

<표 1> 2018년 지방선거 접경지역 10개 시·군 정당(광역비례)별 득표현황 (단위 : %)

 

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

평화당

정의당

접경지역 득표율

51.98

29.49

6.17

0.71

9.39

전국득표율

51.42

27.98

7.81

1.96

8.97

 

<표 2> 접경지역 시·군협의회 소속 10개 지방자치단체

파주시, 김포시

강화군, 옹진군, 연천군, 고성군, 인제군, 화천군, 양구군, 철원군

 

자유한국당 계열 보수정당은 과거 선거 때마다 안보장사로 쏠쏠한 재미를 보아왔다. 2017년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가 선거벽보에 사용한 메인 슬로건은 “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이다. 선거공보에서도 그는 “경남지사 시절 좌파(민주노총·전교조)와 맞서 싸웠고, 대통령이 되어 북핵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전술핵 재배치와 사드배치 조기 완료 등 북한에 대한 힘의 우위 정책을 안보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에 대해 당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낡아빠진 안보장사를 이제 그만 걷어치우라며 TV토론회에서 거듭 면박을 줬다. 결국 심 전 후보 말대로 홍준표 전 후보는 13대 대선 이후 가장 큰 표 차이로 패배한 2등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또한 아무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라고 해도 중도성향 후보들이 출마한 비슷한 조건(14~15대 대선)과 비교해도 터무니없이 낮은 지지율이다.

 

<표 3> 중도후보가 출마한 역대 대선 개표결과 비교 (단위 : %)

대수

민주당계열

한국당계열

중도당계열

진보당계열

기타정당

14대

김대중(33.82)

김영삼(41.96)

정주영(16.31)

백기완(1.00)

박찬종(6.37)

15대

김대중(40.27)

이회창(38.74)

이인제(19.20)

권영길(1.19)

 

19대

문재인(41.08)

홍준표(24.03)

안철수(21.41)

심상정(6.17)

유승민(6.76)

 

중도후보 출마시 보수후보의 '반공주의' 표 도움 안돼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19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전국 득표율과 접경지역 득표율 격차가 거의 없었다. 경기지사 출신으로 중부권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은 이인제 후보가 +13.74%를 기록하면서 김대중 후보는 –11.03%를 나타냈다. 이때는 수도권에서 김대중-이인제 후보 지지층이 상당 부분 겹쳤기 때문이다. 10년 전 대선에서는 겨우 30%대 득표율로 당선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접경지역 10개 시·군에서만큼은 60%에 근접한 압승(표5 참고)을 거두었다. 대선 일에 임박한 KAL폭파사건이 결과적으로 ‘반공주의’ 표심을 자극한 셈이다. 그런데 1992년 대선 때는 “경제대통령, 통일대통령” 구호를 내걸고 심지어 ‘공산당 합법화’ 주장까지 제기한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가 가세함으로써 김영삼 당선인은 전국 득표율과 접경지역 득표율이 거의 비슷해졌다. (표6 참고)

 

<표 4> 1997년 대선 접경지역 10개 시·군 후보별 득표현황 (단위 : %)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권영길

접경지역 득표율

29.24

36.13

32.94

0.67

전국 득표율

40.27

38.74

19.20

1.19

 

<표 5> 1987년 대선 접경지역 10개 시·군 후보별 득표현황 (단위 : %)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접경지역 득표율

58.91

23.40

12.83

4.58

전국 득표율

36.64

28.03

27.04

8.06

 

<표 6> 1992년 대선 접경지역 10개 시·군 후보별 득표현황 (단위 : %)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접경지역 득표율

42.84

21.59

27.53

전국 득표율

41.96

33.82

16.31

 

2002년 이후 접경지역에서 반공주의 더 이상 안 먹혀

하지만 개표 데이터를 살펴보면 2002년 대선 이후로 반공·반북 구호도, 북풍 공작도 더 이상 선거결과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10개 접경지역 시·군 유권자들은 2002년 대선 당시 오차 범위 이내에서 노무현-이회창 후보를 골고루 지지함으로써 노 후보는 신승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표7 참고) 민주당계열 정당이 국회 내 과반수를 차지한 2004년 총선 때도 접경지역 10개 시·군은 열린우리당 손을 들어주었다. (표8 참고) 2017년 5·9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전국 득표율과 접경지역 득표율 격차는 +2.62%로 거의 무시해도 좋을 수치다. 홍준표(+0.96%) 후보 등 나머지 후보도 전부 전국 득표율과 접경지역 득표율 격차는 3% 이내였다. (표9 참고) 다만 2007년 17대 대선 때만 이명박 후보의 10개 접경지역 시·군 득표율이 이례적으로 높은 72.74%이다. 이는 역대 대선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63.03%)과 보수 성향 이회창(무소속) 후보 표를 잠식한 게 가장 큰 까닭이다. 

따라서 이제 대한민국 선거에서는 북한변수보다 오히려 한반도평화(2018년 지방선거), 대통령탄핵(2017년 대선), 경제실정(2016년 총선) 등과 같은 빅 이슈에 민감하다고 결론이 나온다. 반공·반북에 기반 한 보수주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 “반공·반북주의 보수정당!!”를 외친다고 더 많은 득표를 한다고 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철 지난 매카시즘은 이제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표 7> 2002년 대선 접경지역 10개 시·군 후보별 득표현황 (단위 : %)

 

노무현

이회창

권영길

접경지역 득표율

46.20

48.01

4.31

전국 득표율

48.91

46.58

3.89

 

<표 8> 2004년 총선 접경지역 10개 시·군 정당비례대표 득표현황 (단위 : %)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득표수

137,160

135,629

19,386

38,407

득표율

39.08

38.64

5.52

10.94

 

<표 9> 2017년 대선 접경지역 10개 시·군 후보별 득표현황 (단위 : %)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접경지역 득표율

38.46

24.99

22.33

6.80

6.82

전국 득표율

41.08

24.03

21.41

6.76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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