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인도 독립운동이 3.1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주장은 거짓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19.03.0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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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3.1운동을 통해 세계 만방에 독립국임을 선포하고 이를 계기로 상해임시정부도 세웠으니 3.1운동이 우리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획기적인 거사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운동의 의의를 찾는 데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이 역사적 해석의 문제로 역사학자가 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역사적 사실의 문제라면 그 문제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그 문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3.1운동이 인도 민족운동에 영향을 끼쳤다는 부분이다. 이는 분명히 바로잡아야 할 팩트의 오류다. 더군다나 이 잘못된 팩트를 가지고 이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그 나라에 가서까지 잘못된 사실을 언급했다 하면 이는 심각한 결례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인도를 방문해 모디 총리에게 "인도의 독립운동이 한국의 3.1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KBS 화면 캡처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7월 9일 인도 국빈 방문 시에 모디 수상을 비롯한 인도의 주요 인사가 모인 자리에서, 한국 국민도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 인도 독립운동과 비폭력 저항의 상징인 간디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을 꺼낸 후에, ‘인도의 독립운동이 우리의 3.1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거론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분명한 역사 왜곡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에는 이미 그 이전부터 한국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잘못된 것으로 인식하지 못한 채 역사적 사실로 인정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연설을 작성한 사람들이 그렇게 연설문을 작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이전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유신, 그 어둠을 뚫고>라는 저서의 '3.1.절 유감' 이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도에서도 국민회의파(國民會議派)의 독립운동이 3.1운동의 영향을 받고 급속하게 고조(高潮)되었다. 이는 앞서 인용한 네루의 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영국의 식민지 간접통치의 구조적 특징을 활용하여 3.1운동의 비폭력투쟁 방법까지 채택하였다. 이것이 나아가 자기의 실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원동력과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인도독립운동의 비약적 발전의 전환점을 이룬 간디 지도하의 1919년 4월의 사타야그라하사브하운동은 3.1운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었다.”

 

이러한 대통령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은 한국사 교과서에 이미 그렇게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6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하) III. 민족의 독립 운동 부분에서 ‘3⋅1 운동의 의의’라는 항목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3⋅1 운동은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및 중동 지역에서 반제국주의 민족 운동을 일으키게 한 선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어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사 IX. 민족의 독립운동 항목에도 똑같이 나온다. “3⋅1 운동은 아시아 각지의 민족 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는 3⋅1 운동의 영향으로 대규모의 민족 운동이 전개 되었다.”

교과서에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 부처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두고 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기록되어 있는 ‘독립운동 판결문 3.1만세운동의 의의’에, “3.1운동은 국제사회에 한국인의 자유와 독립에의 열망과 의지를 각인시켰다. 이는 중국 5.4운동, 인도와 이집트, 인도차이나, 필리핀 독립운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적혀 있다. 이 부분을 고쳐야 한다. 역사는 팩트 자체가 아니고, 팩트와 팩트 사이의 해석이라고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팩트 자체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팩트에 관한 부분은 논문을 통해 논란을 할 수 있는 여부도 아니다. 역사적 사건의 연대기만 알면 누구든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면 이 사실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인도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결정적인 부분부터 이야기 하자면, 인도의 민족운동은 3·1운동이 있기 훨씬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영국의 인도 침략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757년 이후 약 100년 동안 인도인들은 자기들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을 갖지 못했다. 그러다 1857년 소위 ‘세포이항쟁’이라고 알려진 봉기가 터졌고, 이를 통해 자신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 후 1885년 민족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결실이 Indian National Congress (인도국민회의 혹은 인도민족회의)라고 하는 정당의 창당으로 맺어진다. 그 후 인도 민족운동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민족이라 인식하고 민족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3.1운동이 일어나기 무려 30여 년 전의 일이다.

이후 지지부진 하던 민족운동이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1905년 영국 정부가 인도의 민족운동이 거세게 일어나자 소위 정책을 통해 당시 민족운동의 본산이었던 벵갈 지역을 둘로 분할하려는 시도였다. 그러자 민족운동 지도자들은 영국의 벵갈 분할 정책에 대해 대규모 대중 운동을 일으켰다. 민족자치(스와데시 swadesh)를 부르짖으며 국산품애용 운동을 벌였다. 3.1.운동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이 대중 운동만 치더라도, 3.1.운동의 10년 전이다. 간디가 이미 남아공에서 비폭력·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여 성공시킨 것도 1900년의 일이다. 그 후 간디는 인도로 돌아와 인도의 민족운동을 지도하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이 1915년부터의 일이다. 1918년 간디는 비하르의 짬빠란(Champaran)이라는 농촌에서의 반(反)지주 농민 운동을 비폭력운동을 구동 장치로 하여 민족운동으로 연결시켰고, 전 민족 운동으로 성공리에 이끌어 이미 민족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그 간디가 남긴 수많은 글 가운데 조선의 3.1.운동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다. 어떻게 간디에게 영향을 끼쳤다는데, 간디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황당한 역사 기술이 나왔을까. 짐작컨대 국정교과서를 집필한 1970~80년대 한국에 상당히 널리 알려진 인도 민족 운동가이자 독립국 인도 공화국의 초대 수상인 네루(Jawaharlal Nehru)가 감옥에 있을 때 자신의 딸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에게 쓴 편지를 묶어 펴낸 책 《세계사편력》에 나오는 몇 문장 때문이 아닐까 한다. 1932년 12월 30일 감옥에 있던 네루는 딸 인디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의 독립투쟁 가운데 중요한 것은 1919년의 독립만세운동인데, 젊은 여대생들이 그 싸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며 “그 사실은 너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라고 적었다. 네루의 편지는 1932년도에 쓴 글이다. 3.1.운동이 일어나고 그 결과가 세계에 널리 알려진지 10년이 훨씬 지난 뒤의 일이다. 박정희 독재 치하에서 상당히 널리 읽힌 이 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어떤 민족주의 운동권 누군가가 연도를 혼동하였든지 아니면 견강부회 하여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인도에 강제 연결시킨 결과가 아닐까 한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김영삼 전 대통령은 3.1.운동이 인도에 영향을 끼쳤다는 근거로 바로 이 네루의 편지를 삼는다. 그 글을 누가 썼는지 모르겠지만, 역사를 제대로 연구해보지 않은 사람이 저지른 무지의 소치다. 역사 연구의 첫 걸음은 사료 검증이다. 1932년에 나온 편지가 어떻게 1919년 사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말인가? 네루는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쓸 때 당시 몇몇 역사서와 기록을 참조했는데, 1919년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그 과정에서 서구의 언론을 통해 그 쪽에 알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한국사와 세계사를 병행하여 기술한다. 그러면 공부에 조금만 집중해서 보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3.1.운동이 같은 해에 일어난 중국의 5.4운동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 것은 그나마 그 개연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5.4운동 직전에 3.1.운동에 대한 소식이 중국 땅에 알려졌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조선에서의 한 사건이 대륙 그 엄청난 땅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결정적인 자료가 나오지 않는 한 팩트 수준에서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팩트 자체부터 전혀 다른 인도에 대한 영향은 전혀 인정할 수 없다.

7차교육과정 중학교 국사책에 실려 있는 내용. 3.1운동 영향으로 인도에서 대규모 민족운동이 전개되었다고 적혀 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3.1.운동이 인도에 영향을 끼쳤다는 민족주의에 찌든 과도한 역사가 교과서에 실려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민족 자존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더 옳은 역사학을 하는 자세라 주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유용하게 쓰는 ‘정치’ 차원의 일이지, 역사학 그 자체의 일은 아니다. 역사는 유용성의 학문이 아니다. 설사 백번 ‘정치’ 차원의 일로 활용한다고 치자. 그런 걸 할 데가 있고 하지 않아야 할 데가 있는 것이다. 남의 나라에 국빈으로 가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사들 앞에서 그런 못난 역사 오류를 버젓이 말한다고 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제 나라 잘나기 위해 남의 나라 역사를 폄훼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낯이 뜨거운 창피한 일이다. 교과서부터 바꿔야 한다. 현재의 경세에 부끄러운 자가 자꾸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것도 과장하고 왜곡해서 말이다. 영광의 민족주의로 자라나는 후손을 가르칠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떳떳한 현실 속에서 세계 시민의 정신으로 후손을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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