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품연구원의 '막걸리 찬가'...받아쓰는 언론이 '확성기'

  • 기자명 김우재
  • 기사승인 2019.03.06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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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한식 세계화를 극진히 챙겼다. 2009년에는 떡볶이 연구소를 차려 나랏돈 140억을 투입하기도 했고, 여기에는 간판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도 일조했다. 수 백억원의 나랏돈이 낭비된 이 애국 사업은, 이후 박근혜 정권으로도 이어져 도대체 뭘 하는지 알기 힘든 한식재단을 만들기도 했다(지금은 한식진흥원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 사업이야말로 나랏돈을 "국밥처럼 말아먹었다"고 했다. 김윤옥의 한식세계화에서 선정한 대표 품목이 떡볶이, 김치, 막걸리, 비빔밥이었다.

'장기능 개선 막걸리' 받아쓰는 언론과 비판하는 언론

얼마전 한국식품연구원 (KFRI)은 흥미로운 제목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2019년 1월 31일자로 배포된 보도자료의 제목은 <막걸리로 장 건강 챙기세요 - 한국술 막걸리에 의한 장 기능 개선 효능 밝혀져>였다. 이 보도자료를 받아 쓴 언론은 10곳이 넘으며 유력일간지인 경향신문아시아경제이데일리전자뉴스대전일보 등이 뉴스로 보도했다. 연합뉴스뉴시스뉴스1 등 통신사는 사진기사로 이 소식을 알렸으며 이들 통신사와 전재 계약을 맺은 중앙일보 등은 홈페이지에 이 사진기사를 올렸다.. 디오데오라는 언론사는 무려 이 기사를 세번이나 전송했는데 그 이유는 알기 어렵다. 과학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한다는 '이웃집과학자' 등의 웹사이트도 이런 뉴스를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홍보하는 글을 내보냈다.

한국 식품과학 연구자들이 그리 만만치 않다. 뉴스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식품저널뉴스'에서 이 보도자료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기 시작했다. 2월 1일엔 '막걸리로 장 건강 챙기라는 한국식품연구원'이라는 기사를 통해, 보도자료를 요약한 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의 말을 빌어 생쥐를 대상으로 한 단기적인 실험결과를 인간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취지의 의견을 보도했다. 이 기사로는 모자랐는지 2월 8일에는 '[SNS선 지금] “알코올 마시며 장 건강 찾으라는 발상…과학도 아니다'라는 기사에서 인터넷의 다양한 반응들을 모아 한국식품연구원의 보도자료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이 기사의 부제는 “양조장에서도 이런 주제로는 쪽팔려서 마케팅 하지 않아”다). 식품저널뉴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발행인까지 동원해 2월 18일 칼럼('한국식품연구원 '막걸리 장건강' 발표...연구결과 오도 안돼)'을 내보냈다. 이전의 보도들을 요약하면서 보도가 왜곡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내용이었다.

학술지 게재 아닌 '투고' 상태에서 성급히 발표

과학자는 논문으로 말한다. 과도한 경쟁에 내몰려 만들어진 말이기는 하지만, 과학자 사회에는 "출판하거나 죽거나 publish or perish"라는 말도 있다. 즉, 이런 연구결과가 언론에 등장하면 과학자는 도대체 어떤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일까를 가장 먼저 궁금해 한다. 지난 십 여년간 한국 언론의 과학기술 보도를 살펴본 결과, 기사에 논문정보가 등장하지 않을 경우, 대부분 논문을 내지도 않고 결과를 과대포장해서 발표했거나, 논문이 나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결과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학적 연구결과에 관한 언론보도에서, 해당 연구가 발표된 학술지는 가장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한국 언론은 과학보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논문 정보를 숨기는 경향이 있다. 외국의 과학언론이 논문 정보를 링크까지 제공하며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언론 보도를 대부분 인터넷으로 소비하는 시대에, 과학기자들이 과학 연구결과 보도의 근거가 되는 논문 링크 정도를 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상 언론 과학보도를 읽다가 해당 논문을 찾는데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서 개인적으로도 액티브액스처럼 짜증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언론은 한국식품연구원의 보도자료 내용이 어느 논문에 발표되었는지 쓰지 않았다. 가까스로 한 신문에서 논문이 '투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보도자료의 3페이지에서 겨우 다음과 같은 문구를 발견했다.

"[성과활용] 금번 연구 성과를 통해 연구팀은 현재 특허출원 1건, 논문 투고 1건을 완료하였고 향후 누룩 및 누룩 막걸리를 활용한 전통 발효식품의 우수성 구명 및 이를 응용한 소재 개발의 기초로 활용할 계획임."

그러니까, 이번 연구결과는 논문이 투고되어 심사를 받고 있는 중이지, 공인된 국제학술지에 논문이 투고되어 게재승인이 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구글학술검색 및 펍메드에서 몇 십분동안 'Makgeolli', 'Korea Food Institute' 등으로 검색해봤지만 논문을 찾을 수 없었다. 즉 이 논문은 심사 중이어서 아직 게재 승인이 나지 않았거나, 게재 승인이 되었으나 온라인판으로 게재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보도자료에 학술지 정보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이 논문은 여전히 심사위원들과 편집자의 손에 들려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렇다면 이 보도자료는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도 되지 않은 실험결과일 뿐이다.

막걸리 보도자료의 '허술한 디테일'

한국식품연구원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연구결과야말로 "처음으로 우리 고유의 한국술인 막걸리가 장내미생물 균총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으며 장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검증"했다고 말했다. 이런 보도자료가 혹여라도 과음의 근거가 될지 걱정되었는지, 그는 다시 영리하게 "과도한 음주는 당연히 건강에 해롭지만, 소량의 음주일 경우 다른 술보다 누룩으로 만든 막걸리 섭취가 유리할 것"이라고 덧붙힌다. 나아가 이번 성과를 통한 애국심 고취를 잊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차후 장기투여 및 인체실험을 통하여 막걸리 유래의 장 건강 개 선 소재의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며, 이를 통하여 막걸리 종주국으로서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원장에게 막걸리는 애국심이다.

보도자료에 쓰인 데이터들을 훑어보았다. 아마도 논문에 쓰인 데이터를 가공해 사용했을 것이다. 막걸리를 생쥐에게 7일간 먹이고 분변 등을 메타지놈 분석한 결과를 본다(아래 그림2 참고). 사실 이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막걸리가 이미 품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생쥐의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교란할 것임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조군으로 알코올을 사용했는데, 차라리 요거트나 김치 같은 발효음식을 사용해 막걸리만의 특이한 효능을 검사하는게, 더욱 정교하게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실험 디자인으로 보인다.

[그림 2] 누룩 막걸리에 의한 장내미생물 균총 변화. 보도자료 중

[그림 1]에서는 시판 막걸리를 이용해서 단쇄지방산 생성 능력을 검증했는데, 여기서 누룩막걸리만이 뷰티르산이나 프로피온산 생성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듯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실험결과를 보여주는 그래프에 오차막대가 없다. 오차막대가 없다는건 실험을 딱 한번 수행했다는 것인데, 생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은 거의 대부분 세 번의 반복실험이 의무화되어 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림1] 막걸리의 in vitro 단쇄지방산 생산능 확인. 보도자료 중

[그림 3]은 누룩막걸리가 장 기능 개선 효능이 있다는 가장 중요한 결과를 담고 있는데, 통계분석과 데이터 해석에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꼭 다이너마이트처럼 생겼다고 해서 다이너마이트 플롯 (dynamite plot)이라고 불리는 막대그래프는 최근 대부분의 의생명과학 학술지에서 사용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내린 그래프 형태다. 진짜 데이터의 많은 부분을 가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대그래프 위에 효과가 있다는 의미로 별표를 하나씩만 기입한 것도 정상적인 통계분석이 아니다. 만약 저 분석이 분산 분석 (ANOVA)의 결과라면 별표가 아니라 우물정(#)이 들어가야 맞다. 사용한 막걸리 3종 중, 한 종의 경우엔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 결과도 설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 세번째 그래프 '대장내 염증성 사이토카인' 결과는 해석이 곤란할 정도다. 막걸리가 알콜과는 달리 대장에서 염증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인데, 일상의 상식과 동떨어진 이런 결과를 발표할 때는 좀 더 신중하게 다양한 조사를 거치는게 맞지 않나 싶다.

[그림 3] 누룩 막걸리에 의한 장 기능 개선 효능. 보도자료 중

수년 전엔 '항암 막걸리'...받아쓰는 언론 덕분에 지속돼

여기서 끝인 줄 알았다. 아직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생쥐대상의 실험결과를, 기관의 홍보자료로 이용하기 위해 과장해서 발표한 정도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논문이 나가지 않았지만 그럴 수 있다고도 여겼다. 물론 이 정도의 연구결과로 세계적 학술지에 논문을 싣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막걸리의 효능을 정확히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 조사를 하던 중, 8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2011년 4월 4일, 한국식품연구원은 막걸리에 "항암물질이 포도주, 맥주보다 25배 이상 많다"는 발표를 한다. 당시에도 많은 언론이 이 보도자료를 받아 적었고, 이 연구는 항암물질인 마네졸(farnesol)이 막걸리에 많이 있기 때문에 항암 효과가 있다는 방식으로 왜곡되었다. 

지금도 한국식품연구원의 연구성과 페이지에는 '막걸리의 암 예방 효능검증 및 신규 활성성분 도출'이라는 섹션이 남아 있고, 그 주요 성과 논문으로 『J. Microbiol. Biotechnol』라는 학술지 논문 1편이 적혀 있다. 이 연구는 <The 46th Annual meeting of the Korean Society of Analytical Sciences>, 즉 '한국분석과학회'의 정기 학술대회서 발표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정식 논문이 아니라 학술대회 발표집의 초록일 뿐이다. 구글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는 아래와 같다. 

Wang, Y., Sim, Y. S., Jang, H. J., Ham, T. S., Chen, X., & Ha, J. H. (2011). Analysis of farnesol in Korean turbid rice wine ( Makgeolli) using MSBeGC/MS. In The 46th Annual meeting of the Korean Society of Analytical Sciences. PF

문제는 이 초록집의 링크가 없다는 것이다. 뒤에 나오지만 이 연구를 주도한 하모 박사는 이 학회의 학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식품연구원의 연구성과 페이지에 있는 '막걸리의 암 예방 효능검증 및 신규 활성성분 도출' 섹션

한국 과학계가 만만치 않다. 당시에도 그럼 항암효과를 얻기 위해 하루에 막걸리 13병을 마셔야 하냐는 식의 비판 기사들이 있었다. 심지어 중앙일보는 당시 '[J 스페셜 - 금요헬스실버] ‘항암 막걸리’ 열광과 진실'이라는 특별기사를 준비하며, 해당 언론보도로 인해 막걸리 판매량이 몇 배나 치솟았고, 2009년 시작된 막걸리 열풍이 주춤하던 시기, 한국식품연구원이 다시 불을 댕기려는 시도가 있는게 아니냐는 분석기사까지 실었다. 그렇게 막걸리 항암효과에 대한 언론보도는 그렇게 마무리되나 싶었다.

하지만 2014년이 되면 또다시 같은 내용의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이 때도 언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보도자료를 받아 썼고, 다시 막걸리는 항암효과가 있는 파네솔 성분을 잔뜩 함유한 마법의 주류로 포장되기에 이른다. 당시 보도자료의 근거가 된 논문은 실제로 논문으로 출판되었는데, 영향력 지수 4.946의 『Food chemistry』라는 학술지였다. 그리고 한국식품과학연구원이 막걸리와 암 예방 효능의 성과라고 주장하는 논문 한편은 『J. Microbiol. Biotechnol』에 출판되었고, 영향력 지수는 1.650이다.

이처럼 막걸리의 건강증진 효과를 과장하며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이는 한국식품연구원 소속의 하모 박사로 위의 두 연구 모두에 연관되어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한국 전통음식의 효능을 연구해온 과학자로, 다양한 한국식품연구원 소속으로 김치에 대한 연구에도 참여했고, 2016년엔 세계김치연구소의 소장으로 부임해 현재까지 재직중이다. 세계김치연구소는 막걸리 찬가에 올인하고 있는 한국식품연구원의 부설연구소다. 그는 소장 인사말을 통해 김치산업이 위기에 처해 있고, 김치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연구기관이라는 목표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과학자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법은 어느 정도 정형화되어 있다. 잠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국가주의에 매몰된 자신을 발견하면 된다. 모두 시도해보시기 바란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국내 김치소비는 감소하는 반면, 중국산 김치는 가격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김치산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 김치산업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신성장 동력 확충이 절실한 시점에 와 있고, 그만큼 세계김치연구소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음을 깊이 통감합니다."

김치는 중국과 싸우는 무기다. 미국이 나랏돈으로 햄버거 연구소를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맥도날드라는 사기업이 햄버거 대학을 만들어 햄버거의 이미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건 알고 있다. 김치나 막걸리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문제는 김치나 막걸리가 세계화되어도 결국은 그걸 파는 사기업에 이익이 돌아가는 일에, 정부가 나서 수백억원의 나랏돈을 쏟아붇는 코미디 같은 정책이, 왜 유독 한국에만 이렇게 횡행하느냐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캠프에 기여했던 인사들을 내려보내기 위해 만들어낸 그 수 많은 공기업과 정부부설기관들이 하고 있는 사업이란, 이렇게 과학적으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수준의 가짜 홍보 뿐이다. 막걸리 찬가의 이면엔, 한국 정부의 구겨진 추태와 낭비되고 있는 국민의 혈세가 놓여 있다.

김우재, 과학뉴스를 의심하는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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