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문재인 대통령 "빨갱이란 단어는 친일잔재"는 사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3.05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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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3·1절 100주년 기념사 일부 내용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1일 기념사를 통해 “신한반도체제로 담대하게 전환해 통일을 준비해 나가겠다. 신한반도체제는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이자 대립과 갈등을 끝낸 새로운 평화협력공동체”라고 밝혔다. 논란이 된 부분은 기념사 앞부분에서 언급한 '빨갱이'와 '친일잔재 청산'이다. 문 대통령은 ①'빨갱이'란 단어가 일제시대 때 만들어졌으며, ②빨갱이 낙인이 해방 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사상범과 빨갱이는 진짜 공산주의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습니다.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습니다. 양민학살과 간첩조작,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도 국민을 적으로 모는 낙인으로 사용됐습니다.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로 규정되어 희생되었고 가족과 유족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잔재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3.1절 100주년 기념 연설 중

 

이를 두고 조선, 중앙,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이 반발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지난 2일자 사설에서 “3·1 운동 100주년이란 뜻깊은 날에 무슨 난데없는 ‘빨갱이’론인가. 나라와 국민은 21세기에서 글로벌 경쟁 중인데 대통령은 80~90년 전 친일·빨갱이 타령이다”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을 통해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빨갱이란 용어 자체가 설사 일제의 독립운동가 탄압 과정에서 생겨났다 해도 굳이 기념사에서, 그것도 100주년까지 겹쳐 의미가 더욱 각별한 3·1절 행사장에서 대통령이 힘주어 강조할 일이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압권’은 동아일보였다. 김순덕 동아일보 대기자는 지난 4일 ‘김순덕 칼럼’에서 “표현의 자유까지 갈 것도 없다.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를 수 없는 나라는 북한과 다름없는 전체주의 국가다. 좌빨도 아니고, 주사파도 아니고, 빨갱이라는 자유당 때 단어가 다시 들리는 데는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외국 언론에서 북한 대변인이라고 할 만큼 친북적인 언행과 정책을 보이니 시대착오 같은 빨갱이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고 힐난했다. 이 칼럼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며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비난만 했을 뿐 검증한 곳은 없다. 정말 '빨갱이'란 단어는 친일잔재인지, 빨갱이 누명 때문에 친일 청산이 미뤄졌는지 뉴스톱이 확인했다.

2019년 3월 4일자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

① '빨갱이'는 일제가 독립군을 탄압할 때 쓰던 단어다?

대체로 거짓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생겨난 배경을 일제의 탄압이라고 했다.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다는데, 이는 근거가 불확실하다. ‘빨갱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당(Party)의 당원을 뜻하는 파르티잔(Partisan)이 ‘빨치산’으로 변형되다가 최종적으로 빨갱이가 됐다는 설도 있고, 볼세비키 혁명을 상징하는 붉은 깃발에서 유래됐다거나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무산자 계급을 뜻하는 벌거숭이라는 말이 변형됐다고도 한다.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빨갱이는 일제 시기의 ‘아카’(アカ)라는 용어에서 유래했다. 둘 다 사람의 속성을 ‘빨강’(赤)이라는 색깔로 지시한다. 이 색깔은 ‘주의자’(主義者), 더 좁게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가리키지만, 그것에 한정되지 않고 의미가 완전히 열린 채 부정적 낙인으로 기능한다”고 주장했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도 “빨갱이(일본어 아카)라는 말은 조선인이 아니라 자국인인 일본인을 탄압하며 생긴 말”이라며 “일본은 1910년 천왕암살 음모를 꾀했다며 일본의 사회주의자와 아나키스트들을 탄압했다. 사회주의ㆍ공산주의자들이 아카(빨갱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그런 과정에서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팟캐스트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일제시대 ‘아카’(赤)라는 말이 있었는데 공산주의자를 의미하는 빨갱이라는 말은 없었다”며, “해방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만들었다. 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여순사건)을 계기로 우리 역사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여러 주장들을 정리하면 ‘빨갱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빨강을 뜻하는 일본어 아카(アカ:赤)에서 혹은 파르티잔과 빨치산에서 왔다는 두 가지 설이 유력하며,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표현으로 쓰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과거에 '빨갱이'란 단어가 한국 언론에 등장한 시점과 맥락을 보면 언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추정할 수 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5월 1일 창간한 독립신보는 1947년 9월 12일자에 ‘거리’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당시 독립신보는 발행부수 2만4000부로, 많은 부수를 기록했다. 조선공산당의 기관지가 아니면서도 좌익계열의 대변지 역할을 했고, 당시 지식인들이 많이 읽었다.

요사이 유행되는 말 중에 「빨갱이」란 말이 퍽 유행된다. 이것은 공산당을 말하는 것인데,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빨간 놈도 있고 수밀도 모양으로 거죽도 희고 속도 흰데 씨만 빨간 놈도 있고 토마토나 고추모양으로 안팎 속이 다 빨간 놈도 있다. 어느 것이 진짜 빨간 놈인 것은 몰라도 토마토나 고추 같은 빨갱이는 소아병자일 것이요,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붉은 것은 기회주의자일거요, 진짜 빨갱이는 수밀도같이 겉과 속이 다 희어도 속 알맹이가 빨간 자일 것이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고 규정짓는 그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자들이 민족 분열을 시키는 건국범죄자인 것이다”

 

1947년 9월 12일자 독립신보 칼럼 '거리'.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또, 1948년 10월 ‘문장’지를 통해 발표된 채만식의 소설「도야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1940년대의 남부 조선에서 볼셰비키, 멘셰비키는 물론, 아나키스트, 사회민주당, 자유주의자, 일부의 크리스찬, 일부의 불교도, 일부의 공맹교인, 일부의 천도교인, 그리고 주장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로서 사회적 환경으로나 나이로나 아직 확고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잡힌 것이 아니요, 단지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그 밖에도 XXX과 XXXX당의 정치노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이 문헌들을 근거로 살펴보면 ‘빨갱이’라는 단어의 어원 자체는 일본제국주의 시기일수는 있지만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해방전후에서 분단시기인 1940년대 중후반으로 추측된다. 문 대통령의 ‘빨갱이는 일제잔재’라는 표현은 근거가 희박한 셈이다.

 

② '빨갱이' 낙인이 친일청산을 가로막고 색깔론에 쓰였다? 

대체로 사실이다. 해당 문구에서 문 대통령은 ‘빨갱이’라는 낙인이 해방 후 친일청산을 가로막았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대체적으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47년 4월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이 자국에 보낸 문서에 “4월 27일 이승만 환영집회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박멸하라’, ‘빨갱이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나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 청산에 부정적이고 이들을 중용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자신과 반대되는 조직을 빨갱이로 몰아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2009년 발간한 저서 <빨갱이의 탄생 : 여순사건과 반공 국가의 형성>을 통해, “여순사건은 정부 수립 이후 국민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국가폭력이 사용된 최초의 사례”라며, “저항 가능성이 있는 대중을 억압하기 위해 한국 사회에 빨갱이라는 존재를 탄생시키고, 반공 체제를 형성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김 연구관은 “일제 시기와 해방 직후까지 공산주의자는 진보적 정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여순사건을 거치면서 급속히 유포된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난 비인간적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지칭하는 단어가 됐다. 좌익 세력에 양민을 학살하는 살인마의 이미지를 덧씌워 극단적인 적대의식을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7월 3일자 기사에서 김 연구관은 “외국의 경우에도 ‘아카’(赤), ‘코미’(commie) 등 공산주의자를 폄하하는 뜻이 내포된 용어들이 있지만, ‘빨갱이’처럼 죽여야 하는 대상, 비인간적인 존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빨갱이’라는 용어는 세계 반공주의 역사에서 가장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빨갱이’라는 단어를 ‘금기’와 ‘불온’의 아이콘이자 궁극의 ‘척결’의 말로 작용하게 만든 주인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해방 직후 좌우혼란기에 군부 내 남로당에 가입되어 있던 박정희는 여순사건 후 ‘군부 내 좌익 소탕’에 따라 붙잡혀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군부 내 인맥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이후 군에 복귀한 박 전 대통령은 좌익 혹은 빨갱이라는 말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이후 한국사에서 ‘빨갱이’는 분노의 대상, 척결대상이 되어버렸다.

문 대통령의 언급처럼 ‘빨갱이’라는 단어가 한국근현대사에서 친일잔재 이상의 낙인으로 작용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고 현재도 여전히 정치권 일부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이용되고 있다. 또 문 대통령이 청산하자고 한 것은 ‘빨갱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색깔론’이다.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친일잔재 청산도, 외교도 미래 지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설문의 일부 부정확한 내용은 괜한 논란을 불러왔다. 대통령의 의중이 좀 더 정확하게 전달되기 위해서도 대통령의 연설문은 더 정교하게 작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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