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혈관 공급중단' 제조사 탐욕탓? 복지부 졸속행정이 원인이다

  • 기자명 박한슬
  • 기사승인 2019.03.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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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7일 한겨레에서 <“인공혈관 수가 낮다”며 ‘고어’ 철수…3살 민규의 위태로운 생명> 기사가 보도되자 인공혈관 공급중단 사태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인공혈관은 선천성 심장기형 수술에 필수적인 치료재료입니다. 대체재가 없어 미국의 고어 사만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가격 문제로 국내 공급이 중단된 것이죠. 다수의 언론은 그 발단을 2017년의 인공혈관 수가(주: 보건복지부에서 정하는 의료가격) 인하로 꼽지만, 생각보다 문제의 원인은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갑니다. 본 기사에서는 인공혈관 공급중단 사태를 계기로, 국내의 치료재료 가격 책정 문제의 연원을 짚어봤습니다.

 

의료의 가격을 매기는 다양한 방식

사실 인공혈관, 전문적인 범주로는 ‘치료 재료’의 가격을 정하는 것은 단지 치료재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치료재료도 결국은 의료행위에 사용되는 물품입니다. 그렇기에 치료재료 가격의 책정도 의약품의 가격 책정, 의료기기 이용의 가격 책정, 의료인이 하는 의료행위의 가격 책정 등의 다양한 의료비용의 가격을 책정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민 건강보험을 운영 중인 한국에서는 이 문제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이런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 것일까요? 가장 대표적인 가격 책정 대상인 의약품의 사례를 보면, 이는 국가마다 꽤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이를 완전히 시장에 맡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제약회사가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받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진 않습니다. 신약의 특허는 20년가량 지속되는데, 개발과 허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10년 이상이 소비되기에 독점적으로 약을 팔 수 있는 기간은 10년이 채 되질 않거든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약인데, 특허가 만료되면 다른 제약사가 제네릭(복제약)을 판매할 수 있게 되니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죽 쒀서 개 주는 꼴입니다. 그렇기에 특허가 살아있는 기간 동안 최대한 약을 많이 팔아야만 하므로, 꽤 비싸긴 하지만 그렇게 터무니없이 비싸진 않은 가격으로 약이 유통이 됩니다. 그 유통 가격을 협상/평가하고 제약회사와 보험사를 중개해주는 복수의 민간 기관들을 약제비 관리 기구(Pharmacy Benefit Manager, PBM)라고 하는데, 그 과정마저 합법적으로 리베이트가 오가는 시장친화적인 방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약가 책정 방식을 비판해서 이슈화가 된 적도 있었죠. 이렇듯 시장 원리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구조다보니 약이 공급 중단될 일은 없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보험이 없으면 꽤 부담이 큰 방식이라 미국은 민간 의료보험이 무척 발달하게 됐습니다.

 

영국의 경우는 이와 정 반대입니다. 영국은 국가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제도 덕분에 영국인들은 무상 의료를 누릴 수 있습니다. 당연히 약 값도 공짜구요. 물론 세금을 이용해서 그 재정을 충당하는 것이다 보니, 실질적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비용이 지불되는 식입니다. 영국은 의료제도가 이렇게 되어있기에, 영국에 공급되는 거의 대부분의 의약품은 모두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NHS를 통해 소비가 됩니다. 일종의 ‘수요독점(Monopsony)’이 발생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영국 정부는 제약회사를 상대로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해서, 아예 특정 기업이 NHS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총 이윤율을 제약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2014년부터 시행 중인 PPRS제도에 따르면, 제약회사가 NHS에 약을 판매해서 얻은 매출수익률(Return on sales)이 1년에 6%를 넘어가면, 무려 초과 이익을 환수를 하고 있거든요. 명목상 제약회사가 약값을 자율로 정하긴 하지만 제약회사가 일정 범위 안에서만 이윤 추구를 할 수 있도록 되어있으니 약가가 간접적으로 통제가 되는 식입니다. 의료 보장성의 측면에서는 굉장히 훌륭한 방식이지만, 제약회사 입장에선 영국에 의약품을 우선적으로 공급할 유인이 떨어지다 보니 최근 영국에서도 의약품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Trade-Off)가 나타나는 것이죠.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직권실사에서 실거래가 상환제도까지

한국은 1977년 의료보험이 시작되며 의약품의 가격이 모두 정부의 통제 아래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렇기에 앞서의 미국이나 영국처럼 의약품 가격 설정을 할 필요성이 생겼는데, 초기에는 약 가격을 무척 특이한 방식으로 통제를 했었습니다. 보건사회부, 그러니까 지금의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직접 제약회사에 ‘실사’를 나가서 원가 조사를 하고, 적정 마진을 책정해서 약 가격을 결정하는 식이었거든요. 원칙적으로 의약품에는 어떠한 이윤 추구도 가능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로 공무원들이 돋보기를 들고 제약회사를 찾아 원가를 파악한 것인데, 그런 바보 같은 일을 4년이나 하고 나서야 직권실사제를 폐지하고 1981년부터 제약회사가 자율적으로 신고하는 원가에다 적정 마진을 붙이는 고시가 상환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원가를 부풀려서 신고하는 일들이 나타났고,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999년부터는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의약품 가격의 평균에 근접한 가격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실거래가 상환제도가 도입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의약품의 경우는 제약회사가 건강보험 공단과 협상을 통해 약의 공급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예컨대 2001년에 논란이 됐던 노바티스 사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경우, 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이 결렬되며 장기간 공급중단 사태를 빚은 바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간암 화학요법에 사용되는 조영제 리피오돌에 대한 약가 협상이 결렬되자, 비슷하게 공급중단 위기를 맞은 바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례들은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입니다. 절대다수의 의약품들은 협상을 거쳐 적정 가격으로 국내에 공급이 되고 있거든요. 영국의 NHS와 같이 수요독점을 통한 강력한 협상력을 발휘하면서도, 미국과 같은 시장경제적인 요소를 적절히 고려하여 상호 간에 협의점을 찾는 방식이니 불만은 있어도 협상 자체가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치료재료 조사결과에 따른 상한금액 조정(안) 사전열람 내역 통보. 보건복지부 2012.10.17.

그렇지만 치료재료는 달랐습니다. 2001년에 의약품과 같이 실거래가 상환제도의 방식으로 변경이 되긴 했지만, 애초에 협상이란 제도적 장치도 없이 복지부가 정하는 공식에 따라 가격을 정하는 식이었기에 허울뿐인 제도였습니다. 그마저도 유통 마진이 너무 크다고 판단했던 것인지, 복지부는 제도 변경을 위한 사전 준비로 2011년부터 직접 원가 조사를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공식이 바로 수입 원가에 1.94배를 곱하여 가격을 정하는 방식인데, 수입 원가가 100원이면 유통과정이 어떻건, 개발 과정이 어떻건 간에 무조건 194원까지만 받을 수 있는 식입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원가’를 어떻게 측정하는지도 무척이나 갈등요소가 크지만, 유통과정과 치료재료를 판매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각종 승인절차 비용은 싹 빠진 금액이라 업계에서 우려가 컸습니다. 당장 미국에서도 우려를 표시했죠. 이번에 논란의 중심에 선 고어사의 인공 혈관 공급중단 사태도 이런 제도적 변화 위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제조사의 탐욕? 인공혈관 판매하면 적자

미국의 고어(Gore) 사는 인공혈관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세계적 기업입니다. 당연히 국내에도 인공혈관을 공급했었고, 고어 사가 공급하던 여러 종류의 인공혈관 중 하나가 이번에 문제가 된 소아용 인공혈관입니다. 소아 심장에 사용할 정도로 작은 재료지만 가격은 16만 원 정도의 고가죠. 재료가 마모되었다고 새로 수술을 하는 것도 난망하고, 특히나 그 부위가 심장이다 보니 특수 재질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만들어져야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복지부에서 판단하기엔 그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보였던지, 2012년에 인공혈관의 가격을 최대 22% 인하하는가 하면 4년 뒤인 2016년엔 19% 정도의 추가 인하를 단행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가’를 조사하기 위해 기밀 자료를 요구하는 등 갑질을 했다는 것이 추후에 관계자들을 통해 언론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격 인하 움직임과 규제기관에서 승인을 위해 까다로운 조치들을 요구하자, 고어 사는 2017년 9월에 한국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국내 병원들이 보유하고 있던 재고가 소진되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죠.

고어사가 생산하는 인공혈관 한국 가격. 약 16만원이다.

일부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제조사의 탐욕’이라는 비판을 하는데, 실상은 좀 다릅니다. 16만 원 짜리 소아용 인공혈관을 판매하면 떼돈을 벌 것 같지만, 실제로 한 해에 한국에 공급되던 소아용 인공혈관은 300개 선입니다. 실제로 수술이 진행되는 건수는 40-50여 건이니,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재고가 바닥이 난 것이죠. 1년에 16만 원 짜리 인공혈관을 300개 판매하면 얻는 ‘매출’은 4800만원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식약처 등에서 진행하는 GMP 해외 현장심사 등의 인허가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심사 담당자의 인건비와 항공료를 포함한 체류비를 모두 업체가 부담해야 하다 보니 그 비용만 한 번에 최소 3000만원에 이릅니다. 그렇게 한 번에 끝나면 다행이지만 추가 조사가 필요하면 재차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다 보니, 원칙적으론 3년에 한 번이지만 현실적으로는 1-2년에 한 번씩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죠. 이 외에도 신의료기술평가 등의 기타 인허가 과정이 추가적으로 존재하니, 인허가 비용만 놓고 보더라도 한 해 매출을 넘어서는 안타까운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거기에다 고압적인 갑질에 가까운 현지실사와 원가조사를 감당해야 하니, 굳이 그런 판매를 지속할 기업은 없습니다. 철수는 정해진 수순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공급 중단이 장기화되자, 복지부에서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습니다. 앞서 살펴봤던 상한금액 결정 공식으로는 고어 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금액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기준을 변경하기로 한 것입니다. 복지부는 2018년 9월28일 ‘희소·필수 치료재료의 상한금액 산정기준’ 고시를 통해 소아(신생아포함)용 치료재료 등 대체치료재료가 없으며,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진료 상 차질이 우려되는 치료재료에 대해서는 기존 공식에 따르지 않고 상한금액을 높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식약처도 같이 나섰습니다. 고어 사가 한국 시장을 철수하며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의료기기 허가를 취소한 것을 직권으로 되살렸죠. 그런데 이는 국내에서의 조치뿐이었습니다. 최근 고어 사가 한겨레에 밝힌 바에 따르면, 회사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의 공급 재개 요청을 받은 것은 2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미국 고어 본사를 방문해 공급 재개를 요청해달라는 ‘쇼’를 한 것이었을 뿐인 거죠. 다행히 고어 사에서는 국내 공급재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당장 필요한 20개 정도의 인공 혈관을 즉시 공급하겠다는 확답도 내놓았습니다.

한편 한겨레는 3월 14일 <고어, 인공혈관 재공급 조건 ‘가격 2배’ 요구했다> 기사에서 인공혈관 한국판매가는 46만원이며 미국 판매가 82만원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보도했습니다. 고어측이 미국 판매가 수준을 요구한다는 주장도 했습니다. 사실 관계가 틀렸습니다. 문제가 된 인공혈관은 STRETCH TYPE (10cm이상 20cm미만/PTFE재질)으로 한국 가격은 약 16만원(코드: G0431004)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치료재료 급여.비급여 목록 게재. 20170201 기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적정 가격 지불해서 공급 안정화해야

건강보험 공단에서 고어 사에게 제시한 것은 기존 인공혈관 가격에서 50%를 인상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그 정도를 지불할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면, ‘원가조사’라는 기묘한 방식으로 가격을 후려치는 것이 아니라 적정 가격을 의료기기 업체와 협상하는 방식으로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다는 말도 됩니다. 규제기관의 무능으로 인해 애꿎은 환자들만 고통을 받은 셈인 것입니다.

미국처럼 완전 시장형으로 가격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곤란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일괄적인 가격결정 방식으로는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당장 영국도 의약품 공급 차질을 빚고 있는데, 한국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장담은 어려우니까요.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제약회사나 의료기기 업체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공급이 이루어 질 수 있을 최소한의 적정 가격을 지불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도 의료기기 업체들은 ‘같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치료재료의 가격을 같은 그룹으로 묶어서 일괄적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기술력에 따라, 그리고 재질에 따라 다양한 상품의 질이 존재함에도 이를 ‘싸구려 소모품’으로 취급해서 가격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가 치료재료는 수입에 의존하는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료는 복지지만 의료기기와 치료재료의 산업적 성격을 무시하면 비슷한 일을 또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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