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나요법 건강보험 적용에 한의학계가 울상된 이유

  • 기자명 박한슬
  • 기사승인 2019.04.1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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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부터 ‘추나요법’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시작됩니다. 추나(推拿)요법이란 한의사가 손 또는 신체의 일부분으로 관절, 근육, 인대 및 신경체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일종의 한방 물리치료 중 하나입니다. 기존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이 치료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했지만, ‘문재인 케어’로 대표되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힘입어 보험 적용이 이루어졌죠. 한의학계에서는 보장성 확대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축제는 잠시 뿐이었습니다. 자동차보험 업계가 추나요법 건강보험 적용에 난색을 표하면서, 한의학계와의 대립이 점점 커지고 있거든요. 추나요법을 둘러싼 논란, 뉴스톱에서 정리해봤습니다.

 

‘나이롱 환자’의 탄생

한적한 시외지역의 병원 근처를 돌아다니다보면, 종종 환자복을 입고 인근을 배회하는 환자들을 목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기도 하고, 주변의 PC방이나 당구장 같은 오락시설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전형적인 ‘나이롱 환자’들입니다. 분명 서류상으로는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중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이지만, 실제로는 길거리를 배회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죠. 이들이 악착같이 ‘입원 환자’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보험금 때문입니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이런 식으로 운영됩니다. 만약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비가 100만 원 정도가 나온다고 하면, 환자는 그 중에서 20만 원만 부담을 하고 나머지 80만 원은 건강보험 공단에서 병원에 보험료를 지급합니다. 대신 환자는 평상시에 건강보험료를 납부할 의무를 지죠. 그런데 만약 병원에서 나쁜 마음을 먹고, 실제로는 환자가 아닌 사람을 입원시켜서 치료비를 청구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요? 아무 병이 없는 사람을 서류상으로만 등록해두니 실제로 치료에 사용하는 돈은 0원에 가깝고, 건강보험 공단에서는 그런 사실을 모르니 서류검토를 통해 병원에 80만원을 지급을 해줍니다. 이렇게 받은 80만원을 환자랑 적당히 나누면 병원도 돈을 벌고, 환자도 돈을 벌죠. 이런 구조적 맹점을 악용해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나이롱 환자’입니다.

 

초기에는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벌이는 의료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몰라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저런 식의 허위청구로 건강보험 재정이 축난다는 것을 깨닫자 건강보험 공단에서는 적극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불시에 병원에 방문했는데 입원해있다는 환자가 없으면 ‘허위청구’로 고발을 해서 많은 병원이 문을 닫았는데, 나이롱 환자들도 진화해서 이젠 환자복을 입고 돌아다니다 단속반이 들이닥치면 ‘잠시 나갔었다’며 다시 병실에 드러누웠죠. 나중에는 환자의 휴대폰 위치정보를 추적해 병원에 실제로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단속 방식까지 나왔는데, 나이롱 환자들은 아예 폰을 병원에 두고 외출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등 끝없는 전쟁이 벌어지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나이롱 환자들에게는 건강보험보다도 훨씬 더 손쉬운 먹잇감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동차 보험입니다.

 

자동차 보험사와 의료계의 끝없는 전쟁

교통사고 환자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민간보험인 ‘자동차 보험’은 예전에는 개별 보험사가 심사를 진행했었습니다. 보험사도 나름대로 고급 심사인력을 고용하긴 했지만, 전국의 모든 의료기관을 포괄해서 심사하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원과 비교하기는 초라한 규모였죠. 게다가 자동차보험은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비까지 보험금으로 지급해줘야 하는 추가적인 부담을 지다보니, 비양심적인 의료인과 결탁한 나이롱 환자들에게는 무척 쉬운 먹잇감이었습니다. 거기다 건강보험과 달리 ‘본인부담금’이 없다보니, 꼭 비양심적인 의료인과 결탁하지 않더라도 일단 공짜니까 쓰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가 생길 여지가 무척이나 높습니다. 자동차보험의 재정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이건 개별 보험회사에도 불행한 일이었지만, 다수의 선량한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이 이 비용을 같이 떠안아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험사들은 지속적으로 정부에 관련 민원을 제기했고, 결국 2013년부터 모든 자동차보험 심사 업무는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 위탁해서 맡아주게 됐습니다. 심사창구를 건강보험과 동일하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일원화를 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회사마다 조금씩 다르던 심사 기준이 통일됐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기준이 정립되었습니다. 기존까진 모호하던 한방 비급여 진료에 대한 기준도 이 때 명확하게 세워졌는데, 이듬해인 2014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자동차보험 한방진료 현황과 개선방안, 2017, 보험연구원

 

자동차보험 업계와 한의학계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기준이 정립된 다음 해인 2014년에는 전체 자동차보험 진료비의 19%에 불과하던 한방 진료비가, 2년 뒤인 2016년에는 전체 자동차보험 진료비의 27.9%까지 폭등했거든요. 자동차보험 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아닌 진료비 총액은 더욱 극적으로 증가했는데, 2014년엔 2,700억 원 정도였던 한방 진료비가 2016년에는 4,600억 원 수준으로 거의 2배가량 뛰었습니다. 연평균 증가율을 따지면 31.1%가 폭증한 셈입니다. 같은 기간 일반 병원에 지급되던 의료비는 연평균 1.2% 증가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수준이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부메랑이 되어버린 추나요법 급여화

보험연구원에서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자동차 보험에서 한방 의료비 지출이 급증한 원인은 외래진료 때문입니다. 입원 상태로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에 잠시 들러 치료를 받고 나가는 것을 외래진료라고 하는데 자동차 보험에서 2016년에 지출한 외래진료비 총액은 6,000억 원 정도입니다. 그 중에 3,600억 원 가량을 한방 외래진료비에 지출했으니, 무려 전체 진료비의 58%를 한방에 지출한 것입니다. 같은 시기 건강보험에서는 13% 정도에 불과한 한방 외래진료비가 자동차보험에서는 절반이 훌쩍 넘어가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죠.

재밌는 건 이런 변화를 이끄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추나요법’이었다는 것입니다. 2016년에 자동차보험에서 한의원에서 지급된 총 비급여 진료비 중 21.7%가 추나요법에 사용된 것이었거든요. 금액으로 따지면 연 평균 26% 정도씩 성장한 것이니,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재앙적인 일이지만 한의원에는 효자상품 노릇을 무척 잘 하는 시술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건강보험에서 추나요법이 급여화가 되며, 수혜자인 환자는 1년에 20회까지만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시술자인 한의사는 하루에 추나 요법을 18회까지만 시행할 수 있도록 제한이 생겼습니다.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만큼, 과잉진료를 막기 위해 적정 한계치가 생긴 것입니다.

여기까진 괜찮았는데, 자동차보험을 운영하는 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에도 추나요법 횟수 제한을 요구하자 갑자기 급여화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국토교통부는 공문을 통해, 자동차보험에서도 건강보험에서와 동일한 조건으로 추나 요법에 대한 횟수 제한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의학계는 즉각 반발하며 국민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조치라는 성명을 냈지만, 이미 건강보험에서 대한 기준이 설정된 만큼 되돌리긴 힘들어졌습니다.

물론 이런 조치가 자동차보험사에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추나요법 보험 적용으로 인해 자동차보험에서 개별 추나요법에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건 당 1만-2만 원 정도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횟수 제한이 생겨, 한의원에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죠. 기존처럼 무제한으로 추나요법을 시행하고 보험사에 청구할 길은 막혀버린 겁니다. 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와 비급여 진료라는 특수성으로 자동차보험에서 막대한 보험금을 타내던 추나요법. 당장은 보험사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지만, 이번처럼 한방요법들에 대한 횟수 제한이 늘어나면 장기적으로는 자동차 보험료가 조금 더 저렴해지진 않을까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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