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부는 사나이' 전설을 '21세기 유토피아' 서사로 재현하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4.2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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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모 해외 영화제에 5명의 젊은 감독이 모였다. 새로운 기획을 세일즈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그를 만났는데, 거의 완성 직전 단계로 보이는 기획을 가져왔다. 그런데 정작 나머지 네 사람은 얼마 안 되어 신작을 만들었고, 그의 기획만이 남겨졌다. 하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난 지금, 깊이 납득한다. 쉽게 완성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인디펜던트이기에 가능했던 풍윤한 시간, 어득함마저 느껴지는 수고를 통해 엮어 올린, 호화로운 판타지 영화였던 것이다.”

약간의 실례를 무릅쓰고 원래의 발언에 등장하는 특정인의 이름을 3인칭으로 바꾸어보았다. 물론 언급되는 사람, 배경이 되는 장소는 단지 글을 읽어 내려가는 수고만으로도 알 수 있다.

발화자(énonciateur)는 ‘발군’이라는 형용사조차 뛰어넘는 재능과 그 이상의 겸허함으로 자칫 범인(mediocrity)에게 자괴감마저 줄 수 있는 젊은 영화작가 후카다 코지다. 최근 낭트 3대륙영화제 최우수 작품상ㆍ청소년 관객상(<호토리 노 사쿠코>),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하모니움>). 프랑스 문학과 예술 슈발리에 훈장 등 국제무대에서의 눈부신 성과로 세계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그는 칸국제영화제에 청년영화인을 파견하기 위해 마련된 장편 영화 기획 공모 프로젝트 “챌린지 투 칸(C2C) 2014”에 참가했다. 이미 3년 전 낭트 3대륙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사우다지>)을 받은 토미타 카츠야, 2016년 같은 영화제의 우수 작품상에 로카르노 영화제 필름메이커경쟁부분 감독상(<디스트럭션 베이비>)을 수상하게 되는 마리코 테츠야, 그리고 역시간015년 낭트 3대륙영화제 우수 작품상ㆍ관객상(<해피 아워>)을 거쳐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까지 진출(<아사코>)한 하마구치 류스케 등과 함께였다.

후카다 감독의 술회에 등장하는 ‘그’는 오늘 인터뷰를 통해 만나게 될 서른 한 살의 이토 슌타다. ‘완성 직전 단계인 기획’으로 언급된 작품 <유토피아>는 지난 겨울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되어 한국 관객들을 만났다.

영화의 모티브는 13세기 독일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한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다. 마술피리로 쥐떼를 몰아낸 신비의 사나이가 사람들이 약속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자 1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동굴 속으로 사라진다. 사라진 아이들의 행선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감독의 고민은 그들이 ‘어디에도 없는 나라’, 즉, 유토피아로 갔을 것이라는 상상을 더해 장엄한 판타지를 창조해낸다.

동일본대지진을 연상시키는 태양 폭풍으로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가운데 전기와 대규모 정전과 물 부족 사태가 일어난 도쿄. 그곳에서 스무 살의 마미(마츠나가 유카)는 정체모를 백인 소녀, 베아(미키 클락)를 만나 그녀가 하멜른에서 사라진 아이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베아를 찾아 유토피아에서 온 동료들과 힘을 합쳐 730년 전 그랬던 것처럼 마술피리로 아이들을 납치하려는 마구스(지비키 고) 일당과 맞선다.

설정부터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넘쳐나는 이 작품을, 10년도 넘는 시간을 쏟아 부어 가상역사를 쓰고, 영화에 쓰일 언어까지 창조하는 등 20대를 오롯이 바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한 이 훤칠한 ‘호감형’ 남성을 바라보다, 필자가 떠올린 의외의 캐릭터는 미하엘 엔데 소설의 주인공인 깡마른 곱슬머리 소녀, 모모다. 필자 자신 1990년대 중반 서거한 작가가 돈과 시간이라는 ‘우상’에 지배받는 현대사회ㆍ현대인을 ‘동화’라는 매개를 통해 비판하고 있었음을 실감하며 느낀 감동을 지금 이 순간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훤칠한 '호감형' 이미지의 이토 슌타 감독을 바라보던 필자가 떠올린 의외의 캐릭터는 미하엘 엔데 소설의 주인공인 깡마른 곱슬머리 소녀, 모모다. ⓒ 2018 Utopia

홍상현:

잠시 2006년 당신이 다니던 지바의 명문고(공립 마쿠하리 종합고등학교)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생애 첫 장편영화 <무지갯빛 로켓>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입시생이 뭘 하고 있느냐’는 부모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작품을 완성했던 동급생들과 또 한 편의 작품을 만들자고 약속, 12년 뒤 현실화시킨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더욱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 같다.

이토 슌타:

명문이라니 과찬의 말씀. (웃음) 그저 공립 보통과의 고등학교일 뿐이다. 다만, 학생이 꽤 많고 좋아하는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재미있는 학교였다. 그 시절 만화가가 되고 싶어 노트에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보여주고는 했다. 영화감독이나 개그맨, 연기자 지망생 등 인원이 많다보니 괴짜들도 워낙 많았다. 만화의 주인공은 주로 클래스메이트였는데, 제 창작의 근저에는 “여기 아닌 다른 어딘 가에 가보고 싶다”는 망상과 “이렇게 재미있는 친구들과 모험을 해 보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다. 그 점에서 무척 운이 좋았다. 재미있고 개성이 강하며, 매력적인 친구들과 모험을 하는 상상이 창작으로 이어졌으니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실에서의 창작자는 불면으로 초조해하고, 몸이 상하거나, 동료와 다투다 뿔뿔이 흩어지기도 한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타임라인 위에서 ‘노스탤지어’도 ‘드라마틱’도 느낄 여유가 없는 시간도 있었다.

창작을 위해서는 현실이 채워지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런 까닭에 도리어 작품 속에서만은 “판타스틱한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홍상현:

<무지갯빛 로켓> 제작을 계기로 결성된 것이 “예술가족 라티메리아실러캔스”다. <유토피아>를 제작한 크리에이터 그룹. 어떤 의미의 네이밍인가?

이토 슌타:

라티메리아실러캔스. 우리끼리는 “라티칼”이라는 약칭으로 부르는데, 유래는 예상하시는 대로 실러캔스다. 실러캔스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리는 대형 고대어로 처음 발견된 개체에 붙여진 학명이 ‘라티메리아 찰룸나(Latimeria Chalumnae)’였다.

어릴 적부터 도감을 좋아했고, 공룡도감의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 있는 실러캔스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태고부터 지금까지 형체를 바꾸지 않고 수면 아래서 명확하게 살아있다”는 로망에 이끌려 강함, 깊이, 영원성 등의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이다.

2006년, 이토 슌타 감독은 훗날 크리에이터 그룹, “예술가족 라티메리아실러캔스”의 주축이 되는 친구들과 함께 <무지갯빛 로켓>을 제작, 극장 개봉까지 성공적으로 이뤄내 화제를 불렀다. 그의 나이 만 19세, 고교에 재학 중의 일이었다. ⓒ 2006 Seven Colors Rocket

홍상현:

당신이 <유토피아>의 제작을 결의하고, 친구들이 동의한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2006년 이미 학생영화제에서 입상을 했고, 한 해 전에 제작한 <무지갯빛 로켓>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극장개봉까지 했다) <유토피아>의 경우 기획단계에 C2C 선정작으로 칸국제영화제 프레젠테이션과 비즈니스매칭 기회가 주어졌고.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늦어졌다기보다 보다 철저하게 준비하려 했기 때문 아닌가?

이토 슌타:

시간이 걸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저 자신의 미숙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방대한 설정을 하나의 시나리오에 담아내기 위한 취사선택이나 예산규모의 인식 등 콕 집어 한 가지를 들 수는 없지만 경험부족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7년, 촬영 후 포스트프로덕션에 5년이 소요되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기에 도전할 가치는 있었다고 생각한다. 방법을 모름에도 도전해보고 싶어 실사와 특수효과의 합성이나 CG는 물론 작사ㆍ작곡까지 습득했다. 과다한 작업량 때문에 엉덩이 수술을 받게 되었지만. (웃음)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인 부하와 통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토피아>에서 주인공 마미가 느낀 아픔 하나하나가 그녀를 성장시켰듯.

수험생 시절,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대입을 치루게 된 이토 슌타 감독은 정형화된 실기시험의 포맷에 맞춘 능력을 요구하던 도쿄 도내의 모든 미술대학의 시험에 사실상 ‘의도적’으로 낙방한다. 하지만 당시부터 구상이 시작된 <유토피아>의 이미지와, 이후 특수효과로 구현된 화면을 비교해 보면 모든 것은 어렵지 않게 납득이 가능하다. (위는 VFX 구현 이전과 아래는 이후) ⓒ 2018 Utopia

홍상현:

당신에 대해 ‘이 사람은 진짜구나’라고 느낀 일화가 하나 있다. 필자도 어렴풋이 경험한 것인데, 보통 학생들은 작가로서의 역량을 다지기 위해 예술대학(또는 예술학교)에 진학할 때 이 ‘단기플랜’을 달성하기 위해 정형화된 실기시험의 포맷에 맞춰 입시준비를 한다. 하지만 당신은 타협하지 않고 지원한 모든 학교에 불합격한 뒤 신설대학 애니메이션 학과를 택했다. 십대시절부터 세상과 맞부딪친 것인데.

이토 슌타:

고3 수험생 시절에 영화를 찍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미술학원에는 다녔지만 “입시미술”도 싫어서, 결과적으로 도내의 대학에 모두 낙방했다. 만화가로 살아갈 생각이었기에 대학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들의 반대로 대학시험을 보았고, 주위 친구들은 “왜 디자인학과에 응시하느냐”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당시로써는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다 교토세이카대학을 알게 되어 오픈 캠퍼스에 가 보았다. 영화와 만화는 직접 만들어 보았지만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본 경험이 없어서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과 맞부딪쳤다는 것은 과찬의 말씀이다. 저는 결국 하기 싫은 일들로부터 도망치다가 여기까지 온 거다. (웃음)

이토 슌타 감독은 “예술가족 라티메리아실러캔스” 멤버들과 함께 대학 재학 중 <라스트 스타캐처>를 제작했다. 다양한 애니메이션과 CG 기술이 등장하는 러닝 타임 43분의 이 작품은 <유토피아> 제작의 전초전이었다. ⓒ 2012 The Last Starcatcher

홍상현:

대학에 진학해서는 1학년 때부터 <유토피아>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했다. 제작에 대한 이야기 전에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알려진 필모그래피가 <무지갯빛 로켓> 직후 <유토피아>이므로 11년 동안 재능 있는 크리에이터로써의 커리어를 쌓아올렸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토 슌타:

실은 2~3년 안에 <유토피아>를 완성할 생각이었기에 본의 아니게 시간이 걸린 거라 할 수 있지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촬영할 때까지 7년간 크고 작은 영상 작품의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다.

대학 재학 중에는 <유토피아>의 전초전으로서 “라티칼” 멤버들과 함께 단편 <라스트 스타캐처>을 제작하기도 했다. 규모는 작지만 다른 세계를 무대로 하는 하이 판타지(high fantasy)로 애니메이션과 CG 기술이 사용되었다. 이 작품이 아니었다면 <유토피아>는 없었다 할 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졸업 후에는 지인의 소개 등을 통해 제작부, 미술부, 녹음부, 차량부는 물론 콘티 작화나 CG 작업까지 했다. 또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도모구이>에 프로덕션 어시스턴트로 참가한 것 외에 이시오카 마사토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애니메이션 스승 스기 기사부로>에 촬영 및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대학시절 은사를 지근거리에서 관찰한 경험은 무척 자극적이면서도 소중한 것이었다. 영화 만들기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유토피아>를 제작할 당시 "돈을 내고 작품을 보러 오신 분들"에게 "저예산영화의 미학"을 강요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던 이토 슌타 감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성도를 높인는 지극히 상식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갈 수는 없는 길을 택한다. 이 영화의 후반작업에 소요된 시간은 5년이다. (위는 VFX 구현 이전, 아래는 이후) ⓒ 2018 Utopia

홍상현:

<유토피아>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특수효과 관련 논문으로 학위를 취득한 제 개인적 관점에서 봐도 <유토피아>의 VFX(Visual Effect)가 거둔 성과란 실로 눈부시다. ‘독립영화로서’라는 표현은 쓰지 않겠다. ‘부족함’을 전제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건 당신에게 실례일 테니까. 단지 할리우드영화와 비교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것을 설명하기보다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는 <유토피아>의 서사적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이토 슌타:

당시 저는 “저예산영화의 미학”같은 말이 너무 싫었다. 그건 만드는 사람들의 사정일 뿐인데 돈을 내고 작품을 보러 오신 분들에게 이야기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다. 저 자신 그런 영화를 접하며 실망하기도 했고. 물론 스스로의 기호에 따라 B무비를 고르는 분들도 계시고 이제는 그런 감성 또한 이해할 수 있지만, 어떤 작품이든 누군가 보게 되는 이상, 관객의 입장을 생각해야 하는 까닭에 진지하게, 목숨을 걸고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유토피아>가 그런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진정 이곳과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낭만을 느끼려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퀄리티를 올려둬야 할 필요가 있다.

VFX는 꿈으로 충만해있는 영화기술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니까. 창작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매우 강력한 무기인 거다. 한편으로, 예산의 한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시는 관객의 눈높이도 상당하거니와 무엇보다 저 자신 할리우드영화에 익숙해져있기도 하고. 파트너인 시이나 료와 “어디까지를 한계로 할까”에 대해 협의하면서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 판단 자체가 무척 힘들고 어려운 한편,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CG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컷”과 같은 정도로 “어쩔 수 없이 CG에 의존해야했던 컷”이 있더라. 후자는 정말 아쉬운 부분이었지. CG는 편의상의 도구가 아니라 좀 더 창조적으로 계획해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유토피아>의 구상을 시작했을 때, 처음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은 이토 슌타 감독의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사실에 근거해 만들어진 동화라는 것과 “유토피아”라는 말이 “이상향”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 ⓒ 2018 Utopia

홍상현:

인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으로써 <유토피아>가 지닌 가치는 실로 크다. 놀라운 것은 이 발상이 이미 당신의 나이 열 살을 조금 넘긴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대다수가 별 생각 없이 읽는 유럽의 잔혹동화에 대해 회의하고, 법이란 무엇인가? 이상향은 존재하는가? 등에 대해 데카르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천재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니까)

이토 슌타:

어릴 적부터 공상·망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여러 가지 일에 “왜?”라고 생각하는 것이 많아, 이해하고, 납득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왜 유령에게는 발이 없는 걸까, 왜 불은 물에 의해 사라지는가, 이런 질문을 판타지와 결부시켜 여러 가지를 상상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유토피아>의 구상을 시작했을 때도 처음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이 제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했다. 하나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사실에 근거해 만들어진 동화라는 것. 다른 하나는 “유토피아”라는 말이 “이상향”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알기 쉬운 교훈도 없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기묘한 동화다. “약속을 잘 지키자. 안 그러면 아이를 빼앗길 수 있다”는 건 동화라기보다 어른을 위한 설교 아닌가. 여러 작가들에 의해 그림책이 출판되었는데 아이들이 사라진 채로 끝나버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행선지가 묘사되어 있는 것도 있다. 바로 그 “아이들의 행선지가 이상향이었다”는 묘사가 많은 것은 남겨진 이들의 믿음 때문 아니었을까.

또한 저는 북한 납치문제에 관한 문제를 뉴스로 보며 자라난 세대다. 아이의 시선으로 그 괴이한 부조리에 의해 인생을 빼앗긴 이들의 절망을 상상하며 공포감을 느꼈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예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차별정책)와 9ㆍ11 테러를 접하면서도 저 자신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당시 제 노트를 보면 “법이 없는 세계가 진정 자유로운 세계인가?”라는 질문이 적혀있다. 그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당시,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와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타이프의 생물이라는 근본적인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으니까.

상상을 거듭하면서 사회주의국가나 납치, 차별 등 여러 가지 것이 가공의 나라 “유토피아”를 통해 놀라울 만큼 심플하게 결합하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일어났던 일 또한 이로써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결국 유토피아는 당시 “왜?”라고 생각한 것들에 대한 제 나름의 해답을 담아 완성된 작품인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 태양 폭풍(solar storm)으로 인한 재해로 한 여름의 도쿄에 눈이 내리고, 대규모 정전과 물 부족 사태가 일어난다. 물론 이것은 2011년 일어난 동일본대지진 이후 설정된 재난이다. ⓒ 2018 Utopia

홍상현:

시나리오 집필 5년째인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맞았다. 이 일대사건이 <유토피아>의 서사에 끼친 영향이 궁금하다.

이토 슌타:

동일본대지진은 제게 매우 중대한 체험이었다. 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밀려왔을 뿐만 아니라, 숨겨져 있던 많은 것들이 드러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는 시나리오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던 무렵인데, 우선 그때까지 제가 구상했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함과 동시에, 이상적으로 평화롭게 보이지만 실은 뭔가를 감추고 있는 나라라는 콘셉트가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즉, 그 일이 있기까지는 저도 최면에 걸려있는 이 나라 국민의 한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원전에 대해서도 아무런 생각이 없이 매일 전기를 사용하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그날 직접 지진 해일의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죽음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제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불신과 동시에 다소간의 애정 또한 갖게 되었고. 이러한 느낌은 유토피아가 불합리를 은폐하는 나쁜 나라임과 동시에 과거의 상처에 가위눌리는 겁쟁이의 모습과 소심함, 고상함 등의 복잡한 면모를 가진 나라라는 설정과 연결되었다.

여하튼 동일본대지진이라는 계기로 인해 시나리오 상에서 크게 바뀐 것으로는, 태양 폭풍(solar storm)이라는 재해(동일본대지진과 유사한 피해를 주는 것으로 표현되는)로 인해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다는 내용이다. 전자기기가 데미지를 입는 현대문명에 있어서 최악의 재해는,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언젠가 닥쳐올지 모르는 재해를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홍상현:

어린 시절부터 만화에 재능이 있었고, 대학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를 일단 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둬서 실사의 영화를 제작할 때 (특히 제작비의 면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토 슌타:

물론 우선 만화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단계에서 몇 개의 짧은 만화를 그렸고, 이 작품의 세계관은 역시 실사영화가 아닌 만화라고 생각한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랬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고. (웃음)

그럼에도 그리지 않았던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몰라서”였다. 만드는 법을 모르는 영화를 기획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만화를 그려 출판해보자”는 행동을 하지 못했던 거다.

하지만 만약 만화를 그렸다면 영화는 찍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둘 다 서사를 표현하는 수단인 까닭에 영화를 찍겠다는 모티베이션(motivation)이 사라지지 않았겠나.

 

홍상현:

<유토피아>는 일본영화계의 어떤 프로듀서도 선뜻 실행에 나서기 힘든 작품이다.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이로 인해 메인스트림에 간단히 타협하지 않는 인디스피릿으로 충만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토 슌타:

제가 하는 일이 메이저인가 인디인가, <유토피아>를 제작하는 내내 일절 생각해본 적 없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대작을 만들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물론 함께했던 프로듀서의 용기와 인내력으로 인해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지.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누군가가 만들고 있을 것 같은, 혹은 더 잘 만들 것 같은 작품에는 저 자신 흥미가 없었다.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지, 또한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가장 중시함으로써 거둔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이토 슌타 감독은 꿈을 위해 20대를 오롯히 바친 자신의 삶을 회고하듯 '아픔' 또한 성장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유토피아>에서도 주인공 마미가 경험하는 아픔 하나하나가 그녀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묘사된다. ⓒ 2018 Utopia

홍상현:

세간에서는 판타지가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장르인 것처럼 믿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유토피아>는 그 무대부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 주인공의 집이라는 대단히 구체적인 공간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토 슌타:

저는 이 작품을 하나의 “현실”로 간주하며 만들었다.

구상에 긴 시간을 들인 덕에, 머릿속에서 유토피아 거주민의 생활이 계속적으로 전개되고, 나라의 역사, 정치의 구조까지 완성되었다. 그러다 보니 감각이 어느새 그저 “영화작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유토피아라는 나라를 기록하는 일”에 가까워지더라. 다만 여기에도 일장일단이 있었는데, 하나의 세계관이 확립되어 가는 만큼 이야기라는 포맷에 맞추는 작업도 무척이나 어려워졌다.

그렇게 펼쳐진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틈이 주인공, 마미라고 생각한다. 그는 행동력도, 향상심도 없는 인간으로 초반부에는 베아의 손에 이끌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아파트 단지의 옥상, 병원의 2층, 공장, 그리고 검은 연기의 한가운데 등. 베아에 의해 변모한 마미는 그 후 자신의 발로 출입금지 테이프를 넘어가게 된다. 거대한 세계 속에서 시선이 일으키는 변화를 표현하더라도 그 시작은 이층침대라는 미니멀(minimal)한 공간으로 설정하고 싶었다.

또 하나, 저는 일관되게 "일상의 바로 뒤에 있을지도 모르는" 희망을 소중히 여긴다. 판타지나 SF를 고집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판타지가 힘을 잃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처해야 할 거대한 문제가 현실 속에 도사라고 있는 상황에서 판타지는 현실도피조차 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730년 전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도, 500년 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판타지를 통해 이야기한 까닭에 오늘날까지 구전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으로서 판타지의 강점을 믿는다.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별세계(別世界)의 사람들은 고유의 언어를 사용한다. 놀라운 것은 이것이 영화를 만든 이토 슌타 감독과 그의 파트너(촬영음악감독 및 VFX를 담당했다) 시이나 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코니 역을 맡은 모리 카츠키는 우선 시이나 녹음한 유토파이어 레슨 MP3를 반복해 들으며 발음을 익혔다. ⓒ 2018 Utopia

홍상현:

필자는 <유토피아>가 “일본 영화”가 아니라 “유토피아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런 판단의 결정적인 근거는 영화에서 사용되는 메인의 언어가 당신과 동료인 시이나 료와 만든 ‘유토피아어’이기 때문이다. (웃음) 단순히 외국어의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법체계와 단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다는 것에, 게다가 출연진이 자신의 대사를 이 언어로 말하면서 수준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는 것에 놀랐다.

이토 슌타:

시이나 료의 공헌은 이 작품의 곳곳에서 숨 쉬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지대한 것이 <유토피아>에서 사용되는 오리지널 언어인 유토피아어다. 스카이프 통화에서 “역시 언어를 만들어야 겠다”고 의견을 모은 뒤 약 17시간 동안 목이 쉬도록 통화하면서 언어의 원형을 함께 만들었던 일이 떠오른다.

<유토피아>의 초기 구상단계에서는 캐스트가 모두 일본어로 연기하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는 너무 만화ㆍ애니메이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서로 일본어를 쓰지만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영화적으로 사고해 보니 세계관을 리얼하게 느끼도록 하려면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우주인이 영어를 쓰는 영화 같은 것도 얼마든지 있지만 어떤 민족성(ethnicity)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언어적 차이나 특성은 대단히 중요하다. 가령 심플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심플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겠나.

일단은 문법을 정하고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단어를 만들었다. 아나그램(anagram, 철자 순서를 바꾼 말)이나 같은 혹은 비슷한 음을 가진 말을 언어유희처럼 표현한 것들도 있지만, 의미를 담은 단어도 있다. 예컨대 유토피아를 음악이 없는 나라로 설정했지만 무엇인가를 “전한다”는 의미를 가진 유토피아어 단어는 “Uta(일본어로‘노래’라는 의미)”라고 정했다. 아울러 유토피아의 문화에는 과거를 되돌아보는 습관이 없다고 정해놓고 굳이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는 말머리에 “Iz(‘때’의 아나그램)을 붙이는 등 현대어에 나타나는 고대어의 영향을 보여주면서 단어를 창작해갔다.

출연진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유토피아어를 익혔다. 코니 역을 맡은 모리 카츠키는 시이나 료가 녹음한 유토파이어 레슨 MP3를 반복해 들으면서 발음이 귀에 익도록 했고, 영어를 구사하는 베아 역의 미키 클락은 문자정보에서 발음을 찾아 기억했다. 그 가운데서도 저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올데 역의 우다 타카키였다. 그는 문법은 물론 단어의 의미, 심지어 자신과 같은 신에 출연한 다른 연기자들의 대사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기백이 <유토피아>를 지탱한 것임에 틀림없다.

주인공 마미 역을 맡은 마츠나가 유카(왼쪽)는 이토 슌타 감독과 <무지갯빛 로켓>을 함께 만든 멤버로 <유토피아>에서도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주지만 대학 졸업 후 현역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따라서 <유토피아> 출연도 야근 후, 휴일, 유급휴가, 여름휴가 등을 조합해 힘들게 이루어졌다. ⓒ 2018 Utopia

홍상현:

<유토피아>의 두 주인공(마츠나가 유카와 미키 클락)은 시종일관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이 둘을 캐스팅한 경위와 감독으로써의 연출 포인트가 궁금하다.

이토 슌타:

마츠나가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같이 영화를 찍던 멤버로, 대학을 졸업한 뒤 연기자의 길을 걷지 않고 간호사가 되었다. 대학 시절 이미 구상을 게시한 단계부터 마츠나가를 캐스팅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구상이 길어지다 보니 상황이 바뀌었다. 다른 후보도 생각해보았는데 역시 마츠나가가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하고,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주인공과 유사점이 많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기에 안심하고 출연을 제안할 수 있었다. 물론 촬영이 이루어질 당시에도 간호사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근 후, 휴일, 유급휴가, 여름휴가 등을 조합해서 힘들게 출연해주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잠든 얼굴부터 베아를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라스트 신까지 주인공의 성장에 따른 표정의 변화를 체현해주었다.

미키 클락은 오디션의 서류전형을 거쳐 면접까지 하게 된 유일한 연기자다. 첫인상은 옆모습이 무척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부친이 독일계 미국인인 그녀는 막상 이야기를 해 보니 매우 낙천적이며 화려한 분위기를 지닌 여성으로, 제가 애초에 떠올리던 스토익(stoic, 금욕적)한 이미지의 베아의 이미지와 조금 달랐다. 하지만 저도 결국 완전히 영웅으로 변모하지 않는 가식 없는 젊은 여성의 모습도 좋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오히려 그런 성격이라 가혹한 상황에서 살아남았다는 논리가 충분히 타당성이 있으니까. 또한 마츠나가 유카와 신장 면에서 밸런스가 맞는 연기자를 원했는데 두 사람 모두 자그마한 체구라는 것도 결정적 요인이었다. 긴 머리를 가리고 짧은 헤어스타일의 가발을 쓴 인상도 딱 어울려서 제 안에 없었던 베아의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 된 미키 클락의 아버지는 독일계 미국인이다. 낙천적이며 화려한 분위기를 지닌 그녀는 이토 슌타 감독이 애초에 떠올리던 베아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 2018 Utopia

홍상현:

<유토피아>는 하나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3개의 세계(현대의 일본, 13세기의 독일, 인류의 역사를 초월한 유토피아)의 접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로 무척 다양한 변용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방대한 서사를 무리 없이 결합시켜 1시간 44분의 러닝 타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토 슌타:

작업공정 측면에서 보더라도 중세 하멜른과 유토피아 장면을 늘릴 수 없었기에 <유토피아>의 주 무대는 도쿄가 되었다. 거기에 한 15분 정도 분량이 더해진다면 부족한 설명을 보충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본적으로 콤팩트한 이야기가 보다 전달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유토피아>는 특히 정보를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방대한 설정 가운데서 어떤 부분을 잘라내고, 어떤 부분을 부각시켜야 하는지 무척 고민이 되었으니까. 이를테면 초반부의 베아는 “유토피아라는 또 다른 세계로부터 도쿄로 온 소녀”인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멜른에서 유토피아를 거쳐 도쿄로 오게 된” 독일인이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나. 하지만 “설정”은 다름 아닌 저의 강점이기도 한 까닭에 향후에도 이런 종류의 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 (웃음)

 

홍상현:

개인적으로 <유토피아>의 이야기가 하나의 영화로 소비되기에 너무나 아깝다고 생각한다. 마침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베아 등은 백성을 속여 온 유토피아의 지배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돌아가고, 한편으로 유카의 새로운 모험도 암시된다. 시리즈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토 슌타:

실제로 구상을 진행하는 가운데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가 생겨났다. 극중에서 도쿄로 건너온 인물 외에 이름만 등장한 인물까지 포함된 다양한 서브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이를 “유토피아 전기(戰記)”라 부른다면 이번 작품은 시즌4 “도쿄 편” 정도에 해당할 거다. 물론 베아 등이 유토피아로 돌아간 이후의 이야기도 있지만, 실사로 영상화가 가능했던 것이 이 도쿄부분이었다는 이야기다. 해서, 다른 파트도 어떤 형태로든 구체화시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마음은 차기작으로 향하고 있으니 느긋하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다. (미소)

차기작은 현재 구상 단계로, 올해 안에 기획으로 정리하고 싶지만, <유토피아>를 통해 얻은 반성에 근거해서 일단은 책의 형태로 발표할 생각이다.

지금껏 저는 “어떻게 되고 싶다”는 비전조차 확실히 세우지 않은 채, 오로지 작품을 마무리하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어쨌든, 누군가를 두근거리게 하며, 가슴에 남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존재할 가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어느새 필자는 이토 슌타 감독과의 헤어짐을 유난히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를 보내주어야 한다. 이별이 주는 아쉬움보다 원형극장에 모여든 친구들과의 긴 항해를 끝내고, 다시 모험으로 가득 찬 미지의 바다로 나가는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 2018 Utopia

“한 5년 전쯤 칸 영화제의 마켓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본 한국관의 광경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모든 작품이 멋지고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힘이 있었지요. 솔직히 당시 일본 부스가 부끄러울 정도라 애가 탔어요. 한국영화가 이렇게 앞서가는구나하고 느낀 겁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생활해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제 소견으로 그 모든 것은 영상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결국 관객의 수준이 높아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칸 마켓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광경이었지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한국영화를 기대하는 것과 더불어, 옆의 부스에 제 작품이 함께 늘어서게 되었을 때 뒤떨어지지 않도록 정진하고 싶습니다. 혹시 앞으로 한국에서 <유토피아>를 상영할 기회가 있다면 꼭 보러와 주세요. 그리고 한 마디만 더요. 한국영화 중에 <괴물>을 특히 좋아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필자는 유난히 이토 감독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집’이 아닌 ‘숙소’에서 지내고, 초등학교 시절 4번째로 전학을 간 학교에서 이미 친구 사귀는 일 따위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성장기의 회고나, “내 고향은 어디인가”라는 질문 또한 주요 테마 중 하나인 <유토피아>에,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의 딸인 태어난 미키 클락과 중국인 어머니의 아들인 시이나 료 등 가족ㆍ조직 안에서 비슷한 질문을 가슴에 안고 살아온 많은 친구들이 함께했다는 설명 등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동질감을 느껴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느낌과 함께, 이제 그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네야 한다. 이별이 주는 아쉬움보다 원형극장에 모여든 친구들과의 긴 항해를 끝내고, 다시 모험으로 가득 찬 미지의 바다로 나가는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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