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마약청정국 아니다? 마약청정국 기준 자체가 없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5.0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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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명 아이돌 그룹 빅뱅 출신의 연예인 ‘승리’가 연관된 <버닝썬> 사건 수사가 연예인들의 성폭력에 이어 마약 투약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마약 사건의 특성상 투약 사실이 드러난 경우 거래자를 통해 또 다른 투약자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 수사대상이 일부 연예인들에 재벌 3세들까지 번지자 그동안 ‘마약청정국’으로 불리던 한국이 더 이상 마약청정지대가 아니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마약청정국이 어떤 의미인지, 한국은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닌지 확인했다.

영국출신 마약범죄 전문가로 현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앤써니 헤가티 위원은 지난 1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통계상으로 보면 이미 마약성 진통제의 소비량이 아시아 3위에 오를 정도로 남용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고 이 중 21%가 중독자일 만큼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백기종 전 수서경찰서 강력팀장도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유엔에서 정해놓은 건 인구 10만 명당 20명 내외의 마약 혐의자가 있을 때는 마약 청정국입니다. 20명 이하로요. 그런데 인구 10만 명당 20명이 넘어가면 상황이면 마약청정국에서 제외를 하고 있죠. 우리나라가 지금 통상적으로 1만4000명 내외의 마약 혐의자가 입건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마약청정국이 이미 아니라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국회에서 열린 업무보고 자리에서 최성락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도 “우리나라는 이미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었다”고 말했다.

언론보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YTN, JTBC,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의 다수의 언론이 비슷한 내용으로 보도했다. 

 

‘마약청정국’이란 용어 자체가 근거 없어

‘마약청정국’이란 용어는 2006년부터 언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는 2006년 8월 20일 발행한 ‘마약 수사기법 외국에 수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검찰은 국제마약조직이 마약청정국이라는 이미지를 악용해 우리나라를 마약 유통 경유지로 활용하는 상황에서 라오스와의 협력은 국제 마약조직과 연계된 범죄단체를 추적ㆍ소탕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해 8월 주간동아는 ‘파멸 부르는 해외 마약범죄의 덫’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가정보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을 경유하는 마약 운반 사건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마약 청정국 이미지를 갖고 있는 한국의 공항, 항만을 경유지로 이용하면 목적지에서 적발될 확률이 낮다고 여기는 듯하다.”고 보도했다.

외교부도 해외주재공관에 2006년 8월부터 배포한 ‘아국인 해외 마약범죄 연루 실태’자료를 통해 “최근에는 인천공항의 양호한 환적⋅환승 여건과 아국의 국제적 마약청정국 이미지를 악용, 아국 경유 마약 운송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바, 유관기관의 관심과 아울러 관련 첩보 입수시 관계기관에 즉시 신고할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처음 ‘마약청정국’이라는 용어가 나온 당시에는 ‘한국은 국제적으로 마약청정국 이미지를 갖고 있다’ 정도였지만, 최근의 “한국, 마약청정국 지위상실”을 내용으로 하는 다수의 언론보도에서는 ‘유엔(UN)이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 20명 이하일 경우 ’마약 청정국‘지위를 부여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의 근거는 찾을 수 없다.

1997년 약물 규제와 마약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설립된 유엔 기관인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UNODC)’는 회원국의 마약 관련 협약기준 준수를 위한 입법조치, 마약문제에 관한 정보 및 자료수집·분석·전파, 주요 마약 관련 국제협약의 이행 감독 등의 기능을 갖는다. 매년 각 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근거해 ‘세계마약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는데, 이 보고서에도 마약 청정국의 개념이나 지위에 대한 언급은 없다.

2014년 대검찰청 주관으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수행한 <마약청정국을 위한 우리나라의 정책수립 경험: 마약류 불법거래로 취득한 수익 박탈>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마약청정국’이란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나라(Drug Free Country)를 의미하지만 ‘마약청정국’ 의 기준이나 내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통상적으로는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이하일 경우로 이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 인구 5000만 명이라고 볼 때 마약류 사범이 만 명 이하 수준 정도여서 ‘마약청정국’이라고 부르고 국제사회에서도 이러한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기술하고 있다.

SBS 방송화면 갈무리

‘마약청정국 지위 상실’ 발언·보도 10년 전에도 있어

‘한국 마약청정국 지위 상실’ 발언과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 7월 시사저널은 ‘[단독] 정부 무관심 속에 무너진 ‘마약 청정국’’이라는 제목의 보도가 있었고,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은 지난 2017년 8월 <최근 5년간 마약사범 54% 증가해 마약청정국 지위 상실>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UN에 따르면 ‘마약청정국’의 기준은 인구 10만 명당 연간 마약사범 20명 미만이다. 해당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1만2,000명이 기준선인데, 지난해에 이를 넘어 섰고, 올해는 6월 기준으로 이미 7,554명이나 적발되는 등 마약사범은 꾸준한 증가추세에 있다.”고 밝혔다.

두 달 전인 2017년 5월에는 매일경제에서 ‘추적불가 ‘다크넷’ 타고 무너진 마약 청정국…3개월새 2000명 검거’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심지어 11년 전인 2008년 기사도 있다. 경향신문은 2008년 8월 ‘[한국, 마약 청정국 아니다]인터넷·택배로 직거래… 화이트칼라층 증가 뚜렷’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이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라고 보도했다.

전직 마약수사관인 전경수 한국마약범죄학회 회장도 지난 3일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이미 제가 벌써 파악하고 있는 것은 15년 전부터 청정국을 잃었습니다. 정부 당국이라든지, 일부 단체에서 면피용이죠. 청정국이라고 함으로써 외국에서는 진짜 한국이 안전한 지대인줄 알고, 우리 한국이 수출 대상국가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일체 청정국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됩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이미 '마약류범죄계수(10만명당 20건)'임계치 넘어

그렇다면 ‘인구 10만 명당 20명 이하’라는 구체적인 수치는 어디서 왔을까? 약물남용자의 수치를 국제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고안된 ‘마약류범죄계수’ 혹은 ‘마약범죄계수’라는 용어가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 12월 발간한 <마약류정보 관리시스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마약류범죄계수는 인구 10만 명 당 마약류범죄로 단속되는 인원을 말하는 것으로 20을 넘으면 급속한 확산위협이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2005년 12월 발간한 ‘마약류 수요억제 및 마약류 사범 처우합리화를 위한 종합대책’연구보고서에서도, “하지만 이미 1990년 말에 마약류범죄계수(인구 10만 명당 검거된 마약류 범죄자수)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임계수치인 20을 넘어 마약류 범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우려가 있어, 단순한 단속 중심의 엄벌 정책만으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려운 시점에 이르렀다.”고 기술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17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마약류사범(대마·마약·향정신성의약품)은 1999년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선 이후 2002년까지 4년 연속 1만 명을 넘었다. 강력한 단속이 실시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7000명 수준으로 떨어졌다가 2007년과 2009년 또 다시 1만 명을 넘겼다. 이후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은 9000명 선에 머물렀지만 2015년부터 급증했다. 2015년 1만1916명으로 다시 1만 명을 넘었고, 2016년 1만4214명, 2017년 1만4123명으로 3년 연속 1만 명을 상회했다. 게다가 은밀한 마약 범죄의 특성상 단속되지 않은 마약사범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도별(1998~2018) 마약범죄수치

정리하면, ‘마약청정국’이라는 용어는 없지만, 유사한 기준의 ‘마약류범죄계수’가 있다. 한국은 1999년~2002년, 2007년, 2009년, 2015~2017년에 1만 명이라는 임계수치를 넘겼다. '한국 마약청정국 지위 박탈'이라는 내용의 기사들은 새로울 것이 없는 '재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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