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지배자' 스팀 vs '독점·무료게임' 에픽게임즈, 누가 최후에 웃을까

  • 기자명 박현우
  • 기사승인 2019.05.27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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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이라는 이름의 게임 플랫폼이 있다. 계정을 만들면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거의 대부분의 PC 게임을 스팀을 통해 구입해 플레이할 수 있다. 구입 절차도 아마존처럼 편리해서 카드만 등록해놓으면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게임을 구입할 수 있다. 스팀을 업계의 최강자로 만든 건 무엇보다도 할인이다. 스팀은 여름 할인, 할로윈 할인, 겨울 할인 등 정기적인 할인과 비정기적인 할인을 통해 폭발적인 수요를 이끌어냈다.

스팀이 이런 할인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게임이 디지털 매체이기 때문이다. 스팀은 게임 패키지를 판매하지 않고 디지털 상품으로서의 게임을 판매-유통하기 한다. 그래서 게임사는 스팀을 통해 게임을 판매할 때 패키지를 제작하는 비용이나 유통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만들어놓은 게임을 스팀을 통해 판매하기만 하면 수익이 발생하니 스팀을 통해 게임을 할인하고 수익을 챙겼고, 스팀은 게임판매 금액의 30%를 수수료로 챙겼다.

 

2003년에 출시한 이후 스팀은 게임을 구매하고 수집하는 문화를 바꾸기도 했다. 한 때 게이머들은 게임을 구매할 때 게임이 저장된 플로피 디스크나 CD, DVD, Blu-ray를 구입했다. 그런데 스팀 이후로 게이머들은 디지털로 게임을 구입하고, 스팀을 통해 게임을 수집한다. 게이머들은 같은 가격의 게임이 스팀과 스팀이 아닌 스토어에 있다면 스팀에서 게임을 구입한다. 스팀 라이브러리에 모든 게임을 저장해놓으면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설치하고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게임 구매 플랫폼이 없는 건 아니지만, 플랫폼이 여러개일 수록 관리해야하는 플랫폼이 많아지니 게이머들은 비용을 더 내더라도 스팀을 고집한다. 이메일 주소를 생각하면 편하다. 여러 이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받으면 관리하는데 더 손이 많이 가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스팀에 대한 비판이 없던 건 아니다. 게임 판매 금액의 30%를 떼어가는 건 결코 작지 않은 숫자인데, 스팀은 사실상 업계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과 함께 등장한 게임 판매 플랫폼이 에픽게임즈 스토어다.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스팀의 독점적인 지위를 비판하며 개발자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겠다면서 등장했다.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언리얼 엔진을 개발하고 <포트나이트>를 서비스하고 있는 에픽게임즈가 직접 운영하는데, 스팀과 달리 12%의 수수료를 떼어 간다. 또, 게임사는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고 수익이 발생하면 엔진에 대한 사용료의 개념으로 수수료를 지불하는데,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한 게임을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런칭하면 엔진 사용료는 면제된다.

에픽 스토어의 출현은 처음엔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했지만 기대작 중 하나인 <메트로: 엑소더스>를 독점 출시한다고 발표하면서부터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엑소더스>는 애초에 스팀으로 판매된다고 광고가 나온 상황이었고, 에픽 독점 발표가 되기 전까지는 스팀에서 사전예약 판매가 진행되는 중이었다(사전예약자는 스팀으로 플레이 할 수 있다). <엑소더스>가 갑자기 에픽 스토어로 환승하는 결정을 한 건 스팀도 미처 알지 못했기에 스팀은 이를 언급하며 불공정(unfair)하다는 표현까지 썼다(링크).

<엑소더스> 이후에 에픽게임즈는 게이머들이 극도로 혐오하는 사업체가 됐다. 앞서 언급했듯 게이머들은 플랫폼 하나에 게임을 ‘단권화’하며 라이브러리를 관리하고 싶어하는데 에픽게임즈가 이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스팀의 독점을 비판하면서 독점으로 스팀에 응수하는 게 맞느냐는 그럴듯한 비판까지 나왔다. 하지만 에픽게임즈의 CEO 팀 스위니는 ‘이것 외에는 스팀에 이길 방법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링크).

단순히 게이머들이 사랑하는 게임을 인질로 잡은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로서 스팀에 비해 다소 빈약했기에 ‘완성도 안된 ESD로 스팀과 경쟁을 붙으려고 하는거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장 크게 이슈가 됐던 건 유저 평가였다. 스팀에서는 게이머들이 게임을 ‘긍정'이나 ‘부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스팀은 긍정과 부정의 비율, 그리고 총 리뷰의 수를 고려해 총 평가에 반영한다. 수를 고려하는 이유는 긍정적인 평가가 총 2개인데 긍정의 비율이 100%라고 특정 게임을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게임’이라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팀은 긍정의 비중에 따라 “압도적 긍정적"(95~99%), “매우 긍정적"(80~94%), “긍정적"(80~99, 리뷰가 적을 경우), “대체로 긍정적"(77~79%) 등으로 표현하고, 긍정과 부정이 비슷하면 “복합적”(긍정의 비중이 40~69%)으로 표현한다. 긍정이 20~39%일 때는 “대체로 부정적", 0~39%일 때는 부정적(리뷰가 적을 경우), 0~19%일 때는 “매우 부정적"이나 “압도적으로 부정적"(리뷰가 많을 경우)으로 표현한다.

게임의 평가는 스팀에서 게임을 구매할 때 바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통해 게임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에픽스토어는 상점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리뷰 기능도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에픽은 리뷰 시스템을 개발 중이기는 했다(링크). 하지만 상품 판매자인 게임업자들은 원하면 리뷰를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방금 출시한 게임에 안 좋은 평이 가득하면 개발자는 언제든지 평가창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엑소더스> 때문에 미운 털이 박혀있던 차에 상점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리뷰 시스템까지 마련되어있지 않았으니 스팀에 충성스러운 대부분의 게이머들이 에픽 스토어를 좋게 볼 이유는 없었다. <메트로: 엑소더스>가 에픽에 출시하는 이유는 리뷰로부터 자유롭고 싶을 정도로 게임이 엉망이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빗발쳤다. 에픽게임즈는 결국 비판을 수용하고 평가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입장을 바꿨다(링크).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스팀에는 클라우드 세이브, 라이브러리 정렬, 커뮤니티 허브 등 온갖 기능들이 있지만, 에픽 스토어에는 이런 기능은 전혀 없다.

 

에픽이 스팀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까? 스팀에 대항하는 에픽게임즈의 무기는 기간 독점 게임과 무료 게임 배포 정도 뿐이 없다. 에픽게임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게이머들이 기간 독점 게임을 에픽게임즈를 통해 구입해야한다. 즉, <메트로: 엑소더스>는 1년 동안 에픽에 묶여있는데, 이 때 게임을 구입하는 게이머의 수가 1년 동안 기다렸다가 스팀에서 구입하는 게이머의 수보다 커야 플랫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엑소더스>는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 판매를 시작했지만, 판매수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단, <엑소더스>를 유통하는 딥 실버에 따르면 <엑소더스>는 전작인 <메트로: 라스트 라이트>를 스팀에서 판매했을 때보다 2.5배 많이 판매되었다고 밝혔다(링크). 딥 실버는 여기에 더해 에픽게임즈를 통해 게임을 판매하며 스팀에서보다 적은 수수료를 지불하며 더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었다고 입장을 냈다(링크). 

최근에 에픽은 <보더랜드 3>까지 독점 출시하겠다고 나섰다. 예고편과 게임플레이 화면을 본 뒤 대부분의 게임 팬들은 말했다. “이 게임의 유일한 단점은 에픽 독점이다.” 필자는 <보더랜드> 시리즈를 플레이해본 적은 없으나, <디비전 2>를 재밌게 했기에 <보더랜드 3>에도 흥미가 갔다. 멀티 게임인 만큼, 가능하면 많은 지인들과 함께 플레이하고 싶어서 운영하고 있는 게임 그룹에 “어떤 플랫폼으로 <보더랜드 3>를 플레이하실 생각이신가요?”라는 설문을 돌렸다. 그러자 콘솔이 아닌 PC로 게임을 하겠다는 유저들은 대부분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통해 <보더랜드 3>를 플레이하기보다는, 독점 기간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2020년 4월부터 스팀을 통해 <보더랜드 3>를 플레이하겠다고 했다.

작은 그룹에서 벌인 작은 여론조사이니 이를 두고 모든 유저를 일반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싱글 게임에서는 에픽 게임즈가 기간 독점으로 재미를 볼 수 있지만, 멀티 게임에서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픽이 <포트나이트>로 선방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스팀은 막강한 유저풀을 보유하고 있고 게이머들도 이를 알고 있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멀티 게임을 하고 싶어하지 월드맵이 텅텅 빈 곳에서 멀티 게임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또, 에픽은 스팀과 달리 할인을 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2주마다 배포하는 무료 게임 정도면 게이머들에게 충분할 거라는 입장까지 냈다. 정확한 워딩은 이렇다.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별도로 게임 할인 행사를 하진 않지만, 이용자에게 2주 간격으로 새로운 무료 인기 게임을 제공한다. 할인보다 오히려 이런 완전 무료 제공이 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진 별도 할인 행사에 대한 계획은 없다.”(링크)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2주마다 무료로 배포하는 게임만으로는 플랫폼 간의 유의미한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무료 게임은 스팀에서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할인의 유무는 게이머 입장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같은 가격이면 스팀을 통해 구입을 하고, 언제든지 할인할 거라는 걸 알면 스팀에서 할인하기를 기다리지 굳이 에픽에서 게임을 구입할 이유가 없다.

할인이 없다는 건 개발사 입장에서도 문제가 된다. 앞서 언급했듯 스팀에서는 개발사들도 할인을 통해 지갑을 두둑하게 채울 수 있었다. 그런데 에픽에서는 할인을 하지 않으니 할인을 통해 재미를 볼 수는 없다. 개발사는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게임을 올리면서 수수료 외에 자릿세는 내지 않으니 에픽에도 게임을 공급하기는 할테지만, 이렇게되면 에픽은 네이버TV와 같은 위치에 처할 수도 있다. 유튜버들은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면서 네이버TV에도 동영상을 올린다. 손해볼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이버TV와 계약하지 않는 이상 네이버에만 단독으로 올리는 영상은 없다. 더 많은 사용자들이 유튜브를 이용한다는 걸 유튜버들 역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에픽은 스팀에 비해 이렇다할 매력이 없는 플랫폼이다. 하지만 전쟁은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나 언리얼 엔진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얼마든지 전쟁 자금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에픽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스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향방은 또 갈릴 것이다.

최근 에픽의 CEO 팀 스위니는 “스팀이 매출 88%를 개발자에게 준다면 독점출시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링크). 스팀이 수수료율을 30%에서 12%로 내리면 에픽이 독점 출시를 멈출까? 본인들도 잘 알고 있지만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독점 출시를 빼면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는 미완성된 플랫폼이다. 팀 스위니가 독점을 안하겠다고 확정하지 않고 안할 수도 있다면서 “would”를 쓴 이유가 여기에 있지 싶다. 아무튼, 전쟁은 계속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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