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개헌 주장하다 발 빼는 자유한국당의 속내는?

  • 기자명 김수민
  • 기사승인 2019.05.2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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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 개혁안이 패스트트랙에 태워지고 나서도 여야4당은 자유한국당과의 협상 용의를 밝히고 있다. 특히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정부형태(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을 선거제와 같이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 중소 3당은 예전부터 정부형태 개헌에 개방적이었다. 

개헌 논의 발 빼는 자유한국당...현상 유지 원하는 배경은?

그러나 선거제와 개헌은 결부시키며 선거제 협의를 지연시켰던 자유한국당은 막상 발을 빼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유튜브 방송 '김광일의 입'에 출연해, 사실상 의원내각제로 가자는 개헌은 "국가의 틀을 바꾸는 것인데 선거가 1년 남아서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시한이 촉박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자유한국당은 지난 19대 대선을 앞두고도 개헌 논의를 밀어붙인 바 있다.  지난 연말 여야5당 합의에도 개헌 논의는 포함되어 있다. 그 사이 논의를 공전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반 년도 안 되어 몸을 트는 것은 선거제를 두고 머리를 맞대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왼쪽부터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국회 정상화 방안 논의를 위한 '호프 타임' 회동에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뷰트 화면 캡처

 

한국당은 단지 현정세와 유불리를 따져 이런 전략을 펴는 것일까. 필자는 한국당이 앞으로도, 내년 총선 이후로도, 때로는 정부형태 변화를 다른 논의를 가로막는 카드로 쓰고, 타정당의 적극 제안이 있을 경우는 회피할 공산이 높다고 본다. 정부형태가 개헌으로 바뀐다면,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자유한국당에게 썩 유리하지 않거나 되레 깊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는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 책임총리제 등의 특성을 살펴보면 자연스레 두드러질 수 있는 것이다. 각종 정부형태에 관해 잘못 유포된 편견이나 오해, 거짓을 들춰보도록 하겠다. 

 

① 의원내각제는 '분권형'인가?

→대통령제가 의회-행정부 분권모델...내각제는 '패스트트랙의 일상화'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 책임총리제를 한 데 묶어 '분권형'이라고 일컫는 것이 정가와 미디어의 주류적 태도였다. 그러나 이런 기본 전제부터 틀렸다. 의원내각제의 분권은 제한적이고, 특정한 방향과 차원에서만 그러하다. 결정적으로 의원내각제는 미국식 대통령제보다 확실히 덜 분권적이며, 심지어 현행 한국 대통령제보다도 더 집권적이다.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지 않고, 대신 총리(수상)를 국회가 뽑는다'를 의원내각제의 본질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각제 총리는 집권당 대통령보다 약하다는 편견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결정적인 차이는 '집행권력과 국회 다수파가 다를 수 있는가, 아니면 같은가'이다.

의원내각제는 국회 다수파가 정부를 구성한다. 확실한 다수파는 '과반 의석'이다. 어느 한 정당이 혼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는 어렵다. 고비례성 선거제도라면 더 그렇다. 따라서 여러 정당이 연립해서 정부가 꾸려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때 권력은 함께 정부를 꾸리는 당파들끼리 나눠가진다. 의원내각제의 분권은 여기까지다. 

반면 미국이나 한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선거를 이겨 집행권력을 잡은 정당이 국회 다수파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여소야대'는 꽤 빈번하게 나타난다. 지금 한국 국회나 미국의 하원의회처럼 말이다. 

대통령의 소속정당이 국회 다수파에 들어가는 '여대야소'라도 대통령의 힘은 제약받는다. 여권의 일각 내지 다수를 설득하지 못하면 대통령이 바라는 바가 의회에서 좌초된다. 모델 자체가 집행과 의회의 분리에 기초하고 있으므로 '여당 대 야당'의 구도를 '대통령+내각+관료 대 국회'가 능가하는 순간도 숱하게 일어난다. 대통령제는 그 뼈대부터 생래적인 분권성을 지닌다. 

이번 패스트트랙에서 보았듯, 민주당과 중소정당이 연합하는 과정은 '분권'으로 비쳐졌지만, 그 다음 자유한국당이 밀리는 것은 결코 분권적이지 않았다. 의원내각제가 대통령제에 비해 띠는 특징은 거칠게 말해 '패스트트랙의 일상화'다. 한국당은 단독으로는 물론이고 다른 정당을 설득해 손 잡아 국회 다수파를 이룰 가능성이 떨어져 보인다. 의원내각제가 썩 달가울 리 없다. 

차라리 대통령제에서 제1야당 지위를 누리면서 번번이 여당을 상대로 위협을 가하면서, 지난 연말 예산안 처리처럼 자신의 방안을 관철시키는 것이 한국당으로서는 편한 길이다. 총선이나 지선이 대통령 임기 중반이나 후반에 치러지면 제1야당 프리미엄도 맛볼 수 있다. 

 

② 대통령제에선 행정부 권한만 막강하다?

→대통령제에 의회 해산 권한 없어...미국 의회는 국가협상에 관여 '막강'

물론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의회를 우회하는 여러 권한을 갖는다. 계엄권이나 긴급재정경제명령이 대표적이고, 법률의 한도내에서 시행령을 가지고 제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안 및 예산안 통과, 각종 인준 및 비준은 의회를 거쳐야 할 뿐더러, 무엇보다 의회는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수 있다. 몇 가지 재량권을 갖고 의회를 뛰어넘을 수 있는 대통령을 두고도 의회는 그 직을 박탈할 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할 권한이 없다. 대통령제에서도 의회가 우위다. 

한국내 의원내각제 반대론자들은 미국식 정부형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그중 적잖은 수는 국회에 큰 권한을 주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가령 미국  상원의회는 장관에 대한 임명동의권까지 가진다. 한미FTA에서도 확인되었지만, 미국 의회는 국가간 협상에 시시때때로 깊숙하게 개입할 수 있다.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해 예산안 편성의 이니셔티브도 의회가 잡는다. 반대로 미국의 집행부는 의회에 직접 법안을 제출할 수가 없다. 미국 의회는 한국 의회보다 훨씬 강하다.

대통령제에서 의회는 집행부 우위에 선다. 오히려 특별히 우위를 가릴 필요가 없는 쪽은 의원내각제다. 국회 다수파가 정부를 꾸리면, 국회에서 큰 리더십을 갖는 인사들이 내각에 들어가기 때문에, 정부 구성권은 국회가 갖지만 그 반대급부로 정부 지도자들의 국회 장악력이 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③ 이원정부제는 외교와 내치의 분리?

→이원정부제는 의회가 통치하는 '사실상 내각제'

그렇지만 위의 이치가 대중적으로 숙지되더라도 "어차피 의회가 우위니까 의회 다수파와 집권세력을 일치시키는 의원내각제를 해보자"는 여론이 당장에 부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을 국민직선으로 뽑지 않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대통령을 직선하면서도 의회가 주도권을 갖는 '이원정부제'가 곧잘 거론된다. 

그러나 이원정부제에 대해서도 불합리한 설이 떠돈다. "외교는 대통령이, 내치는 국회가 선출한 내각이 맡는다"는 것이다. 이원정부제의 대표 사례는 오스트리아다. '오스트리아 정상회담'을 검색해보라. 대통령이 나올 때도 있지만 그것은 '대통령을 만났다'를 '정상회담'으로 표현한 수준이다. 실질적으로 현안을 논하려면 총리를 만나야 한다. 

애초에 외교와 내치를 분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대통령이 사드 배치를 두고 미국과 협상하고 있는데, 내각측이 부지를 마련하지 않겠다면? 자유한국당은 2017년 개헌 특위 논의에서나 2018년 개헌안 발표에서나 '외교와 내치의 분리'를 주장했다. 이것은 이원정부제를 모른다는 방증이며 실제로 관철할 의지나 역량이 없다는 실토다. 

오스트리아는 의회 다수파가 국정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의원내각제이다. 다만 직선으로 뽑힌 대통령이 몇 가지 권한을 가진다. 명목상으로 내각 임명권이나 조약 체결권을 갖고 있고, 법률안 거부권, 나아가 의회 해산권까지 갖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지닌 의회 해산권은 무엇을 의미할까. 통상적인 대통령제에서는 없는 것이고, 의원내각제에서는 총리가 가지는 권한인데 말이다. 그것은 거꾸로 평소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력이 작다는 것이고, 대통령은 비상시에 권력을 휘두를 기회가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마저도 국민 대다수가 튼튼하게 동의하지 않으면 행사할 수 없다. 

대통령제에서도 법률안 거부는 자주 쓰이지 않는다. 명목상의 권한을 많이 휘두르면 의회의 강력한 저항을 피할 길 없다. 의회와 내각의 힘이 강한 이원정부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만일 국민 대다수가 강하게 거부하는 인물들이 내각을 장악한다면,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의회 해산권 행사를 주문할 것이다.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그러한 상황을 대비해 대기하는 '정치적 소방수'다. 

일상적으로 정치적 갈등은 총리, 내각, 의회가 주도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오스트리아 대통령은 대통령제 대통령에 비해서는 초정파적인 인물이 되기 쉽다. 이 나라의 현 대통령인 판 데어 벨렌은 녹색당 출신이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고, 극우 성향 후보를 간신히 꺾고 난 뒤 상대 후보를 지지한 극우 성향 국민에게도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평상시 모습까지를 보면 독일 의원내각제의 대통령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오스트리아 이원정부제는 '준-의원내각제'다.

 

④ 책임총리제 하면 '문재인 대통령-황교안 총리'가 나올 수도 있다?

→집권당이 연정 통해 총리 뽑는 것이 일반적

근래 종종 회자되는 책임총리제는 국회 다수파가 총리를 추천하는 제도다. 이원정부제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총리뿐 아니라 내각을 모두 국회 다수파가 임명하거나 추천하면 이원정부제다. 책임총리제에서 장관은 대통령과 총리가 협의하고 합의해야 임명될 수 있다. 

책임총리제에서 대통령과 국회 다수파가 불일치하면서도 정부에서 동거하는 꼴이 나올 길은 열려 있는 건 진실이다. 대통령이 민주당 소속이라도 자유한국당이 단독으로 혹은 타정당과의 연합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그리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정치 상황을 떠나, 그런 조합이 나올 확률은 이원정부제보다 훨씬 낮다. 

과반 의석 정당이 없다면 여러 정당이 합심해서 총리를 추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과 권력 배분 협상은 필수적이다. 총리 추천 과정에서 장관직 배분까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국회 다수파가 형성되더라도 대통령이 그 밖에 존재한다면? 대통령은 맞은편 국회 다수파가 짜온 장관 명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애초 국회 다수파를 이루는 협상 과정에서 대통령이나 그 소속정당이 참가할 확률이 더 높다. 대통령 문재인-총리 황교안이라도 장관은 자유한국당이 다수를 점하기 매우 어려울 뿐더러, 대통령이 속한 민주당은 굳이 한국당과 연합하기보다는 국회 과반을 살짝 넘기는 것을 목표로 중소정당과의 연합을 시도하기 쉽다. 유럽 의원내각제에서도 거대정당끼리의 대연정은 흔하지 않다. 

책임총리제가 실시되어도 자유한국당이 실질적인 정권을 잡기는 요원해 보인다. 설령 자신이 정권을 잡더라도 타정당과 권력을 나눌 필연성이 높은 제도를 선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⑤ 책임총리제는 개헌을 해야 한다?

→현재도 책임총리제 가능...책임총리제 주장하지만 원치 않는 자유한국당

문희상 국회의장은 임시의정원 개원 100주년 기념사에서 책임총리제를 요체로 한 개헌을 제안했다. 문 의장의 제안이 '여당에서 1명, 야당에서 1명을 총리 후보로 추천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실상 '여당 추천 총리제'에 불과하지만, '국회(다수파) 추천'이라도 굳이 개헌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오스트리아나 핀란드 같은 국가들의 이원정부제는 개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본래 대통령제였으나, 국정을 의회가 이끌어갈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정치권이 자발적으로 정치문화를 바꾼 결과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의회의 방침을 대통령이 헌법상의 권한을 행사해 거부한 적이 있지만, 의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스스로 뜻을 꺾고 말았다. 핀란드도 대통령이 권한을 스스로 이양하는 과정이 개헌에 선행했다.

프랑스의 경우 국회가 내각을 꾸릴 수 있는 직접적 권한은 없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성향과 진영을 달리하는 국회 다수파가 나타나 내각을 꾸린 적이 있다.  좌파 대통령(프랑수아 미테랑)-우파 총리(자크 시라크), 우파 대통령(자크 시라크)-좌파 총리(리오넬 조스팽)의 '동거 정부'였다. 그 동력은 국회의 내각 불신임권에서 나온다. 국회 다수파가 원치 않는 내각 구성을 대통령이 강행해도 국회 다수파가 그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다.

이를 참고하면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는 책임총리제는 현행 헌법하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국회는 총리를 불신임할 수는 없지만 임명동의권은 가지고 있다. 국회에서 정당들이 자체적으로 결의해 총리 후보를 추천한 다음, 대통령이 다른 인물을 총리로 내정할 경우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이 같은 방법을 단 한 번도 시도해보거나 제의하지 않았다. 그들의 책임총리제 방안을 신뢰하기 힘든 것도 그래서다. 의원내각제는 개헌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원정부제에 접근하는 것이나 책임총리제를 실험하는 것은 현행 헌법에서도 가능했다. 곧 10주기를 맞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가능성을 타진한 정치가였다.

 

*참고문헌
강원택, <대통령제 내각제와 이원정부제:  통치형태의 특성과 운영의 원리>, 인간사랑, 2006.
안병영,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  문학과 지성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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