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홍준표 “문 대통령 5.18 때 사법시험 올인”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5.2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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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정치적 공방이 있는 가운데,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법 시험에 올인하지 않았던가”라고 비판했다. 홍 전 대표의 주장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1980년 당시 정말 사법시험에 '올인'했는지 사료를 통해 팩트체킹했다.

 

문재인 대통령 5.18 기념사 (연합뉴스TV 방송화면 갈무리)

홍 전 대표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주 4·3 사건과 자유롭고 싶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도 자유롭고 싶다”로 시작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해당 게시 글은 “해난사고에 불과한 세월호 사건에서도 자유롭고 싶고 나와 아무런 해당사항 없는 독재의 멍에에서도 자유롭고 싶다”, “내가 관여치 않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제에도 자유롭고 싶고, 탄핵팔이 들의 이유 없는 음해로부터도 자유롭고 싶다”로 이어졌고, “도대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역사적 사건들에 묶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망치는 일에는 더는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최근 문 대통령이 거론한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그분은 사법시험에 올인하지 않았던가”로 끝맺었다.

마지막 문장은 지난 18일 문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읽힌다. 또한 문 대통령이 5·18 민주화 운동 당시 시위나 항쟁에 참여하지 않고 사법시험 준비에 전력을 기울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홍 대표의 게시 글은 중앙일보연합뉴스YTN 등 여러 언론을 통해 기사화됐다. 그리고 해당 기사들은 주로 문 대통령에 부정적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공유되고 있다. 실제로 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은 1980년 6월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0년 6월 4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명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전후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무책임한 발언’에 가깝다. 군사정권 시절 인권변호사로 잘 알려진 문 대통령은 1970년대 후반 유신반대투쟁 학내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됐고, 석방 후 특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에 배치됐다. 이후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자세한 사실은 여러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75년 4월 15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당시 경희대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문 대통령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됐고, 그날 밤 바로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조선일보는 문재인 후보 소개 기사를 통해, “1978년 제대한 문 후보는 복학도 취직도 못 했다. 그러던 중 부친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부친에 대한 회한 때문에 사법시험을 보기로 했다.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몇 개월 공부한 끝에 1979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고 이듬해 2차 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시위에 나섰다가 또다시 경찰에 체포됐다. 문 후보는 유치장 안에서 2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 당시 학교 관계자와 동창들이 그를 축하하기 위해 면회왔는데, 경찰서장이 허락해준 덕에 이례적으로 유치장 안에서 소주 축하 파티를 열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시위도 잘 하고 공부도 잘 했던 셈이다.

 

2012년 9월 17일자 '학창시절 별명 '문제아'… 신념 꺾지 않는 아웃사이더 기질' 조선일보 기사.

 

합격 이후의 상황은 다른 언론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2015년 5월 15일 <[Who Is ?]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기사를 통해, “문 대통령은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1979년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후,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의 계엄령 위반으로 붙잡혀 수감됐다. 문 대통령은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 상태로 광주 소식과 사시 2차 합격통지를 들었다. 이후 사법연수원 차석 졸업에도 시위 전력 탓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홍 전 대표의 발언을 그대로 전했던 중앙일보의 같은 날짜 다른 기사도 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는 20만 명에 달하는 대학생들이 집결했다. 그 중에는 그해 봄 경희대 제적 5년 만에 복학한 문 대통령도 있었다. 군 투입설이 퍼지면서 학생들이 동요했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복학생들이 총학생회 회장단을 설득했지만 해산이 결정됐다.”

“5·18 전날인 17일 문 대통령은 결혼을 약속했던 김정숙 여사의 부모에게 인사하기 위해 강화도에 있었다. 신군부는 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문 대통령은 미래의 장인ㆍ장모와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갑이 채워져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문 대통령은 유치장에서 광주 소식을 들었다. 며칠 뒤 거기에서 사법시험 2차 합격 통지도 받았다. 그리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80년 당시와 최근까지의 여러 언론보도를 종합해본 결과 홍 전 대표의 발언은 무책임한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명백한 가짜뉴스다. 간단히 체크만 해봐도 진실을 알 수 있기에 고의적인 날조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콤플렉스가 작용해 착각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며 홍 전 대표의 주장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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