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에게 삼진당한 바에스는 왜 헬멧을 집어던졌나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9.06.22 08: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 17일(한국시각) 미국 LA 빈스컬리애비뉴의 다저스타디움. 홈 팀 LA 다저스가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시즌 72번째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2-2로 맞선 7회초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컵스의 1번 타자 하비에르 바에스가 경기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섯다. 바에스는 지난해 34홈런에 내셔널리그 최다인 111타점을 기록한 오른손 강타자다. 

다저스 선발 투수 류현진은 바에스를 상대로 첫 공 네 개를 모두 체인지업으로 던였다. 바에스는 빠른공 공략에 능한 타자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타자 가운데 패스트볼 상대 피치 밸류 14위를 기록했다. 빠른공 승부에서 리그 14번째로 좋은 결과를 냈다는 의미다. 4구 승부에서 볼카운트 1-2를 만든 류현진은 5구 몸쪽 낮은 커터로 스윙을 유도했다. 바에스의 배트는 나가지 않았고 공은 볼 판정을 받았다. 6구 체인지업이 바깥쪽으로 빠져 나가자 볼카운트는 3-2가 됐다. 투수와 타자 모두 승부를 걸어야 할 때가 됐다. 일반적으로 2-2는 투수에게 유리하지만 3-2는 타자에게 더 유리한 볼카운트다..

 

류현진의 선택은 바에스가 가장 좋아하는 공이자, 이 타석 승부에서 한 번도 던지지 않았던 포심패스트볼이었다. 이 경기를 중계한 ESPN 해설자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패스트볼 승부에 감탄사를 뱉어냈다. 위기에서 상대 타자가 가장 좋아하는 공을 승부구를 삼는다는 건 보통 투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류현진의 올해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메이저리그 평균에 못 미친다. 몸쪽 낮은 코스로 들어온 공에 바에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이 공이 볼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DJ 레이번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로 삼진 아웃된 뒤 바에스가 보인 반응이 방증이다. 그는 헬멧을 그라운드에 집어던지며 분노를 드러냈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스탯캐스트 차트를 기준으로 한다면 레이번 주심의 판정은 정확했다.

스캣캐스트에서 분석한 류현진의 바에스 상대 투구.

이 승부에서 류현진의 7구는 스트라이크존 인코스 낮은쪽 꼭지점에 정확히 박혔다. 그야말로 핀포인트 제구력이다. 다만 스탯캐스트 시스템은 스트라이크존 좌우는 정확하게 잡아내지만 상하는 부정확하다. 좌우는 홈 플레이트의 너비라는 고정된 값이지만 상하는 타자의 신장과 타격폼에 달라진다. 아직까지 이를 완벽하게 보정할 수 있는 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계와 심판의 판정이 정확했다 하더라도 바에스에게는 분노할 이유가 충분했을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인 야구에는 여러 편향이 존재하며, 프로야구 선수는 이에 따른 이점과 불리함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존은 야구 규칙에 이렇게 정의된다.

“유니폼의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을 상한선으로 하고, 무릎 아랫부분을 하한선으로 하는 홈 베이스 상공”.

가상의 공간인 만큼 스트라이크존은 심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볼카운트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연구원들은 스트라이크존 경계를 걸치는 공 판정이 볼카운트에 따라 영향을 받는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볼카운트 0-2에서의 스트라이크 판정률은 3-0에서보다 19%나 낮았다. 매우 큰 차이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기자 존 베르트하임은 비슷한 연구에서 “3-0에서 스트라이크존은 0-2보다 1,200㎠ 넓었다”고 결론내렸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연구한 스트라이크존 경계의 공 판정. 같은 공이라도 타자가 불리한 0-2 상황에서는 스트라이크 판정이 눈에 띄게 줄었다.

 

거의 대부분의 심판은 정확한 판정을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100%는 없는 법이다. 오심은 늘 일어날 수 있다. 오심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스트라이크존 경계를 걸치는 투구처럼 어려운 판정 상황에서 심판들은 책임 회피 성향을 띤다. 이른바 ‘부작위 편향’이다. 볼카운트 0-2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은 타자 아웃이다. 반면 3-0에서 볼 판정은 타자 주자 출루다. 야구에서 아웃카운트 하나와 훌루 하나는 승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오심에 대한 책임도 무거워진다. 그래서 심판들은 3-0에서는 스트라이크존을 넓히고 0-2에서는 반대로 좁힌다.

 

류현진과 바에스가 다저스타디움 7회에 겪었던 3-2 카운트는 어떨까. 볼이면 타자, 스트라이크면 투수가 유리해지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아웃이나 출루보다는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이 경기에선 다저스타디움이 가장 큰 변수였다.

 

베르트하임은 토비아스 모스코비츠와 2011년 공동으로 펴낸 <스코어캐스팅>이라는 책에서 3-2 볼카운트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했다. 원정 팀 타자는 홈 팀 타자에 비해 스트라이크존 경계에 걸치거나, 벗어나는 공에 더 높은 확률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다. 원정팀 타자의 불이익이 가장, 그리고 현격하게 높아지는 경우는 ‘스트라이크존 경계에 걸치는 공’이 ‘3-2 풀카운트’에서 들어왔을 때였다. 볼카운트 대신 경기 상황을 변수로 둘 경우 한 점 차나 동점 같은 타이트한 스코어에서 원정 팀 타자들의 불이익은 더 심해졌다.

 

이런 현상을 스포츠계에서는 오랫동안 ‘홈 어드밴티지’라는 이름으로 불러왔다. 홈 어드밴티지는 실재한다. 여러 스포츠 종목에서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홈 팀의 승률은 원정 팀보다 높다는 사실이 일관되게 발견된다. 가령 1993-2009년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의 홈 승률은 67.0%였고, 1946-2009년 미국 프로농구 NBA에선 62.7%였다. 크리켓 국제대회에선 60.1%, 럭비 국가대항전에선 58.0%. 북미 아이스하키 NHL은 59.0%였다.

 

홈 어드밴티지가 나타나는 이유는 다양하게 설명돼 왔다. 최근에는 심판의 판정이 중요한 이유로 떠오르고 있다. 부작위 편향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인간 심리에서 나온다. 홈 팀에게 불리한 판정을 했을 경우 심판의 ‘책임’은 더 무거워진다.

 

6월 17일 다저스-컵스전 7회말은 ‘홈 어드밴티지’가 발생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어느 팀이 이길지 모르는 동점 상황 3-2 카운트에서 홈 팀의 투수가 원정 팀 타자에게 스크라이크존 경계에 들어오는 공을 던져 스크라이크 콜을 얻어냈다. 스탯캐스트는 이 판정을 정확하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홈 어드밴티지를 겪을 만큼 겪었던 메이저리그 6년차 내야수 바에스는 다르게 생각했을 것이다.

6월17일 LA에서 열린 LA다저스와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7회초 하비에르 바에스가 류현진에게 삼진을 당한 뒤 헬멧을 던지고 있다. 엠빅뉴스 화면 캡처

그리고 지금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손꼽을 정도로 볼넷을 주지 않는 투수다. 많은 메이저리그 전현직 스타들이 류현진을 ‘다섯 가지 구종을 마음먹은 대로 던지는 투수’로 극찬하고 있다. 심판은 때로 ‘선수의 권위’에 의존한다. 수치화된 데이터는 없지만, ‘제구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투수가 등판하면 스트라이크존이 넓어졌다’고 말하는 전직 야구 선수들은 여럿이다. 역시 책임을 회피하려는 심리로 해석할 수 있다. 

 

심판의 오심, 그리고 홈 어드밴티지는 오랫동안 스포츠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다. 심판도 인간이기 때문에 심리적 편향에 의해 무의적으로 오심을 한다. 하지만 이에 따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팀과 어떤 선수는 이득을 얻는 현상이 계속 이어져도 좋은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그 이득이 부당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기술의 신뢰성이 향상된다면 ‘인간 심판’의 역할은 앞으로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지금 독립리그인 애틀랜틱리그에서 로봇 심판을 시험하고 있다. 축구에서 VAR 판정 도입은 초기 격렬한 반대를 불렀다. 하지만 VAR이 더 ‘공정한’ 판정을 한다는 믿음은 더 커지고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