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역사' 맨 앞에 놓인 파라오, 메네스와 호르-아하

  • 기자명 곽민수
  • 기사승인 2019.07.0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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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파라오는 누구인가> 시리즈

 

메네스, 호르-아하, 스콜피온킹, 그리고 나르메 

지금으로부터 5000여년 전에 탄생한 고대 이집트 문명은, 30세기가 넘는 기나긴 기간 동안 번영하며 근동 및 지중해 전역에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위대한 문명을 시작했던 것은 분명히 우리와 같이 실제로 살아 숨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 대부분은 이름 조차 남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지만, 적어도 이들 가운데 몇명 정도의 이름은 여전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최초의 파라오들’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원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역사가 마네토(Manetho)는 <이집트의 역사 (Aegyptiaca)>에서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30개의 왕조로 나눕니다. 그가 사용했던 편년체계는 비록 완전히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나름 용이한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오래도록 사용되어왔던 터라 현대의 이집트학자들도 여전히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편년체계의 가장 앞 자리에는 메네스(Menes)라는 이름의 파라오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진1. The Loeb Classical Library 시리즈로 나온 마네토 저술의 고대 그리스어-영어 대역본. 마네토의 <이집트의 역사> 등은 원전이 남아 있지 않지만, 요세푸스, 에우제비우스 등의 후대 역사가들이 많은 내용을 인용하여 그들의 저술을 토대로 원전을 상당 부분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마네토는 그의 <이집트의 역사>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집트인들은 ‘죽은 자들의 영혼’과 ‘반신’을 계승한 제 1왕조에 8명의 왕이 있었다고 여겼다. 그들 가운데 첫번째가 메네스였다. 그는 명성이 높은 훌륭한 통치자였다. 나는 메네스로부터 이어지는 왕들에 관하여 계승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티스(This) 출신의 메네스에게는 7명의 계승자가 있다. 그는 60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그는 해외 원정을 수행하기도 했고, 이를 통해서 명성을 얻었지만, 하마에게 살해를 당했다."

 

마네토에 의해서 첫번째 파라오로 칭해진 메네스의 이름은 후대의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신왕국 제19왕조의 파라오인 세티(Seti) 1세 시대의 기록인 ‘아비도스 왕명표’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기록에서도 메네스는 수십명의 파라오들 가운데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티 1세의 시대는 대략 기원전 1300년 경이니 메네스의 시대와는 약 1800년 가량의 시간적인 격차가 있습니다. 이렇게 후대의 파라오들에게도 메네스는, 그 역사적 실재성과는 무관하게 자주 ‘최초의 파라오’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사진2. 세티 1세의 신전에 기록된 아비도스 왕명표. 좌측 상단에 붉은색 상자로 표시된 부분이 메네스의 이름입니다. 신성문자로는 ‘mni’라는 발음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찌된 이유에선가 동시대의 유물이나 기록을 통해서, 다시 말해서 실제 메네스의 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는 유물이나 기록에서는 메네스의 존재가 독립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독립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최초의 파라오’의 정체에 관한 학문적 논쟁이 시작됩니다.

 

고고학적으로 확인되는 메네스의 흔적들 가운데는 나카다(Naqada)라는 지역에서 발견된 조그마한 상아판에 새겨진 그의 이름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이 상아판에서 확인되는 메네스의 이름은 호르-아하(Hor-Aha)라는 또 다른 파라오의 이름 옆에, 어찌보면 부수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주황색 사각형 안에 있는 것이 호르-아하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전사(戰士) 호루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붉은색 사각형 안에 있는 글자가 바로 mn, 즉 ‘메네스’라고도 읽을 수 있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대머리 독수리와 코브라 모양의 상징 아래에 쓰여져 있습니다. 이 둘은 각각 상-하이집트의 수호 여신인 네크베트(Nekhbet)와 와제트(Wadjet)입니다. 이 두 여신의 상징과 함께 쓰여지는 이름을 ‘두 땅의 여주인 (nb.ty [네브티]) 이름’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파라오가 갖게 되는 5개의 이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서, 널리 알려진 파라오인 람세스 2세의 출생명은 ‘라-메스-수’, 즉 ‘람세스’이고, 즉위명은 '우세르-마아트-라-세테프-엔-라’, 그리고 '두 땅의 여주인 이름’은 '외국 땅을 움켜진 이집트의 보호자’라는 뜻의 ‘메크-케메트-와-프-카수트’입니다. 그 이외에도 파라오들은 호루스 이름, 황금의 호루스 이름 등을 포함하여 총 5개의 이름을 갖습니다.

 

사진3. 메네스의 이름이 새겨진 호르-아하 상아판. 영국 박물관 소장

 

그런 만큼, 여기에서 우리는 메네스가 호르-아하의 ‘두 땅의 여주인 이름’이고, 메네스와 호르-아하는 동일인일 수도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어떤 연구자들은 이 시기에는 ‘두 땅의 여주인 이름’에 관한 규칙이 완전히 성립되어 있지 않았고, 이 이름이 무덤 관련 시설로 보이기도 하는 건물 그림 안에 쓰여져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상아판에 새겨진 mn(메네스)는 호르-아하의 ‘두 땅의 여주인’ 이름이 아니라 선왕의 이름이 됩니다.

 

마네토의 경우에는 호르-아하를 ‘아토티스(Athothis)’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역사>에서 이 아토티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메네스의 아들 아토티스는 27년 간 재위에 있었다. 그는 멤피스에 궁전을 지었고, 의료 행위를 했으며, 해부학에 관한 저술을 남겼다."

 

이 대목은 위에서 말씀드린 메네스에 대한 단락 바로 아래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 따르면 호르-아하는 메네스의 아들이자 그를 계승한 파라오입니다. 그러나 마네토의 기록은 중요한 참고 자료이기는 하지만, 그 기록 자체로 역사적 실재성을 담보해주지는 못합니다. 그의 기록들 가운데는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것들도 있지만, 또 완전히 부정된 것들도 많습니다. 여러가지 정황들을 토대로 볼 때에, 메네스는 호르-아하의 선왕이거나 혹은 호르-아하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이렇게 불분명하게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어서 유감이지만, 자료의 충분하지 못함을 전제 조건으로 갖고 있는 고고학/고대사 분야에 있어서 이런 단정적이지 않은 ‘잠정적 판단’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고고학이나 고대사 연구에 사용되는 자료는 대체로 조각조각 단편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학설들 대부분이 아주 불안불안한 상태로 만들어진 누더기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는 오히려 과거의 어떤 상황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파라오’에 관한 논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메네스, 호르-아하와 더불어 ‘최초의 파라오’로 여겨지는 후보가 적어도 두 명이 더 있습니다. 이들 후보들 가운데 한명은 이름 조차 분명치 않은데, 보통은 ‘전갈왕(Scorpion King)’이라고 불리는 인물입니다. 유명한 프로 레슬링 선수 출신인 더 락(The Roack, 드웨인 존스 Dwayne Johnson)이 주연으로 출연한, 2002년 개봉의 헐리우드 B급 영화 <스콜피온 킹(The Scorpion King)>은 이 인물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입니다. 또 다른 한명의 이름은 나르메르(Narmer)입니다. 바로 ‘나르메르 팔레트’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유력한 ‘최초의 파라오’ 후보입니다. 이들 두 명의 후보들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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