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부, 가짜 학술지에 논문 쓴 미래학자 초청했다

  • 기자명 김우재
  • 기사승인 2019.07.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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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지금은 정치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 정치인 안철수는 대통령 출마선언에서 SF소설가의 말을 인용했다. 그의 정치적 미래는 불투명해졌지만, 미래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으며, 단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윌리언 깁슨의 말은 맘에 와 닿는다. 안철수의 말처럼 미래가 이미 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미래학과 미래학자들은 우리 주변에 엄청나게 늘어났다.

 

미래학이라는 분야 자체의 역사는 짧다. 구미에서 시작된 미래학은 1960년대 기술혁명에 의한 정보화시대 진입과 함께 시작되었고, 아직은 확고한 패러다임 없이 다수의 인플루언서들에 의해 주도되는 학문영역으로 파악된다. 초기 미래학 연구는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다니엘 벨, 피터 드러커, 앨빈 토플러, 허만 칸 등이 제 1세대 미래학자로 흐름을 이끌었다. 1968년 유럽에서 결성된 로마클럽은 환경파괴 등 기술의 진보가 야기할 부정적 영향에 주목하며 이를 경계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국제적 성격의 비판적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성장의 한계> 등을 발간하며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한다는건 어려운 일이고, 그 특성상 각종 이권과 정치적 이념에 이용당할 소지도 많다. 실제로 유신독재 시절, 미래학자 허만 칸은 한국을 드나들며 “한국은 머지 않아 제2의 일본이 된다” 등의 정권에 밀착한 강연으로 여론을 이끌기도 했다. 미래학과 미래학자들은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각종 구호로 정책을 장미빛 미래로 장식하는 주요 인물들이다. 미래의 예측이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은, 학문적으로 성숙한 학자군부터 얄팍한 지식소매상까지 미래학에 뛰어들 여지를 제공한다. 미래학은 정권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박정희에게 허만 칸이 있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에겐 제러미 리프킨이 있었다. 미래학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학문이다

STB상생방송 화면 캡처.

 

과기정통부 주최, 퓨처 ICT 포럼의 기조연설자

미래학의 기원이 기술혁명이었듯, 신기술의 혁신과 이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통찰은 과학기술을 다루는 정부부처의 소관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예측은 경제적 손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정통부와 파이낸셜뉴스는 2018년부터 ‘퓨처 ICT 포럼’을 주최하고 있다(이 행사는 2017년까지는 ‘모바일코리아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다가 2018년 문재인정부 들어 이름을 바꿨다). 제 10회 퓨처 ICT 포럼의 주제는 ‘초연결시대 ICT 게임 체인저, 미래를 바꿀 MAGIC(Mobility, AI, 5G, IoT, Cloud)’으로, 세상이 초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그 초연결이 바꿀 미래를 점쳐보는 행사로 기획됐다.

 

이 행사는 6월 27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호텔에서 열렸고, 전재호 파이낸셜뉴스 회장의 개막사와 유영민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의 축사, 그리고 노웅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축사로 시작됐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제롬 글렌 밀레니엄 프로젝트 회장의 기조연설이었는데, 그는 한국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싱가폴과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미래적인 국가”로 규정하고, 한국이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시대가 보편화하고 ‘범용 인공지능(AI)’과 ‘슈퍼 AI’가 출현할 시대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행사를 기사화한 신문 대부분은 제롬 글렌의 기조연설을 인용했는데, 특히 “셔츠로 심박수 체크하는 시대 대비하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글렌 회장은 수머 AI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인간의 의식과 이 기술을 잘 융합하면 한국이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 뉴스 화면 캡처.
제롬 글렌이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과 인터넷진흥원이 개최한 미래창조과학 국제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제롬 글렌은 오랜기간동안 한국의 각종 강연에 초청되어 온 명사다. 하지만 그의 이력은 제대로 검증된 적이 없다.

 

제롬 글렌이라는 미래학자, 가짜학술지에 논문을 쓰다

제롬 글렌은 누구인가. 포럼의 소개문에 따르면, 그는 45년 이상의 미래 연구 경험을 지닌 미국의 미래학자다. 그의 이력은 대단한데, 그는 전 세계의 주요 기업, 정부, UN 단체, 대학들을 위한 300개가 넘는 행사에 참여해 왔고, 기업의 전략을 비롯해 국가전략계획에도 관여해 왔으며, 세계은행, 유엔 기구, 그리고 몇몇 정부와 기업의 독립 컨설턴트를 맡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최초의 우주왕복선 이름인 엔터프라이즈 Enterprise를 명명한 인물이다. 홈페이지에서 그가 기조연설로 발표한 슬라이드를 다운받을 수 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의 것이라고 보기엔, 슬라이드 구성이 조금 미숙해보이는 측면이 있다.

 

나는 과기정통부가 주최하는 행사의 기조연설자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졌다. 평소에 전공하는 행동유전학 외에도 다방면의 학문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고 자부해 왔는데, 제러미 리프킨은 들어봤어도 제롬 글렌이라는 인물은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제롬 글렌 Jerome C. Glenn은 1945년 8월 9일 생으로, 현재는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그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아메리칸 대학 American University에서 철학으로 학사학위를, 안티옥 대학 Antioch University New England에서 사회과학교육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다양한 책과 논문을 왕성하게 저술하는 미래학자다.

 

그의 구글스칼라 사이트에는 그가 지금까지 저술한 책과 논문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는 가장 최근에 인터랙티브 시나리오 Interactive Scenarios라는 제목으로 테오도어 고든이라는 학자와 논문(Gordon, Theodore J., and Jerome Glenn. "Interactive scenarios." In Innovative research methodologies in management, pp. 31-61. Palgrave Macmillan, Cham, 2018.)을 발표할 정도로, 학술 활동에도 게으르지 않은 미래학자다. 그의 논저목록을 시간순으로 배열하고, 논문이 실린 학술지를 살펴보면, 그가 주로 자신이 운영하는 밀레니엄 프로젝트에 쓴 보고서와 미래학자 The Futurist라는 잡지 혹은 학술지를 통해 많은 기고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퓨처리스트라는 잡지의 학술지영향력지수 IF:Imapct Factor는 2017/2018년을 기준으로 0.38이다. 참고로 분야는 다르지만,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내가 최근에 출판한 논문의 IF는 2.217이다. 네이처는 41.577이다. 물론 IF가 학술논문의 가치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단지 해당 논문이 실린 학술지를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기는 하다.

 

그의 논문목록을 살펴보던 중, 그가 2016년 한 명의 공저자 그리고 밀레니엄 프로젝트 팀과 함께 발표한 “Future Work/Technology 2050 Real-Time Delphi Study: Excerpt from the 2015-16 State of the Future Report”라는 제목의 논문이 Journal of Socialomics (이후 JoS)라는 학술지에 실린 것을 발견했다. “스티븐 호킹, 일런 머스크, 빌 게이츠 등이 인공지능의 잠재적 위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논문이 실린 학술지를 구글에 검색했더니, 놀랍게도 최근 뉴스타파가 폭로한 오믹스 인터내셔널의 이름이 보였다. 논문의 링크를 클릭해 들어가면, 논문의 원본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논문의 저자는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디렉터이자, 퓨처ICT포럼의 기조연설자인 제롬 글렌이 확실했다. 

 

구글이 정상적인 학술지인 JoS를 가짜학술지를 만드는 오믹스와 혼동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짜학술지 리스트를 모아둔 빌의 리스트(Beall's list)에 들어가서 이 학술지를 출판하는 롱돔 LONGDOM 출판사를 검색해보니 빌의 리스트에 약탈적 출판사로 등재되어 있다는걸 확인할 수 있다. 제롬 글렌은 가짜 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것이다. 혹시나 해서 롱돔 출판사에서 제롬 글렌의 논문을 검색하니, 현재까지 이 출판사를 통해 두 편의 논문을 출판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중 한 편의 논문은 그가 운영하는 밀레니엄 프로젝트에서 출판한 보고서를 그대로 JoS에 옮겨 실은 것으로 보이고, 바로 이 때문에 그의 구글스칼라 사이트에서는 JoS에 실은 논문이 한 편 밖에 없는 것으로 파악되는 듯 하다. 

 

구글 스콜라 화면 캡처.

 

과대포장된 미래전문가

가짜 학술지에 논문 한 편을 싣는게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할 수 있다. 무려 45년간 활동해온 노년의 미래학자가 실수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최근 가짜학회에 참석했다 과학기술정통부 장관 후보에서 지명철회된 조동호 장관도 억울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다가 제롬 글렌이 지금까지 미래학자로 논문을 출판하며 학자 행세를 해온 행태는 일반적인 학자라고 부르기엔 미묘한 구석이 있다. 만약 그가 저서를 출판해온 지식인이나 사상가라면 학자의 잣대로 그를 평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는 구글스칼라에 그가 지금까지 쓴 모든 논문 목록과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올린 보고서를 기록해 두었고, 이는 제롬 글렌 스스로가 자신을 학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의 논문 목록은 학자의 기준에서 비판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그의 논저 중 가장 많이 인용된 건 <미래의 상태 State of Future>라는 그의 1997년 출세작으로 388회 인용되었는데,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책들은 보통 2000회 이상 인용된다. 그 책을 제외하고 나면, 그가 쓴 논문이나 보고서들은 학문적 대가라고 보기엔 인용도가 현격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그가 쓴 방법론 논문으로 보이는 2003년 논문의 피인용수는 100인데, 결코 훌륭한 연구자가 아닌 내가 2005년에 쓴 논문도 피인용수가 164를 넘는다. 구글이 제공하는 h-지표 h-index는 논문수와 피인용수를 동시에 알 수 있는 꽤 공정한 지표인데, 1972년부터 연구를 시작한 그의 h-지표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는 2014년 이후 적어도 24회 피인용된 논문 16편을 출판했다. 나는 2014년 이후 적어도 6번 피인용된 6편의 논문을 출판했다. 그의 논저 전체의 피인용횟수는 2306회이고, 나는 501회이다. 학자로 살아온 무게와 서로 다른 분야임을 고려해야 하지만, 적어도 학자로 평가하자면 제롬 글렌은 대가급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 외에도 그는 가짜학술지가 범람하는 인도의 이름 모를 학술지에 논문(Gordon, T. J., & Glenn, J. C. (2011). The Year 3000 Six Scenarii on the Future of Humanity. World Affairs: The Journal of International Issues15(1), 100-130.)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이 학술지는 영향력지수가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인도는 가짜 학회와 학술지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최근 이에 대한 대대적인 조치를 예고했다. 실제로 뉴스타파가 조사한 와셋과 오믹스 등에 투고하는 학자의 상당수가 인도 출신이기도 하다.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는 왜 검증되지 않는가

최근 뉴스타파의 가짜학회/학술지 보도로 인해, 한국의 학술생태계가 얼마나 부패했으며, 연구자들의 모럴 해저드가 심각한지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었다. 심지어 과학기술정통부 장관후보까지 가짜 학회에 참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국 학술생태계는 심각한 구조적 모순에 노출되어 있다는게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과학기술정통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제롬 글렌은 잘 봐줘봐야 미국의 주변부에서 활동하는 그저 그런 미래학 장사꾼이며, 결코 일류 미래학자로 부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특히 학자, 그것도 일류학자로 자처하는 인물의 학문성적표는 자신이 만든 웹사이트에 올린 보고서와, 정체를 알 수 없는 학술지, 그리고 가짜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포함하고 있었다.

 

G20에 참여하는 경제선진국의 과학기술정통부는, 과학기술로 미래를 논하고 국가의 플랜을 주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할 정부부처다. 이런 부처가 주최하는 행사에, 가짜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래학자가, 그것도 기조연설자로 초빙되는 현실은, 현장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수많은 과학기술인을 참담하게 만든다. 

 

과학기술정통부는, 이제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을 떼어버리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얼마전 유사과학단체의 컨퍼런스를 후원하려다 급하게 취소를 하고서, 이후 대책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없던 과기정통부는, 이번엔 가짜학자를 모셔다 국가행사를 치렀다. 한국엔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과학기술인을 위하는 정부부처가 없다. 유사과학과 가짜학술지에 연루된 과기정통부의 이런 문제들에 대해, 청와대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관료가 주도하는 한국 과학기술엔, 미래가 없다. 이건 미래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아주 손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덧붙이는글: 제롬 글렌은 심지어 미왕복우주선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을 지은 사람도 아니다. 그 이름은 스타트렉 덕후들의 청원으로 이뤄졌다. 그의 이력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이 있는지, 그의 논문에 얼마나 많은 표절이 있는지는 조사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가 유사과학문제와 더불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는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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