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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이 지목하는 '최초의 파라오' 후보, 전갈왕과 나르메르

기사승인 2019.08.14  13: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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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민수의 이집트 이야기] 최초의 파라오는 누구인가 ②

<최초의 파라오는 누구인가> 시리즈

메네스, 호르-아하 등과 더불어 또 다른 ‘최초의 파라오’ 후보인 전갈왕(Scorpion King)과 나르메르(Narmer)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는 1897년 영국인 이집트학자 제임스 퀴벨 (James Quibell, 1987-1935)에 의해서 이집트 남부의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고대에는 네켄(Nekhen)이라고 불렸던 히에라콘폴리스는 오랫동안 이집트의 최남단 경계였던 아스완(Aswan)에서 북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미 어디선가 들어보셨을, 매의 머리를 하고 있는 호루스 신이 이집트 역사 초기에는 바로 이 도시의 수호신이었습니다. 히에라콘폴리스라고 하는 이름도, 고대 그리스어로 ‘매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이후 호루스는 이집트 역사 내내 파라오의 왕권을 상징하는 신으로 숭배되었고, 역대 파라오들은 모두 이 호루스 신의 현신(現身) 으로 여겨졌습니다. 워낙 유명한 신일 뿐더러, 하늘과 관련이 있는 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만큼, 호루스는 오늘날에는 이집트 항공(Egyptian Air)의 앰블럼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사진 1. 람세스 2세(우측)에게 생명(앙크)을 건내는 호루스 신(좌측). 신왕국 19왕조 시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 2. 호루스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이집트 항공의 앰블럼

퀴벨은 이곳 히에라콘폴리스의 고왕국 시대와 중왕국 시대의 신전터에서, 아마도 후대인들이 무엇인가 의례와 관련된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매장한 초기왕조 시대의 유물들을 다량 발굴하였습니다. 그런데 퀴벨은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플린더스 페트리에게 훈련 받은 고고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발굴 작업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중요한 유물들의 정확한 출토 정황은 영원히 알 수 없는 상태로 남겨져 버린 것이죠.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 가운데 몇 점이, 출토 정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최초의 파라오’ 후보들 가운데 두 명인 전갈왕과 나르메르의 역사적 실체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 유물들 가운데 하나가 현재 영국 옥스포드의 아쉬몰린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전갈왕의 곤봉 머리(Mace Head)’입니다. 이 유물은 곤봉 머리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크기가 사람 머리만한 이 유물이 실제 곤봉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대신 이 물건은 의례용이나 기록용으로 제작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곤봉 머리의 한쪽 면에는 아래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의복을 잘 갖춰 입고 있는 파라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파라오는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백색 왕관을 쓰고 괭이 모양이 도구를 손에 들고 있는데, 이것은 관개(灌漑)와 관련이 있는 의식을 주관하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파라오의 바로 앞에는 일곱개의 꽃잎이 달려있는 꽃과 전갈이 새겨져 있는데, 이 상징들은 이 왕의 이름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발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집트학자들은 그 글자의 모양대로 이 왕을 그냥 ‘전갈왕’이라 불러 왔습니다. 이렇게 전문적인 학자라 하더라도 불가항력적인 무지 앞에서는 가끔씩은 다소 유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3. 전갈왕의 곤봉머리. 영국 옥스포드 아쉬몰린 박물관 소장.

 

곤봉 머리의 다른 한쪽 면은 보존상태가 매우  불량하기 때문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 손상된 면에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쓰고 있는 파라오가 그려져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는데, 만약 그러했다면 전갈왕은 분명히 이집트 최초의 통일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또 만약 저 상이집트 왕관을 쓰고 있는 파라오가 이 곤봉 머리에 그려진 유일한 파라오의 모습이었다면 전갈왕은 이집트가 통일되기 이전에 상이집트에 대해서만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네메스나 나르메르의 선조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르메르(Narmer)라는 인물 역시도 ‘최초의 파라오’ 후보 가운데 한명입니다. 그의 정확한 정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는 지난 회에서 소개해드린 메네스와 동일인일 수도 있고, 혹은 메네스가 이집트를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그의 선왕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양쪽도 아니라고 한다면, 나르메르는 특정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상-하이집트의 통일과 관련이 있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칭호일 수도 있습니다.

 

나르메르의 정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지만, 그(혹은 그 이름)의 역사적 실체 만큼은 고고학적으로 완전히 확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쓰여진 유물은 이집트 전역에서 다수가 발견되었으며, 심지어는 오늘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상당수가 확인됩니다. 이 사실은 선왕조 시대부터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역 간에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는 아주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실제로 지난 회에서 말씀드린 마네토의 <이집트의 역사(Aegyptiaca)> 속 메네스에 관한 대목에서는 그가 직접 해외원정을 수행하기도 했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원정을 떠난 지역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집트 입장에서의 원정지는 남쪽의 누비아, 북쪽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 둘 중에 하나입니다.

사진4. 이 석재 두상은 신원불명이지만,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 플린더스 페트리는 이 두상을 ‘나르메르의 두상’이라고 불렀습니다. 현재는 바로 그 페트리의 이름을 딴 런던대학교의 페트리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중입니다.

 

나르메르의 역사적 실재를 증명해주는 유물들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르메르 팔레트’입니다. 이 유물은 팔레트라고 불리는 이름 그대로, 높이가 대략 64센치미터, 너비는 42 센치미터 정도가 되는 꽤 커다란 사이즈의 편암 석판입니다. 제임스 퀴벨에 의해서 1898년에 히에라콘폴리스에서 발견된 이 석판의 진품은 현재는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 박물관에서 소장중이지만, 잘 만들어진 레플리카는 카이로 이외의 장소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나르메르 팔레트는 그 표면에 이집트 통일의 역사적 정황을 유추해볼 수 있는 상징들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유물로 다뤄집니다. 이집트 문명 초창기에는 문자 기록이 아주 흔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 시대의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추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입니다. 그러나 나르메르 팔레트에 새겨진 부조 덕분에 그 시대에 관한 나름의 이야기는 구성해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부조에서는 이후 수천년간 이어질 ‘고대 이집트스러운 모티브들’이 아주 초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쓰여진 나르메르의 이름은 신성문자(Hieroglyphs)의 초창기 형태이며, 팔레트에 묘사된 파라오는 이후 시대에도 계속 사용되는 적색-백색 왕관을 쓰고 있고, 가짜 턱수염을 턱에 달고 있습니다.

사진 5. 나르메르 팔레트.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원래 이런 종류의 팔레트라고 불리는 석판들은 선왕조 시대부터 화장에 사용되는 암석 안료를 갈기 위한 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르메르 팔레트의 경우에는 일단 그 크기가 실제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크고, 석판 위에 장식된 부조들도 지나치게 정교하기 때문에 어떤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용도나 신전 등에 봉헌하기 위한 제물로 만들어졌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물론 제사 같은 의례가 행해질 때에는 실제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유물에서 사용흔이 확인되었다는 연구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이 팔레트는 양면에 새겨진 정교한 양각 부조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곽민수 팩트체커 egypt@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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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팩트체커  egypt@hitel.net    최근글보기
이집트 고고학자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대, 옥스퍼드대, 더럼대에서 공부했다. 이집트학의 한국 내 대중적 저변을 넓히기 위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고고학 자료를 통해서 본 투트모스 3세의 과거인식과 개인정체성> 등 다수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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