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 목적에 역사도 왜곡하는 보수 언론

  • 기자명 민주언론시민연합
  • 기사승인 2019.07.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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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빌미로 일본은 ‘경제 침략’을 단행했습니다. 국내 일부 언론은 정파성에 빠져 청구권 협정에 대한 일방적 일본 주장을 확대 재생산하고, 전임 양승태 대법관의 ‘사법 농단’을 옹호하는가 하면, 불매운동 움직임에 대한 훈계, 일본어판 제목 논란 등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의 문제점을 드러내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역사를 입맛대로 인용해 어설픈 비유로 정부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박정훈 칼럼의 문 대통령 고종 운운한 칼럼은 사실상 저주의 글

일본의 경제 보복이 시작되기 직전, 조선일보는 <박정훈 칼럼/문 대통령은 고종의 길을 가려 하는가>(6/28, 박정훈 논설실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고종에, 아베 총리를 이토 히로부미에 비유했습니다. 이 칼럼은 그야말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과 근거없는 험담, 저주의 완결판에 가깝습니다.

칼럼은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됐는데 문 정부는 안에서 적을 만들고 편을 가르는 내부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바깥세상을 보지 않고 우리끼리 지지고 볶겠다는 편협한 리더십에 머물러 있다. 그 모습에서 100여 년 전 고종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면서 고종의 문제를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먼저 고종이 당시 패권국인 영국 대신 비주류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한 오류를 범했는데 “문 정부도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패권을 쥔 미국과의 동맹을 약화시키고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과 균형을 맞추겠다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늘 친미는 선이고, 친중은 악이라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던 보수언론이 개발한 비유로 보입니다. 여기까지는 외교관념의 차이라고 봐도 다음부터는 점점 억지가 심해집니다.

둘째, “고종은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킨다는 실력주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문 정부의 국정도 부국강병과는 결이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국력을 키우기보다 경제를 쪼그라트리고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쪽으로 국정을 이끌고 있다. 현실 대신 이념에 매달려 축소와 문약(文弱)의 길을 걷고 있다”고 우겼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같은 주장을 하는 것인지 물어봤자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저 우기는 것이니까요.

셋째 이유는 더 황당한데요. 고종은 “급진·온건을 가리지 않고 개화파를 살해·축출해 부국강병 세력의 씨를 말렸다”다고 비난한 뒤, “지금 벌어지는 ‘적폐 청산’도 국가의 인재 경쟁력을 훼손시키는 자충수일 뿐이다. 귀중한 인적 자산을 매장시켜 사회적 불구자로 만들고 있다. 두고두고 국가적 손실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구한말 개화파를 자처한 인물 중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벌인 사람들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은 ‘적폐 청산’에 대한 불안과 불만에 가득차서 한탄을 하는 수준의 표현입니다. 특히 “국가의 인재를” “사회적 불구자로 만들고 있다” “두고두고 국가적 손실로 돌아올 것이다”는 칼럼인지 저주의 글인지 혼동될 지경입니다.

이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구한말과도 같은 격변의 시대, 문 대통령이 갈 길이 ‘고종의 길’일 수는 없다”이지만 이 글의 전체 맥락을 본다면 “문 대통령은 고종의 길을 갈 것이다”라는 염원이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사 입맛대로 인용하는 언론…선조·고종 때아닌 수난

그러나 박정훈 칼럼은 전초전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되자 조선일보, 중앙일보에서는 역사를 입맛대로 갖다붙여 정부 비판에 나섰습니다. 주된 대상은 선조와 고종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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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동서남북/아베의 일본판 대국굴기

안타깝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일부 진보 측 인사들이 아무리 고종을 개혁 군주라 미화해도, 그는 제국주의 침탈을 못 막은 무능한 통치자다. 부디 문재인 대통령은 서민을 사랑한 지도자이기도 하지만(후략)

성호철

산업2부차장

7/12

중앙일보

서소문 칼럼/1592년과 2019년, 우리는 바뀌었을까

선조수정실록엔 1592년 왜적이 침입했을 때 조선이 얼마나 준비되지 않았는지가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다(중략)지금 우리는, 이 정부는 일본을 정말 우습게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중략) 그때나 지금이나 흥분할 줄만 알지 대비는 하지 못하는 우리의 자세는 정말 통탄스럽다.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7/10

중앙일보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 일본보다 더 생각해야 이긴다

조선은 치욕의 기록(징비록)을 금서로 낙인찍어 봉인했다. 반면에 일본과 중국에선 우물안 개구리인 조선을 요리하기 위한 필독서이자 베스트셀러가 됐다.(중략) 대통령은 달라야 한다. 국익을 위해 아베에게 어디서든 당장 만나자고 해야 한다.

이하경

주필

7/15

△ 일본 경제보복을 역사에 비유해 정부 비판하는 의견기사들(7/1~16) ⓒ민주언론시민연합

(*외부칼럼은 제외)

조선일보의 ‘문재인 고종론’…근거는?

조선일보의 경우,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문재인 고종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작년 2018년 정비를 마치고 개방된 ‘고종 아관파천 길’에 고종에 대해 우호적인 평가가 소개되어 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아관파천 길’ 개방 당시 조선일보는 <고종도 모를 고종의 길’>(2018/11/30, 박종인 기자)등의 기사로 정확하지 않은 사료에 기반해 ‘아관파천 길’이라고 홍보한 문화재청을 비판한 것과 동시에, <동서남북/‘고종의 길은 실패한 길이다>(2018/11/22, 이한수 문화부 차장)같은 칼럼을 통해 고종 재평가 움직임을 비판한 바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박정훈 논설실장의 칼럼 제목이 <문 대통령은 ‘고종의 길’을 가려 하는가>라는 점에서도 ‘아관파천 길’과의 연관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연장선상에서 조선일보 성호철 산업2부 차장은 칼럼 <동서남북/아베의 일본판 대국굴기>(7/12, 성호철 기자)에서 ‘일부 진보 측 인사들이 고종을 개혁군주라고 미화한다’고 주장하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아관파천 길’이 근거라면, 아관파천 길 조성 계획은 2012년 세워졌고, 공사는 2016년 10월부터 시작한 것으로 나옵니다.

오히려 한겨레TV <우리가 몰랐던 고종그는 반민족행위자”>(1/24)를 보면 소위 ‘진보 역사학자’들은 고종에 대해 “대한제국 황실은 반민족행위자”라는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사료 검증은 했나

중앙일보 <서소문 칼럼/1592년과 2019, 우리는 바뀌었을까>(7/10, 채병건 기자)는 “선조수정실록엔 1592년 왜적이 침입했을 때 조선이 얼마나 준비되지 않았는지가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다”면서, 조선이 임진왜란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철 지난 주장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정부는 일본을 정말 우습게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중략) 그때나 지금이나 바다 건너 저 나라를 향해 흥분할 줄만 알지 대비는 하지 못하는 우리의 자세는 정말 통탄스럽다”고 주장합니다.

이 기사는 첫머리부터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데, 조선이 맨 처음 온 일본군 4백여 척을 보고했고 그래서 조선이 실제 숫자를 만명으로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에 맨 처음 상륙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는 15000~18000명 가량이었으니 인공위성도 없던 당시에는 꽤 정확한 정보였습니다.

한편, 기자가 말한 선조수정실록 곳곳에는 조선의 전쟁 준비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선조의 의향으로 지방관에 불과했던 이순신을 1년 만에 전라좌수사로 만든 것입니다. 현대로 치면 소령을 1년만에 소장으로 진급시킨 것인데, 이 때 조선의 언론기관인 사간원은 이순신의 진급이 너무 빠르다며 두 번이나 상소했습니다. 역사가 반복된다면 중앙일보 쪽이 그 때의 사간원에 가까워 보입니다.

중앙일보 <일본의 경제전쟁 도발, 일본보다 더 생각해야 이긴다>(7/15, 이하경 주필)은 ‘조선에서 징비록을 치욕의 기록이라며 금서로 지정했는데, 일본에서는 징비록을 치밀하게 연구하여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며, ‘일본은 이미 치밀하게 미국에도 손을 썼으니 미국을 움직이려는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징비록이 언급된 기록들을 찾아보면, 이하경 주필이 한 주장의 근거는 징비록에 대해 ‘과조(법률조항)을 세워 금단(규제)했다’는 내용의 숙종 38 4 22일 기사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실록 내용을 자세히 보면, 조선의 군사기밀이 담긴 징비록이 일본으로 유출됐다고 신하들이 지적하자 규정을 만들어 유출을 금지한 것이지 징비록을 금서로 지정한 것이 아닙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징비록을 찾아보면, 조선이 금서로 지정해 봉인했다는 징비록을 인용한 기록들이 여러번 나옵니다. 영조 48 1 14일 기사에서는 비변사 당상관인 조엄이 징비록을 인용했고, 정조 10 2 26일 기사에서는 행정기관인 이조에서 올린 상소문에 징비록이 인용됩니다. 조엄이나 이조판서가 이 일로 목이 날아갔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습니다.

역사를 입맛대로 갖다 붙인 대목은 각각 다르지만, 정부를 때리겠다는 명백한 목적 앞에서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필진들에게 역사적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계속 빈약한 근거를 가지고 선동에 가까운 글을 써 댄다면, 언론이 감시해야 할 대상인 청와대로부터 오히려 ‘한심하다’는 비아냥을 듣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7월 1일~2019년 7월 16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별지섹션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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