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적반하장" 경고, 일 언론이 잘못 번역했다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9.08.0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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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각의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다고 의결한 2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발언 중 문 대통령은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습니다”고 했다. 이 문장에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엉뚱하게 오독됐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토 마사히사 일본 외무성 부대신은 2일 BS후지 프로그램에 출연해 문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언급하며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인용은 정확하지 않았다. 사토 부대신은 ‘적반하장’ 대신 ‘누스비토다케다케시(盜っ人猛猛しい=도둑이 뻔뻔스럽게 군다)’라는 번역어를 들었다.

한자문화권인 일본에서도 사자성어는 널리 사용되지만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적반하장’은 일본인에게 낯선 표현이다. 학계와 산업계에서 일본과 교류해 온 복수의 인사는 “일본에선 ‘적반하장’이라는 말을 일상 생활이나 언론 보도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인 야후 뉴스란에도 ‘賊反荷杖’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단 한 건의 기사만이 검색된다. 문 대통령의 2일 발언을 다룬 기사로 작성자는 서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3세다. 

아사히신문후지뉴스네트워크(FNN) 등 여러 일본 언론은 2일 문 대통령의 발언을 다루며 '적반하장'을 ‘누스비토다케다케시’로 번역했다. FNN은 아예 온라인판 기사 제목에 이 표현을 넣었다. 두 말의 뜻은 비슷하지만 어감이 다르다. ‘적반하장’은 상대를 비난하는 의도로 쓰이지만, 한국인들은 특별히 품위가 없다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당의 논평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반면 ‘누스비토다케다케시'는 일본인에게 ’품위 없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대통령이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메시지에서 일본어 번역까지 고려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적반하장’이라는 표현이 없었더라도 사토 부대신은 한국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했을 것이다. 일국의 외교 부서 차관급 인사가 타국 정상에 대해 직설적인 비난을 하는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을 야후 재팬에서 검색한 결과.

 

하지만 언론의 번역 문제가 긴장이 고조되는 양국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악감정을 더했다는 점은 지적돼야 한다. 일본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번역은 인터넷에서 격렬한 반발을 불렀다. FNN 기사에 달린 한 댓글 내용은 “명색의 한 나라의 대통령이 상대국에게 ‘누스비토다케다케시’라는 표현을 쓰다니 품위가 너무 없다. 한국 국회의장도 이 단어를 썼다. 품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민족”이다. 작성자가 한국에서 ‘적반하장’의 용례를 알고 있었다면 다른 식의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사토 부대신의 방송 발언은 3일 국내 언론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졌다. 국내 언론 보도도 독자에게 양국간 언어 차이를 설명하는 배려가 부족했다. 연합뉴스는 “일부 일본 언론은 적반하장(賊反荷杖)을 일본어로 풀이해 비슷한 뜻을 지니면서도 다소 원색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으로 소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문장을 읽은 독자는 ‘일본 언론의 의도적 왜곡'을 떠올리기 쉽다.

근대 전쟁사에는 언론 보도가 위기를 가중시킨 많은 사례가 있다.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 교수는 “일본의 군국주의화 과정에서 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30년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앞두고 매체들이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적반하장’에 대한 일본 언론 보도와 이에 기반한 국내 보도를 당시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오피니언 인터넷 사이트인 아고라의 다음과 같은 견해는 경청할 만 하다.

“현재 악화된 한일 관계에서 보도 매체는 번역에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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