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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공학자, 여행 스타트업을 시작하다

기사승인 2019.09.02  08:4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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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장석의 실리콘밸리 이야기] 공학박사 사진작가 이학의 '프로젝트닷츠'

2014년 가을, 스탠퍼드대학원 기계공학 박사과정 이학(Hark Lee) 씨는 친구의 부탁을 받았다. 한국에서 지인들이 놀러 오는데 요세미티 국립공원 캠핑을 가고 싶어하니 가이드를 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스탠퍼드 최고의 여행전문가’로 불리고 있었다. 여행 가이드를 해줄 시간은 없었다. “직접 갈 순 없지만 어떤 코스로 여행하면 좋을지 정리해서 알려주겠다”며 문서를 보내줬다. 자신이 그동안 여행하며 기록한 정보를 기반으로 캠핑 기간과 코스별 난이도, 만족도 등을 감안해 맞춤형 여행일정을 짰다. 주변에서 여행 스케줄을 짜달라는 청탁이 많아 몇몇 국립공원 여행 정보는 이미 문서파일로 만들어두고 있었다. 그는 그러면서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창업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세 가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자동차 연료전지 연구로 스탠퍼드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공학자,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촬영하는 사진가, 실리콘밸리에서 여행 플랫폼을 개발하는 창업가. 지난 5월말 케이그룹(Bay Area K Group)의 연례행사 강연에서도 세 가지 타이틀로 자신을 소개했다. 케이그룹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실리콘밸리를 포함하는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지역)에서 일하는 한인들이 구성한 모임. 그는 이 자리에서 자동차 연료전지를 연구하던 공학자가 어쩌다 사진가가 되고 창업의 길에 들어서게 됐는지 사연을 풀어놨었다.

 

지난 6월 말 글래시어국립공원에서 사나운 곰, 그리즐리 베어와 마주치자 뒷걸음치며 도망치고 있는 이학 씨. 곰과 마주쳤을 때 임시방편으로 뿌리는 곰 스프레이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함께 도망치던 일행이 촬영했다. 사진제공: 이학.

 

역마살이 낀 공학도자연과 사진에 빠지다

그는 스탠퍼드 캠퍼스 주변에서 여행 캠핑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백컨트리캠핑(backcountry camping) 전문가다. 자동차로 접근할 수 없고, 배낭을 메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곰 같은 맹수가 나타나는 야생의 공간을 탐험하는 캠핑이 자동차 연료전지 연구 외의 다른 전공이다. 실제로 최근엔 몬태나주에 있는 글레시어국립공원(Glacier National Park)을 여행하다가 곰과 마주쳐 가까스로 도망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박사과정 유학생이 여행 전문가로 불리게 된 출발점은 요세미티국립공원과 사진이었다. 그는 서울대에서 기계공학 학사 석사를 마치고 2005년 여름 스탠퍼드 공대에 유학을 왔다. 그리곤 유학 첫 해 여행을 좋아하는 선배에게 이끌려 요세미티국립공원 캠핑을 가면서 자연사진에 빠져들었다. 요세미티국립공원은 2018년 한 해 미국의 60개 국립공원 중에서 방문 횟수로 6위를 차지할 만큼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때 간 곳이 요세미티국립공원에 있는 터나야호수(Tenaya Lake)였어요.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며 풍경만으로 사진이 된다는 걸 알게 됐죠. 대학 때부터 사진을 찍었지만 풍경은 배경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처음엔 함께 간 친구들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어느새 호수만 찍게 됐어요.”

 

잊을 수 없는 그 풍광을 담으려다 보니 여행, 캠핑이 생활이 됐다.

“2007년 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박사자격시험(qualifying exam)을 마치고 난 뒤였을 거에요. 보통 박사과정 3년차 정도부터 여유가 조금 생긴다고 하거든요. 그때부터 주로 동네 주변의 해변을 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미국을 좀 더 잘 보고 싶다는 생각. 어릴 때부터 세상을 돌아다니며 보고 싶었어요. 역마살이 끼었나 봐요.”

 

그에게 여행은 오롯이 사진을 위한 것이다. 어느 장소에서 어떤 순간을 포착할지 구상하기 위해 같은 곳에 여러번 답사를 간다. 어느 지역에 천둥번개가 친다, 폭설이 내린다, 보름달이 휘황하게 떠오른다는 예보가 나오면 열 몇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가 순간을 포착한다. 국립공원의 실시간 웹캠을 수시로 들여다 보는 건 그 때문이다.

“한번은 기말고사 때였는데 요세미티 설경을 보러 갔어요. 그런데 원하는 만큼 눈이 내리지 않았죠. 할 수 없이 돌아오는데 나중에 보니 멋진 일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해 인생의 한 작품을 잃어버렸죠. 게으르게 행동하다가 놓친 순간은 돌아오지 않아요. 스스로에게 화가 나 정말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 이후 한동안 저녁약속을 잡지 않았죠. 언제든 조건이 맞으면 현장으로 달려가 촬영할 수 있도록. 자연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요.”

 

그는 몇 년 전부터 자신의 작품을 인화해 미국과 한국에서 전시하고 판매해 왔다. 가로 세로 1.5미터, 1미터 수준의 대형 작품을 인화 코팅 장비를 이용해 제작한다. 처음엔 작품을 보고 탐내는 주위 사람들에게 판매했는데 최근엔 지인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한국에도 판매하고 있다. 그는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학계에 남거나 취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진 못해도 자연사진가로 사는 삶이 행복했기 때문이다.

 

이학 씨가 미국의 주요 국립공원 등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 사진제공: 이학
이학 씨가 미국의 주요 국립공원 등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 사진제공: 이학
이학 씨가 미국의 주요 국립공원 등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 사진제공: 이학

 

창업의 시작, ‘귀찮은 친구들

그는 2010년 스탠퍼드대 한국인 유학생 사진동아리를 만들었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어서였다. 함께 활동한 친구들과는 지금도 끈끈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다만 모임은 사진보다 여행에 초점을 둔 모임으로 성격이 변질(?)됐다. 그 변질된 모임이 그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저에게 맨날 물었어요. 어디 여행 가서 뭘 보고 뭘 해야 되느냐. 그런데 가이드를 잘 해주기가 어려워요. 미국 국립공원에선 대부분 휴대전화도 안 터지잖아요.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도 없죠. 흔히 아는 평균적 지식 이상으로 알려주려면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한 데 그걸 제공하는 건 어렵죠. GPS 좌표를 찍어주면 좋은데 그 정도까지 찍어주기 쉽지 않아요.”

 

하도 묻는 사람이 많다보니 유명한 여행지의 경우엔 아예 문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요세미티국립공원 같은 경우 가이드 요청이 오면 문서파일을 건네줬다. 하지만 그걸론 부족했다.

 

“사람마다 보고 경험하고 싶은 게 다르잖아요. 또 여행을 가는 날짜, 계절, 기간도 다르고요. 하이킹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잘 아는 사람이 같이 가는게 제일 좋지만 그게 안 되는 경우가 많죠. 이런 걸 안내해주는 여행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나 대신에 여행가이드를 해줄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보자. 그게 시작이었죠.”

 

이학 씨가 미국의 주요 국립공원 등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 사진제공: 이학
이학 씨가 미국의 주요 국립공원 등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 사진제공: 이학

 

볼 만한 공간들을 이으면 여행이 된다

그에게 여행은 여러 개의 점(dots)을 연결하는 것이다. 가서 볼 만한 공간들을 연결하면 하나의 여행 스토리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회사 이름을 프로젝트닷츠(Project Dots Inc)라고 지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사실 ‘점을 연결한다(connecting the dots)’는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2005년 6월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했던 표현이다. 잡스는 과거의 경험이 이어지고 이어져 지금의, 미래의 나를 형성한다는 의미로 썼다. 그에게 점(dot)은 경험이 아니라 공간이다.

 

“가 볼만 한 장소는 특별함이 있는 장소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특별한 장소가 있다는 가정 아래 출발하는 거예요. 그런 장소를 발견하고 공유하고 일정 순서로 연결하면 여행이 되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려고 해요. 이런 여행 플랫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는 여행 기간, 시기, 장소, 개인의 취향 등에 맞춰 여행 스케줄과 여행지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중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전문가이드가 없어도 여행 일정과 동선, 해당 지점의 여행정보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를테면 ‘여행 가이드 무인화 서비스’라고 할까.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는, 휴대폰 안테나가 잡히지 않는 지역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미리 정보를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미국인을 포함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상이라 모든 정보는 영어로 제작한다.

 

내년 여름 공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서비스엔 그를 포함해 6명이 팀으로 작업하고 있다. 의기투합한 주변 친구들이다. 얼마 전 그의 꿈에 공감하는 투자자에게서 적지 않은 금액의 투자도 받았다. 처음엔 세 형제 중 막내인 그의 예상 못한 행로에 근심이 가득했던 부모님도 지금은 그를 응원한다.

 

“거창할 건 없어요. 세상에 반드시 필요하고 쓸 모 있다고 생각하는 걸 만드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창업까지 하게 됐네요.”

황장석 팩트체커 sur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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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석 팩트체커    surono@naver.com  최근글보기
2002년부터 동아일보와 서울신문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2012년 스탠포드대학교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퇴사 이후 실리콘밸리 근처에 거주하며 한국 언론을 통해 실리콘밸리와 IT기업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17년 실리콘밸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한 책 <실리콘밸리 스토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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