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은 게이머들을 어떻게 중독시키나

[박현우의 게임 분석] 부분유료화와 게임중독성

  • 기사입력 2019.09.23 06:56
  • 최종수정 2019.09.23 12:28
  • 기자명 박현우

2019년 상반기 한국 게임계에서 가장 이슈가 된 것은 WHO가 “게임이용장애(gaming disroder)"를 질병코드에 등재한 일일 거다. 한국의 복지부는 WHO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입장을 냈으나 게임과 연이 깊은 문화체육관광부는 입장이 달랐다. 복지부와 문체부가 입장을 달리했지만, 한국 게임계는 어쨋거나 정부의 제재가 있을지 모른다는 압박을 받았고, 무슨무슨 단체를 필두로 무슨무슨 입장을 냈다. 방송사는 이 이슈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참여한 게임계의 사람들은 게임엔 아무런 죄가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아이들의 부모를 대변하는 사람들은 게임이 우리 아이들을 망치고 있거나 망칠 거라는 어디서 많이 보던 입장을 반복했다. 

정말 게임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완벽한 매체인가? 아니면 게임은 부모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의 공부 시간을 토막내는 타노스급의 빌런 같은 존재인가? 게임은 과연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해만 끼치는 매체인가? 아이들의 공부 문제만 제외하면 게임은 전혀 문제될 게 없나? 미성년의 학생들이 대입을 위해서 오직 공부에만 올인하는 건 정신 건강에 이롭나? 공부에만 매진하는 한국의 학생들은 안녕한가?

유독 한국에서 게임 중독은 미성년들의 공부와 연계되서 논의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성인들의 게임 중독에 대해서는 그다지 논의가 되지 않는다. 또, 모든 게임을 ‘게임'으로 퉁쳐서 논의하기 때문에 어떤 게임이 해롭고 어떤 게임이 좋은지에 관한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영화나 소설과 마찬가지로 게임도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이걸 한 덩어리로 보고 논의를 하면 어떤 생산적인 결론이 나올 수 있겠나.

게임이 중독물질인지 아닌지는 과학자가 아닌 내가, 데이터가 없는 내가 판단할 게 아니니 이 글에서 게임이 중독물질인지 아닌지 명확히 하지는 않을 거다. 다만, 나는 대부분의 한국 게임이 게이머들을 중독시키는 것에 상당히 집착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 중국, 일본 게임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중일의 게임들은 다양한 장치를 통해 게이머가 게임을 끄지 못하게 유도한다.

한국 게임들의 특징은 엔딩이 없다는 거다. 패키지 게임은 사실상 멸종한 상태고, 대부분 큰 덩치의 한국 게임사들이 개발하는 게임의 장르는 MMORPG다. 한국의 MMORPG 게임은 한 때 대부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처럼 한 달 이용료를 내야 이용할 수 있는 정액제 게임이었다. 게이머는 한 달 이용료를 내고 게임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으니 게임에 추가로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었다.

정액제 게임은 유저 하나하나가 모두 돈이 된다는 점 때문에 게임사의 먹고사니즘에 상당히 기여했다. 게이머들은 매달 혹은 매년 주기적으로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패키지 게임은 한 번 팔고 나면 같은 게이머에게 추가로 지갑을 열게 만들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요즘에야 DLC라면서 온갖 종류의 상품을 패키지와 함께 팔기는 하지만 DLC 판매는 게이머들에게 ‘반쪽 짜리 게임을 팔았던거냐'란 소리를 듣기 딱 좋기도 하고, DLC를 무한정 팔 수도 없기에 게이머들을 붙잡아놓을만한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다. 해서, 정액제는 패키지 판매보다 이용자들을 묶어두고 계속 돈을 뱉게 하기에 유리한 모델이다.

하지만 정액제 게임에도 한계는 있다. 매년 혹은 매달 이용료를 받기는 하지만, 이용료를 낸 게이머들은 추가로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게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기에 굳이 필요하지 않는 이상, 원하는 게 있지 않는 이상 지갑을 추가로 열지 않는다. 해서, 블리자드는 게임 내 캐릭터를 꾸밀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실물 피규어나 포스터를 팔기도 한다. 이 때 현금으로 구입할 수 있는 모든 상품들은 캐릭터를 전보다 강하게 만드는 식으로 게임 내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Pay To Win 상품이 아닌 거다.

이런 정액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모델이 부분유료화 모델이 아닌가 하는데, 한국 게임들이 대부분 이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PC 게임 <검은사막>은 출시 때부터 부분유료화 모델을 채택했다. 누구나 무료로 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게임을 켜고 캐릭터를 생성하는 것까지만 무료일 뿐, 정상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지갑을 열어야 했다. 나는 <검은사막>같은 부분유료화 게임을 한 달 동안 정상적으로 플레이하기 위해 써야하는 돈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한 달 동안 정상적으로 플레이하기 위해 써야하는 돈보다 크다 생각하고, 더 나아가 패키지 게임 하나를 영구적으로 구입해 영구적으로 플레이하는 비용보다도 높다 생각한다.

이런 나의 심증을 굳혀주는 사건들이 2019년에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한국 게임업계의 큰 손 엔씨소프트는 정액제 게임 <리니지>를 2019년 5월 2일부터 부분유료화하겠다고 했고, 얼마 안가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정액제 게임 <리니지2> 역시 부분유료화 모델로 전환했다. 엔씨는 이전에 <블레이드&소울>, <아이온>을 부분유료화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가 대단히 시혜적인 회사라 ‘앞으로 우리 게임을 무료로 플레이하게 해줄게!’라면서 부분유료화 모델을 채택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액제보다 명백하게 본인들에게 유리하다 판단했기에 운영하는 게임 모두를 부분유료화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앞에서 살짝 언급했듯이 부분유료화 게임은 게이머들을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이를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개발되고 있는데, 가장 많은 장치들이 탑재된 게임이 나는 모바일 게임이라 생각한다. 이 글에서 나는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을 다룰텐데, 내가 주로 했던 게임이라 이 게임을 다룰 뿐,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의 자칭 대작 게임들도 비슷한 성격을 공유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남긴다. 

한국에서 개발되는 대부분 게임과 마찬가지로 <검은사막 모바일>에는 자동사냥 시스템이 탑재되어있다. 캐릭터를 생성하고 강력한 장비를 캐릭터에게 입혀준 뒤 자동사냥을 돌려놓으면 이 캐릭터는 레벨 5~60까지 무난하게 혼자 무럭무럭 자란다. 자동사냥이 탑재되어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켜놓고 방치하게 두지는 않는다. 캐릭터는 혼자서 체력을 채워주는 물약도 마시고 다 하지만, 물약을 다 쓰면 죽는다. 죽으면 다시 살려서 자동사냥을 돌려야하기 때문에 게이머는 계속 폰을 확인해야 한다. 다른 문제도 있다. <검은사막 모바일>에는 ‘무게'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무게가 차면 캐릭터는 느려지고 약해진다. 느려지고 약해지면 캐릭터는 사망할 수 있기 때문에 인벤토리를 또 주기적으로 게이머가 직접 비워줘야 한다. 땅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다 인벤을 채워주는 건 반려동물인데, 반려동물에게는 계속 사료를 줘야 한다. 사료를 주지 않으면 아이템을 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게임사는 뭘 파나? 폰을 덜 신경써도 되게 해주는 상품을 판매한다. 인벤의 무게를 키워준다던가, 캐릭터를 죽지 않게끔 강하게 만들어주는 상품을 판매한다던가.

<검은사막 모바일>에는 출석 과제가 있어서 게임을 키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 푸시 알람을 켜놓으면 특정 시간에 특정 아이템을 준다고 알람을 줘서 게임을 키게 된다. 하루에 한 번만 시도할 수 있는 시스템도 여럿있는데, 주는 보상이 적지 않아서 많은 게이머들은 이런 시스템도 매일같이 이용한다. 하루에 한 번만 이용할 수 있고 오늘 이용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이머들은 이런 시스템을 ‘숙제'라고 하는데, 게임을 하는 입장에서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게임을 하는 느낌이 아니라, 게임에 이끌리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국 모바일 게임들은 지금 아니면 얻을 수 없는 보상들을 내세우면서 게임을 계속 키게 만들고, 한 번 키면 시도 때도 없이 과제를 줘서 게이머를 산만하게 만든다. 

게임에서 일단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뒤, 한국 게임들은 온갖 현금 상품들을 판매한다. 지금 아니면 구매할 수 없는 상품이라면서 캐릭터를 보다 강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는 거다. 이 상품들은 대부분 랜덤박스다. 열면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종의 빠칭코 상품들이 판매된다. ‘좋은 것'은 랜덤박스를 열어도 나올 확률이 낮고,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상품은 랜덤박스를 열면 나올 확률이 높다. 게임은 유저들을 산만하게  만들고, 그 안에 판매되는 상품은 도박성이 짙어서 계속 시도하게 된다. 판매되는 Pay To Win 상품들은 당연하게도 게임 내 밸런스를 망치고 돈을 더 많이 쓴 자가 이기는 세계를 구축하는데 일조한다.

대부분 한국 게임들이 이렇다. 다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개성은 물론이고 작품성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고, 여러 게임 시스템을 통해, 도박성이 짙은 상품을 통해 게이머들을 중독되게 만드는 것에 게임사의 영혼을 투입한다. 부분유료화라는 모델 자체가 게이머를 중독시키지 않고서는 생존하기가 힘든 모델이기 때문이다. 게임업계가 “게임은 중독 물질이 아닙니다”라고 노래를 부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이 게임은 충분히 예술적 가치가 있고,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라면서 언급할 수 있는 한국 게임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박현우   funder2012@gmail.com    최근글보기
'일간 박현우'를 연재하며 유료 구독자들에게 글을 연재하는 일이 주업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헬조선 늬우스' 관리자이며 영화, 미드, 게임, 애니, 페미니즘,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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