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안에 4명이 살고 있다...그리고 사건이 벌어졌다

[홍상현의 인터뷰] 영화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 아스카 린

  • 기사입력 2019.09.11 07:11
  • 최종수정 2019.09.11 12:28
  • 기자명 홍상현
“Though it had not all the decided pretension, the resolute stylishness of Miss Thorpe’s, had more real elegance. Her manners showed good sense and good breeding; they were neither shy nor affectedly open; and she seemed capable of being young, attractive, and at a ball without wanting to fix the attention of every man near her, and without exaggerated feelings of ecstatic delight or inconceivable vexation on every little trifling occurrence.”
눈에 띄는 가식도, 소프(Thorpe) 양처럼 두드러지게 유행을 타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으나, 풍기는 분위기는 훨씬 더 우아했다. 그녀의 태도에서는 양식(良識)과 예의바름이 드러났다. 지나치게 수줍어하지도, 부자연스럽게 대범한 척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충분히 젊고 매력적이었지만, 무도회장에서 가까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매번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에 대해 지나치게 반색하는 과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느닷없이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차분한 얼굴로 게스트 뷰(GV)를 기다리는 그녀를 보며 제인 오스틴의 소설, 『노생거 수도원』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비쩍 마른 몸매에 뻣뻣한 검은 머리카락, 인형놀이보다 크리켓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누구도 소설의 여주인공이 될 운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주인공은 위와 같이 묘사되는 엘러너 틸리에게 호감을 느낀다. 반생을 넘게 벗해온 불면증을 쫓아보려 할 때마다 꺼내드는 이 로맨틱노블 속 인물과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아스카 린 사이의 연상(association).

시계를 13년 전으로 되돌린다. 필자의 ‘인생영화’에 포함되는 두 작품(<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ㆍ<Go>)의 히로인(사바사키 코우)이 10번째로 발표한 싱글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녀는 연인이 기다리는 부둣가를 향해 달려갔다. 『노생거 수도원』이 영문학자 피터 사보르의 손을 거쳐 케임브리지 에디션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그로부터 두 달 뒤. 리젠트파크의 장미송이처럼 붉은 빛의 양장본을 펼쳐든 순간 떠오른 것은 여름 내 질릴 만큼 들었던 그 노래의 전주였다.

5년 후 여름, 멍한 표정으로 거리를 배회하다 찾아 들어간 극장에서 그녀와 재회했다. 르네상스 희곡을 무대화한 작품은 아니지만 이후에도 무척 오랫동안 그녀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기에는 충분했다. 한 인기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모여든 사람들과 복잡하게 뒤얽히는 내면연기가 객석을 압도하지만 끝끝내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 심리회화극(心理會話劇) <열하나의 소소한 거짓말>. 뭔가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 지진해일에 친구를 잃고, 혼란에 휩싸인 필자의 머릿속을 풀어헤쳐놓은 것 같은 작품을 보고, 그날 밤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서재 한 구석의 양장본을 꺼내든 것은 그 즈음이다.

드디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판타스틱 레드 부문 초청작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의 상영이 끝나고 그녀가 등장했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여우령>과 <링> 시리즈, 그리고 한ㆍ일 합작 영화 <라스트 씬> 등으로 알려진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신작. 어린 시절의 정서적 상처로 레즈비언 ‘나오미’, 자유분방한 ‘유카리, 어린 소녀 ‘하루’, 세 사람의 다중인격이 형성되어, 이내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는 히로인 ‘쿄코’로 분한 그녀는 관객의 질문 하나하나에 성의 있게 답했다. 82분의 상영시간 동안 한 번의 호흡을 한 것처럼 관객을 몰입시킨 작품도 작품이었지만 필자가 주목한 것은 2019년 7월 2일을 기준으로 한 그녀의 생물학적 연령이었다. 28세, 제인 오스틴이 모두에 언급한 『노생거 수도원』을 발표한 나이다.

 

7월 2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 판타스틱 레드 부문 초청작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가 상영되던 CGV부천 3관 앞에서. 배우로 데뷔한 이래 처음 참가하는 국제영화제의 GV를 앞두고 아스카 린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 Avex Management Inc. 제공

 

홍상현: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가 BIFAN에 초청되자 한국에 직접 관객을 만나러 오셨다. 평소 워낙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데.

아스카 린:

특히 호러영화를 좋아한다. 대표작은 <장화, 홍련>. 클리셰가 아닌 드라마적 장치를 통해 점층적으로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연출이 훌륭하다. 해리성 정체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연기하는 히로인(염정아)이 인상적이라 몇 번이나 다시 보았고,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많이 참고했다.

 

홍상현:

열다섯 살 되던 해 오디션을 통해서 데뷔했다. 대개 아이돌 생활을 하면서 지명도를 높인 뒤에 시작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곧장 배우의 길을 걸었다.

아스카 린:

그때까지의 삶에서 해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경험을 원했다. 오디션 당시“어떤 분야의 일을 해보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원래부터 호러 팬이었던 까닭에 망설이지 않았다. 예컨대 제가 호러영화의 주인공이 겪는 상황이란 일상적인 삶에서 결코 발생하지 않을 테니까. (웃음)

 

홍상현:

데뷔 직후 출연한 뮤직비디오에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날 이후, 필자에게 아스카 린이라는 사람은‘주어지는 역이 무엇이든 스스로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각인되었다.

아스카 린:

정말 영광이다. (웃음) 말씀하신 뮤직비디오는 제가 소속사에 들어간 지 사흘째 되는 날 촬영했다. 현장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좋은 추억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사람을 좋아해서 어딜 가더라도 모든 게 새롭고 즐겁다. 연출자를 비롯한 현장 스태프 분들과 내내 소통하면서 작업을 해나가려 노력한다.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의 상영 종료 후 30분간 이어지는 GV에서, 아스카 린은 특유의 성실한 태도로 관객의 질문 한 마디 한 마디에 최대한 성의 있게 답변해주었다. 사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공

 

홍상현:

이후 성년이 될 때까지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본인이 원한 길이었지만 또래들과는 좀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

아스카 린:

고교시절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방과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가거나 햄버거를 먹으러 가는 등 평범한 일상을 즐길 여유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 만끽해보려고 노력했다. 학교에 친한 친구도 많았다. 참가하지 못한 수업의 내용을 알려주거나, 오랜만에 나타나도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와 주었던 친구들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홍상현:

그리고 보니 14년째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면서도 늘 대중과의 소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아스카 린:

10대 시절에는 아예 팬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자체가 없었다. 무대 인사를 하더라도 안전상의 이유로 사인ㆍ사진촬영 같은 부탁에 거의 응해드리지 못했고, CD 발매 이벤트 때도 사인과 간단한 인사 외에 간단한 질문에 답해드릴 여유조차 없었다. 죄송하기도 하거니와 저 스스로도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제게 이런저런 일들을 결정한 권한이 주어진 뒤부터 현장에서는 물론, SNS를 이용한 소통도 기쁜 마음으로 해나가고 있다.

 

홍상현:

보통 이 즈음에서 ‘장르영화’에 관한 질문을 하는데, 이번 인터뷰에서는 앞의 발언과 관련해서 좀 더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언제부터 호러 팬이 되셨나?

아스카 린:

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유치원 때부터 금요일 밤 지상파 TV채널에서 방영하는 <엑소시스트> 같은 작품을 혼자 보았다고 한다. (웃음) 좀 더 자란 후에는 쭉 대여점에서 유명 호러영화 시리즈를 빌려다 보았다. 캐릭터도 하필이면 도깨비 같은 걸 좋아했고. (웃음)

 

아스카 린은 팬들과의 소통에 공을 들이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무대 인사를 하더라도 안전상의 이유로 사인ㆍ사진촬영 같은 부탁에 거의 응해드리지 못했고, CD 발매 이벤트 때도 사인과 간단한 인사 외에 간단한 질문에 답해드릴 여유조차 없”었던 10대 시절, 늘 미안함과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진: Avex Management Inc. 제공

 

홍상현:

“호러 신동”이셨나. (웃음) 앞서 언급한 것들 외에 스릴러나 판타지의 성격이 가미된 작품도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아스카 린:

그렇다. 제가 연기자이다 보니 아무래도 주연배우에 집중하게 된다. 잭 니콜슨 주연의 <샤이닝>이나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식스 센스> 등을 무척 흥미롭게 봤다. 슬래셔 영화(slasher movie)처럼 잔혹하고 충격적인 장면이 이어지기보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작품을 선호한다.

 

홍상현:

호러나 스릴러에서의 연기는 배우에게 많은 정서적 부담을 준다. 게다가 필모그래피를 보면 꽤 다작을 하신 편인데 어떻게 재충전을 하셨나.

아스카 린:

전에는 배역에 너무 몰입하다 촬영이 끝나면 후유증을 경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감정의 기복은 말 할 것도 없고, 극중에서 쓰던 사투리가 입에 배어 애를 먹은 적도 있다. 하지만 딱히 스트레스 해소책을 찾을 수도 없었는데, 반려견이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일이 끝나면 하루이틀정도 내내 반려견 옆에 찰싹 붙어 지낸다. 의식의 정화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홍상현:

성년이 되던 해(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해이기도 했지만), 연기자로서의 전기를 맞는다. 당시까지의 모든 절대적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진실에 대해 회의하는 내면연기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아스카 린:

<열하나의 소소한 거짓말>은 제가 주연으로 무대연기에 도전한 첫 작품이다. 아시다시피 연극이란 게 관객 앞에서 직접적으로 연기를 선보이는 예술장르라 작품에 임할 당시의 긴장감이 상당하다. 일단 저 자신 작품에 흥미를 느끼며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는데, 다행히도 이야기가 워낙 재미있었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다양한 내면연기를 실연(actual performance)하는 작업은 제 장르적 취향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계기였다. 이후 좀 더 깊은 인간내면을 파고들어가 봐야겠다는 결심도 굳혔고.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은 호러 팬인 아스카 린이 꼽는 최애(最愛) 한국영화. “클리셰가 아닌 드라마적 장치를 통해 점층적으로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연출이 훌륭하다. 해리성 정체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연기하는 히로인(염정아)이 인상적이라 몇 번이나 다시 보았”다고. 사진: Avex Management Inc. 제공

 

홍상현: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는 나카다 히데오 감독과의 두 편째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나카다 감독의 작품이 가진 매력을 꼽아본다면?

아스카 린:

어떤 장면을 표현할 때, 영상에서 현장의 공기까지 느껴질 정도의 생생함을 전해준다. 당대의 풍경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이는 저 개인적으로 가장 큰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연성 없는 별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이어져있는 느낌.

 

홍상현: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어땠나?

아스카 린:

무척 수월하게 읽혔다. 일단 작품의 개요에 대해 브리핑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원작소설을 꼼꼼하게 읽었거든. 다만, 병상(syndrome)을 기준으로 한 인물분석은 꽤 힘들더라. 각각의 인격이 발현되는 시점 전후의 상황을 유추하기 쉽지 않아서. 시각화시켜서 보여드리면 어렵지 않은 것 같아도 그건 최종단계니까.

 

홍상현:

말씀만 들어도 촬영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나카다 감독은 어떤 디렉션을 하셨나.

아스카 린:

나카다 감독은 어떤 장면이든 촬영하기 직전, 반드시 출연자와 디스커션을 거친다. 먼저 개요를 설명하고 배우와 의견을 조율하는 거다. 다음에는 리허설이 이어진다. 일반적인 촬영보다 시간이 걸리지만 견고한 연출이 가능하다.

 

나카다 히데오 감독과는 두 번째 작품인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에서 아스카 린은 어린 시절의 상처로 해리성정체장애를 갖게 되고, 끝내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 쿄코로 분했다.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 스틸) 사진: KADOKAWA Corporation 제공

 

홍상현:

주인공인 ‘쿄코’를 포함한 네 사람의 인격을 어떻게 분석해냈는지 궁금하다.

아스카 린:

‘관계’에 주목해서 네 사람을 이해했다, 일단 주인공인 ‘쿄코’가 있고, ‘나오미’는 ‘쿄코’를 위해 존재한다. ‘유카리’는 타자와의 접촉을 매개하며, 이 세 사람을 움직이는 일종의 ‘사령탑’ 역할을 수행하는 게 ‘하루’다. 주인공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형성된 인격이 나머지를 지배하고 있는 거다. 네 사람의 인격이 각자 서로에게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나머지 세 사람의 인격을 재현해준 동료 배우들도 이런 제 인식에 동의해주었고, 그렇게 하나의 분석틀을 세워놓으니 연기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기준이 만들어지더라.

 

홍상현:

네 사람의 인물들에 대한 심리묘사가 무척 디테일한데, 연기적 표현에서 특별히 역량을 집중한 포인트가 있나.

아스카 린:

저라는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특정한 상황이나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예컨대 작품의 결말이 상당한 배드 엔딩(bad ending)으로 보일지라도, 그게 작품에 등장하는 네 사람의 캐릭터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으니까. 어떤 결과와 맞닥뜨리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했을 경우.

 

홍상현:

그래서일까,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의 ‘쿄코’라는 인물은 단순히 ‘1인 4역’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각각의 인격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는 느낌이다.

아스카 린:

그렇게 봐주셨다니 감사하다. 다른 캐릭터를 표현하는 나머지 세 사람과 호흡이 좋았다. 작품을 하면서 만났지만 인간적으로도 무척 친밀한 관계가 되어, 각자의 출연 분량을 촬영하지 않을 때도 항상 같이 있었다. 작품이 설정해놓은 롤(role)과도 무척 닮아있다. ‘유카리’가 분위기를 밝게 주면, ‘하루’는 어른스럽게 다른 친구들을 보살핀다. 나오미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그리고 저는 이 상황을 조망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게 신경을 썼다. 우리들의 일상과 배역에서의 위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열다섯 살 때 데뷔한 아스카 린은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세월의 절반 가까이 연기자의 길을 걸으며 12편의 영화와 25편의 드라마, 8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그 과정에서 제인 오스틴의 말마따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모습으로, ‘주어진 순간의 최선’을 다했다. 사진: 하세가와 료(Ryo Hasegawa) 촬영

“‘해 본 적 없는 경험’에 대한 갈망으로 배우가 되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 사람의 여성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환경도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시대의 달리진 여성상을 연기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맡은 배역은 아무래도 드라마 안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제 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때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BIFAN 초청(※ 배우 데뷔 이래 첫 번째 해외영화제 참가라고 한다)은 제 연기 인생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출연한 영화를 한국의 관객들과 같이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거든요. 연기자로 살 수 있어서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듯하고 다정하게 맞아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다시 한국 관객 여러분과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재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떤 롤모델(role model)을 정해놓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관객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싶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세월의 절반 가까이 연기자의 길을 걸으며 12편의 영화와 25편의 드라마, 8편의 연극에 출연한 그녀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인사를 나누면서 지난 13년의 시간 동안 짜 맞추지 못했던, 아니 미처 짜 맞출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던 퍼즐조각을 떠올렸다.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호러와 스릴러, 액션, 때로는 추리와 서스펜스와 액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이 배우는, 제인 오스틴의 말마따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they were neither shy nor affectedly open’의 의역)” 모습으로, ‘주어진 순간의 최선’을 다했다.

다시 그녀와의 재회가 이루어지는 것은 언제일까.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부터 다시 그녀의 새로운 필모그래피가 쌓여 가리라는 사실이었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ㆍ일 양국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같은 학교 이미지인류학랩(IAL)의 네트워크 멤버였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 지면은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어쨌거나 괜찮아』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국내에 소개해 온 번역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비상근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주요뉴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