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고장' 해군 유도탄, 정말 방산비리인가

  • 기자명 임영대
  • 기사승인 2019.10.15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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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국정감사 기간이다. 그러다 보니 각 국가기관이 품고 있는 문제점이 연달아 언론에 노출되고 있다. 10월 9일 하루만 해도 국방위원회에서 제기된 안건 중 2가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수도권 대공 방어 주요 무기체계인 ‘천마’ 미사일 운영 체계가 DOS(도스) 프로그램인 것으로 9일 확인됐다. 도스 프로그램은 1980년대 286급 컴퓨터에서 사용된 운영 체계로 지금은 시중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은 이날 "천마는 지난 1999년 수도방위사령부에 처음 배치된 이후 단 한 번도 성능 개량이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같이 밝혔다.
1대에 170억 천마 미사일운영 체계는 80년대 '286 컴퓨터', 조선일보 (입력 2019.10.09 13:06 | 수정 2019.10.09. 19:01)

 

영국에서 제조된 이 유도탄은 이미 2천 년대 초반 생산이 중단됐고, 업체마저 폐업 상태여서 정비도 불가능합니다. 유도탄 한 발의 가격은 5억천만 원에서 9억2천만 원에 달하니까, 수백억 원어치를 써보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 겁니다. 

[김병기 / 더불어민주당 의원 :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해외에서 구매하는 무기들은 단종 또는 폐업 시 수급 문제까지도 고려했어야 했는데, 해군은 이에 대한 대책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더기 결함으로 관리 부실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습니다.

2건 모두 현재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무기를 제대로 유지,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스를 접한 상당수의 네티즌들은 이것 역시 보수정권에서 벌어진 방산비리라는 식으로 부당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는 두 건 모두 문제라고 할 수도 없는 지적이다. 천마 지대공미사일 체계가 낡은 시스템으로 가동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미사일이 낡아서 쓸 수 없게 된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왜 천마 시스템은 낡아도 괜찮고, 유도탄은 낡으면 안 되는 걸까?

 

시스템은 낡아도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차이다. 자세히 보자.

천마 지대공미사일은 지속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군용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으로, 최신기술은 그렇게까지 민감한 문제가 아니다. 먼저 들 수 있는 사례로 미 해군의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요크타운의 사고사례가 있다.

<사진1> 타이콘데로가급 미사일 순양함 요크타운의 모습.

1996년, 미 해군은 ‘스마트 전함’ 개발을 위해 최신 컴퓨터인 펜티엄 프로를 사용하는 윈도우즈 NT 운영체계를 기반으로 설계된 새 컴퓨터 시스템을 CG-48 요크타운에 설치했다. 요크타운은 1984년에 취역한 순양함으로, 당당한 미군의 주력 전투함이었다.

문제가 터진 건 다음 해인 1997년 9월 21일이었다. 초보적인 데이터 입력 실수 때문에 함내 네트워크 전체가 오작동을 일으켜 다운되었고, 추진장비까지 모두 작동을 멈췄다. 그래서 요크타운은 예인선에 끌려서 항구로 돌아가야 했다.

2017년에는 더 심각한 사고가 있었다. 1994년에 취역한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인 존 S. 매케인(DDG-56) 호는 2016년에 최신 통합 함교 운항 시스템(IBNS)을 설치했다. 기존에 있던 기계식 통제시스템을 개선한 획기적인 시스템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운용에 들어가고는 고작 1년 만에 라이베리아 선적의 민간 유조선과 충돌해서 수병 10명이 실종되고 5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사진2> 충돌로 파괴된 존 S. 매케인 호의 선측.

 

2년에 걸친 사고 원인 조사 결과는 피로에 지친 승무원들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새 시스템을 조작하다가 실수를 범했다는 것이었다. 미 해군에서는 IBNS 디자인에 담당 승무원의 실수를 유발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고, 문제가 된 부분에서 최신기술인 터치스크린 대신 옛날식 수동조작장치를 다시 집어넣기로 했다(분석: 나쁜 소프트웨어 디자인은 군함도 충돌하게 만든다). 

미사일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한참 적기를 추적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기계가 리셋되거나, 화면 위에 블루스크린이 뜬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곤란한 상황이 초래된다. 그래서 개발할 당시에 장착한 안정화된 시스템을 잘 바꾸지 않는다.

물론 설계 당시 상정한 성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만큼 시스템이 상태가 나쁘다면 개선조치가 필요하다. 한국 해군이 보유한 광개토대왕급 구축함(KD-1)의 경우, 수시로 시스템이 다운되는 문제가 지적된 바 있다.

국회 보고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전투체계에서 24번의 셧다운(shutdown)이 발생했고, 해군은 셧다운을 막기 위해 매일 전투체계를 리셋(reset)하고 있는 실정이다. 군 소식통은 "광개토대왕급이 진수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당시엔 우수한 전투체계였지만 급속한 기술 발달로 노후 장비가 된 것으로 업그레이드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20前 컴퓨터(486장착 구축함(광개토대왕함), 한달에 한번꼴 다운 (조선일보, 입력 2014.10.14 03:05 | 수정 2014.10.14. 10:41)

안정적인 운영을 어렵게 하는 이런 문제가 있다면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필요해진다. 하지만 저런 문제 없이 원활한 작동을 하고 있다면, 기반 프로그램이 구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스템을 교체할 필요는 없다. 새 시스템이 오작동했을 때 부담해야 할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소모품은 낡으면 안 된다!

김병기 의원이 지적한 ‘해군의 고장난 대함 유도탄’은 해군이 영국에서 수입해온 시 스쿠아(Sea skua) 미사일이다. 헬기나 고속정에 장착하는 소형 대함미사일로, 과거 포클랜드 전쟁과 걸프전에서 실전 투입되어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 바 있다.

몇억 원씩 되는 미사일이 몇십 발이나 못 쓰게 되었으니 아까울 만도 하다. 문제는 미사일 자체가 본래 수명이 있는 소모품이라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총에 비유해 보자. 총은 녹슬지 않게 잘 관리하고 보관에 주의하면 100년 전 사용하던 총이라고 해도 문제없이 쏠 수 있다. 하지만 탄약은 화약이 변질되거나 탄피가 부식되는 등의 문제로 100년 전 탄약을 그대로 쓸 수 없다. 불발탄이 되거나 폭발할 수 있어서다.

미사일 역시 소모품인 탄약이다. 아무리 잘 보관해도 화약, 추진제, 전자부품 등이 수명이 다 되면 발사할 수 없게 된다. 케이스를 밀봉하고 질소가스를 채워서 부식을 막아도 10년, 15년이면 쓸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럼 한국군이 보유한 시 스쿠아 미사일은 몇 년이나 되었을까? 이 미사일은 1991년에 링스 헬기를 처음 영국에서 수입할 때 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2000년에 2차로 링스를 도입했을 때 일부 도입되었을 공산이 있다. 초기 도입분은 이미 28년이나 되었고, 2차 도입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19년이나 되었다. 아직 절반이 작동하고 있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다.

탄약이 낡으면 새 탄약으로 교체하는 게 상식이다. 영국에서도 시 스쿠아 미사일의 후계로 이미 시 베놈(Sea Venom)이라는 새 미사일을 2020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개발하고 있다.

한국 해군도 손을 놓고 있지 않다. 원 기사에도 언급하고 있지만, 해군에서도 2016년에 시 스쿠아 미사일의 고장 문제를 인식하고부터 계속 새 미사일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후계기종이 결정되지 않고 예산이 없을 뿐이다.

훈련탄으로라도 소모하지 못하고 미사일을 버리는 건 분명 아까운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수명이 다 된 물건이고, 이건 해군이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다. 근성으로 유지할 수도 없는 소모품을 폐기하는 문제로 방산비리를 들먹이는 건 원활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진짜 방산비리를 없애는 일에서도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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