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본인'을 좋게 써도 되나?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7.08.14 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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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환의 한글 팩트체크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중인 정재환 성균관대 초빙교수가 <뉴스톱>에 한글과 역사에 대한 팩트체크 글을 2주 간격으로 연재합니다. 

최근 '용가리과자'라 불리는 질소과자를 먹은 초등학생의 위에 구멍이 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8월 4일 서울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용가리과자를 개발한 한 모씨는 “과자를 먹을 때 액화질소가 혀에 달라붙을 수 있어 물기가 있으면 털어서 먹으라고 할 정도로 주의를 요구했는데, 일부 업체들이 판매 직원 교육을 소홀히 한 게 사고로 이어졌다”면서 “이 과자를 처음 상품으로 만든 사람으로서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사의 제목은 용가리 과자 개발자 “이 과자 유행시킨 장본인으로서 도의적 책임 느낀다”였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장본인이란 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다. 뜻풀이 아래 예문으로 다음 두 문장이 실려 있다.

㉠ 이렇게 되기까지 그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은 김강보였다. ≪김원일, 불의 제전≫
㉡ 그 이듬해 봄, 다시 또 험한 일이 벌어졌는데 마을을 이토록 쑥밭을 만든 장본인인 그 대학생은 그 돈을 쥐고 한번 마을을 나간 뒤 전혀 소식이 없었다. ≪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영화 박열의 한 장면. ‘장본인 박열’이라고 적혀 있다.

장본인의 의미를 ‘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장본인은 뭔가 나쁜 일을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러시아 스캔들’ 장본인 키슬야크, 워싱턴 떠난다···러 대사관 공식 발표」라든가 「김현수에 맥주캔 던진 장본인, 지금 뭐하나 봤더니…」와 같은 표현이 모두 이와 같이 표현된 예다. 그런데 분위기가 사뭇 다른 표현도 많다.

유선호 ‘공항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

‘비밀의 숲’ 카타르시스 이끈 두 장본인..조승우·배두나

유선호의 공항패션을 소개한 짤막한 기사 내용을 보면, 유선호가 해외 일정 때문에 인천공항에서 괌으로 출국하는데, 유선호를 알아본 청소년들이나 팬들이 주위에 몰려 분위기가 좀 왁자지껄해졌다는 얘기인 듯하다. 이 소란이 공항 내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다거나, 정상적인 공항 운영에 막대한 장애를 초래했다는 것을 보도하는 기사로는 보이지 않는다.

조승우와 배두나에 대한 기사 역시 같은 맥락이다. “날카로운 사회 비판도 서슴지 않는 tvN 토일드라마 ‘비밀의 숲’을 향해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는 기사의 본문을 보면, 두 사람이 이 드라마에서 연기를 잘 못하고 있다거나,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지적은 아니다. 오히려 호평이다.

그럼에도 제목만 봐서는 유선호, 조승우, 배두나가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당사자들도 당황하지 않았을까? 한자어에 대한 정보를 담은 사전에서는 장본인을 다음과 같이 더욱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나쁜 일을 일으킨 주동자나 좋지 않은 단체의 우두머리 등을 가리킨다.
못된 일을 저지르거나 물의를 일으킨 바로 그 사람.
→ 전광진,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 1544쪽.

그래서 ‘스포츠 강국을 이끈 장본인’이라든가 ‘미제 사건 해결의 장본인’이라든가 하는 표현은 한국어 사용자를 당황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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