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아이들'인가?

  • 기자명 박기범
  • 기사승인 2017.08.29 20: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한국의 연예계는 '아이돌' 세상이다. 멋진 외모와 실력마저 겸비한 아이돌 가수들이 넘쳐 난다.  본업인 노래와 춤 뿐 아니라 토크쇼, 리얼리티쇼, 연기, 그리고 영화까지 섭렵한다. 음악 소비자의 절대 다수가 10대와 20대로 재편된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어리지만 실력 있는 아이돌은 이 시대 대표적 문화 생산자이자 한류의 주체가 되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아이돌'의 '아이'가 혹시 '어린 아이' 또는 '아이들'을 뜻하는 것인가? '아이돌'의 '돌'은 예쁘고 귀여운 '인형(doll)'을 의미했던 건가? 갑자기 헷갈린다. 나이가 들었거나 한물 간 가수들은 '성인돌'이라고도 불린다. 그럼 '성인돌'은 성인이 되어버린 '인형(doll)'인 건가? 고령에도 여전한 귀여운 외모 덕에 '인형'으로 불러 주는 건가? 

영어 'idol'로 검색하면 이 사진처럼 신을 형상화한 조각상 사진이 많이 검색된다.

아이돌(idol)은 원래 '모양' '형상'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에이도(ειδo)에서 파생했다. 이후 라틴어 이돌룸 (idolum:남신)과 이돌라(idola:여신)를 거쳐 현재는 '우상' 혹은 '존경의 대상'을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영어사전을 봐도 아이돌에 '아이들' 혹은 '미성년자'의 의미는 전혀 없다. 오직 가수에게만 해당하는 명칭도 아니다. 따라서 '주로 10대로 구성된 어린 나이의 그룹'만을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영어 idol은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은 대중가수'를 뜻한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즈(the Beatles) 등 서양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가수들이 아이돌(idol)로 불렸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아이돌 프랭크 시나트라가 아이돌로 불린 나이는 서른 살 이후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첫 앨범 <Elvis Presley>가 나온 것도 1956년 그의 나이 만 21세 때다. 비틀즈 역시 존 레논이 만 22세를 넘긴 1962년에서야 첫번째 메이저 앨범 <Love Me Do>를 발표했다. 

2007년 데뷔한 한국의 대표적 아이돌 걸그룹 소녀시대. 한국에서 아이돌이란 표현은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의 8회 우승자 아담 램버트(Adam Lambert)도 우승 당시 25세의 '어른' 혹은 '성인'이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쓰는 '아이돌'이란 말은 매우 이상한 말이다. 10대라고 아이돌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아이돌이 반드시 10대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아이돌 대신 걸그룹(girl group), 보이밴드(boy band) 혹은 '10대 아이돌(teen idol)' 정도로 부르는 게 적당하다. 

최초의 한국형 아이돌은 20대 초반에 데뷔한 보이밴드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뒤를 이어 인형(doll)처럼 귀여운 보이그룹 H.O.T 역시 아이돌의 반열에 등극했다. 한국에서 아이돌이란 정체불명의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한국에서 아이돌이 어린 아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쓰이는 이유는 '아이들'과 영어단어 '아이돌'의 발음이 유사한 탓일 수도 있다. 실제 idol의 영어 발음은 [아이돌]보다는 [아이들]에 훨씬 더 가까우며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아이들'로 적어야 한다. 물론 잘생긴 이들의 외모도 '아이돌'의 '돌'과 아주 잘 어울린다.  2003년에는 급기야 국립국어원이 '아이돌'을 신조어로 공식 인정하기도 했다.  

2011년부터 시작된 MBC every1의 '주간 아이돌'은 소년 소녀그룹을 스튜디오로 불러 각종 '개인기'를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아이돌'의 쓰임새를 잘 보여주는 사례.

그러나 이제 막 데뷔한 10대 그룹을 아이돌이라 부르는 건 좀 심하다. 아직 인지도나 인기가 일천한 상태의 신인을 '우상'으로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성인이 된 중견가수를 아이돌과 차별(?)해서 보도하는 언론 관행도 어색하다. 예를 들어, <임창정 아이돌도 꺾었다... 올해를 빛낸 가수 1위>라는 모 신문기사는 '아이돌'이란 명칭을 10대 아이들 그룹에 한정해서 사용하고 있다. 노래, 연기, 춤, 예능까지 못하는 게 없는 임창정은 이미 엄연한 '아이돌'인데도 말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