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는 어디서 왔을까?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7.09.24 23: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동안 학교에서도 방송에서도 자주 불러주지 않아 비교적 한가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독서하고, 영어 공부하면서 소일했다. 한마디로 ‘방콕’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정재환 씨인가요?”

“네, 정재환입니다.”

“택배인데요, 지금 집구석에 계시나요?”

“네??????”

바쁘고 경황이 없어 그랬겠지만, ‘집구석’이란 말은 “저 요즘 그냥 집구석에 있어요.”라고 자신에 대해 설명할 때는 가능하다. 물론 막역한 사이라면, “집구석에 처박혀 있지 말고 바람 쐬러 나와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 상황은 역시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우리말은 같은 어휘라고 해도 적절히 상황에 맞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택배 아저씨 얘기로 시작했지만, 그분의 창의적인 언어 사용을 탓하려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택배’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 활성화되면서 현재 국내 택배 회사만 해도 수십 개에 이른다. 우체국도 ‘우체국택배’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직접 장에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상품을 주문하면 택배로 운반된다. 택배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택배 기사’나 ‘택배 아저씨’라고 부른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택배차를 볼 수 있고, 택배 아저씨들이 형편없는 보수를 받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택배가 좀 늦게 오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사람들도 많다.

“택배 아직 안 왔니? 이거 뭐야, 2, 3일이면 온다고 하지 않았니?”

“아저씨, 택배가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해요? 택배 기다리느라고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했잖아요.”

 

그런데 과거 우리는 ‘택배’가 아닌 ‘우편배달’이나 ‘소포’ 같은 말을 썼다. 그러면 이게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택배는 본디 우리말이 아니다. ‘택배’는 일본에서 왔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를 봐도 이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택배: 우편물이나 짐, 상품 따위를 요구하는 장소까지 직접 배달해 주는 일. ‘문 앞 배달’, ‘집 배달’로 순화.

 

위 설명으로 눈치를 채셨겠지만, ‘문 앞 배달’, ‘집 배달’로 순화하라는 것이, 택배가 일본어에서 왔음을 암시한다. 일본어에서 택배의 뜻은 다음과 같다.

たく‐はい【宅配】: 新聞・牛乳・荷物などを戸別に配達すること。(신문, 우유, 하물 등을 집까지 배달하는 것.) 일본 코토뱅크

위 사진은 일본의 유명한 택배회사 중 하나인 ‘야마토운수(ヤマト運輸)’의 트럭이다. 일본을 여행하신 분들은 검은고양이가 그려진 이 차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한 개의 돌로 두 마리의 새를 잡는다는 일석이조란 말이 있다. 오늘 얘기가 이에 해당한다. 일단 택배가 본디 우리말이 아니라는 것을 밝혔다. 또 하나 밝힐 것은, 이 말은 그저 ‘물건을 배달하는 행위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택배를 ‘택배를 통해 전달되는 물건’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택배를 말뜻에 맞게 엄격하게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면 “택배 왔니?”란 말은 “내가 주문한 물건 혹은 상품 왔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택배 왔니?”란 말은 “‘우편물이나 짐, 상품 따위를 요구하는 장소까지 직접 배달해 주는 일’ 왔니?”란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말은 뜻이 변형되기도 하고, ‘택배’처럼 다소 이상하게 부려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택배 아저씨가 주문한 물건 갖고 왔니?“라고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 확인’을 하는 뉴스톱 팩트체크의 목적에 충실하게 그저 ‘사실이 그렇다’는 거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