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위법?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7.11.0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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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 국정감사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서 설치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이른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행정기관위원회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해체해야 한다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진상조사위가 법령이 아니라 훈령에 의해 구성됐고, 훈령에 의해 구성된 위원회가 조사 기능을 갖는 것이 위법이라는 이유에서다.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지난 7월 31일 출범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문체부 훈령에 의해 설치됐다. 지난 9월 19일 열린 국회 교문위에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조사위의 성격을 “자문기구”로, 법률적 근거는 “행정규칙인 문체부 훈령에 두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관행적으로 훈령에 근거해 위원회 설치...이전 정부때도 논란

훈령이란 행정규칙의 일종으로, 상급행정기관이 하급행정기관에 대해 장기간에 걸쳐 그 권한 행사를 일반적으로 지시하기 위해 발하는 명령이다. 훈령은 원칙적으로 법규와 같은 성질을 갖고 있지 않아서 하급행정기관을 구속할 뿐, 직접 국민을 구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행정조직 내부에서는 하급행정기관을 구속하므로 사실상 법규와 같은 기능을 한다. 훈령의 실정법상 근거는 정부조직법 제6조 1항에서 행정기관의 권한 위임과 위탁에 대해 규정한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이 훈령을 근거로 설치된 위원회는 위법일까?

각종 행정기관의 위원회가 훈령에 의해 설치되는 경우는 일일이 셀 수 없을만큼 관행적이다. 위원회는 의사결정 과정에 여러 사람이 참여하여 표결의 방법에 따라 나의 의사를 결정하는 합의제 기관으로써, 법률적으로는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행정기관위원회법)에 근거해 설치된다.

위원회에 관한 입법을 하려면 위원회의 성격과 기능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위원회는 정부조직법에 의해 설치되는 합의제 행정기관인 위원회, 또는 합의제 행정기관이 아닌 위원회를 둘 수 있다. 합의제 행정기관인 위원회는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고 대외적으로 이를 표시하는 권한이 있는 관계로 법률에 그 설치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부속기관으로서의 위원회는 의사결정이 바로 국가의 의사로 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법률에 설치 근거를 둘 필요는 없다. 때문에 훈령에 의해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 자체가 위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훈령에 의한 위원회 설치 때문에 위법성 시비가 일었던 사례는 적지 않다. 경찰청 훈령에 의해 설치된 경찰청 산하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위법이라는 국감 논쟁이 있었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역시 국무총리 훈령에 의해 설치돼 논란이 된 바 있다.

한편 현재 야당이 집권 여당이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훈령에 의해 설치된 위원회에 대한 위법성 시비는 있었다. 2009년에는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가 대통령 훈령에 의해 설치된 것이 위법이라는 지적은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자유선진당으로부터 나왔다. 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의 경우, 위원회의 기능과 권한과 관련한 법률적 해석 때문에 나오는 논란들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보도. 유튜브 화면 캡처.

"진상조사위에 검사 파견 불법" vs "조사 전문위원 둘 수 있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논란이 된 이유는 위원회의 조사 기능 때문이다. 행정기관위원회법 제2조 2항에 따르면, “위원회는 법령에 규정된 기능과 권한을 넘어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 등의 자문에 응하거나 조정·협의·심의·의결 등을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13일 국감 자료를 통해 이 조항에 근거해 “행정행위인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법률적 문제이기 때문에 자문을 위한 의견개진을 목적으로 한 조사기능은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별도 입법이나 법령의 권한 위임 없이 훈령에 근거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조사를 벌이는 것이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이 의원은 자문기구에 조사를 위한 인력, 사무실 등을 지원하는 것과 검사 1명과 문체부 직원 4명이 파견되어 있는 것도 정부조직법과 정부재정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조사위가 ‘세월호 일반인 유족 동향보고’를 국가기록원에 요청하는 사실 등이 조사권 남용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소속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근거하면 전문적 사항에 관해 조사하고 연구하는 전문위원을 둘 수 있다”면서 “진상조사위는 ‘조사’까지 하고 ‘징계’는 문체부가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이어진 국감에서도 논란은 계속 이어졌다. 나경원 의원은 “진상조사위가 실질적으로 위원회법에 위반되고 사실상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제한하는 수사권과 징계권을 행사한다”며 진상조사위 해체를 요구했다. 이장우 의원도 “법령에 의하지 않고 급조된 훈령에 의한 진상조사위는 위법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은재 의원은 “법률적 근거가 없는 위원회의 조사는 헌법상 법률 유보 원칙과 적법 절차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위헌적 행위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측은 반박했다. 조승래 의원은 “장관이 문체부 내부에서 벌어진 블랙리스트 중심으로 한 사건에 대해 장관이 조사 필요성 느꼈고, 그에 따라 훈령에 의해 만든 것이니 문제없다”며 “검사 파견 역시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정부 기관에 65명까지 파견돼 있었는데 문제는 검사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다”고 말했다. 안민석 의원은 “야당 의원의 주장은 진상조사를 방해 내지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종합하면, 원칙적으로 행정기관 산하 위원회 구성은 법률에 근거해야 하나 합의제가 아닌 부속기관 위원회는 훈령에 근거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경우 부속기관 위원회이기 때문에 훈령으로 설치 가능하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다만 진상조사위원회에 검사가 파견되는 등 조사기능이 있는 것이 행정 행위이기 때문에 법에 근거하지 않으면 불법이라는 주장과 단순 사실관계 파악이고 징계 등 법률적 행위는 정부가 하기 때문에 불법이 아니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 상태다.

 

뉴스톱의 판단

현재 양측의 주장 가운데 어느 한 쪽이 명확하게 옳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유성엽 교문위원장은 블랙리스트의 법률적 타당성 검토를 국회 교문위 수석전문위원실에 지시한 바 있다. 그러나 <뉴스톱>이 수석전문위원실 담당 입법조사관을 통해 문의한 결과 “위법성 문제가 현재로서 답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훈령에 의해 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위법이라 볼 수도 없고, 자유한국당 측의 주장도 틀리지 않은 만큼 어느 한 쪽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논란의 핵심인 자문기구의 조사 기능의 범위와 파견 검사의 공조 직무의 수준이 추후 이 사안을 판단할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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