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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남북전쟁은 '철도장악전쟁'

기사승인 2017.11.13  21:5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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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혁의 게임 팩트체크

-90년대 인기폭발 고전게임 <노스 앤 사우스>

이제는 중장년으로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할, 80년대 초반의 게임 키드들의 유년기 게임 경험 속에 자리잡고 있는 수많은 명작 고전 게임 중 <노스 앤 사우스>는 국내에서 판매량 집계가 되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게임이다. <남북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게임은 주로 90년대 초중반 전국적 컴퓨터교육의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컴퓨터학원에서의 불법복제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노스 앤 사우스>라는 이름으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이들도 ‘왜 그거 있잖아, 대포 쏘고 기병 달려가서 칼질하고 보병이 총쏘는 게임!’ 이라는 설명을 들으면 아! 하고 무릎을 탁 칠 만한 수준의 인지도를 <노스 앤 사우스>는 가지고 있다.

디스켓 한 장, 360kb라는 요즘의 기준으로 치면 고화질 JPG 사진 한 장 수준의 데이터 용량으로 <노스 앤 사우스>는 미국 남북전쟁이라는 소재를 꽤나 재미있는 실시간 액션을 포함한 전략 게임으로 담아 냈다. 한국에서 암암리에 대유행을 탈 수 있었던 배경은 역시 당대 게임 중에서는 상당한 수준의 컨트롤을 펼칠 수 있었던 전술 맵에서의 유닛 움직임과 최대 2인이 한 PC에서 동시에 전투가 가능한 멀티플레이 지원이었지만, ‘노스 앤 사우스’의 의미는 비단 게임의 재미와 인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이 게임은 미국 남북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갖는, 그러나 다른 매체들이 미처 표현해내기 어려웠던 한 지점을 정확히 짚고 있기 때문이다. 

철도, 그리고 국가총력전으로서의 미국 남북전쟁

미국 남북전쟁을 다루는 역사 수업이나 소설, 영화 등에서 주로 다뤄지는 것들은 정치, 경제적 이슈들이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로 널리 알려진 노예제 문제도 이슈였고, 미국 남부와 북부가 가진 산업기반의 차이 또한 전쟁의 배경으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이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남북전쟁의 또다른 의미는 기술사적, 전쟁사적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바로 철도를 활용한 국가 총력전의 효시로서 갖는 의미다.

1825년 처음으로 증기기관을 활용한 화물운송수단으로 철도가 운행을 개시한 이래, 기존의 운송수단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물량을 수송할 수 있는 철도의 위력은 서구에서 산업 발전의 척도로 활용되어 왔다. 이는 군사적으로도 유의미했는데, 전략 거점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철도는 막대한 수송력으로 빠르게 채워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까지도 철도는 병력이동과 보급을 위한 주요 수단이었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한 장면. 소련군이 신병들을 수송하기 위해 열차에 태우고 있다.

아무리 높은 공업생산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생산된 물자가 적기에 전선에 도달하지 못하면 이른바 축차투입이라는, 지속적인 전쟁 소모만을 불러일으킨 채 전쟁의 국면에 영향을 주지 못할 뿐이기에 철도의 등장은 사실상 국가총력전이라는 근대 이후의 전쟁 양상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기술적 전환점이었다. 총력전의 측면에서 철도의 중요성은 그래서 다른 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의 첫 시작이 스탈린그라드에 철도로 도착한 보충병력들의 모습이었음은 2차대전의 근간이 철도를 활용한 국가총력전에 기반함을 보여주는 장면으로서의 연출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스 앤 사우스>의 철도: 운송이 아닌 생산으로서의 총력전 병기

게임 <노스 앤 사우스>는 이러한 철도의 중요성을 기존의 전략게임과는 다른 측면에서 짚어 내는데, 바로 생산을 철도로 요약했다는 점에서였다. 가장 유명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와 비교해 보면 좀더 와닿는다. <스타크래프트> 또한 자원을 모아 병력을 생산해서 적과 맞서는 구조를 가지는데, 이 때 생산은 SCV, 프로브, 드론 같은 ‘일꾼’ 유닛이 직접 자원을 캐 내어 가공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또다른 생산의 표현 방식은 게임 <삼국지>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데, 특정 영토를 점령하면 그 영토에서 나오는 곡물 수확, 세금 징수 등을 모아 전쟁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상당수의 전략을 다루는 게임들은 이처럼 생산을 도외시하지 않으며, 그 생산의 과정을 가급적 납득할 수 있는 현실감으로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구조를 도입하고 있다.

<노스 앤 사우스>는 그 생산의 지점을 영토나 자원 기반으로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게임들과 크게 두드러지는 차이를 갖는다. 미국 지도를 두고 각 주를 점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전략 화면에서 <노스 앤 사우스> 는 영토 기반의 생산이나 세금징수를 보여 주지 않는다. 대신 게임에서 군대를 생산하는 자원은 철도로부터 나온다.

‘노스 앤 사우스’의 전략화면. 붉은 점이 철도역이고, 각 턴마다 철도가 안전하게 도착하면 금고에 돈자루가 쌓인다. 다섯 자루를 모으면 군대 하나로 바뀌는 이 장면은 게임이 생산을 철도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게임에 비해 독특한 점을 보인다.

게임 안에는 총 5개의 철도역이 존재한다. 각각의 역은 북동부에서 서부를 돌아 남동부까지 이어지며, 철도 노선은 여러 주를 관통한다. 두 개 이상의 철도역을 점령하게 되면 매 턴마다 철도가 움직이고, 철도가 무사히 도착하게 되면 도착한 역의 창고에 돈이 쌓인다. 역 창고에 쌓인 돈이 5자루가 되면 하나의 군대가 탄생하는 형태로 <노스 앤 사우스>는 전략적 관점에서의 생산 개념을 풀어낸다.

사실 영토 기반의 세금징수와 같은 형태가 좀 더 구현하기에도 편리했을 것임이 분명함에도 게임이 굳이 철도 운행을 기반으로 한 생산 시스템을 채용했다는 것은 철도가 이 전쟁에 끼친 영향력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론이었다. 철도가 생산의 주력이라는 게임의 논리는 실제 미국 남북전쟁이 무엇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었는가에 대한 통찰로부터 나온 구현이다. 개전 초기, 나름 유리했던 남군의 위세는 후반부로 갈수록 북군에게 밀리게 되는데, 여기에 개입하는 영향요소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철도 연장이라는 산업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 종전시를 기준으로 한 북군의 총 철도연장은 2만2000마일로 남군의 9500마일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철도는 단순히 무언가를 옮기는 수단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다. 전장에서 손실되는 인력과 물자를 대규모로 빠르게 수송해 보충할 수 있는 수단이었고, 동시에 정예 병력을 기계의 힘을 통해 일반적인 속도 이상으로 주요 전략요충지에 재빠르게 재배치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개전 초 열세에 몰리던 북군은 압도적인 철도 인프라를 기반으로 초기 단계의 국가총력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대량의 원자재를 빠르게 생산공장으로 수송해 총기와 탄약, 군복과 같은 물자 생산의 속도를 향상시켰고, 완성된 물자를 병력과 함께 지속적으로 전선에 보낼 수 있었다. 철도라는 체계를 통해 비로소 생산과 전장이 가깝게 연결되면서 북군은 남군에 비해 압도적인 생산력을 실제 전쟁에서의 군사적 우위로 연결시키는, 현대적 총력전의 효시를 실현시킨 것이다. 미국에서도 철도전략이 남북전쟁의 승패를 갈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남북전쟁 중 철도역은 종종 전장으로 변했다. 특히 버지니아주는 남북의 경계에 위치해 가장 치열한 전장 중 하나였다. 사진은 한 남부군이 버지니아의 철도에 장애물을 놓고 있는 모습.  출처: 미국 의회 도서관 

<노스 앤 사우스>는 근대 총력전의 효시로 봐도 무방할 미국 남북전쟁을 그래서 철도망을 중심으로 한 생산력 전쟁으로 축약하여 표현한다. 철도역이 존재하는 주를 중심으로 격전이 벌어지며, 역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전술지도에서의 승리 이후에도 역 시설 점령을 위해 따로 아케이드 방식의 미니 게임을 치러야 한다. 심지어 역을 점령하지 못했더라도 철도망이 지나가는 주를 소유하고 있다면, 적 철도가 지나갈 때 일종의 열차강도 게임을 통해 수송되는 금을 훔쳐낼 수도 있다. 게임이 남북전쟁을 읽어낼 때 철도망의 중요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현상의 이면을 재현하는 게임 논리가 가진 가능성의 사례

전쟁의 복잡한 양상을 100% 담아내는 것은 어떤 매체도 불가능할 것이다. 누군가는 전쟁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얼굴을 담아내고, 누군가는 대량 살상이라는 야만적 행위가 합리적인 선택과 협상에 의해 벌어지는 구조를 바라본다. 매체로서 게임이 갖는 의미를 십분 활용한 <노스 앤 사우스>는 남북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철도라는 기술에 의해 얼마가 크게 영향받았는지를 표현하기 위해 철도를 생산의 대표 요소로 활용했고, 이를 통해 다른 매체들이 미처 끌어내지 못한, 기술기반 총력전에 의한 역사라는 사실을 재조명할 수 있었다. 벌어진 현상이 아니라 현상이 벌어지는 과정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리고 그를 통해 기존의 방식에서 끌어내지 못한 이슈를 제시하는, 매체로서의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사례로서 <노스 앤 사우스>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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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최근글보기
게임칼럼니스트 겸 문화 비평가. 여러 매체에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게임과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게임이 사회를 매개하는 매체로서 지니는 의미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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