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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게임수용자, 그들이 만든 '멋진 신세계'

기사승인 2017.11.29  0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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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혁의 게임 팩트체크] '서사와 놀이' 이분법을 넘자

게임연구 방법론 양대산맥, 내러톨로지와 루돌로지란?

미디어로서 게임의 의미를 연구하는 입장을 분류하자면, 이른바 내러톨로지(narratologyㆍ서사학)와 루돌로지(ludologyㆍ놀이학)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인문학 연구가 대중적으로 확산된 분야가 아니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두 그룹은 게임의 의미를 읽어내는 방식을 놓고 경쟁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왔다

전통적인 서사 연구의 흐름을 타고 시작된 내러톨로지 게임 연구는 게임이 가진 서사적 측면, 즉 스토리를 중시한다. 기존의 서사적 텍스트 분석 틀을 동원해 게임의 메시징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반면, 루돌로지 연구는 간단히 말해 '서사 없는 게임'의 존재를 사례로 들며 상호 작용에 기반을 둔 놀이로서의 규칙이 갖는 의미들을 발견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다양한 양태로 분화해 가는 디지털 게임 접근 방식을 두가지로 분류하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게임연구에서의 내러톨로지 vs. 루돌로지 논쟁이 무의미하다고 치부할 수 없다. 기존 연구들이 쌓아 온 기반 위에서 새로운 미디어를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다, 두 진영의 논쟁을 통해 게임 연구가 보완발전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음 세대 논쟁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접근 방식이 제안될 필요가 있다.

서사-유희 이분법이 무의미해지고 있다

복합적인 뉴미디어로서 게임이 보이는 양태들은 쉽게 일반화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초창기 게임 연구에서는 게임에 등장하는 컷 신(게임을 잠시 중단하고 게임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는 것)을 두고 게임이 아닌 영역이 개입한다고 읽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컷 신이 재생되는 동안 플레이는 중지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대 게임에서 플레이의 중지가 곧 게임의 중지는 아닌 경우가 적지 않다.

컷 신이 게임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스토리텔링 중심의 어드벤처 게임에서 발견된다. 텔테일 게임즈의 어드벤처 게임 시리즈 <워킹데드>는 원작 만화와 드라마의 스핀오프 격에 해당하는 스토리를 다룬다. 이 게임은 상호 작용 플레이보다는 정해진 시나리오를 충실히 따라가는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주요 분기점에서 플레이어에게 윤리적 선택을 묻는 방식이 추가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두세 가지의 최종 엔딩을 가진 <워킹 데드>는 주요 등장인물의 생사와 후일담이 더해지면서 엔딩의 가짓수가 늘어나게 된다. 플레이 중심 관점으로 살펴보면 <워킹데드>는 사실상 컷 신이 전부인 게임이 된다.

또 다른 사례로 들 수 있는 게임은 <매스 이펙트> 시리즈일 것이다. 새로운 중력 효과의 연구로 인해 열린 대 외우주 시대를 다룬 SF 액션 게임 <매스 이펙트>의 플레이와 내러티브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한자면 사실상 중심은 내러티브에 쏠린다. 플레이어들은 <매스 이펙트>의 전투 장면이 아니라 컷 신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와 캐릭터 설정에 더 열광하기 때문이다. (<매스 이펙트>의 전투 플레이는 오히려 내러티브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매스 이펙트 3>의 컷신. 이 게임에 쏟아지는 호평의 대부분은 컷 신을 통한 서사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스 이펙트> 시리즈가 게임성이 없다고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컷 신을 '상호 작용이 배제된 순간'으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한 설명이 아니다. 시청각 매체로서 영화와 게임을 일직선상에 놓는다면 두 매체의 가운데쯤에 놓이는 게임, 소위 영화같은 게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워킹데드>처럼 컷 신이 대부분인 게임부터 컷 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배틀그라운드>나 <리그 오브 레전드>까지 다양한 형태의 게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호작용적 요소와 내러티브 요소를 대립시켜 사고하는 것은 단지 내러톨로지 vs. 루돌로지 논쟁을 되돌아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생각해야할 것은 내러톨로지 vs. 루돌로지 논쟁의 다음을 이을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다른 매체에 비해 게임은 수용자의 해석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에 이런 특성을 감안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기존의 두 관점이 제작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수용자의 관점에서 논의를 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창조적 수용'이라는 관점이 가능할 것이다.

제작사가 게이머에게 파는 것은 '창작의 재료'

본격적으로 창조적 수용을 이야기 하기 위해 내러티브가 없는 게임부터 살펴보자. 2000년대 이후 한국 오락실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지배하는 <펌프 잇 업>이 좋은 사례다. 리듬 게임의 진화형인 댄스 게임은 별다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플레이를 관찰하면 재밌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게임이 '무용'의 보조 기구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펌프 잇 업>을 플레이할 때 얻는 즐거움은 단순히 리듬과 몸짓의 합치감에 머무르지 않는다. 즐거움은 마치 전문 댄서가 춤을 출 때 느끼는 그것과 유사하다. 최초 화면에 쏟아지는 화살표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단순한 행위는 점차 체중이 실리는 발을 이용해 온몸을 던져야 하는 플레이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 변화는 플레이어가 '춤을 출 줄 몰라도 춤의 느낌을 표현할 수 있게 해 주는' 보조 기구를 사용하는 경험을 준다. 전문 안무가가 춤을 출 때 만들어지는 희열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 때 <펌프 잇 업>은 온 몸의 동작 자체를 강조하지 않고 단지 풋 스텝만을 지시한다. 발 외의 신체에 일종의 여백을 남기는데, 이 여백은 플레이어 스스로 메워야 하는 공백이 된다. 누군가는 그저 팔을 내린 채 발만 움직인다. 반면 이른바 '퍼포먼서'로 불리는 이들은 공백을 안무 동작으로 메꾼다. 일종의 창작이 가능한 여백이 되는 것이다.

<펌프 잇 업>의 화면. 발 외의 신체를 수용자의 자유에 맡기면서 펌프 플레이어는 다양한 안무를 펼치며 '퍼포먼서'로서의 입장을 가질 수 있다. 이 게임의 완성은 그래서 플레이어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창작이 가능한 여백의 개념은 내러티브가 있는 게임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비디오 게임 이전에 이미 내러티브 게임의 시조로 자리 잡은 서구의 테이블 롤플레잉게임(TRPGㆍTable Role Playing Game)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던전 앤 드래곤> 같은 보드 게임은 게임 참가자에게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 것을 강요하고, 이야기의 재료가 될 여러 설정들과 캐릭터, 상황과 규칙을 부여한다. 게임 마스터가 적당한 이야기 배경을 만들면, 참가하는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역할에 맞는 행동을 수행하면서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전문적인 시나리오 작성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도 <던전 앤 드래곤>의 플레이를 통해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손과 주사위를 이용해 계산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인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 도입으로 사람이 일일이 계산하고 기록했던 과정을 보다 수월하게 가상공간에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른바 컴퓨터 롤플레잉게임 (CRPGㆍComputer Role Playing Game) 도입으로 게임은 진보와 퇴화를 동시에 경험하게 됐다. 컴퓨터 롤플레잉게임의 시나리오 자유도는 TRPG에 비해 제한되었지만, 초보자도 손쉽게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써 시나리오를 현재 시점으로 써내려갈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처럼 게임 수용자는 게임의 빈 공간을 스스로 창조해낸 콘텐츠로 채워나간다. 그래서 내러톨로지 혹은 루돌로지 연구는 수용자를 고전적 매체의 수용자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한계를 지닌다. 신기술에 힘입어 등장한 뉴미디어는 수용자의 위상 또한 바꾸고 있으며, 특히 비디오 게임 영역에서 수용자는 고전적 의미의 수용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게임의 재미는 수용에서 창조로 한발 더 옮겨가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마인크래프트>다. 일종의 레고처럼 게임이 제공하는 기본 블록을 활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게 전부인 게임으로 여겨졌던 <마인크래프트>는 이제 각자의 플레이어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공간,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임이 되었다. 게임은 서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 창작의 재료를 제공했고, <마인크래프트>의 플레이어들은 단순히 게임 매체의 수용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로 자리매김한다. 유튜브에 자신의 게임 플레이 영상을 올리는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크리에이터'라는 점은 게임 플레이어가 더 이상 수용자의 위치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창조적 수용이 만들어낸 새로운 장르 'e스포츠와 스트리밍'

매체 수용자가 갖는 위상의 변화는 단순히 게임 콘텐츠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초창기 PC 기반의 게임 수용자들은 원본 게임의 세이브 데이터를 수정해 플레이하곤 했다. 현대 게임에서는 이른바 '모딩'이라는 형태로 발전한다. 주어진 게임을 있는 그대로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를 수정하여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모딩은 게임 콘텐츠를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모딩 게임 유저는 수용자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게임 제작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많은 게임들이 이러한 창조적 수용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재미에 주목했고, 게임 안에 아예 직접 데이터를 수정할 수 있는 에디터를 포함하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에디터를 활용해 만든 디펜스 게임이 독자적으로 발전해 <워크래프트 3>를 거쳐 <리그 오브 레전드>로 이어진 흐름은 이런 트렌드를 대표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스타크래프트>의 유즈 맵 세팅(사용자 작성 지도)인 'Aeon of Strife' 에서 시작되어 <워크래프트 3>의 모드에서 태어난 <도타(DOTA)>의 갈래로 등장해 세계적인 인기 게임에 등극했다.

새롭게 생산된 게임 모드와 콘텐츠를 플레이어들이 즐겨하게 됐고 새로운 콘텐츠가 창조되기 시작됐다. 게임 방송을 전문으로 하는 '스트리머'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유튜브와 트위치, 아프리카TV를 찾아가 여러 BJ들의 게임 플레이를 보는 시청자들은 고전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고수의 플레이를 옆에서 구경하던 군중들의 진화형이다. 이는 게임 플레이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며 그 결과물이 대중으로부터 일종의 콘텐츠로 받아들여짐을 의미한다.

이때 플레이어에 의해 생산된 게임 플레이의 결과물들은 나름의 내러티브를 지닌다. <배틀그라운드> 플레이를 생중계하는 BJ들의 영상은 명백히 하나의 내러티브가 창작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수송기에서 뛰어내려 무기와 장비를 찾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적들을 피해 살아남으려고 싸워 나가며, 최종적으로 승자가 되거나 실패하는 과정이 눈앞에 펼쳐진다. 시작에서 끝을 예상하고 끝에서 시작을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독립된 내러티브로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게임만의 이슈도 아니다. 물론 애초부터 비디오 게임은 전쟁 기계로 태어났던 거대 계산기에 대한 '히피적 밀렵'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세르토(Certeau)식의 밀렵이 비디오 게임에서만 일어난 점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신기술에 의해 계속 새롭게 태어나는 매체들은 모두 비디오 게임과 비슷한 형태로 창조적 수용자들에 의해 밀렵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캐릭터의 속성(데이터적인 의미에서)만을 유지한 채 웹 소설, 동인지 등에서 창조적 수용자들의 손에 의해 다른 세계로 떨어져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나간다.

'자캐 커뮤니티'라는 이름의 네트워크 유희는 각자가 연기하고픈 캐릭터(자캐)를 설정하고 롤플레잉을 펼치며 새로운 서사를 써내려가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유튜브에서 핫 아이템으로 다뤄지는 <야인시대> 패러디는 원작을 재료로 삼아 계속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즈마 히로키가 이야기하는, 거대 서사의 소멸과 세계관으로만 남는 게임적 리얼리즘의 세계는 게임 외 영역에서의 창조적 수용자의 등장을 의미한다.

과거 전통적 매체를 이용하던 능동적 수용자들 또한 <스타워즈> 사례처럼 창조적 수용을 하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게임 매체의 상호 작용성은 창조적 수용을 디제시스(Diegesisㆍ창조적 허구) 세계 안에서 수행함으로써 고전적인 능동성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가고 있다. <리니지 2>의 '바츠해방전쟁'은 플레이어의 상호 작용성을 기반으로 디제시스된 가상세계 안에서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나간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스타워즈> 사례가 영상 편집에 관한 전문적 기술 이해를 필요로 했다면, <펌프 잇 업>과 '바츠해방전쟁', <마인크래프트>는 그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환경 안에서 능동적 수용자의 가능성을 최대화했다. 이는 게임 특유의 상호 작용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용의 재미에서 창조의 재미로

재미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아 보이지만, 매체 수용자들은 이제 더 이상 고전적 수용자의 지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뉴스보다 댓글이 더 읽히고 게임 플레이 이상으로 게임 방송 시청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수용자의 지위 변화가 비단 게임 영역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서 펼쳐지는 흐름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안에서 내러톨로지 vs. 루돌로지 논의는 어떤 면에서 시대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러티브의 근본 조건이 바뀌어 버린 시대에 고전적 의미의 고정된 서사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 반대의 측면에서 내러티브와 상호 작용성을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시도도 이제는 시급한 의미가 되기 어렵다.

소설과 영화의 시대에 <삼국지연의> 라는 거대 서사가 가졌던 의미는 고에이 사의 <삼국지> 게임 시리즈로 넘어오면서 수백, 수천만 개의 멀티버스 안에서 플레이어 각자의 영역에 전개되는 개별 서사로 치환되었다. 누군가는 엄백호로 천하통일을 이루고, 누군가는 관우와 여포를 동시에 데리고 유비와 싸우고 있다. 고정된 내러티브에 대한 능동적 수용을 넘어 아예 매 순간 새로운 내러티브를 창조하는 것이 곧 수용이 된 뉴미디어에서의 수용자 연구는 그래서 고전적 의미를 딛고 넘어 창조적 수용이라는 가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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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최근글보기
게임칼럼니스트 겸 문화 비평가. 여러 매체에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게임과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게임이 사회를 매개하는 매체로서 지니는 의미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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