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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낙태죄 책임은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

기사승인 2017.12.22  1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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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 폐지' 청와대 청원 이후 궁금증 팩트체크

지난 9월 30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 광장 코너에 '낙태죄 폐지 청원글'이 올라오면서 낙태죄가 조명받고 있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에서 찬성과 반대 의견이 오가고 있다. 낙태죄 폐지 청원글에는 1달 만에 23만 여명이 참여했고, 낙태죄 유지를 주장하는 청원도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그런데 최초 낙태죄 폐지 청원글에 부정확한 내용이 담겨 있어 낙태죄와 관련된 오해가 널리 퍼져있다. 낙태죄와 관련한 여러 쟁점들에 대해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1. 현행법상 낙태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

절반의 진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 청원글은 “현행법은 ‘여성’ 에게만 죄를 묻고 처벌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신의 책임은 남녀 모두에게 있음에도 책임과 처벌의 대상이 주로 여성인 것에 대해 지적하는 여론이 많으며 ‘남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수다.

국민청원 서명 숫자가 20만명이 넘으면 청와대가 직접 답한다는 원칙에 따라 11월 26일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동영상에 출연해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답을 했다. 조국 수석도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라며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현행법상 남성에게도 낙태죄를 적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형법 제31조 1항은 는 “타인을 교사하여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고 정하고 있다. 낙태를 권유하거나 강요한 남성도 고발이 된다면 여성과 동일하게 처벌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2013년 임신한 여자친구에게 낙태를 강요한 남성에게 대법원이 낙태교사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한 판례가 있다.  낙태교사범은 정범과 동일한 형으로 처벌받는다. 따라서 청와대의 낙태죄 폐지 청원에서처럼 여성에게만 ‘독박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성이 무책임하게 도망가거나 고발되지 않는다면 실제 처벌로 이어지기 어려워 남성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경우 사실상 여성 홀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청원의 핵심은 남성도 낙태죄로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라 불법 낙태를 야기하는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2. 현행법상 낙태는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거짓. 현행법상 낙태는 형사 처벌의 대상이다. 형법 제269조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료인이 낙태 시술을 하는 경우나 당사자 허락 없이 낙태시키는 경우는 더욱 형벌이 무겁다. 형법 제 270조에서도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고 정한다.

그러나 현행법상 낙태가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 따르면 아래의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 포함)의 동의 하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첫째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둘째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셋째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넷째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다섯째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다. 때문에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현행법상 낙태는 일부 허용되고 있다. 낙태죄 폐지 청원은 조건에 관계없이 전면 허용해달라는 취지이다.

 

3. 현재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대체로 진실. 낙태죄는 형행 법률의 차원을 넘어 헌법적 차원, 인간의 생명을 어디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더 크다. 이는 인간의 기본권의 충돌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는 철학적 이슈인 것이다.

2012년 8월 23일 헌법재판소는 형법의 낙태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 합헌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은 “태아는 그 자체로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자궁에 수정란이 착상한 이후의 태아는 모두 생명권의 주체로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위헌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은 "태아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에는 여성의 임신 중 또는 출산 후 겪는 어려움을 돕는 일까지 포함된다”며 “생명을 보호하는 국가의 입법 조처도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보호의 정도나 수단을 달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헌 의견은 임신 24주 이전의 태아는 고통을 느끼는 신경생리학적 구조를 갖추지 않은 데다 낙태 시술이 간단하고 부작용이 적은 만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공익이 더 중요하다고 본 판결이다.

그런데 현재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낙태죄 처벌 조항인 형법 269조와 270조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 사건을 접수하고 검토 중이다. 이 문제를 심리할 헌재 이진성 소장은 지난 11월 인사청문회에서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임신 초기 등 제한된 경우에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취지로 낙태죄에 위헌 판결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4. 종교계에서는 ‘배아’ 단계도 인간으로서 낙태에 반대한다.

진실. 대부분 종교에서는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반대한다. 성폭행으로 인해 원치 않은 임신을 했더라도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제한된 경우 낙태를 인정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 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지난 15일 염수정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은 성탄매시지에서 “인간 배아도 온전한 생명”이라며 낙태죄 폐지 움직임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염 추기경은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는 잉태된 생명, 즉 인간배아도 온전한 인간이며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약하고 힘없는 생명을 마음대로 없앨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면서 “스스로를 보호할 힘이 없는 태아는 우리가 돌봐야 할 가장 약한 존재이며 또한 가장 소중한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5.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이 언급한 낙태에 대한 교황의 ‘새로운 균형점(new balance)’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진실. 지난 11월 26일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 페이스북에서 ‘친절한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 중절에 대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동영상 7분18초)

그런데 천주교 주교회의는 교황이 이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공개 질의서를 통해 교황이 ‘임신 중절에 대해’라는 단서를 붙여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측은 조국 수석의 말언이 2013년 9월 아이리시 타임스의 기사를 축약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교황은 ‘새로운 균형점(new balance)’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으나, 낙태나 동성애 등의 이슈 당사자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을 지양하지 말자는 맥락에서 이 표현을 쓴 바 있다.

조국 수석은 과거에 ‘낙태 비범죄화론’이라는 논문을 통해 낙태 합법화를 주장한 적이 있다. 2013년 서울대 법과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서울대학교 법학>에 기고한 논문으로, 조 수석은 “모자보건법 제정 후 40년이 흐른 지금, 여성의 자기결정권 및 재생산권과 태아의 생명 사이의 형량은 새로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낙태죄 폐지를 바라는 생명윤리학·철학·신학 연구자연대는 12월 14일 성명을 통해 “낙태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보다 성숙해지고 제도적인 개선의 결실로 이어져 수많은 여성들이 처벌의 공포와 죄의식이라는 삼중의 굴레에서 해방되기를 기대한다”며 낙태죄 폐지에 찬성했다. 이 서명에는 100여명의 교수 및 연구자가 참여했다.

 

이고은 팩트체커 freetree@newst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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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팩트체커  freetree@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5년부터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다 2016년 '독박육아'를 이유로 퇴사했다. 정치부, 사회부 기자를 거쳤고 온라인 저널리즘 연구팀에서 일하며 저널리즘 혁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두 아이 엄마로서 아이키우기 힘든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알리는 일에도 열의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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