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A, 폭력으로 도시 문명을 재구성하다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7.12.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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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최근 들어 유목문명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환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 문명의 기원은 도시다. 원시 인류가 정주를 통해 생산력의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기술과 학문을 끌어올려 조금씩 쌓아올린 문명의 기반에는 정주의 근원인 도시가 자리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든 도시는 인류 문명의 시작인 동시에 도시 그 자체의 발전을 통해 인류 문명의 다음까지도 기약하는 문명의 근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사회를 다루는 많은 콘텐츠들은 도시를 다루거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시 그 자체를 주제로 삼는 경우도 흔하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틀담의 꼽추>는 파리 시내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들이며 도시 묘사를 통해 당대의 인간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바 있고, 대도시의 대명사 뉴욕은 <맨하탄>, <비열한 거리> 등으로 다채롭게 다뤄진 바 있다.

게임 또한 다른 매체와 마찬가지로 도시를 자주 다루는 편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도시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잘 다루는 콘텐츠가 게임이다. 모험이나 전쟁을 주로 다루는 온라인게임에서 도시는 거래와 재정비가 이루어지고 플레이어들이 모여 대화하는 장소다. <WOW>의 대도시 오그리마나 <리니지>의 아덴 성 같은 대도시에는 언제나 플레이어들이 북적이며 새롭게 모험을 떠날 팀을 찾고, 무기와 장비를 거래하고 강화하는 배경으로 자리한다.

도시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심시티>의 한 장면.

아예 도시를 전면적으로 다루는 게임도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도시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시티> 시리즈는 주제 자체가 도시경영이다. 플레이어는 시장이 되어 아무 것도 없는 맨 땅에 도로를 긋고 구역을 설정하여 도시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도시 시스템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 수도를 정비하고 전력을 충당하며 교통난 해소를 위한 장기 플랜을 마련한다. 이 과정에서 도시는 배경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이 살아가며 움직이는 생동하는 존재가 된다.

게임이 도시를 다루는 위의 두 가지 예시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도시를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을 읽는다. 각자의 의지를 가진 개체들이 모이고 이를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진정한 문명 창조의 배경으로서 작용하는 도시의 의미는 온라인게임 속에 구현된 대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개체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발전해 가는 <심시티> 속의 도시에서는 생명력을 가지고 자기증식을 벌이는 일종의 유기체와 같이 살아 숨쉬는 도시의 속성을 만난다.

게임이 주는 도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은 우리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문명과 동음이의어로 자리매김해 온 도시를 통해 인간과 문명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기반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현대적 의미의 도시 재현에서 여러모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게임인 <Grand Theft Auto(이하 ‘GTA’)>가 그려낸 현대 미국 도시의 풍경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도시의 의미를 접근하는 매우 신선한 해석들을 제공하고 있다.

게임 역사를 장식한 오픈 월드의 백미 GTA

Grand Theft Auto는 미국 속어로, 자동차 절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1997년 거리에 서 있는 자동차를 아무렇게나 훔쳐 타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GTA>라는 제목의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이 게임이 지금과 같은 지위를 갖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GTA>시리즈가 본격적으로 게임계의 신성으로 자리하게 된 계기는 2001년으로, <GTA 3>는 기존의 2차원 그래픽을 통해 도시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을 버리고 주인공의 뒤를 따라다니는 3인칭 카메라 시점으로 도시 전체를 풀 3차원 그래픽으로 그려내면서 게임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GTA 3>의 등장은 오픈 월드 게임(가상의 세계를 마치 현실처럼 구현해 놓은 배경 안에서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게임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게임)이 지향해야 할 바가 어디인지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게임 안에 구현된 뉴욕을 모티브로 디자인된 리버티 시티는 플레이어가 직접 자동차를 몰고 구석구석을 다녀볼 수 있게 설계되었고, 지도나 별도의 안내표시 없이도 한참 다니다보면 길이 눈에 익어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가는 길을 구성해낼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을 자랑했다. 아예 길을 몰라도 대충의 지리를 알고 있으면 게임 속의 도로 표지판을 따라 가기만 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수준의 도시 구현에 많은 게임사와 게이머들은 환호했다.

GTA3 게임 플레이의 한 장면.

<GTA>는 새로운 버전이 나올수록 세밀한 도시 묘사를 선보였다. 갈수록 정교해지는 그래픽을 통해 <GTA>안에서 사람들은 굳이 미션을 플레이하지 않고도 그저 차를 몰고 드라이브하며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도시 안의 사물들도 갈수록 생동감을 더해갔다. 최신작인 <GTA 5>에 이르면 길에서 다른 차와 접촉 사고라도 나면 차주가 문을 열고 나와 플레이어에게 삿대질과 욕설을 선사하기도 하고, 거리를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히면 인상을 쓰며 플레이어를 째려보고 온갖 험담을 늘어놓는 등 살아있는 도시의 삶은 갈수록 게임 속에서 상세하게 묘사된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모사의 대상은 도시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도시는 그 자체로 인류 문명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그릇이며, 문명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개념이다. <GTA>는 그러한 도시와 도시 안에서의 삶을 그려내는 데 있어 기존의 어떤 매체도 접근하지 못한 새로운 방식에서의 접근을 시도했고, 특히 모사의 직접 대상이 된 미국의 대도시들을 다루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 주었다. 마치 실제로 있음직한 수준으로 가상의 세계에 세워진 도시들을 만들기 위해 <GTA>가 시도한 접근법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 플레이어 앞에 펼쳐진 가상의 도시는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① 도로: 생동하는 도시를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

<GTA>가 그려낸 도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목은 역시 ‘도로’다. 그냥 도로가 아닌 자동차를 위한 도로가 <GTA>의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시작부터 자동차를 훔쳐 타는 개념에서 비롯되었고 게임의 제목 또한 자동차 절도를 상징하는만큼, <GTA>에서 도로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특히 3D그래픽으로의 변화를 시도한 이후부터 게임 속의 도로는 더욱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게임으로서의 재미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플레이어가 훔치거나 구입한 차를 이용해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 레이싱 게임에 준하는 수준까지의 드라이빙감을 제공하기 위해 <GTA>는 도로 구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 거리와 같은 느낌을 내도록 보도블럭과 가로수를 배치하고 모든 사거리에는 신호등이 규칙적으로 신호를 바꾸며, 차량들은 신호와 차선에 맞추어 움직인다. 그리고 그 규칙성 사이를 간간이 불법 운전자들과 폭주족들이 파고들며, 어떤 경우에는 과도한 교통체증 사이를 플레이어가 뚫고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게임의 주요 테마인 자동차와 드라이빙을 위해 <GTA>속 도로는 많은 공을 들여 만들어진 성과물이다. 플레이어는 고속도로에서의 빠른 주행부터 다운타운의 꽉 막힌 사거리, 교외의 한적한 흙길과 좁은 골목길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 게임패드나 마우스가 아닌 운전대 모양의 휠 컨트롤러를 사용하면 심지어 노면의 상태에 따라 휠이 진동하도록 만든 디테일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 꼭 게임 속 드라이빙의 의미를 벗어나더라도, 도시 속에서의 도로는 사실 꽤나 의미깊은 존재다. 도시가 고도화될수록 도로없는 도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로는 현대 도시에서 일종의 혈관이다. 도시가 발전하여 인구가 더 밀집될수록 제한된 공간 안에서 소비되는 식량의 양은 늘어나고, 도시의 인구가 일자리와 주거지를 오가는 길 또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신도시를 설계할 때도 예상되는 인구밀집도를 고려하여 도시의 인구가 들고 남을 고려한 도로 설계가 최초에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많은 인구를 밀집시켜 지적, 기술적 효율을 끌어올리는 도시의 성과는 도로와 교통의 발전으로 더욱 큰 시너지를 일으킨다. 자동차의 발명은 도시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과 물자의 효율을 더욱 큰 폭으로 끌어올려 현대 도시의 의미를 다시한번 강화했다. 도시를 도시로 기능케 하는 이러한 도로의 의미는 현대 도시의 거주민들에게 도시를 도로와 교통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도시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이미지가 높은 빌딩과 도로에 가득한 차량의 행렬이라는 것은 도시의 두 가지 측면, 밀집과 교통이라는 측면을 상징하는 사례다.

<GTA>는 게임의 중심 축 중 하나인 도로에서의 드라이빙이라는 소재를 살려내기 위해 디테일한 도로 디자인을 보여 주었지만, 그 와중에 도시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도로의 의미가 크게 살아나면서 도로를 통해 바라보는 도시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GTA>에서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 중 가장 먼저 플레이어가 시도하게 되는 것은 도로변에 서 있는 차 한대를 훔쳐서 무작정 도로를 질주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는 번화한 다운타운과 철로 주변의 빈민가, 항구의 번잡하고 삭막한 풍경과 바인우드(할리우드의 패러디인 <GTA 5> 도시 내의 상류층 거주구역)의 세련됨을, 달리는 자동차에서 시각으로 체험한다.

차 안에서의 도시체험은 영화와 같은 시각매체에서도 자주 구현된 바 있지만, 게임은 질주의 스펙타클 위에 게임 특유의 요소인 플레이어의 직접 개입을 얹어 기존에 없었던 도시에 대한 체험을 구현해 냈다. 단지 주인공과 적들이 쫓고 쫓기는 장면을 추적하는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가고 싶은 도시 곳곳을 달림으로써 체험하는 도시인 것이다. 도시의 생명력이 가장 극적으로 표현되는 도로와 도로 위의 교통에서 도시를 체험하고 사유함으로써 <GTA>속의 도시는 단지 그래픽으로 그려진 배경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과 물자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살아있는 도시로 재탄생한다.

② 건물 – 입구없는 장식으로서의 존재

플레이어가 잘 닦여진 게임 속 도로를 차량으로 질주하면서 보는 도시 풍광은 각종 건물로 둘러싸인 콘크리트의 장벽이다. 도시를 표현하기 위해 훌륭한 도로를 그려낸 <GTA>에서 두 번째로 도시를 만들어내는 요소는 게임 속 건물이다. 한낮의 태양 아래 번쩍이며 위용을 뽐내는 마천루의 위엄부터 해변가를 끼고 펼쳐지는 고급 주택의 세련됨, 그리고 낡은 벽돌로 단촐하게 올린 빈민가 아파트에 걸린 ‘FOR SALE’ 현수막까지를 그려내면서 <GTA>는 현대 미국 도시의 전체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완성시킨다.

도로가 생동하는 도시를 직접 주행하며 체험하는 관점이었다면, <GTA>에서 도시 속 건물들의 의미는 배경이자 상호작용의 대상이다. 게임 속의 건물들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데, 이는 차에서 내려 해당 건물에서 플레이어가 무언가 행동을 할 수 있는가의 차이로 구분되는 개념이다. 의류점이나 차량 튜닝센터 같은 건물은 플레이어가 들어가 물건을 사거나 차량을 수리하는 행동이 가능하고, 특정한 미션을 수행할 경우에는 몰래 잠입해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플레이어의 집에서는 TV를 보거나 잠을 자는 등의 행동도 가능하다.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가상의 공간 속 도시에서 말그대로 살아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체험의 기능이 부여되지 않은 대부분의 건물은 게임 안에서 도시의 풍광을 묘사하는 3차원 그래픽 배경으로 작용하여 도시의 시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GTA 5의 유저 모드. 빌딩에 각종 광고가 붙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상호작용이 가능한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의 구분이다. 사실 이 구분은 기술과 효용의 한계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게임 속 도시에 등장하는 모든 건물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게임을 만든다면 데이터의 분량은 어마어마하게 증가한다. 50층 빌딩 안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는 것과 해당 건물의 입구를 없애고 그저 장식이자 배경으로 두는 것은 개발시간과 데이터량에서 수천배 이상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에 게임 안의 건물은 대부분 입출구가 없으며, 꼭 필요한 부분에서만 내부를 구현하고 안에서 활동이 가능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GTA>를 플레이하면서 대부분의 건물 안에 들어가볼 수 없다는 사실을 놓고 불평하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도 우리는 대부분의 건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과 일터 외에는 대부분의 도시 내 건물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다. 마음대로 출입이 가능한 경우는 보통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는 등 상업적 거래를 위한 경우 뿐이다. 평범한 도시의 거주민에게 대부분의 건물은 게임 속 건물과 마찬가지로 단지 도시라는 환경을 조성하는 배경일 뿐이다. 굳이 건물 입구에서 경비원이 진입을 제지하거나 시건장치로 잠겨 있지 않아도 사람들은 나와 별 관계가 없는 건물에 굳이 들어가는 일을 꺼려하기 마련이다. 도시민의 마음속에서부터 도시의 건물들은 애초부터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건물이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형성하지만, 그 모두가 나의 이웃은 아니라는 사실은 도시의 쓸쓸함, 군중속의 고독을 만드는 중요한 기제다. 마치 실제의 그것인 양 그럴듯한 외양을 자랑하는 <GTA> 속 도시 건물들을 게임 속에서 들어가보지 못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은 실제 우리 삶이 자리하고 있는 현실의 도시 속 건물들 또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GTA>속의 입구 없는 건물들은 오히려 입구가 없는 디자인을 통해 우리가 실제로 모여 사는 도시의 허구적 커뮤니티성을 드러낸다. 어떤 의미에선 우리 스스로가 도시에서는 대부분 허가받지 못한 방문객이며, 도시로부터의 소외는 묘하게도 입구 없는 <GTA> 속 건물들로부터 그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얻는다.

③ 사람 – 상호작용으로 세계관을 완성

<GTA>의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 중 마지막으로 꼽을 것은 도시 속 사람들이다. <GTA 5>까지 이르면서 특히 이 사람 부문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플레이어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GTA 5>에서 별일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온갖 일들을 벌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안에는 반드시 운전자가 앉아 있고, 차를 막거나 사고를 내면 운전자가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른다. 도시 곳곳의 공원에는 아침이면 운동복을 입고 조깅을 하거나 요가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으며 밤에는 밤답게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한산해진다.

게임 속 사람들은 꽤나 디테일한 행동패턴을 보인다. 멀리서 휴대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의 옆에 다가가 보면 휴대전화 통화 내역도 엿들을 수 있는데 단지 전화기를 들고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누군가와 목소리를 높여 대화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간혹 길가는 시민의 지갑을 털어 도망치는 날치기범도 볼 수 있고, 그 날치기범을 잡기 위해 사이렌을 켜고 달려드는 경찰과 와중에 부상당한 사람을 실어 나르려고 달려오는 구급차까지도 등장하는 판이다. 도로로 연결되고 건물을 배경삼은 게임 속 도시의 화룡점정은 이처럼 살아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거리의 사람들은 존재 자체로 도시의 많은 것을 표현한다. 부촌의 사람들과 빈민가의 사람들이 복장과 말투를 달리 갖는 것은 도시의 빈부격차가 생활의 패턴마저도 분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묘사다. 이들은 도로와 건물로 구성된 멈춰 있는 도시의 풍경에 움직임을 부여하고 정적인 풍경으로 미처 다 그려내지 못한 패턴들의 빈 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의 존재는 다른 매체와 게임의 차이를 가르는 가장 큰 지점이기도 하다.

소설이나 영화 등 고정된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콘텐츠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해진 줄거리를 따라 움직인다. 그나마도 중심 서사에 연관이 있는 경우에만 그러하고, 엑스트라 격의 군중이나 지나가는 사람의 경우에는 인물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배경에 가까운 등장을 보인다. 그러나 <GTA>와 같은 오픈월드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보자.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어느 해변을 방문했다. 해변에서 사람들은 수영을 즐기거나 자전거를 타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등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이때까지 주변 사람들의 역할은 배경이다. 해변이라는 장면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인공이 갑자기 총을 꺼내 들고 주변에 난사를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주인공의 폭력에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질 것이다. 플레이어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출동하고 총에 맞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쓰러지거나 피를 흘리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플레이어의 개입과 개입에 대한 피드백으로 이루어지는 게임의 서사는 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며, 자유도라는 이름의 돌발성을 내포한다. 플레이어가 위와 같은 행동을 취하는 순간부터 주변의 사람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상호작용의 대상이 된다. 아무런 서사가 없던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무차별 폭력의 시작을 통해 게임 속 작은 역할극의 서막을 열었고, 그 속에서 때로는 도망치고 때로는 공격하며 플레이어의 극 안에서 각각의 인공지능들은 부여받은 역할의 롤 플레잉을 시작하는 것이다.

<GTA>속의 사람들은 그냥 서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상황들에 대응하는 코드로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들이다. 이 인공지능들은 언제건 주어진 상황이 벌어질 경우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바로 이야기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도시에 대한 두 가지 접근인 도로와 건물이 정적인 형태였다면, <GTA>속의 사람은 동적인 형태로 도시의 생동성을 만드는 존재다.

결정된 미래로 흘러가는 단방향 서사가 아닌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를 상황에 대비한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배치하는 게임의 구조는 게임이 만드는 세계가 세계가 비쳐진 모습이 아닌 세계관 그 자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존의 매체들과 비교해보면 이해가 더 쉽다.

판타지 소설의 전범으로 불릴 수 있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절대반지로 인해 벌어진 위기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활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 서사물이다. 이미 정해진 결론을 향해 달려나가는 소설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선택의 가능성이 쌓여 이루어진 결과로서의 시간에서 서술된, ‘하나의 시점’ 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을 쓰기 위해서는 소설 속 환상의 세계 전반에 대한 설계와 구상이 필요하다. 소설 속의 세계인 중간계란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등장인물들의 종족과 습성은 무엇인지, 지리와 기후는 왜 소설 속의 묘사처럼 나타나는지를 미리 준비하고 설계한다. 이른바 세계관의 설계다.

게임은 제작자가 설계한 세계관 안에서 게이머의 플레이가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GTA>안에 등장하는 반응형 엑스트라들의 존재는 게임 제작자가 만드는 것이 결정된 세계가 아니라 무엇이든 벌어질 수 있는 세계관 자체임을 보여준다. <GTA>안에서도 주어지는 메인스토리라는 이야기 흐름이 존재하지만, 그조차도 게임 속 세계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 하나에 대해 좀더 심도깊은 디테일로 파고든 사례가 된다.

<GTA>가 가상공간 안에 만들어진 도시는 그래서 특정한 시점과 공간에서 바라보는 스냅샷이 아니라, 좀더 관념적인 개념이다. 연결의 매개체로서의 도로, 상징과 배경으로서의 건물, 상호작용의 대상인 사람으로 구현된 GTA의 도시는 그 자체로 세계관을 품은 거대한 세트장이 되며, 별도의 시나리오 없이도 도시에 대한 제작사의 시각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가상의 전시관이다. 이를 통해 <GTA>는 도시를 다룬 수많았던 고전적 콘텐츠가 단지 특정한 사건과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머릿속에 간접적으로 심상을 그려내는 데 그쳤던 선을 넘어 직접적으로 도시에 대한 관념을 심상화하여 보여줄 수 있는 게임 매체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여기까지가 GTA가 갖는 오픈월드 게임으로서의 첫 번째 성취였다면, 두 번째 성취는 오픈월드에 얹은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존재하지 않는 도시, 스토리를 통해 완성되다

관념이 아닌, 그렇다고 실제도 아닌 가상세계 속의 완성된 오픈 월드로서 세계관이 성립된 <GTA>안에는 메인 스토리가 존재한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가 도시 안에서 겪는 이야기를 주어지는 미션을 플레이하면서 따라가게 된다. 살아숨쉬는 도시에서 겪을 법한 수많은 이야기 중 고전적 서사의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토대로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한다. 이때 주어지는 서사는 오픈월드에 존재하는 세계관 내에서 가장 흥미롭고 세밀하게 묘사되는 이야기다.

물론 <GTA>와 같은 오픈월드 게임에서 서사를 따라가는 것은 필수 사항은 아니다. <개리스 모드>라는 게임이 대표적으로, 이 게임은 그냥 일반적인 물리 법칙 하에 구현된 세계 안에서 아무런 정해진 서사 없이 멀뚱하게 서 있는 주인공 캐릭터로 이것저것 뭐든지 해볼 수 있는 자유도에 치중한 게임이다. 주어지는 스토리 같은 것은 없다. 어떤 이는 게임 속 세계에서 혼자 탈출 놀이를 하거나 멀티플레이를 통해 얼음땡 같은 놀이를 하기도 한다.

<GTA>에서도 마찬가지로 굳이 스토리를 따라가지 않더라도 도심 드라이빙을 즐기거나 골프 게임을 하는 등의 유유자적한 게임 라이프를 펼쳐볼 기회가 많다. 이러한 가능성은 이른바 ‘머시니마’라고 불리는 게임으로 만드는 영화 기법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GTA>속에 구현된 세계를 무대로 삼아 캐릭터를 움직여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녹화해 영상물로 만드는 ‘머시니마’의 방식은 <GTA>의 세계가 일종의 메타서술 장치로서도 기능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TA>는 세계관 구현 이상의 노력을 들여 시나리오 스크립트를 기획하고 이를 게임 안에 반영한다. <GTA 3: San Andreas>에서는 산 안드레아스의 흑인 갱스터인 주인공 칼 존슨 주니어가 여러 갱스터들의 음모와 배신 속에서 살아남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GTA 4>의 주인공 니코 벨릭은 밀항선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온 동유럽 출신의 불법체류자가 험난한 미국 도시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그린다. 최신작 <GTA 5>에서는 흑인 갱스터,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은신해 사는 전직 강도, 사이코패스 성향이 가득한 범죄자 세 사람의 얼키고 설킨 이야기를 다중 시점에서 풀어내며 호평을 얻었다.

<GTA>속에서 서사는 세계관의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플레이어에게 기획자의 의도를 좀더 뚜렷하게 전달하는 장치다. 부촌과 빈민가의 뚜렷한 대립은 도시의 구조와 구역을 달리는 차량의 외관에서도 볼 수 있지만, 플레이어 캐릭터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좀더 구체화된다. 존재하는 세계 사이사이를 흐르는 맥락을 메인 스토리는 서사의 형식을 빌어 플레이어에게 좀더 직접적으로 속삭인다. 이를 통해 세계관 안쪽에서 벌어지는 맥락의 영역이 드러나게 된다.

서사를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도시의 모습은 음모와 배신, 협잡과 이기주의로 가득찬 인간의 욕망이다. 먹고살기 위해, 그냥 기분대로, 분노에 찬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얽혀 벌어지는 인간사의 드라마는 결국 전통적 서사가 왜 인간에게 가장 사랑받는 콘텐츠인지를 증명하는 매력의 요소다. 세계관으로서 주어진 도시의 설계만으로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모습을 맥락적 측면에서 읽기에는 부족하고, 서사는 이 부족한 지점을 메꾼다.

기존의 서사 콘텐츠들이 서사의 과정 속에 세계를 그려낸 반면 <GTA>는 게임의 문법을 통해 구현된 세계 안에 서사를 삽입하여 서사를 소화하는 방식에서의 새로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구현해 냈다. 역동적이면서도 개인에게 고독을 안기는 도시의 역설적 측면은 가상 세계의 구현 속에 그려지고 세계관을 딛고 선 서사에 의해 구체화된다. 이렇게 다가온 도시의 의미는 플레이어의 기억 어딘가에 마치 실제로 다녀온 듯한 도시와 그 도시에서 겪었던 일들을 추억과 같은 감상으로 그려내며, 이 경험은 기존 매체가 만들지 못했던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매체 경험이 되었다.

사건이나 양태를 이해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낯설게 하기다. 수 천년 전의 고대도시 유적을 발굴하며 삶의 흔적을 찾고 소설 속의 묘사 한 구절 한 구절을 더듬고 그림과 사진 속 장소의 의미를 읽는 여러 행위들을 통해 우리는 문명화된 인간의 모태였던 도시를 다양한 관점에서 낯설게 바라보아 왔다. 그리고 이제, 아예 세계관 자체를 먼저 제시하는 게임이라는 또다른 매체의 문법을 통해 <GTA>는 도시에 대한 색다른 관점에서의 이야기를 던진다. <GTA>를 플레이하는 것은 그래서 단순히 뉴스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폭력과 범죄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출발점에 대한 상상을 가상의 블록으로 쌓아올리며 시도해 보는 새로운 놀이이자 실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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