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문화 변천사의 잃어버린 고리 '플스방'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01.10 01: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니의 가정용 게임 콘솔 기기인 ‘플레이스테이션’ 은 최근까지도 엑스박스와 더불어 콘솔 게임시장을 이끄는 브랜드다.  90년대 닌텐도와의 불화 끝에 소니의 단독 게임 플랫폼으로 탄생한 이래 여러 콘솔 기기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한 플레이스테이션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플레이스테이션이 대중적 게임으로서 어떤 위치에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가 대중적인 게임으로 자리하기 시작한 시점은 2000년대 초중반이다. 그런데 이 시기 한국 게임 문화는 ‘스타크래프트’를 중심으로 한 PC방 플레이가 대흥행을 일궈내고 있던 터였다. PC방 중심의 온라인 대전 문화가 일찌감치 꽃피우고 있었던 한국 상황에서 ‘가장 대중적인 게임 플랫폼’이라는 타이틀은 PC방 환경에 내줄 수 밖에 없던 처지였다.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플랫폼이 아니라고 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위상이 크게 떨어진다고만 볼 수도 없다. 이 시기의 플레이스테이션은 분명 게임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해외에서처럼 가정용 콘솔의 제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플스방’ 이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소비가 되었다. 플스방은 2000년대 초중반의 한국 게임 문화사에서 빠져선 안되는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가정 거실에서 사용하도록 설계되었던 게임 콘솔이 어떻게 한국에서는 '플스방'이라는 독특한 방문화에서 사용되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중반 돌풍을 일으킨 플레이스테이션2

‘방’이지만 ‘방’이 아닌, ‘플스방’ 등장의 배경

가정용 게임기로 출시된 플레이스테이션이었지만 실제 한국에서 이 기기의 위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정의 거실이나 방이 아닌, ‘플스방’이었다. 80년대 경제부흥기의 가정용 게임기들이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부를 상징하기라도 했지만 ‘플스방’ 시대의 메인 기기였던 플레이스테이션 2는 그 위치를 차지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200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대략 30만원 선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 2는 외환위기로 인해 성장세에 사형선고를 받은 사회와 가정경제를 고려할 때 집에 들여놓기 어려운 기기였다. 단순한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유희에 쓰는 비용을 허락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고속 성장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던 과도한 교육 열풍은 한국 사회의 다른 문제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이른바 강남 8학군이라는 단어는 강남개발과 그로 인한 부동산 폭등에 얽혀 있다. 지금까지도 서울의 주요 지역 집값의 견인은 '좋은 학군'이 하고 있다. 학생이 공부에 '올인'해야하는 상황에서 유희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한국 사회의 중심에 자리하는 교육의 문제는 플레이스테이션 2가 집안의 거실에 자리잡기 어려운 이유 중 가장 먼저 손꼽히는 부분이다.

앞 세대 게임기들은 어린이들의 장난감 취급을 받았다. 반면 플레이스테이션 2에 이르면서 게임기는 보다 나은 퀄리티로 유년기의 유희를 넘어선 무언가를 보이려는 시도를 했다. ‘슈퍼 마리오’의 패미콤 시절과 ‘진 삼국무쌍’의 플레이스테이션 시절은 게임기의 중심 타겟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런데 경제부흥기에 어린이 장난감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가정용 게임기는 경제상황의 변화와 타겟층의 청소년화라는 두 가지 문제 앞에서 난관을 맞는다. 어느 부모도 중고등학교라는, 학벌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감히’ 대놓고 놀기 위한 전자기기를 비싼 값에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PC의 경우는 달랐다. 대학 학과 서열표 상단에 전자공학과, 컴퓨터공학과가 높게 잡히던 시절이었고, 국가와 사회는 지속적으로 컴퓨터가 우리의 미래임을 이야기했다. 외환위기 이후 정권을 잡은 김대중 정부는 국비 IT과정을 통해 전산기술 보유자를 양산했고 새로운 산업군을 일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래서 청소년의 방에 PC는 들어갈 수 있어도 플레이스테이션 2의 자리는 없었다. 게임기는 PC방이라는 플랫폼의 영향권 아래에서 ‘플스방’ 이라는 이름으로 외유를 시작한다.

위닝 일레븐 2018

‘플스방’의 성업에는 집에 놓기 어려웠던 가정용 게임기라는 '플랫폼적' 현실 외에도 콘텐츠적 이유가 존재했다. 바로 ‘위닝 일레븐’이 그것이다. PC플랫폼의 축구 게임을 대표하던 ‘FIFA’ 시리즈는 플레이스테이션 2의 ‘위닝 일레븐’ 앞에서 매번 무릎을 꿇어야 했다. 다이내믹하고 정교한 축구 경기를 매번 담아내면서 위닝 일레븐은 축구 게임의 왕좌로 자리매김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누가 축구를 피파로 하냐? 위닝 해야지’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로 위닝일레븐은 서서히 축구 게임의 ‘온리 원’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이는 ‘플스방’의 다른 이름인 ‘위닝방’이라는 단어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난다. 어떤 이들에게 ‘플스방’은 그저 ‘위닝 일레븐’을 플레이하는 공간이었다. 이미 PC방을 통해 단체로 모여서 게임하는 방식의 재미를 익힌 대중들은 ‘위닝방’으로 이동해 좀더 푹신하고 편안한 소파와 CRT모니터(당시만해도 LCD모니터의 보급률이 낮은 상황이었다) 보다 훨씬 크고 넓은 TV화면으로 박진감있는 축구를 즐길 수 있었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을 휩쓴 월드컵 열풍마저 가세하며 ‘위닝 일레븐’ 과 ‘플레이스테이션 2’는 감히 누구도 부인하지 못했던 ‘PC방’ 과 ‘스타크래프트’ 의 돌풍 속에서 꺾이지 않으며 한 영역을 차지했다.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만져보기조차 어려웠을 ‘플레이스테이션 2’는 그렇게 ‘플스방’, 혹은 ‘위닝방’ 이라는 이름과 함께 2000년대 한국 게이밍 문화에 한 획을 긋는 기기가 될 수 있었다.

덕분에 지금도 2000년대의 게임 문화를 추억하는 많은 이들의 경험에는 ‘플레이스테이션 2’와 ‘위닝일레븐’을 플레이한 경험은 많지만 이 기기를 소유했던 경험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등장한다. 본래 가정 소유를 목표로 제작된 기기는 경제적, 문화적 상황에 치이며 가정 보급에서는 기대할 만한 성과를 이뤄내지 못했지만 ‘플스방’이라는 문화와 월드컵 열풍이라는 시대적 환경이 만들어 낸 틈새에 정착할 수 있었다. 가정용 게임기였지만 어느 순간 공공장소용 기기가 되어 스티커가 붙었던 당시의 상황은 한국의 현대 문화사에서 놓쳐서는 안될 지점이다.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위닝일레븐을 하던 박지성 화면 캡처

상업화된 공용공간 '방', 놀이 문화를 바꾸다

‘플스방’ 은 ‘플레이스테이션’ 과 ‘방’ 의 합성어다. 사무공간의 작은 구획을 가리키는 ‘실’ 과는 달리, ‘방’ 은 대체로 가정과 같은 휴식 공간의 구획를 주로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방’ 은 가정의 범주를 벗어나는 영역에서도 쉽게 접하는 단어가 되었다. 아마도 그 기원으로는 ‘노래방’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가라오케 시스템을 통해 유입된 노래방 기기는 처음에는 부산, 서울 등지의 유흥업소에서 주점의 흥을 돋구는 용도로 사용되다가, 술 없이도 노래할 수 있는 ‘방’의 형태를 갖추면서 노래방이라는 장소로 등장했다. ‘노래실’ 이 아닌 ‘노래방’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점은 돌이켜볼 만 하지만 여기서 깊게 다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이를 통해 상업적으로 공용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얻은 ‘방’은 이후 온갖 서비스의 중심이 되었다. 빨래방, 편의방(편의점에서 주류와 안주를 구매해 바로 옆의 실내 테이블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간이 주점의 형태로 운영되다 사라졌다)과 같은 방의 형태는 1998년 ‘스타크래프트’의 대유행과 함께 '대 PC방 시대'를 맞이했다.

한국에서 ‘방’ 문화의 대명사로 꼽을 만한 양대 산맥인 ‘노래방’ 과 ‘PC방’ 은 둘 다 유희적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방’의 원래 위치인 가정으로부터는 쫓겨났다는 특징을 갖는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논다는 측면에서는 비슷하지만 유행시점은 대략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로 나눠진다. 이런 방문화의 부상은 당시 가정안에서의 유희방식의 변화를 불러온다. 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해 노는 문화의 퇴조다. 

80년대 드라마 등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장면 중의 하나는 회사원인 주인공이 술에 취해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집으로 늦은 시간에 몰려들어오는 장면이었다. 심야영업이 제한되던 시절, 미처 술자리를 멈추지 못한 직장인들은 툭하면 동료네 집에 몰려가곤 하던 일들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2010년대에 이르른 지금에는 사실 옛날만큼 일상적인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집들이를 해도 진짜 집에서는 간단히 차와 다과 정도만 나누고, 식사 등의 번잡한 일들은 근처 식당에서 치르는 형태로 변했다. 집에서의 놀이 문화가 변한 것이다.

‘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집이 아닌 상업화된 공용 공간인 '노래방’과 ‘PC방’의 유행은 한국의 놀이문화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부의 ‘방’ 에서 모여 노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만큼, 가정용 콘솔이었던 플레이스테이션이 외부의 ‘방’으로 진출하는 것 또한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 ‘위닝을 할 수 있는 방도 나왔어?’라며 놀라던 사람들은 이제는 자연스럽게 ‘위닝 한 판 할까?"라며 근처 플스방을 찾게 된 것이다. 집에 모여 노는 것보다 더 편하게 느껴지는 외부화된 ‘방’의 존재는 물론 비단 플스방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정용, 그것도 서구에서는 주로 거실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게임기가 외부화된 방에 위치하는 것은 한국 놀이문화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사례다. 

게임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대체로 게임기를 소유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80년대에는 오락실, 90년대 이후에는 PC방이라는 환경에서 게임 경험을 쌓으며 자라 왔다. 그런 게임 경험 환경에서 ‘플스방’ 은 매우 독특하고, 이질적인 사례다. 패미콤이 없어도 옆집 친구에게 잘 보여서 ‘슈퍼 마리오’ 한 판을 해 보던 시절과, 플레이스테이션이 없어도 ‘플스방’ 에서 밤새 ‘위닝 일레븐’을 플레이할 수 있었던 두 시대를 이야기할 때 ‘플스방’이라는 독특한 게임 환경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