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세월호 추모리본이 IOC 헌장 위반?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8.02.20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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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에 출전한 김아랑 선수는 헬멧 뒤쪽에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을 달았다. 이 리본에 대해 일부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 위반을 거론한다.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선수의 세월호 리본 부착이 "올림픽 정신 위배"라고 주장했고, 김세의 MBC 기자도 김아랑 선수의 정치적 의도를 언급하며 올림픽 헌장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한 일베 유저는 김아랑 선수를 IOC에 신고했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JTBC뉴스룸은 18일 “쇼트트랙 김아랑 선수 헬멧에 그려진 노란리본입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상징물이죠. 그런데 일부 네티즌이 ‘정치적으로 달고 나왔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IOC는 공식 스폰서를 보호하고, 올림픽의 이념과 흥행이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해 엄격한 정책을 펴고 있다. IOC 헌장에서 관련 조항은 제50조다.

 

 

1. IOC 집행위원회의 예외적인 승인이 있지 않는 한, 어떠한 형태의 광고나 홍보도 스타디움, 베뉴 및 올림픽 시설에 포함되는 경기시설 내부 혹은 상공에 허용되지 않는다. 상업적 설치물 및 광고 간판은 스타디움, 베뉴 혹은 다른 스포츠 지역(땅)에 허용되지 않는다.
2. 올림픽 장소, 베뉴 및 기타 구역에서 어떠한 형태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 적 혹은 인종적 선전도 허용되지 않는다.

세월호 추모 리본은 광고(advertising)나 홍보(publicity)에 해당하지 않고, 상업성과 관계가 없다. 추모 리본을 정치, 종교, 인종적 선전(propaganda)으로 보는 건 지나친 해석이며, 추모 리본 부착을 시위(demonstration)로 보기는 어렵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때 추모 상징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선수단은 자국에서 일어난 유혈 사태 희생자 추모를 위해 검은 완장을 부착하겠다는 뜻을 IOC에 전달했지만, 무산됐다. 소치 대회 개최국은 러시아였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깊숙이 개입한 국가다. 당시 우크라이나 올림픽위원회는 “IOC가 완장 착용을 불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IOC의 공식 입장은 ‘완장 착용을 금지한 바 없으며, 우크라이나 선수단의 자체 결정으로 완장을 착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크지만 IOC가 올림픽에서 추모 상징을 ‘공식적으로’ 금지한 전례는 없다

 

김아랑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는 조항이라면 IOC헌장 50조의 부칙1이다.

“어떠한 형태의 홍보나 선전, 광고도 선수나 기타 참가자들의 신체나 스포츠웨어 및 용품, 혹은 보다 일반적으로, 모든 선수, 팀 임원 및 관계자, 그리고 모든 올림픽대회 참가자가 사용하거나 착용하는 장비나 의복 및 기타 용품에 표시할 수 없다.”

50조 2항에서는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을 금지하고 있지만, 부칙1은 헬멧을 포함한 의복이나 장비, 용품 등에는 종류를 불문하고 ‘선전’을 금지하는 게 원칙이다. 이를 위반하면 실격이나 등록승인 취소 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부칙1은 IOC집행위원회가 채택하는 가이드라인에서 구체화된다.

IOC 집행위원회가 채택한 가이드라인 표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발표된 가이드라인 29페이지는 국제빙상연맹(ISU) 소속 쇼트트랙 선수들의 헬멧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ISU 규칙에 따라 헬멧에는 선수 자신의 이름과 국가, 개인적인 장식이 포함될 수 있다

세월호 리본과 같은 ‘개인적인 장식’은 일단 가이드라인에서 허용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서 가리키는 ISU규정은 ‘국제빙상연맹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특별규정 및 기술 규칙’ 295조에 포함된 ‘헬멧커버’다. 2016년판 ISU규칙은 “헬멧 커버가 지급되지 않을 경우 선수들은 헬멧에 예술적인 디자인을 표현할 수 있다. 세부 사항은 ISU 통신문에서 구체화한다”고 규정한다.

ISU는 2016/2017시즌부터 정책을 바꿔 종전까지 일괄 지급했던 헬멧커버는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대신, 개인 헬멧(Personalized Helmets)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기존의 ‘탈바가지’ 같은 헬멧 커버 디자인에 대한 비판을 수용한 결과다. 이에 따라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독특한 디자인과 예술성이 담긴 헬멧을 사용하고 있다.

아무 디자인이나 허용되는 건 아니다. 개인 헬멧에 대한 세부 지침은 2016년 7월 26일자 통신문(Communication No. 2028)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서 디자인과 도안에 대한 금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외설적이거나 도발적

2) 범죄, 인종차별, 종교적 상징 관련

3) 형광색

4) 특정 상표를 표현하거나 연상

5) 국기는 가능

6) 모든 종류의 문구, 슬로건, 캐릭터, 타이포그래피

7) 개인 스폰서 로고, 홍보 문구

8) 20제곱센티미터를 초과하는 제조사 마크

세월호 리본은 외설적이거나 도발적이지 않고, 범죄나 인종차병, 종교적 상징과도 거리가 멀다. 형광색으로 칠해져 있지 않으며, 특정 상표나 스폰서와도 무관하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합니다”라는 문구가 헬멧에 적혀져 있었다면 규칙 위반이지만, 리본은 글씨가 아니다.

따라서 IOC의 부칙 1조 가이드라인와 ISU 규정 및 세부지침에 따르면 김아랑 선수의 세월호 리본은 규칙 위반으로 볼 수 없다.

50조 2항의 ‘정치적 선전’으로 돌아가보자.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넓게 해석될 수 있다. 극단적인 관점에서는 모든 행위나 상징은 정치적이다. ‘세월호 노란 리본은 정치적인 상징이야’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노란 리본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저항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IOC는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확대해석해 여러 상징들을 적극적으로 규제하는 입장을 가져야 할까.

김아랑 선수는 본인의 SNS에 문재인 대통령과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린 적이 있다. 그래서 세월호 리본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보수세력이 있다.

비현실적이다.

IOC는 본질적으로 메가스포츠이벤트를 주최하는 회사다. IOC의 역사는 스포츠의 순수성이라는 이념과 대회의 상품성 제고라는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사례로 넘쳐난다. 정치나 인종, 종교 관련 이슈를 IOC가 헌장에서 금지하는 이유는 올림픽이라는 상품이 비스포츠적인 가치로 훼손돼 상품성이 떨어지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명문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추모 리본을 ‘정치적’이라고 해석해 규제한다면 IOC가 원하지 않는 비스포츠적인 가치로 올림픽이 훼손되는 결과를 낳는다.

넓게 해석한다면 ‘세월호 리본은 정치적’이라는 주장 역시 정치적 선전이다. 정치적 선전을 관철시키키 위해 정치적 선전을 금지한 IOC 헌장 50조가 인용되는 건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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