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직원’은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나?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03.0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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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교묘하게 퍼져가는 ‘가짜뉴스’

또 가짜뉴스다. 이번에는 “북한 김영철에게 90도로 숙이는 문재인 대통령”이란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짜뉴스의 확산 과정에서 이전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뉴스톱에서 확인했다.

 

최근 며칠 사이에 한 장의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기 시작했다. ‘북한 김영철에게 90도로 숙이는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이었다. 사진은 곧 현 정부여당에 반대하는 SNS계정을 중심으로 확산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짜뉴스’임이 밝혀졌다.

이 가짜뉴스는 처음부터 조작된 가짜는 아니었다.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남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일행이 도착한 25일, 언론들은 김 부위원장 일행이 숙소인 워커힐 호텔에 도착한 모습을 여러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이날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자신의 계정에 김 부위원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누군가와 악수하는 사진과 함께 “차라리 문재인이 아니라 김영철을 대통령이라 하는 게 낫겠다. 이런...”이라는 글을 저녁 6시 58분에 게시했다.

이 이용자는 페이스북 소개란에 ‘위헌탄핵, 탄핵무효’라고 적어놓고 있는데, 학력 외에 특별한 개인 소개를 적어놓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용자의 이름과 프로필 사진을 기반으로 검색을 하면, 정치인으로서의 다양한 이력이 나온다.

포털 사이트 다음 인물검색에 이 이용자는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 무소속으로 부여군/청양군에 출마해 1.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낙선했고,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국민중심연합 후보로 청양군 구시군의장 후보로 출마해 3.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역시 낙선한 것으로 나온다.

특히 2012년 선거 때는 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선거일을 한 달여 앞두고 공천과정에 불만을 토로하며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해 12월에는 이번 6.13 지방선거에 국민의당 청양군수 출마 후보 가운데 1인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 계정의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단순 팔로어가 아닌 계정주인의 지인들에게 이 계정은 정치인으로서 일정부분 영향력을 가진 SNS계정인 셈이다.

전형적인 '가짜뉴스'로 만들어져 등장

곧 이어 진짜 ‘가짜뉴스’가 등장한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26일 오전, 앞에 페이스북 이용자가 게시한 것과 같은 사진에 캡션과 코멘트를 달아 합성한 이미지를 자신의 글과 함께 트위터에 게시했다. 사진의 인물에는 김영철과 문재인이라는 캡션이 생겼고, "문재인 대통령 아무래도 수상함!"이라는 문구가 합성되어 있다.

또 사진부분에는 국내통신사인 ‘news1’ 워터마크가 있고, '(펌글) 문재인 대통령이 수상합니다. 주적도 잘 모른다는데 국군통수권자 맞나요?'라는 문구가 약간 흐리게 나타나 있다.

이 이용자는 이 합성된 가짜이미지가 진짜라고 믿으며, 비속어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코멘트를 게시했다.

사진의 출처는 news1이 맞았다. 2월 25일 12시3분에 송고한 ‘서울 도착한 김영철 ’반갑습니다’’라는 제목의 사진기사다.

news1은 사진에 대해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남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이 25일 오전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 도착해 남측 환영인사와 악수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짜뉴스 사진의 인물 캡션에서 김영철은 맞지만 고개 숙이며 악수하는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다. 같은 상황을 촬영한 중앙일보 기사의 동영상을 통해 김영철과 악수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중앙일보 동영상 화면 캡처

중앙일보는 다른 기사에서 이 인물이 정부 관계자인지 호텔직원인지 논란이 있다고 보도했지만, 노컷뉴스는 통일부에 확인한 결과 워커힐 호텔 관계자라고 보도했다.

전형적인 가짜뉴스인 이 게시물은 몇몇 정치적으로 비슷한 성향의 팔로어들이 공유하며 퍼져가다가 곧 가짜뉴스이니 신고했다는 트위터멘션을 받게 되고 게시자는 게시물을 삭제했다.

가짜뉴스 사진 하단의 “문재인 대통령이 수상합니다. 주적도 잘 모른다는데 국군통수권자 맞나요?”라는 문구는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의 페이스북 글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웹툰작가 윤서인의 만평으로 논란 

금방 묻힐 뻔했던 이 가짜뉴스는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웹툰작가인 윤서인은 자신이 연재하고 있는 인터넷신문 만평에 ‘지켜보고 있다’라는 제목으로 위의 사진이 연상되는 만평을 ‘고개라도 숙이지 않았으면’이라는 문구와 함께 게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사만화 그리기 시작한 이래 가장 분노하면서 그린 컷”이라는 언급과 함께 게시한다.

이 만평은 극우와 혐오로 유명한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등에 공유된다. 게시물의 댓글에는 문재인 대통령으로 오인하거나 문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로 가득하다.

일베 이용자들을 비롯해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온라인에서 웹툰이나 만평 등을 수시로 공유할 정도로 ‘유명작가’인 윤 작가의 코멘트가 영향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만평이 확산되자 몇몇 이용자들이 마타도어(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 하거나 그 내부를 교란시키기 위해 하는 흑색선전)의 예라며 윤 작가가 앞서 가짜뉴스 사진을 바탕으로 만평을 그렸다고 비난했다.

또 헤럴드경제는 ‘윤 작가가 가짜뉴스를 진짜 뉴스로 잘못 인식하고 만평을 그렸다’고 보도했고. 오마이뉴스는 윤 작가의 코멘트를 지적하는 기사를 썼다.

윤 작가가 가짜뉴스를 보고 해당 만평을 그렸다는 근거는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의 파급력은 가짜뉴스보다 훨씬 컸고 파문이 커지자 윤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가짜뉴스를 본 적이 없으며, 만평의 인물모습은 자신이 평소에 그리는 문재인 대통령과는 다르다’며, 헤럴드경제 기사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영향력만큼 책임감도 필요

유명인사나 온라인 상에서 일정 이상의 영향력을 가진 이들의 글이나 게시물이 문해력이 낮은 이용자들에게 오독을 일으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의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최근 중앙일보 안혜리 논설위원의 글이 그런 논란에 올랐다. 안 위원은 글에서 최근 성폭력 사건으로 연일 보도되고 있는 이윤택 연출가를 언급하며 "대통령 지인인 연극계 원로가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엎고 저지른 추악한 성폭력 사건"이라고 설명했다.('엎고'는 '업고'의 오기로 보인다) 그러나 글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해당 문장에서 ‘대통령 지인’이라는 수식은 뜬금없고 전혀 맥락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 글을 주의 깊게 읽은 독자들이 저 수식을 보고 대통령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끼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도 "미투 운동을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지적하는 을 올렸다.

영향력이 큰 인사들의 글이나 콘텐츠는 그만큼 파급력이 크다. 자신이 가진 영향력 만큼의 책임감이 필수 덕목인데, 오히려 뭔가 의도를 담고 독자나 콘텐츠 수용자들을 기만하거나 유인한다면 또 다른 형태의 '가짜뉴스'제작자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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