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일자리 정말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을까?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8.03.2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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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는 지난 18일 <“여성일자리 괄목할 성장”…취업률·임금상승률서 남성 추월>이라는 기사를 냈다.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이후 30년 동안 취업률·임금상승률·임금근로자 비율 등에서 여성이 남성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이는 한국고용정보원의 보고서 ‘고용동향 브리프(2018년 2월호)’의 ‘여성과 저임금’을 인용한 것이다. 4월 1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30주년을 맞아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발행된 연구자료이다. 

보고서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향상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공공기관이 국가시책에 따라 상황이 개선됐음을 홍보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 지원금을 매해 수백억원 받는 연합뉴스가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언론은 단순한 속기사가 아니다. 보도자료나 연구보고서를 그대로 베껴쓰는 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현상의 이면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말 보고서 표현대로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가 많이 향상됐을까?

연합뉴스 기사를 살펴보자. 여성이 남성에 비해 취업률이 상승했다는 근거로 30년 전인 1988년 677만1000명이던 여성 취업자 수가 1135만6000명으로 67.7% 증가했지만, 남성 취업자 수는 1009만9000명에서 1536만8000명으로 52.5% 증가했다는 점을 제시했다. 또 임금상승률이 여성이 남성을 앞질렀다는 근거로는 2004년에 비해 2017년의 여성 임금근로자의 평균 월 급여가 67.8% 상승했지만, 남성 임금근로자의 경우 54.9% 상승한 것을 비교했다. 시간당 평균 임금도 여성은 85.5% 늘었고, 남성은 72.9% 증가했다고 소개했다. 또 여성의 임금 상승에 따라 임금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내놨다.

통계는 사실이지만 반드시 진실은 아니다. 19세기 영국 정치인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세상에는 세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말한 바 있다. 통계에서 어떤 측면을 부각하느냐에 따라 전혀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연합뉴스 기사에서 아쉬운 점은 이 기사에 쓰인 통계가 마치 여성의 취업률과 임금 수준 자체가 남성에 비해 높아지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같은 통계 수치를 두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문제의식과 해법에는 상당한 차이가 나타난다.

예컨대, 과거에 비해 현재 취업자 수가 증가한 정도를 보여주는 취업률의 상승 수준은 남녀가 각기 다른 기준치를 기반으로 한다. 1988년 당시 남성의 취업자 수(1009만9000명)는 여성(677만1000명)에 비해 많았고, 현재의 취업자 수 역시 남성(1536만8000명)이 여성(1135만6000명)에 비해 많다. 과거에도 남성 취업자가 많았고, 현재도 남성 취업자가 많은 것은 변치 않았다. 그 사이 여성의 고용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여성은 고용 시장에서 남성에 비해 낮은 비중을 보여준다.

임금 상승률 역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임금 상승률이 남성의 임금 상승률보다 높았지만, 같은 기간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에 주목하는 것이 더욱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2011년 여성의 남성 대비 임금 비율(57.9%)에 비해 2017년 63.2%로 높아진 것을 두고 과연 ‘괄목할 성장’이라고 봐야 할까. 오히려 여성은 남성에 비해 36.8%나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가 보도를 하면 다른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는 경우가 많다. '여성 일자리 괄목한 성장' 기사 역시 마찬가지다.

연합뉴스가 통신사인 만큼, 이 기사를 보고 같은 주제로 유사한 기사를 쓴 언론사가 대다수다. 때문에 마치 여성이 고용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어 여성의 권익이 대단히 좋아진 듯이 다루는 기사가 우후죽순 쏟아졌다.

그 결과 이런 기사들에 대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호소하는 반응이 눈에 띈다. 연합뉴스 기사에 대한 네이버 댓글 창에서는 “요즘 남자에 대한 역차별이 심각하다”, “정치인들이 여성표를 의식해서 남자들을 누르고 여자들의 환심 정책만 하니 이런 결과가 온다”, “여자들이 취업하면 남자들이 결혼을 못한다” 등의 댓글들이 호응을 얻고 있다. 성평등 문화가 자리잡는 현실에 대한 남성들의 상대적 불안과 불만감이 엿보인다.

네이버의 연합뉴스 기사에 대한 순공감수가 많은 댓글들.

같은 보고서를 토대로 다른 시각으로 쓴 기사를 살펴보자. 아시아경제는 <남녀고용평등법 30년…저임금일자리에 몰리는 여성들>이라는 기사를 통해 “여성 노동시장은 양적으로 성장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임금 수준이 낮은 중고령층 여성 취업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특정산업에 여성인력이 집중되는 등 정책적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실제 보고서를 보면 여성의 임금 수준과 관련해 “여성의 임금 수준이 급격히 향상된 것은 아니며, 남녀간의 임금 격차 감소에 남성 임금근로자의 임금 분포 변화가 기여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분석에 따르면 남녀 간에 각기 두터운 임금근로자 층이 존재하는데, 여성은 1~6등위선(숫자가 낮을수록 저임금)의 임금근로자 층이 두터워진 반면 남성은 5.2~6등위선의 중간층이 두터워지고 고임금 근로자층은 줄었다. 여성의 임금 수준이 좋아져서 격차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남성의 임금 수준이 저임금화한 경향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은 성별에 따른 문제라기보다 고용 시장 전반의 저임금화로 풀이해야 하는 지점이다.

출처 :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동향 브리프(2018년 2월호)’의 ‘여성과 저임금' 보고서

특히 보고서는 여성의 고용률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여성이 분포하고 있는 산업이 보건업, 사회복지 서비스업, 도소매업, 교육 서비스업, 숙박 및 음식점업 등에 편중된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산업들은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이어서, 여성의 임금 수준이 개선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보고서는 최저임금 영향권에 놓일 확률이 높은 중·고령층 여성 임금근로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여성빈곤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같은 통계라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요즘처럼 페미니즘을 둘러싼 성대결 양상이 심화되는 시기에, 현실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수치에만 의존한 기계적 기사를 생산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팩트'를 제시한다고 해서 진실한 보도를 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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