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이 폭발하지 않은 열가지 이유'는 비합리적이다

  • 기자명 김형민
  • 기사승인 2018.03.26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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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 사건에 대해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부르짖었다가 무참하게 죽은 이승복 어린이를 ‘반공 영웅’으로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에 동상을 세워 가며 그 장렬한(?) 최후를 학생들에게 주입했던 군사 독재 정권의 작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는 데에 뜻이 모아졌다. 그런데 그 다음 부분에서 그분과 나는 첨예하게 갈라졌다. 나는 1968년 말 울진 삼척지구에 인민군 유격대가 대거 침투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12월 5일 한 화전민 가족이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몰살당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지만 그분은 그걸 부정했다. 인민군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냐고 반문했다. 심지어 중앙정보부가 ‘조작’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가족이 다 몰살당했다면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친 건 누가 들은 거냐며 반박해 왔다.

그러나 그는 현장의 증인이 지금도 살아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다름아닌 이승복의 형이다. 온 가족이 몰살당하고 동생은 입이 찢겨 나가 죽는 상황에서 살아남았던 것이다. 이승복을 조작이라고 우기던 사람은 그 형이 살아남았다는 팩트를 알지 못했다. 그 아버지도 부상을 입었지만 현장에서 탈출했고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죽어갔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이승복을 조작으로 믿는 ‘진보’가 주변 사람들에게 “이승복 얘기는 죄다 거짓말”이라며 소리 높여 외친다고 주장해 보자. 하지만 누군가 그에게 부인할 수 없는 팩트를 들이밀 때, 즉 실제로 중대 병력 규모의 인민군 유격대가 동해안에 상륙해 울진 삼척 등 산악 지역에서 게릴라전을 펼쳤고 그 와중에 일어난 학살극임을 주지하게 될 때 “이승복은 '콩사탕이 싫어요'하다가 죽은 거야” 하면서 농담하며 웃는 ‘진보’를 그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보게 될까.

어떤 주장의 설득력을 담보하는 건 당연하게도 그 주장의 근거의 합리성이다. 그것이 구비되지 않으면 주장은 힘을 잃고 주장하는 이들은 고립된다. 오히려 그 주장에 섞여 있는 일말의 진실마저 왜곡되거나 외면받기 일쑤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프로파간다가 힘을 잃은 이유다. 이순신 동상만큼이나 많이 세워졌던 이승복의 동상들은 군사독재 정권이 내밀던 프로파간다의 허위와 실패의 흉측한 증거로 전국 방방곡곡에 남아 있다. 이승복은 사실이었으나 그들의 반공 신화는 역겨운 과장이었고 결국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았다. 하지만 나는 “이승복은 조작”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진보’를 보면서 그 역설도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이른바 진보가 내미는 역사와 주장에 합리성이 빠진다면, 사실적 근거가 없다면 이승복 동상을 세우며 ‘반공 영웅’으로 만들었던 옛 군사독재자들의 행태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3월 22일 천안함사건 진실규명 범시민사회공동대책협의회가 출범했다. 신상철 전 천안함 조사위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코난 도일이 창조한 걸작 캐릭터 셜록 홈즈는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불가능한 요소를 모두 제거한 뒤 남은 것이 아무리 믿을 수 없다 해도 결국 그게 진실이다.” (When you have eliminated the impossible, whatever remains, however improbable, must be the truth.) 이렇듯 진실이란 각자의 믿음을 지탱하고 있는 근거들 가운데 불가능한 것을 소거하고 가능한 것을 인정하면서 윤곽을 드러낸다. 각자의 ‘믿음’에 따라 좌우되는 존재는 아니다. 믿음에 따라 불편한 진실은 있을 수 있으나 그 불편함 때문에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럼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불가능한 요소’에 대한 토론과 수정일 것이다.

며칠 전부터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장식했던 포스팅이 있다. 전(前) 천안함 조사위원이었던 신상철씨의 “천안함에 폭발이 존재하지 않는 열 가지 이유”다(최근에 그을음이 없는 것을 이유로 열한가지 이유를 들었다). 그가 공유를 호소하면서 많은 이들의 담벼락에 이 ‘이유’들이 내걸렸지만 나는 그 이유들 태반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울러 이들과 아울러 천안함 ‘의혹’이라고 제기되는 사안들 몇 가지도 납득할 수 없었다. 한 번 그 간극을 메우는 시도를 해 보고자 한다.

일단 필자는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힐 위치에 있지 않고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 감히 천안함의 진실이 무엇인지 소상히 밝히고 결론을 내리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필자가 생각하는 불가능의 영역과 신상철씨가 제시하는 불가능의 영역이 다른 바, 그 불가능의 영역들을 한 번 비교해 보려는 것이다. 이견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올바름이 도출되고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실은 객관성을 획득하게 마련이다. 천안함을 북한이 격침시켰다고 믿으면 수구꼴통이 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빨갱이가 되는 이 ‘웃픈’ 현실은 하시라도 빨리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서론이 길었다. 얘기를 시작해 보자.  2018년 3월 26일은 천암한 침몰 8주기다. 참, 그 전에 귀찮게 달라붙어 이것저것 물어보는 무식한 문돌이를 이해하고 인내해 준 몇몇 예비역 장교분들과 페친들께 감사한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부부가 2월 9일 평택 2함대 사령부에 있는 서해수호관을 방문하고 천안함 잔해를 둘러보고 있다. 출처: 백악관

*신상철씨가 주장한 천안함에 폭발이 존재하지 않는 10가지 이유

1. 화약냄새를 맡은 대원이 없다.

2. 이비인후과 손상이 없다

3. 물기둥이 없다

4. 죽은 물고기떼가 없다

5. 고열이 없다

6. 깨진 형광등이 없다

7. 화염이 없다

8. 충격파가 없다

9. 굉음이 없다

10. TOD 영상에 온도 변화가 없다.

 

① 천안함에는 화약 냄새를 맡은 대원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주장에 대해

"천안함에는 화약냄새를 맡은 대원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바닷가에서 폭죽 하나만 쏘아도, 담배필 때 성냥 하나만 그어도 화약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성인 6명 크기인 360kgTNT가 터졌는데 화약냄새가 없었다? 1865년 미국 ‘해군병기의 아버지’ 달그린 제독은 어뢰피격 경험을 회고하며 "화약냄새가 진동했다"라고 기술했습니다." (신상철씨 주장 중)

신상철씨는 천안함이 폭발이 아닌 이유로 ‘화약 냄새의 부재’를 들고 있다.이름 나온 김에 달그린 제독의 회고를 더 자세히 들어보자. “선실에서 아침식사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폭음과 충격이 충격이 있었다. 격실이 박살나고 파편이 튀는 가운데 '처음에는 보일러 폭발인 줄 알았다. 전날 저녁에 보일러에 문제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화약냄새가 진동 (The smell of gunpowder quickly followed)을 했고 나는 탄약고가 폭발했나 보다 생각했다.”

남북전쟁 동안 미국 해군 작전에 미친 어뢰 교전의 영향( The Impact Of Mine Warfare Upon US Naval Operations During The Civil War)의 일부.

그런데 달그린 제독이라는 양반이 이 일을 겪은 시기를 확인해 보자. 1865년이다. 즉 19세기 미국의 남북전쟁 즈음이다. 심지어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1867년)하기도 전이다. 어뢰도 자체 추진력을 지니고 다른 배를 명중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어뢰가 아니라 일종의 폭뢰에 가까운 무기였다. 당연히 그 뇌관에는 질산칼륨과 숯, 황을 주성분으로 한 흑색화약이 잔뜩 들어 있었을 것이다. 성냥에서는 당연히 황 냄새가 나고 요즘 폭죽의 주재료는 바로 달그린 제독이 경험했던 ‘어뢰’의 흑색화약이다. 당연히 화약 냄새가 난다. 1865년의 ‘경험’을 2010년에 끌고 와서 ‘화약 냄새가 없었음’을 ‘폭발이 없었다’는 명제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달그린 제독의 백골이 진토되었을 동안 화약도 많이 변화, 발전을 거쳤고 다양해졌다. 일례로 KAL 858 폭파에 사용됐던 콤포지션4(C-4)의 경우 폭발 후 냄새가 나지 않으며 TNT도 비슷하다. 생존 장병들이 일관되게 진술하는 바 화약 냄새보다 기름 냄새가 났다고 하는데 이건 C-4 연소 후에 발생하는 현상과 같다. 즉 화약 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폭발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요즘 어뢰에는 달그린 제독이 맡았던 그 화약 들어가지 않는다. 19세기 화승총에 사용된 화약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M16 소총은 총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② 이비인후과적 손상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승조원 어느 누구도 장파열, 코피, 고막 손상등 폭발로 인한 신체손상이 없었습니다. 시신 또한 전원 '익사'였다. 선체는 거대한 깡통과 같아 충격파 손상이 더 큽니다. 천안함에는 ‘폭발의 3대 효과’인 열, 파편, 폭풍 그 어느 것도 없었고, 폭발에 약한 ‘생명체’가 선체를 부수는 폭발력에 손상이 없었다면 그것은 폭발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신상철씨 주장 중)

위 얘기를 곰곰이 들어보면 다름아닌 기갑 병과 출신들이 술자리에서 흔히 떠들어대는 ‘종 효과’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즉 탱크처럼 금속으로 만들어진 밀폐 구조물에 포탄이 명중될 경우 충격파가 형성돼 내부 인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심지어 탱크는 멀쩡해도 그 안의 병력들은 고막이 파열되고 내장이 터져 죽는다는 으스스한 얘기 말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종 효과’는 사실상 뻥이다. 전차병들은 포탄이 관통해 폭발하거나 이후 내부의 파편이나 화재 때문에 목숨을 잃지 ‘충격파’로 죽지는 않는다. 즉 ‘종 효과’는 일종의 거짓 무용담이다.

하물며 군함이 ‘거대한 깡통’과 같다니 도무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천안함은 여객선이 아닌 군함이다. 겹겹이 설치된 격벽으로 충격을 완화시키고 침수를 방지하도록 설계된 군함이다. 이 군함이 어떻게 거대한 ‘깡통’과 같아서 어뢰의 충격이 골고루 전 선체에 반영돼 병사들의 고막을 찢고 내장을 파열시킨단 말인가. 하다못해 전쟁 영화에서 잠수함에 침몰된 배의 병사들이 고막이 터지고 내장이 파열돼 죽는 것으로 묘사된 장면 본 적 있으신가? 바다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다가 구조되거나 익사하는 장면은 수없이 나오지만 말이다.

물론 폭발 지점에서 근접해 있던 사람들의 최후는 참담했을 것이다. 천안함에서도 끝내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이들이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폭발 지점에서 떨어진 곳에 있던 병사들의 고막과 내장이 무사하다고 해서 “폭발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럼 2차대전 당시 그 치열한 잠수함전에서도 ‘폭발은 없었단’ 말인가.

 

③ ‘폭발의 3대 효과’인 열ㆍ파편ㆍ폭풍과 폭음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이참에 분명히 해 두자. 폭발설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의 일치된 결론은 어뢰든 기뢰든 폭발물이 천안함을 직격한 것이 아니라 수중 폭발을 일으켰고 그로 인한 버블 제트가 천안함의 용골을 꺾어 버렸다고 본다. 즉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는 ‘공기 중 폭발’로 침몰한 것이 아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순양함 셰필드 호처럼 미사일을 맞은 것도 아니고 아르헨티나 순양함 벨그라노 호처럼 어뢰에 직격된 것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어뢰든 미사일이든 직격당하면 당연히 폭발이 일어나고 파편이 사방으로 튀고 화재도 발생할 수 있다. 탄약고에 불이라도 붙으면 그때는 2차대전 당시 일본 전함 야마토처럼 연기가 수 킬로미터 상공을 뒤덮는 대폭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안함이 폭침됐다고 전제한다면, 그 폭발은 수중에서 있었고 직격되지도 않았다. 천안함에 적재돼 있던 포탄들도 죄다 회수될 만큼 2차 폭발이나 화재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천안함은 폭발로 인한 열기로 태워진 게 아니고 터진 것도 아니며 폭탄에 부숴진 것도 아니다. 버블 효과에 의해 선체가 찢어진 것이다.

이런 판인데 열과 폭풍을 경험한 병사들이 없으므로 폭발이 없었다는 것은 결국 “왜 총소리가 안났나?” “소음총을 썼다고 한다.” “총을 쏘았다는데 왜 총소리가 안났나” “소음총을 썼다니까.” “총을 쏘았다는데.....”의 무한루프에 사람들을 태울 뿐이다. 왜 폭음이 들리지 않았느냐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수중 폭발음은 공기 중처럼 크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쿵’ 소리는 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콰아앙’ 천지를 진동하는 공기 중 폭발 소리를 상상하면 안된다.

파손된 천안함을 부위별로 맞춘 사진. 출처: 다음 블로그

④ 물기둥이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물기둥이 보이지 않았다. 수중폭발이 있었다면 20,000기압의 압력이 사방팔방 확산되다 탁트인 수면 위로 솟구쳐 100m 이상의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었어야 한다. 사고 순간 함교밖 좌우엔 견시병이 있었고 그들 중 누구도 물기둥을 본 사실이 없음을 법정증언하였다" (신상철씨 주장 중)

개인적으로 견시병이 정위치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하지만 정위치하고 있었다고 전제하자. 그 정위치는 어디일까. 배 외형을 보면 브리지는 선수 앞쪽에 있고, 폭발이 일어났던 곳은 (어뢰든 기뢰든) 브리지의 뒤쪽 선체의 중간부위다. 견시병의 임무는 정면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폭발은 뒤에서 일어났다. 정면을 주시하고 있던 견시병이 물기둥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폭발 직후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충격으로 1미터쯤 떨어졌다가 넘어진 상황에서’ 후방에서 일어난 일을 가늠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견시병 외에 다른 병사들이 물기둥을 보았을 확률은 거의 없다. 천안함 사건 당일,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최저 기온은 영하 0.7도였다. 그 날씨에, 그것도 바다 위를 항해하는 군함에서 견시병 제외한 병사들이 한가로이 갑판을 거닐고 있었을 리는 없다. 하나 더, 군함은 여객선이 아니다. 풍광을 즐기기 위해 대문짝만한 창문을 붙이고 있는 배가 아니라는 뜻이다. 군함 내부에서 근무하거나 휴식을 취하던 병사들이 물기둥을 봤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물기둥을 왜 못 봤냐는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배 안에서 근무하거나 휴식하던 병사들이 어떻게 물기둥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또 물기둥이란 수십 초 동안이나 천천히 진행되는 현상이 아니지 않은가. 병사들이 외부 충격을 받고 제 정신을 차릴 즈음이면 이미 물기둥은 없다.

 

⑤ 죽은 물고기떼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

"그 시기 인근 해역엔 까나리가 우글거린다. 그러나 360kgTNT 폭발에 죽은 까나리는 단 한마리도 없었습니다. 폭발이 있었다면 인근해역엔 죽은 물고기 떼가 떠다녀야 합니다. 백령도 까나리는 어뢰공격 예측하고 모두 외해로 도망간 것일까요?" (신상철씨 주장 중)

이 얘기는 2010년 당시부터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지만 이른바 의혹 가운데 가장 어이가 없다. 사고가 난 건 밤 9시 22분이었다. 별안간 배가 침몰한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한 구조선이나 새떼인지 잠수정인지 정확지 않으나 북쪽으로 향하는 물체에 향해 포탄을 퍼부으며 추격하던 속초함 장병들이나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천안함 장병들이나 과연 그 밤바다를 살펴 까나리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헤아릴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백령도 앞바다는 인당수로 소문난 곳이고 조류가 매우 강력(시속 3~4노트ㆍ5.5~7.4㎞)하다. 침몰한 지 근 열 시간이 지나 다시 해가 떴을 때 물고기 떼가 얌전히 바다를 떠돌고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그 시간에 더 넓은 서해 바다로 흘러가 흩어졌든지 그걸 먹이로 삼는 갈매기나 다른 어류들이 포식을 했다는 게 더 합리적인 얘기가 아닐까. 폭발을 입증하기 위해 죽은 물고기떼들이 그 센 조류를 뚫고 현장 주변을 빙빙 돌기라도 바랐단 말인가. 천안함의 함미도 조류에 휩쓸려 그 침몰 위치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린 판에 다음날 까나리 떼가 새하얗게 백령도 앞바다를 뒤덮었어야 폭발이었다는 증거가 된단 말인가.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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