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불법정보 70%면 '일베 폐쇄' 가능?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03.25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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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일간 베스트(일베) 사이트를 폐쇄해달라’는 국민 청원에 대해 “불법정보가 70% 이상이라는 사이트 폐쇄 기준에 이르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일베는 ‘극우’와 ‘혐오’, ‘반사회’ 게시물로 유명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다. 일베 사이트 폐쇄가 가능한지 뉴스톱에서 확인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지난 1월 25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라온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 폐쇄를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한 달 만인 2월 24일까지 23만5167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또는 관련 부처 장관의 공식 답변 기준인 ‘한 달 내 20만 명’을 지난 2월 22일 넘어섰다.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3월 23일 청와대 라이브 방송인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음란물, 사행성 정보,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 등 불법 정보가 웹사이트 전체 게시물 중 70%에 달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일베의 불법 정보 게시글 비중이 사이트 폐쇄 기준에 이르렀는지 여부는 좀 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런데 불법정보가 70% 이상이면 폐쇄할 수 있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근거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자체 규정이다. 방심위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 위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내에서의 접속차단 및 사이트 폐쇄, 게시물 삭제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기구다. 법적 근거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이다. 국제평화질서 위반, 헌정질서 위반, 범죄 기타 법령 위반, 선량한 풍속 및 기타 사회질서 위반이 있을 때 제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심의규정에는 얼마나 위반을 해야 폐쇄할 수 있는지 정량적으로 정해져있지 않다. 전 방심위원인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23일 MBC 라디오에서 "불법정보가 70%에 달하면 폐쇄를 하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방심위가 인위로 만든 기준"이라며 "법원에 가면 (...) 그게 불법적인 행정행위로 판단될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일베 폐쇄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에도 일베 폐쇄 요구가 있어 방심위가 심의를 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불법 게시물 70% 이상이면 폐쇄라는 자체 규정이 있었지만, 실제 이 규정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아 폐쇄/차단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줄곧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2001년에는 동성애 사이트 강제폐쇄가 이뤄졌고, 2002년에는 선관위가 대선후보 지지사이트 폐쇄명령을 내려 시민사회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사이트가 폐쇄된 사례를 보면 몇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사이트 폐쇄를 요청하는 여론이 매우 강력하거나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폐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즉, 70%라는 정량적인 기준을 충족해서가 아니라 '필요성'에 의해 결정된 것이 대부분이다.  

2016년 4월 100만 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한 국내 최대 음란사이트인 ‘소라넷’이 폐쇄됐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네덜란드와 공조 수사를 펼쳐 소라넷의 핵심 서버를 압수해 사이트를 폐쇄했다. 소라넷은 단순한 성인 사이트를 넘어서 각종 범죄에 악용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몰카 영상 유포 등으로 피해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08년부터 도메인 주소를 차단해 국내에서 소라넷 사이트 접속을 못하도록 해왔다. 하지만 소라넷 운영자는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새로운 주소를 전파해왔다. 경찰은 소라넷 영구 폐쇄를 위해 운영진 검거에 주력했고, 결국 소라넷은 2016년 6월 6일 트위터 계정을 통해 “소라넷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폐쇄하고 @soranet 계정도 탈퇴한다”고 밝혔다. 

최근인 지난 해 9월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여성 신체를 몰래 찍은 불법 촬영 사진 5592장을 유포하고 성매매 업소를 광고한 혐의로 사이트 운영자들을 구속하고 해당 성인 사이트를 폐쇄했다. 위의 두 사례는 몰카동영상이 사회적 문제로 크게 부각되면서 폐쇄여론이 비등해지자 정부가 행동에 나선 경우다.

2015년 3월에는 자주민보 사이트가 폐쇄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대법원에서 인터넷신문 등록 취소 판결을 받은 ‘자주민보’의 사이트 폐쇄 요구를 의결했다. 자주민보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을 보도해 유죄가 확정된 뒤에도 유사한 게시 글을 계속 올려 등록이 취소된 바 있다. 2011년 8월에는 경찰청이 한총련 홈페이지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와 이의신청 절차를 거쳐 사이트를 폐쇄했다. 국내에 서버를 둔 사이트가 친북 게시물을 이유로 폐쇄된 것은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사이트 폐쇄에 이어 두 번째였다. 대법원은 2015년 4월 3일, 한총련 홈페이지를 폐쇄하라고 명령한 방송통신위원회 처분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두 사례 모두 불법게시물 비율을 확인하기 보다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큰 틀에서 폐쇄가 결정된 경우다. 정부의 결심이 중요한 이유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44조는 불법정보에 대해 9개 항목으로 규정하고 있다. 주로 음란물이나 사행성 정보를 비롯해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 정보, 국가보안법에서의 금지 행위, 범죄 목적 등의 정보를 불법정보로 규정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후 방송통신위원회가 해당 정보의 처리 거부, 정지, 또는 제한을 명령할 수 있다.

청와대도 “웹사이트 전체를 불법정보로 보고 폐쇄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다”며, 다만 “대법원 판례는 불법정보 비중만 보는 게 아니라, 해당 사이트의 제작의도라든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사이트 폐쇄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일베 홈페이지 화면 캡처

그러면 일베 폐쇄는 가능할까? 지난 해 9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차별이나 비하 내용으로 심의 후 삭제 등 조치된 게시물 현황을 보면, 2013년 이후 제재 건수가 가장 많은 사이트가 일베였다. 2013년 이후 2016년(1위 디시인사이드 816건, 2위 일베 804건)만 제외하고 해마다 1위 제재 대상이었다.

우선 일베 사이트는 성인, 도박 등이 아닌 커뮤니티 사이트로 분류되는데 커뮤니티 사이트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또 전체 게시물의 70%가 유해하다고 판단되면 폐쇄가 가능한데, 커뮤니티 사이트의 특성상 정치나 사회적인 발언 외에 게임, 스포츠, 연예 등 다양한 게시물들이 섞여 있어 단순한 수치상으로는 70%에 못 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베에는 하루에만 수천개 글이 생성되고, 전체 게시물은 수천만건에 이르기 때문에 게시물 전체를 검증하는게 불가능하다는 현실론도 있다. 또 폐쇄가 되더라도 ‘소라넷’ 폐쇄에서 나타났던 ‘풍선효과’처럼 비슷한 사이트가 다시 생겨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소라넷 폐쇄 이후 유사한 사이트들이 더욱 활기를 띄기도 했다.

일베 폐쇄에 따른 정치적인 부담도 상당하다. 표현의 자유 침해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폐쇄보다는 청소년 유해 매체 지정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이 주목받고 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4년 9월 일베를 19금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형연 비서관도 “방송통신위원회의 차별, 비하 사이트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 조사 결과에 따라 문제가 심각한 사이트는 청소년의 접근이 제한되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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