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음모론' 8년전 의혹을 또 논쟁하는 비극

  • 기자명 김형민
  • 기사승인 2018.04.03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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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 이어서>

며칠 전 <추적 60분>에서 천안함을 다루었다. “어뢰일 가능성은 십원 반푼어치도 없다”는 솔깃한 인터뷰를 내세운 방송이어서 간만에 ‘닥본사’ (닥치고 본방 사수)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청 소감은 대실망이었다. 8년 전 천안함 사고 직후 흘러나왔던 의혹들을 끌어모은 방송에 불과했고 폭발설을 부인하는 주장들에는 근거가 없었다. 천안함을 건져 올린 이들의 인양 실력의 전문성이야 부정할 것이 없겠으나 비접촉 수중 폭발로 인한 버블 제트가 천안함을 파괴했다는 합조단의 결론 앞에서 “다른 폭발했던 배들과 천안함은 모양이 다르다”는 명제는 일단 번짓수가 틀린 것이다. 천안함은 내부 폭발을 일으킨 배가 아니고 폭격을 맞은 것이 아니니 당연히 폭발했던 배와 모양이 다를 수밖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번 더 확인을 하고 넘어가자. 필자는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특정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범인이라고 단언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1200톤급 군함이 단번에 3등분 나려면 수중 폭발은 있었다고 보는 쪽이며, 그에 반하는 주장들의 설득력을 가늠해 보자는 것일 뿐이다.

본디 신상철씨의 ‘10가지 의문’에 하나 하나 대답해 보고 싶었으나 읽다보니 동어반복이 너무 많음을 느낀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선체는 거대한 ‘북’과 같습니다. 선체 외부에서 폭발해도 내부로 전달되는 충격파로 인해 신체손상이 발생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건 탱크가 충격을 받으면 그 충격파로 인해 별다른 관통이나 폭발이 없이 탱크 안의 병사들이 충격으로 내장이 터져 나간다는 무시무시하나 근거 없는 군사괴담의 군함판이고 1편에서 반박했던 내용의 되풀이다. 격벽이 겹겹이 쳐진 군함이 하나의 ‘북’이라는 (북 안에 나무 판 열 개 쯤 세우고 북을 쳐 보기 바란다. 북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주장 자체를 수용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반박의 논리를 세운단 말인가. 입이 닳도록 비접촉 수중 폭발이라고 얘기하는데 바다 속에서 폭발한 어뢰의 열기가 “적어도 3천도라면 내부가 완전히 녹아 버렸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면 사실 어떻게 대답을 하기 어렵다. 2차대전 때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어뢰 공격을 받은 배들이 2차 폭발이나 화재를 일으킨 경우는 흔했지만 어뢰에 맞았다고 해서 배가 녹아내리는 일은 없다. 화산 폭발이라면 모를까 바닷물이 폭탄의 열기에 부글부글 끓고 살아남은 수병들이 물 속에서 녹아 버리는 스펙터클이 벌어질 리 있겠나.

1999년 6월 14일 서(西)호주 앞바다에서 호주 해군 잠수함 판콤호(號)가 쏜 마크-48 어뢰를 맞고 두 동강이 난 2700t급 대잠 호위 구축함 토렌스호의 함수 쪽 단면(함미는 폭발 직후 침몰). 철판들이 배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마구 휜 채 찢겨 있다. 당시 호주 해군은 어뢰를 토렌스호에 직접 맞히지 않고 토렌스호 밑바닥을 지날 때 터지게 해 버블제트(일종의 물대포) 효과를 노렸다. / 호주 국방과학기술기구(DSTO)

방송에도 소개된 바, 1999년 6월 버블 제트 실험 (비접촉 수중 폭발)으로 동강났던 호주 해군 프리깃함 토렌스 호의 사진들을 보면 천안함의 바닥처럼 선체의 철판들이 위로 솟구쳐 올랐음을 볼 수 있지만 열기에 녹아’ 내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토렌스 호의 절단 모양이 천안함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백 번 실험을 하면 조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백 번 모두 흔적이 다른 것이 폭발이다. 토렌스 호는 천안함보다 규모가 큰 배였고 실험에 사용된 어뢰의 위력도 달랐는데 어떻게 그 폭발 후의 모양새가 찍어낸 듯 같을 수 있겠는가.

KBS 추적 60분 화면 캡쳐

이제 또 진도를 나가 보자. 신상철씨의 주장을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는 천안함의 ‘의문’에 대해 토를 달아 보자.

 

ⓛ 잠수함 충돌설에 대하여

암초 충돌설과 피로 파괴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암초에 충돌했다고 해서 1200톤짜리 배가, 그것도 군함이 단번에 세 동강으로 쪼개질 이유는 없다고 보고 피로 파괴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고 안다. 그 다음으로 남는 건 역시 잠수함 충돌설이다. 그런데 전속력으로 들이받든 또는 부상하면서 충돌하든 천안함을 쪼갤 정도의 타격을 입히려면 잠수함도 상당한 규모여야 한다. 우리 해군의 장보고급이면 대충 1000톤 규모로 충돌하면 양쪽 다 심대한 피해를 입을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런데 장보고급만 해도 백령도 근해를 함부로 드나들지 못한다. 아니 서해 바다 자체가 잠수함이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바다가 아니다.

1999년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되기 꼭 11년 전 그날, 잠수함 한 척이 오전 서해 공해상 어망에 잠수함이 걸렸다. 해군이 출동했고 확인 결과 1800톤 급의 중국 밍(明)급 잠수함이었다. 공해상이었으므로 한국 해군은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았고 잠수함은 그물을 제거하고 돌아갔다. (연합뉴스 1999.3.26) 2003년 역시 중국의 밍급 잠수함이 요동 반도 근처 중국 영해에서 침몰하여 승무원 70명이 몰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사고 특성상 원인이 정확히 발표되지는 않았으나 한국 해군 관계자는 “스크루에 그물이 걸려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서해의 오염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를 보여줬다.... 어선들이 버리는 각종 폐어구들로 서해는 머잖아 죽음의 바다가 될 것”(세계일보 2009.5.21)로 보고 있었고, 차제에 서해에서의 잠수함 작전을 포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서해 바다 속에 가라앉은 폐그물과 어망 등 각종 쓰레기로 잠수함이 작전을 펴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며, 일 년에 한두 차례 하는 한미연합훈련이나 평택 2함대사령부 요청이 있는 때 등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곤 잠수함들은 서해상에서 작전에 나서지 않는다.” (같은 신문) 천안함 사건 1년 전의 일이다.

앞서 얘기했듯 천안함을 들이받아 단번에 쪼갤 수 있는 잠수함이라면, 웬만한 잠수함으로는 어림도 없다. 수천 톤급 규모의 원자력 잠수함 정도는 돼야 하고. 정히 아니라고 해도 한국 해군으로 치면 209급 이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해군이 그런 손해를 입었다는 증거는 없고, 미국 해군도 중국 해군도 전혀 그런 낌새가 없다. 그럼 이 잠수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도대체 어느 나라 잠수함이기에 잠수함의 작전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자국 해군도 판단한 서해 바다를 북상하여 수심 수십 미터 밖에 안되는 북한과의 접경 지역까지 진출하여 운항 중이던 초계정을 들이받고 사라진단 말인가. 그래서 등장하는 괴이한 존재가 있다. 바로 이스라엘 잠수함이다.

 

② 천안함을 들이받은 것은 이스라엘 잠수함이다?

신상철씨는 몇 번에 걸쳐 이스라엘 잠수함이 천안함을 들이받아 격침시켰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천안함과 충돌한 이스라엘 잠수함은 페르시아만과 바다 조건이 가장 유사한 서해에서 비밀훈련 중”이었으며, 이 잠수함은 “베트남의 해군기지를 이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선 지도부터 들여다보자.

이스라엘 지도다. 이스라엘의 서쪽으로 지중해가 펼쳐져 있고 홍해에는 꼭지점 하나가 가까스로 닿아 있다. 항구도시 에일라트다. 이곳에도 이스라엘 해군 초계정이 주둔해 있지만 이스라엘의 해군력은 바다에 넓게 면한 지중해 쪽에 집중 배치돼 있다. 대형 함선은 별로 없고 잠수함도 우리 해군의 209급을 개조한 돌핀급으로 3~5척 정도 지닌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몇 척 안 되는 이 재래식 잠수함을 한국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수에즈 운하를 당당하게 통과하거나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말라카 해협을 지나 동지나 해를 북상하여 백령도에 다다르는 길을 타야 한다. 홍해에 면한 에일라트에 잠수함이 있다고 쳐도 감시의 눈길 번득이는 좁다한 홍해와 아라비아 반도를 지나 기나긴 항해를 해야 한다. 보급 없이 장기 항해 가능한 원자력 잠수함도 아니고 주기적으로는 물 위에 떠서 항해해야 하는 재래식 잠수함이 대관절 극동의 초긴장 접경지역 백령도까지 왜 온단 말인가.

수에즈운하 개통 후 항로 ⓒEnCyber.com

페르시아 만과 바다 조건이 유사하다는데 바다 조건이 비슷한 곳이 하필이면 한국이라는 주장은 기상천외하기도 하거니와 베트남이 자신들의 해군 기지를 이스라엘 해군에 제공했다는 근거도 없다. 그냥 주장일 뿐이다. 요즘 말로 ‘답정너’의 일종이랄까. 즉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듣기만 하면 된다’는 식.

근거가 없다 보니 억지가 등장한다. 2010년 6월 ‘뜽금없이’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대통령이 방문했으며 이것이 이스라엘 잠수함 관련 사고처리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페레스 대통령의 방한은 원래 ‘국빈 방문’이었다. 국빈 방문은 최소 6개월 이상의 준비 기간을 거치는 행사다. 영국의 예를 들자면 1년에 2번 이상의 국빈을 맞지 않으며 “영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은 1952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이래 부시가 11명째인데, ‘국빈’은 2003년의 부시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한겨레21 제 987호 김외현의 정치의 속살, ‘국빈의 자격’) 2010년 3월 말 발생한 천안함 사태로 6월 국빈 방문이 뜬금없이 정해지는 경우는 없다는 뜻이다. 또 방한 직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구호선 공격 사건이 발생하면서 한국 정부가 방한 연기를 제안했고, 이후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압력을 감안해 페레스 대통령의 방한수준을 낮추기로 했다고 이집트 국영 통신 MENA가 보도한 바 있다(그러나 한국 정부는 천안함 사건때문에 외국인사 방문규모를 축소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페레스 대통령의 수행원들은 엘리제 산업통상노동부 장관과 칼 흘론 통신부장관 등으로 군사적 의제를 논의하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스라엘 잠수함이라는 주장을 전개한다면 필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③ 한미합동 훈련 중 북한 잠수함이 경계를 뚫는 것이 불가능하다?

천안함 사건의 범인이 북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의문은 잘못된 팩트에 근거하고 있다. AP통신은 2010년 6월 5일(현지시각) 미 국방부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해 "한미 합동 대잠수함 훈련이 지난 3월 25일 오후 10시부터 그 다음날 오후 9시까지 실시됐으며 훈련은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CBS) 위에서 언급한 바, 1년에 한 두 번 있는 ‘한미연합훈련’ 상황이었고 한국 해군 잠수함을 타깃으로 한 대잠 훈련이 전개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 해군의 대잠(對潛) 전력이 총동원된 상태에서 어떻게 북한 잠수함이 한국 영해를 헤집고 다니겠느냐는 질문이 가능하겠지만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그 훈련은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있었다. AP 통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잠수함 훈련은 천안함 침몰 현장에서 75마일(약 120㎞) 떨어진 해역에서 진행됐다.”

천안함은 그 훈련에 참여하던 배가 아니었다. 즉 대잠 훈련의 경계망의 일원이 아니었고 120㎞ 밖에서 일상적인 초계 활동을 벌이던 군함이었다. 쉽게 말하면 훈련은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천안함은 청주 쯤에서 일상적인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는 뜻이다. 즉 ‘삼엄한 경계’가 백령도 근처에 펼쳐져 있던 것이 아니었다. 한미 연합 해군 아니 숫제 미합중국 해군의 대잠 전력이 총출동했다 하더라도 격렬비열도 해상에서 120킬로미터 떨어진 백령도 앞바다의 잠수함 침투를 봉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용옥 교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당시 서해에는 미국 이지스함 2대와 13척의 함대가 있었는데, 거길 뚫고 들어와 어뢰를 쏘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게 말이 되는가.” 글쎄 그것이 말이 된다. 다시 한 번 반복한다. 서해는 동네 연못이 아니다. 격렬비열도와 백령도는 120㎞ 거리다. 그리고 이지스함은 대잠 능력보다는 방공 능력에 주안점을 둔 함정이다. 김용옥 교수의 질문이 과연 말이 되는가.

혹자는 여기서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미 훈련은 멀리서 했다고 치자.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 서해 바다는 그렇게 잠수함이 다니기 힘들다면서 어떻게 북한 잠수함이 우리 영해를 그렇게 쉽게 넘나들어 어뢰를 쏘고 달아난단 말인가.” 북한 잠수함이 어뢰를 쏘았는지 어땠는지는 미뤄 두고, 백령도나 서해 5도에서 강화도, 한강 하구에 이르는 바닷길은 북한 해군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북한은 우리보다 먼저 잠수함을 운용해 왔고 소형 잠수정을 통한 대남 공작을 무수히 실행했던 나라다. 우리가 익히 아는 남한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은 강화도에서 북한에서 내려온 잠수정과 접선하여 그걸 타고 북으로 가지 않았던가. 북한은 서해 5도 바닷길을 우리 해군만큼이나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철통 같은 방어막을 친다 해도 잠수함이 넘나드는 걸 탐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게 잠수함을 만드는 이유다. 

 

④ 패잔병 주장은 믿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김용옥 교수의 코멘트를 더 인용해 보자.

“패잔병이 당하고 나서 발표하는 내용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일본군 같으면 할복을 한다”

김용옥 교수의 패잔병 표현은 천안함 장병들이 아니라 고위 장성들에게 가해진 언사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단어 선택의 무신경함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천안함이 북한의 기습에 의해 침몰했다고 해서 한국군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 군대도 기습을 받아 피해를 입은 자국 군대를 ‘패잔병’이라 부르지 않는다.

제 2차세계대전 당시 인디애나폴리스호 격침 사건을 다룬 영화 <USS 인디애나폴리스: 맨 오브 커리지> 포스터

2000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2차대전 중 침몰했던 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함장이었던 맥베이 대령의 ‘무죄’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아주 긴 사연이 있다. 이 배는 원자폭탄을 미국 본토에서 태평양으로 실어날랐던 배였다. 원자폭탄을 무사히 전하기는 했으나 돌아가는 길이었던 1945년 7월 30일 일본군 잠수함에 걸려 침몰하고 말았다. 항해 자체가 기밀이었기에 그 이동이 비밀에 부쳐져 있었고 전쟁이 끝나간다는 나태함 속에서 인디애나폴리스가 애타게 보냈던 SOS는 까맣게 잊혀졌다. 우연히 지나가던 미군 비행기가 그들을 발견하기까지 4일 동안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9백명 수병들은 (고막이 터지지도 않고 내장이 파열되지도 않은) 구명 보트와 구명 조끼에 의지하여 바다에 떠 있었다.

그들에게 닥친 것이 상어 떼였다. 영화 <죠스>의 주인공 상어잡이 퀸트가 이 배의 선원이었거니와, 600 여 명의 선원이 동료들 앞에서 죽어갔다. 생존자는 316명. 이 기막힌 피해 앞에 여론은 들끓었다. 함장 맥베이는 구조 요청을 보냈다고 주장했지만 해군은 받은 바 없다고 우겼고 맥베이는 군법회의에 회부돼 ‘어뢰 회피 기동을 하지 않은 죄’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이후 복권되기는 하지만 사회적 비난을 견디지 못한 맥베이는 자살한다.

1990년대 접어들어 한 열 두 살 소년이 흥미로운 역사를 발견한다. 그렇게 많은 군함이 가라앉았건만 자기 배를 잃었다고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맥베이 하나였던 것이다. 이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던 소년은 인디애나폴리스 호의 생존자들까지 찾아다닌 끝에 맥베이 함장의 무죄를 확신하고 무죄 탄원 운동을 시작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 일본인이 나선다. 그는 인디애나폴리스 호를 격침시킨 잠수함의 함장 모치즈라 하시모토(Mochitsura Hashimoto)였다.

“어뢰공격을 지시했던 장본인으로서 저는 맥베이 대령이 왜 군사법정에 세워졌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경계 태세를 소홀히 했다는 유죄 이유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인디아나 폴리스는 어떤 기동을 하든 격침이 가능했던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근거로 맥베이 대령은 수십 년의 누명을 벗게 된다. 이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 뜻은 다름이 아니다. 기습을 당하여 피해를 입었다고 패전한 것이 아니며, 기습을 당했다는 자체가 “경계에 실패”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잠수함은 은밀한 기습을 주무기로 하는 병기이고 많은 해군과 선원들은 자신이 무엇에 공격당했는지도 모르게 죽어갔던 것이 전쟁의 역사다. 하물며 비상 경계 태세도 아니었고 일상적인 초계 활동 중이던 천안함 장병들에게 경계 소홀의 누명을 씌우고 패잔병의 멍에를 드리우는 것은 그야말로 얼토당토 않은 일이다.

 

⑤ 천암한 관련자들은 모두 승진했다?

혹자는 말한다. 천안함 사건 후 관련자들이 다 승진했다고. 미안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당장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은 그 이후 육상 근무로 돌려졌고 동기생들이 다 별을 달 요즘에도 아직 중령 계급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가 소장이 되었네 중장이 되었네 하며 승진 잔치를 벌였다는 보도도 다분히 과잉이다. 합참의장 이상의 대장이 옷을 벗었고 황중선 합참합동작전본부장(육군중장)과 박정화 해군작전사령관(해군 중장)과 김동식 2함대사령관(해군 소장)은 보직해임되고 한직으로 갔다가 전역했다. 천안함이 배속되었던 이원보 22전대장 (대령)도 진급에서 물을 먹었다. 역으로 질문 하나 해 보면 도대체 그 ‘책임’이 어디까지 지워져야 할까. 1941년 진주만 기습이라는 전대미문의 피해 앞에서도 징계를 받은 사람은 하와이 주둔 미국 해군 사령관 킴멜 제독과 육군 사령관 쇼트 장군 뿐이었다. 군대에서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지휘 계통에서 벗어난 이들까지의 책임까지 묻는다면 남아날 수 있는 사람은 대관절 누구일까.

KBS <추적 60분> '8년만의 공개 천암함 보고서의 진실' 예고편 화면 캡쳐

<추적 60분>에서 천안함 합동조사단장이었던 윤덕용 교수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어떤 객관적 사실과 편견이 있는 의견을 구별을 못하거든요. 무엇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는 겁니다. 사실은 굉장히 비참한 현상입니다.” 

필자는 이 말에 공감이 갔다. 천안함 사건을 두고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면 수구꼴통으로 몰리고 북한이 아니라고 하면 종북좌익으로 규정되고, 조선일보의 인간 어뢰부터 난데없는 이스라엘 잠수함까지 상상과 창작에 가까운 설들이 난무하는 분위기 속에서 객관적 사실과 편견은 뒤죽박죽 끌탕이 돼 버렸다. 결국 우리는 8년 전과 똑같은 의혹을 가지고 8년 전과 똑같은 주제로 8년 전과 똑같은 논박을 주고받고 있다. 이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 자체가 비극적인 일이지만 비극을 종식시키는데 유용하다면. 그런데 뭘 조사할 것인가부터가 문제다. 예컨대 이스라엘 잠수함을 조사하겠다면 전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것이므로. 

"어떤 주장을 믿고 수용하든 그건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그 자유를 행사하기 전에 주장의 근거들을 따져 보자. 그 근거들이 얼마나 튼실한지를 챙겨 본 뒤에 결정의 자유를 누려 보자. 그래야 우리는 오늘에 곱씹는 비참함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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