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아웃'이 삼진보다 먼저 생겼다는 위키의 엉터리 설명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8.04.09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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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3이라는 숫자와 친근하다.

한 이닝의 아웃카운트는 세 개이며, 스트라이크는 세 개면 아웃이다. 따라서 투수가 한 이닝에 잡을 수 있는 삼진 아웃은 세 개다. 하지만 네 개가 될 때도 있다. 주심이 스트라이크 아웃을 선언했지만 낫아웃, 즉 인플레이 상태가 되는 상황이 있다.

투 스트라이크에서 헛스윙이나 주심의 판정으로 스트라이크가 된 공을 포수가 잡지 못하면 주자는 1루로 뛸 수 있다. 단 무사나 1사에서 주자가 1루에 있으면 낫아웃 상황이 아니다. 포수가 이 공을 1루수에게 송구하기 전에 타자 주자가 베이스를 밟으면 세이프다. 하지만 타자와 투수에겐 모두 삼진 기록이 주어진다. 투수가 이닝 첫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고 타자에게 낫아웃 출루를 허용한 뒤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면 1이닝 4삼진 기록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KBO리그에선 모두 일곱 번 1이닝 4삼진 기록이 나왔다. 2016년 8월 7일 NC 에릭 해커가 대전 한화전 4회에 일곱 번째로 이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이 낫아웃 규정에 대한 잘못된 설명이 인터넷에서 유통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한국판은 ‘낫아웃’ 기원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삼진이 (낫아웃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제도다. 1845년에 제정된 니커보커스 규칙에 따르면 야구 초기에 타자들은 볼을 칠 수 있는 기회가 세 번밖에 없었다. 스트라이크가 세 개 들어오기 전에 타자들은 반드시 공을 때려야 했다.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치지 않으면 자동으로 타자가 "페어 볼"을 때린 것으로 간주했다. 세 번째 스트라이크가 선언되면 타자는 무조건 1루를 향해 내달렸다.

당시에는 장비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을뿐더러 포수의 위치가 지금보다 훨씬 뒤였으므로 낫아웃 상태에서 살아나갈 확률도 그만큼 높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포수가 타자와 가까운 위치에서 포구하게 되었고 포수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3스트라이크 이후 1루에 살아나갈 확률이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세 번째 스트라이크가 곧바로 포수에게 잡히면 타자는 자동으로 아웃된다는 규칙이 생기게 됐다. 삼진이 시작된 것이다.

 

첫 문장부터 오류가 있다. 삼진과 낫아웃은 모두 1845년 만들어진 니커보커 룰 11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타자가 세 번 헛스윙을 하고, 세 번째 공을 포수가 잡으면 아웃이다. 포구에 실패한 공은 페어 타구가 되며, 타자는 주자가 된다
Three balls being struck at and missed and the last one caught is a hand out; if not caught is considered fair, and a striker is bound to run.

지금의 야구규칙과 가장 다른 점은 오직 헛스윙만 스트라이크로 간주됐다는 데 있다. 따라서 “타자들은 볼을 칠 수 있는 기회가 세 번밖에 없었다”는 두 번째 문장도 오류다. 당시 타자들은 스윙을 하지 않으면 무한정 공을 볼 기회가 있었다. 베이스 온 볼스 규정도 처음 야구규칙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세 번째와 네 번째 문장도 오류다.

19세기 야구 기록화에는 당시 포수들의 위치는 지금과 거의 비슷했다. 그래서 다섯 번째 문장도 오류다. “세 번째 스트라이크가 곧바로 포수에게 잡히면 타자는 자동으로 아웃된다는 규칙이 생겼다”는 혼란스러운 설명이다. 스윙 없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공도 스트라이크로 판정하는 콜드 스트라이크(Called Strike) 규칙은 한참 뒤에 도입됐다. 하지만 이 규칙이 세 번째 스트라이크에만 적용된 건 아니었다. 마지막 “삼진이 시작된 것이다”도 물론 잘못됐다. 삼진 아웃은 최초 야구규칙부터 만들어진 규칙이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에게 사랑받는 또다른 위키 사이트인 나무위키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발견된다.

“원래 규정 상 삼진이란 건 없었고, 스트라이크 3개는 인플레이 상태가 되는데, 야구 초창기에는 지금과 달리 포수 장비가 거의 없었으니 포수는 지금의 포수박스 보다 훨씬 뒤에 있었다. 투구를 노바운드로 포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가장 중요한 파울 타구에 맞아서 다칠 확률이 매우 높으므로 이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그래서 스트라이크 3개가 들어와도 자동으로 아웃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는 1루로 질주하고 포수는 1루로 송구하여 포스아웃하는 식이었다. 이 당시에는 포수와 타자 및 포수와 1루와의 거리도 지금보다 멀었으므로 살아나갈 확률도 지금보다 높았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포수장비가 발달하면서 타자와 포수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서 예전처럼 3번째 스트라이크를 당한 타자가 1루에서 세이프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예 스트라이크 3개는 자동으로 아웃이 되도록 하였다. 이것이 삼진이다. 하지만 인플레이가 되는 시점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이 남아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식 포구만으로 아웃이 인정되는 것은 시간 절약도 되면서 멋진 장면이 연출되어 야구의 매력을 더해주었다.”

이 문장에서 옳은 설명은 “지금과 달리 포수 장비가 거의 없었으니” 밖에 없다. 위키 사이트는 일반 네티즌들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전문성과 노력이 돋보이는 항목도 많지만 오류도 당연히 많다. 굳이 오류를 지적하는 까닭은 잘못 설명되고 있는 낫아웃 규정에 야구라는 경기의 중요한 원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1845년 니커보커룰은 지금의 야구규칙과 많이 다르다. 9이닝제 경기가 아닌 같은 아웃카운트 안에서 21점을 먼저 내는 경기였다. 수비수가 원 바운드로 잡은 공은 플라이 포구와 마찬가지로 아웃이었다. 파울 타구로 타자가 출루할 수 없다는 건 지금의 규칙과 비슷하다. 하지만 파울플라이를 잡아도 아웃이 아니었다. 

파울 규칙에서 당시 야구규칙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승부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그래서 파울은 안타도 아니지만 아웃도 될 수 없는 타구로 여겼다. 외야 펜스를 넘어가는 홈런은 베이브 루스 이후 야구의 꽃이 됐다. 야구 팬들이 가장 열광하는 플레이가 홈런이다. 하지만 니커보커룰에서 구장을 벗어나는 페어타구는 ‘단타’로 간주됐다. 수비수가 잡을 수 없는 타구에 네 베이스를 주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19세기 야구장은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는 이유도 있다.

야구는 미국 동부 대도시의 화이트칼라들의 클럽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니커보커 룰을 만든 뉴욕 니커보커스 클럽은 변호사, 의사, 회사 사무원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영국식 클럽을 지향했으며 자신들을 신사로 여겼다. 승패 이전에 스포츠를 통한 자기 연마가 목적이었다.

19세기 뉴저지의 엘리시안 구장(Elysian Fields)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의 모습. 출처: 19cbaseball.com

야구규칙은 페어플레이라는 원칙 아래 만들어졌다. 아웃이 성립되기 위해선 공격 측의 실수(헛스윙) 뿐 아니라 수비 측도 플레이를 완결해야 한다. 이게 야구의 고안자들이 생각한 '페어플레이'였다. 그래서 최초의 야구규칙에는 삼진 아웃과 함께 낫아웃 규정이 들어간 것이다. 낫아웃은 오늘날에는 웬만한 야구 팬도 가끔 헷갈리는 복잡한 규칙이지만, 19세기 ‘야구 신사’들에게는 당연한 그 무엇이었다.

니커보커룰은 딱 20개 조항으로 이뤄져 있다. 실제 플레이에 대한 규정은 11개 뿐이다. 11개 조항 안에 보크와 수비 방해도 포함돼 있다. 페어플레이 원칙은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낫아웃 규칙은 1880년대에 개정을 거친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1사나 2사에서 주자가 1루에 있을 때는 낫아웃이 적용되지 않도록 했다. 포수가 일부러 공을 떨어뜨려 더블플레이를 노릴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역시 페어플레이라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고의낙구에 의한 더블플레이를 막기 위한 인필드플라이 규칙도 같은 이유에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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