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택배차 진입거부 법적으로 허용될까?

남양주 아파트 '택배 갈등'에 대한 궁금증 팩트체크

  • 기사입력 2018.04.14 09:52
  • 최종수정 2018.04.14 10:01
  • 기자명 이고은 기자

지난 10일 전후로 경기도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지상에 택배차량을 운행하지 못하게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른바 ‘택배 갈등’ 혹은 ‘갑질 논란’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현대인의 삶에 깊이 침투한 택배 문화는 생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입주민, 택배회사, 시공사 등 각 주체가 갈등의 책임을 서로에게 물으면서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택배 전쟁 논란과 관련 이슈에 대한 궁금증을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1. 아파트 내 택배차량 운행을 막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된다?

진실이다. 차 없는 아파트라고 해도 지상에 차가 아예 다닐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비상 안전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소방기본법 제21조의2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는 화재, 재난, 사고 등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소방자동차 전용구역을 구비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내 도로나 주차장은 도로법 규정상 원칙적으로 사유지여서 도로에 해당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 구역을 소방자동차 등 긴급자동차(구급차, 혈액 공급차량) 외에 이삿짐 차량이나 택배 차량의 이용 가능여부를 정하는 것은 입주민들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2. 지하주차장이 낮아 택배차가 못 들어가는 건 법상 문제 없다?

진실이다. 현행 주차장법 시행규칙 제6조에서 지하식 또는 건축물식 노외주차장의 높이는 2.3미터 이상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높이 규정은 1990년 12월 24일에 주차장법 시행규칙이 전면 개정된 이후 변경된 바가 없다.

그런데 현재 택배 차량으로 쓰이는 이른바 ‘탑차’들의 높이가 2.5~3.0m 높이라는 점이 문제다. 지하주차장으로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하에만 주차 공간이 있는 ‘차 없는 아파트’에는 아파트동과 인접한 곳에 차를 댈 수가 없다.

주차장법을 개정해 주차장 높이 조건을 변경하면 해결될 것 같지만, 이것이 녹록치 않다. 우선 지하주차장 높이를 높이려면 공사비가 늘어나서 건설사 측에서 반기지 않고, 국토교통부 역시 뚜렷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는 대부분 동일한 갈등을 겪고 있다. 법은 지켰지만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건설사의 실패라는 것이다. 아파트 입주민은 택배회사에 차량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지만 최대한 많은 짐을 빠르게 배송해야하는 택배사 입장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요청이어서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 앞에 쌓인 택배 상자들.

 

3. 택배회사의 배달 거부는 가능한 일이다?

절반의 진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하고 있는 2008년 개정된 ‘택배 표준약관’ 제9조 배송물의 배송 거절을 보면, 택배업체가 몇 가지 상황에서 택배 배달을 거절할 수 있다. 그 중 ‘배송물의 인도예정시간에 따른 배송이 불가능한 경우’라는 항목은 다산신도시 아파트 사례와 같이 배송에 소요되는 시간과 물리력이 너무 과도해, 배송이 불가능한 경우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때문에 택배사가 택배기사의 노동 환경과 실질적 배송 가능성을 염두해 배송 거절을 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사기업인 택배 회사가 고객의 평가와 신뢰를 잃어버릴까봐 전면적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기업이나 입주민, 아파트 건설사나 관련 당국 모두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결국 택배기사들만 ‘갑질’의 총체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 모든 택배사가 해당 아파트 배달을 거부하기로 했다?

거짓이다. 지난 10일 한 인터넷커뮤니티에는 자신을 택배기사로 소개한 한 이용자가 “본사에서 공문이 왔다. 남양주 다산동 아파트로 물건을 못 보낸다는 공문이 내려왔고 전 택배사가 다 그렇게 하기로 했다. 몇몇 이기주의 사람들 때문에 다른 분들도 택배를 못 받게 되었다는 건데 안타깝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택배 전쟁 논란과 함께 각종 커뮤니티에 사실인 것처럼 알려지며 논란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모든 택배회사’가 해당 아파트에 배달을 거부하는 공문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아시아타임즈는 이른바 국내 ‘3대 택배회사’로 불리는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CJ대한통운에 문의한 결과, 이 네티즌의 주장대로 배달을 중단하겠다는 공문을 내려 보낸 적이 없다고 보도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택배기사의 글

해당 글을 쓴 택배기사가 소속된 택배회사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인데, 일부 회사가 글쓴이의 말대로 배달 금지 방침을 내렸을 수는 있으나 모든 택배사의 방침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업체에서 해당 아파트를 배송 불가 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인들이 월급을 받고 아파트 입구의 택배를 해당 가정에 배달해주는 '아파트 실버택배' 도입이 대안이라는 제안도 나왔다. 

 

5. ‘택배 갈등’의 출발은 아파트값 유지 욕망이다?

대체로 진실이다. 택배기사에 대한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5년 8월에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택배 차량 진입을 막고 “걸어서 배송하라”는 통보에 택배 업체에서 “택배기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해당 아파트의 택배를 반송 조치한 사실이 화제가 됐다. 이후에도 택배기사에게 엘리베이터 사용을 금지하거나, 아파트 통행료를 부과하는 등의 ‘갑질’도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5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통되었던 택배사의 반송조치 스티커

이 같은 ‘택배 갑질’ 논란은 지상에 차량 통행을 막는 대단지 아파트들이 늘고 택배로 물건을 배달받아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나타났다. ‘차 없는 아파트’는 2000년을 전후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1998년 분양가가 자율화된 이후 아파트 시장의 고급화 추세가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언론 기사를 검색해보면 이후 시기부터 대도시의 고급형 대단지 아파트 붐이 일면서 ‘지상에 차가 다니지 않는 공원형 아파트’가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지상은 모두 공원처럼 조경을 꾸미고, 차들은 지하주차장을 통해서만 다닐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건설사들은 이런 아파트 스펙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차 없는 아파트’는 고품격 프리미엄 아파트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자유롭게 아이들이 뛰어노는 상황에서 차량이 들어와 사고가 나는 것에 대한 학부모의 불안감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갑질 논란은 새로 지은 아파트 혹은 고가의 아파트에서 발생한다. 

아파트가 자산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동시에 경제적 계급이 비교적 높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자원이 되면서, 아파트 입주민들이 아파트 공동시설을 위해 고용한 인력들을 향해 ‘갑질’을 하는 행위가 종종 사회적으로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택배기사 역시 저임금에 육체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무시되며 ‘갑질’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이고은   freetree@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5년부터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다 2016년 '독박육아'를 이유로 퇴사했다. 정치부, 사회부 기자를 거쳤고 온라인 저널리즘 연구팀에서 일하며 저널리즘 혁신에 관심을 갖게 됐다. 두 아이 엄마로서 아이키우기 힘든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에 대해 알리는 일에도 열의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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